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65화 (265/925)

48. 첫 실습 (4)

이계가 발생하기 몇 시간 전.

주민 대피령이 떨어져 한산해진 올림픽 공원을 내려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계 발생 예상지 인근 거주 건물에도 사전에 대피 명령이 떨어져, 이들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아파트 옥상에서 공원을 관찰할 수 있었다.

“타깃은 학교 밖으로 나왔나?”

“기숙사생과 이동해 실습 장소로 이동 중이다.”

수트 차림의 이들의 넥타이핀에는 세 기사의 맹세 팀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목우람 암살 지령을 받고 한반도까지 온 세 기사의 맹세의 정예였다.

암살자들은 최고위 기사들, 팀 마스터들의 명령을 받아 한국까지 왔고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계획도 짰다.

그러나 ‘학교’, ‘기숙사생’이라는 단어에 회의감을 느끼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솔직히 좀 그래. 세계 10대 프로 플레이어 팀의 정예, 선임 기사가 고등학생 암살이라니.”

“…….”

“다시 설득하는 건 어때? 그때 조건이 별로라서 거절한 거 아니야? 나도 처음 스카우트 받았을 때는 거절했잖아.”

“이미 최고위 기사가 손을 썼다.”

“손을 써?”

망원 기능이 있는 선글라스로 눈을 숨긴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병기들을 썼다는군.”

‘병기’라는 단어에 질문한 이가 짧게 욕을 뱉었다.

“그렇군. 그래서, 그 병기들을 동원했는데도 못 잡은 걸 우리보고 잡으라고?”

“중국과 달리 한반도에는 현무와 거북이 없으니까. 병기들은 현무와 현무를 따르는 거북의 손에 소멸되었다.”

“현무? 동양의 사신 중 하나를 말하는 거 맞지? 타깃이 현무의 가호를 받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랬다면 타깃이 중국에 계속 머물렀거나, 현무도 한반도로 왔겠지. 현무의 영역을 어지럽힌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군.”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두 남자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병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몹시 꺼림칙한 듯 그들은 매우 부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는 거 효율이 나쁜 거 같은데. 그냥 마족의 눈을 빌리지 그랬어.”

“그럴 순 없었다. 타깃의 부담임이 공간의 용이었으니까.”

“아, 넌 유희계 용과 싸워 본 적이 있다고 했지. 그 용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나 보군.”

이들은 타깃을 기다리며 용제건과 마주칠 경우를 대비해 대책을 논했다.

이윽고 타깃 목우람이 반 아이들과 나타나 미궁형 이계의 틈으로 사라졌다.

“공략이 시작됐다. 5분 후에 작전을 개시한다. 네가 테이밍한 에너미를 소환해 창천명궁을 유인하고 우리도 이계의 틈으로 들어간다. 그를 상대로 세 발자국 이상 거리를 벌리면 안 된다. 반드시 근접전으로 싸워야 한다.”

“알았어. 작전이 틀어져 창천명궁과 교전 상태로 들어가면 네가 맡아.”

그들은 실리콘 가면을 써 평범한 동양인 플레이어의 모습으로 변장했다.

초대 팀 마스터들의 가문의 인장이 얽힌 팀 마크가 새겨진 넥타이핀 장식도 어느 사이엔가 이계 광석으로 덮였다.

특훈으로 외국인 특유의 어색한 발음을 지우고 교정한 한국어도 완벽했다.

그들이 아이템 카드를 쥐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할 때였다.

“잠깐!”

테이밍한 에너미를 소환하려던 남자가 올림픽 공원 입구를 가리켰다.

영원의 호수의 팀 마크가 새겨진 에어 밴이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영원의 호수가 사용하는 에어 밴이군.”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혀를 찼다.

근접전에 약한 플레이어, 창천명궁 하나라면 모를까 저렇게 인원이 많아서야 눈을 피하는 것도, 제압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거기에 저 일행 중에는 팀 마스터인 권제인과 팀 서브 마스터인 재러드 리까지 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저거 재러드잖아! 아직도 푸른 바이올리니스트 기사 노릇을 하나 보네.”

“권제인은 명예 교사직에 있다고 했지. 학생을 응원하러 온 건가?”

