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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70화 (270/925)

48. 첫 실습 (9)

첫 실습 후 아이들과 도시락을 나눠 먹고 영원의 호수 팀 공연까지 이어진 덕에 실습 후에 싸했던 분위기가 많이 가셨다.

하지만 권레나는 몹시 긴장한 상태였다.

“저기, 레나…….”

해산하기 직전, 사월세음이 말을 걸었다.

“레나도 혹시 적…… 아니, 그분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나요?”

사월세음의 얼굴에 악의나 의심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처음 사월세음은 적벽괴도가 환몽 경매장에서 사용한 홍룡을 보고 반응한 권레나에게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이후 용제건으로부터 홍룡의 존재를 감추려는 권레나의 태도를 보고 의심을 완전히 지웠다.

그런 태도가 권레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환몽 경매장, 황금의 새장 안에 있는 사월세음을 봤다.

새장 앞에 던져진 사월세음을 구하러 온 누군가도, 그걸 보고 눈물을 보이던 사월세음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못 하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권레나가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군요! 레나는 어디에서 그분을 뵈었나요?”

사월세음은 권레나가 그 환몽 경매장의 참가자로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게…….”

권레나는 결국 말하지 못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사월세음이 도리어 사과했다.

“아! 혹시 말씀하시기 곤란한 건가요? 죄송해요, 답변하지 않으셔도 돼요. 사실 저도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사월세음은 적벽괴도의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은 것인지 신나 보였다.

권레나는 모호하게 웃으며 애써 어둡게 가라앉은 마음을 숨겼다.

“안녕, 세음아. 레나랑 이야기하고 싶은데.”

타이밍 좋게 권제인이 불쑥 나타나 불편한 대화가 중단되었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지만, 권제인이 돌발 행동을 하는 건 흔한 일이라 그런지, 사월세음은 싫은 내색 없이 물러났다.

“아, 네! 권제인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럼 나중에 뵈어요.”

사월세음이 기숙사생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황호와 함께 리무진을 타고 먼저 간 조의신을 제외한 기숙사생들이 에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숙사에 갈 때 또 사월세음과 마주쳐야 한다는 생각에 권레나의 마음이 무거웠다.

“레나가 곤란해 보여서 말을 걸었어. 괜찮아?”

“네? 저, 감사합니다…….”

권제인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사정은 거의 짐작하고 있었다.

권레나의 양부모가 벌인 악행이 공공연하게 드러난 후, 영원의 호수 정보팀에서 권레나에 관한 이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재조사했다.

재조사한 사항 중에는 환몽 경매에 관한 건도 있었고, 1학년 0반 학생들의 신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권제인은 권레나와 사월세음의 첫 만남이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권제인은 푸른 눈으로 권레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말했다.

“바이올린은 가져 왔니?”

“네…….”

“그럼 우리 팀 빌딩으로 바로 가자.”

“네?”

“내일 레슨하는 날이잖아. 오늘 레나가 다쳤으니까 팀 닥터의 진료를 받고 쉬게 하고 싶어.”

마침 권레나를 팀 빌딩으로 데려가고 싶었던 권제인은 그런 제안을 했다.

권레나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한 듯했다.

“저, 그 정도로 다치지는 않았는데요…… 그러니까…….”

“……우리 팀 빌딩에 가는 게 싫니?”

“아뇨! 매번 너무 오래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요…….”

“더 오래 신세 져도 돼.”

권레나는 단호하게 말하는 권제인과 저 멀리 있는 사월세음을 번갈아 봤다.

고민 끝에 권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사월세음에게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다.

*    *    *

이번 첫 실습의 주요 목적 중엔, 게임 속의 전개와 현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은 영원의 호수 팀원들의 등장, 동결형 이계가 드러나지 않은 것. 그리고 시델렌티움이 이계에 간섭한 것.’

그 외에는 게임대로 흘러갔다.

주수혁과 안다인이 방학 동안의 활약으로 주목도가 올랐는데, 이번에 최대 공헌자를 또 차지하면서 다시 화제가 된다.

둘보다 먼저 이계를 공략하는 바람에 내 이명이 언급되긴 할 거다.

그래도 최근 대중에게 드러난 활약이 전혀 없었던 나보다는 두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더 갈 거다.

그 증거로 벌써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기사가 몇 개나 떴지만, 내 이명은 어쩌다 한 줄씩 언급되는 정도였다.

“기사는 다 봤나?”

에어 리무진 안.

기사를 다 읽자 황지호가 바로 말을 걸었다.

이동하는 동안 황지호가 디바이스로 메시지를 주고받기에 나도 기사를 확인했는데, 어느 사이에 연락을 마치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나 보다.

휙.

황지호가 내 손을 잡아챘다.

피가 묻은 소매를 걷고 있던 왼손이었다.

체격 차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가볍게 내 손목을 쥐고 있는 걸 보니 그 차이가 실감이 났다.

황지호의 시선이 정확히 부상을 입었던 부분을 훑었다.

“피부 조직 상태를 보니 팔이 거의 잘릴 뻔한 것 같군.”

보스 룸에 들어서니 시델렌티움의 말대로 홍룡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는데, 용제건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아슬아슬하게 실체를 유지했다.

곧바로 보스 에너미를 상대로 갈래를 두 개 발동했지만 집중력이 떨어지면 갈래의 위력도 떨어지는지 한 방에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 직후 보스 에너미의 일격을 방어하다가 왼손이 반쯤 베였다.

스킬을 발동한 후라 보스 에너미에게 틈이 생겼고 바로 다음 갈래를 발동시켜 쓰러뜨릴 수 있었다.

왼손이 잘릴 뻔한 건 아프긴 했지만, 암성 통증이나 저강렵에 의해 배가 꿰뚫렸을 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저놈은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게임 속에서는 HP 게이지가 차 있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빈사 상태에서 막 회복한 직후라도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는 한, 아이템이나 이능으로 체력이 회복했다면 다치지 않았던 이들과 겉보기엔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신화계 호족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나 보다.

“너는 키모폴레이아 위에서 재생 이능을 썼잖아. 어째서 회복 아이템을 쓴 거지?”

그건 광림 제한 시간 때문이다.

천동하의 건곤(乾坤)을 품은 눈.

염준열의 홍룡 소환.

이 두 광림을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 밤에는 무녀 후보생의 제의(祭儀) 기구 소환도 사용해야 했다.

필요에 따라선 추가로 광림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었다.

곽경구의 100초의 은총은 소모 시간이 너무 크므로 가능하면 회복 아이템을 쓰고 싶었다.

“회복 아이템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알아.”

“아는데 그런 짓을 했다고?”

“광림을 또 써야 할 수도 있잖아.”

황지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마침 에어 리무진이 황명호 저택 앞에 도착해 대화가 끊겼다.

“별채로 간다. 향록을 불렀다.”

설마 또 녹족의 수장을 부른 건가!

정신이 아득해졌다.

*    *    *

황명호 저택 안, 한옥형 별채.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지옥의 끝에서 날 법한 향이 났다.

향록이 미리 와서 끔찍한 짓을 벌이는 중인 모양이었다.

끄응…….

작은 소리에 지옥으로 보이던 풍경이 일변했다.

이 주변에 천사가 있으니, 여기는 지옥이 아닐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본채 쪽에서 백호군과 함께 올무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왕! 왕왕!

올무가 나를 보고 달려들다가 우뚝 멈춰 섰다.

올무가 내 왼쪽 손을 올려다봤다.

똑똑하고 착한 우리 올무가 내 부