“실습 중인 학생을 응원한다고 쳐도 이상해. 수가 많아. 게다가 전원 완전 무장 중이잖아! 이쪽의 작전이 읽힌 걸지도 모르겠네.”

“오늘 작전은 중단이다.”

“당연하지! 난 장수하고 싶어!”

이들은 약속한 것처럼 아이템 카드를 품에 넣고 철수할 준비를 했다.

기록기기의 사각지대를 체크하는 사이에, 그들 중 하나가 망원 선글라스를 벗고 옥상 난간으로 뛰어갔다.

스킬이 발동한 듯, 눈에는 이능파가 모여 있었다.

“왜 그래? 거리가 있긴 하지만 이능파 죽여. 누가 눈치채면 어쩌려고.”

“뭔가 있다.”

“……응? 아, 혹시 이계 구조가 변한 거? 그거 방금 한국 협회 위성이 경보를 다시 쐈어. 뭐, 이계 난이도나 구조가 저 정도 범위에서 변하는 건 흔한 일 아냐?”

“다섯 개의 이계를 동시에 봐라.”

옥상 문 근처에 있던 남자가 그 말에 난간 쪽으로 걸어왔다.

맑은 하늘을 뒤로 새떼가 지나가고 있었고, 그 밑으로 이계의 틈이 곳곳에 발생한 게 보였다.

현재 올림픽 공원 주변에서 발생 중인 이계들을 시야에 모두 넣어 관찰하던 남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자가 개입한 건가?”

“아지트로 돌아가자. 최고위 기사들에게 보고하고 방침을 정한다.”

세 기사의 맹세의 정예 기사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천동하의 광림은 정보 수집에 유용했으나, 단점도 존재하긴 했다.

단점 첫째는 정보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

천동하 정도 되는 천재이기에 그 정보량을 수용하고 분석할 수 있던 거지, 범재가 이런 광림을 얻었다면 발동과 동시에 미쳤을지도 모른다.

단점 둘째는 ‘건곤(乾坤)을 품은 눈’은 광림의 이름 그대로 ‘눈’이라는 점.

모을 수 있는 정보는 시각 정보밖에 없었다.

그러니 지금 우리 반 아이들이 보이긴 했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표정이나 입 모양을 읽을 수 있긴 하지만, 불편하네.’

천동하의 광림을 발동한 상태로 미궁을 돌파하다 보니 머리가 빙빙 돌았다.

‘건곤(乾坤)을 품은 눈’의 사용을 중단하고 이동하는 게 효율이 훨씬 좋을 거다.

그래도 광림 사용을 멈출 수 없었다.

‘집중력이 이 정도로 떨어지면, 마나 운용 수식을 이해하기 어려워. 마나의 흐름이 변하는 것도 감지하기 어렵고. 이 상태로 마법은 쓸 수 없어.’

그렇다고 ‘무명의 운명’을 쓸 수는 없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무명의 운명’을 사용해 광림을 두 개 이상 발동하는 것도 자제하는 게 좋겠지.’

예기치 못한 상대의 수에 대비해 비장의 수를 남겨 둬야 한다.

소거법으로 남은 수를 쓰기로 했다.

마법이나 광림이 아닌 수 중에, 미궁을 가장 빠르게 돌파할 수 있는 무기를 꺼냈다.

〈스킬 ‘만물 사용’이 발동했습니다.〉

손에 들린 상보심금파가 희미하게 빛을 뿜었다.

상보심금파가 직접 말을 하진 않았지만, 새 주인의 떨어진 집중력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현재 플로어의 모든 시각 정보를 머릿속으로 굴리느라 집중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은련관에서 백호군과 영호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경고, 에너미가 접근 중입니다.〉

지이이, 지이익……!

바닥에 발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등장한 에너미의 실루엣은 인간의 것과 가까웠지만, 실체는 그렇지 않았다.

2m에 가까운 몸체에 직립 보행 중인 에너미는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었는데, 물기가 없는 탓에 표면이 번들거리기보다는 버석버석해 보였다.

물기가 남아 있는 건 안구뿐이었다.

‘미궁에 사로잡혀 물로 돌아가지 못한 어인(魚人), 미궁계 어인형 에너미군. 약점은 불꽃이지만…… 상보심금파의 희귀도나 내 스킬 레벨을 생각하면 물리 공격으로도 해치울 수 있어.’

미궁계 어인형 에너미는 한 손으로 미궁의 벽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 창을 끌고 있었다.

‘무장한 에너미다. 최저 SR-급 이상이야.’

나는 괜찮지만, 권레나나 사월세음이 저 에너미를 해치울 수 있을까?

이계는 희귀도가 올라갈수록 규모도, 구조도 그 희귀도에 걸맞게 변형된다.

빛을 머금은 이끼들이 벽과 천장을 뒤덮은 걸 보고 짐작은 했지만, 이 이계는 예보보다 더 난이도가 높게 진화한 모양이다.

‘빨리 합류해야 해!’

카앙!

크르르…… 끄으으으……!

수인형 에너미의 창과 상보심금파의 날이 부딪치고, 곧 교전 상태에 돌입했다.

에너미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사이, 이곳저곳에서 교전을 시작했다.

―자, 평소 쌓은 실력을 보여 줘. 기대하고 있어.

용제건은 기분 좋게 웃으며 눈가를 툭툭 치며 말했다.

눈을 만지작거리는 건 용제건이 평소에 하는 제스처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척과 시선에 민감한 공간의 용은 내가 광림을 쓰고 있는 걸 꿰뚫어 본 모양이다.

‘평소 쌓은 실력’은 지금 그의 곁에 있는 맹효돈, 한이, 민그린한테만 한 소리가 아닐 거다.

‘다른 아이들은 나한테 맡긴다는 거구나……!’

용제건의 방관 속에 실력자로만 구성된 이 그룹은 차분하게 대응했다.

이 그룹만 보면 평범히, 문제없이 진행되는 플레이어 특목고의 실습 수업 같았다.

―부담임은 구경만 할 모양이네. 뭐, 그래야 실습이 되지.

―내가 선공할게!

―뒤쪽에서도 와……!

셋은 동시에 에너미 두 마리를 상대했지만, 여유가 있어 보였다.

―레나 님은 어디 가셨죠? 왜 디바이스 연결이 안 됩니까? 같은 이계에 들어간 파티원끼리는 연결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아, 혹시 다른 분들은 이계 밖에 계신 걸까요? 빨리 나갑시다.

―내가 그린이 뒤에 들어왔는데 무슨 소리야! 그리고 이계 내에서도 보스 에너미나 이계 자체의 이능파 간섭으로 통신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는 흔히 있어.

황지호, 송대석, 목우람 반은 난장판이었다.

황지호는 둘을 말릴 생각이 없었고, 남은 둘은 패닉 상태였다.

평소라면 둘이 하는 꼴을 보며 처웃을 황지호인데 묘하게 조용한 게 이상했다.

―진정해라, 다른 아이들은 무사할 거다.

내가 에너미를 둘 정도 쓰러뜨렸을 때쯤, 목우람과 송대석을 한참을 방치하던 황지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호구는 방학 중에 합류했으니까 그게 이놈은 아닐 텐데. 어떻게 그렇게 평탄하게 구는 거야.

황지호가 안 처웃는 걸 보니 별로 평탄한 것 같지는 않은데.

패닉에 빠진 송대석의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게’? 무엇을 말하는 거지?

황지호가 조금 날카롭게 답했다.

―청소년 수련회 때 말한 ‘나의 은인’이라는 거. 우리 반에 있는 거 아니야? 이계에 혼자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잖아.

황지호는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무슨 소릴 하고 다닌 건가!

나의 은인?

황지호가 뒤에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녔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은인이라는 건 날 칭하는 거 같은데.

―나의 은인이 왜 0반 소속이라고 생각한 거지? 다른 단서는 주지 않았을 텐데.

―그건…….

그 말을 듣기 전,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이능파가 느껴졌다.

미궁의 다음 플로어로 이어지는 계단.

사월세음과 권레나가 있는 위치.

두 장소 중 하나로 이어지는 갈림길.

그 앞에 이정표처럼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방관과 침묵의 까마귀 마왕, 시델렌티움의 인장이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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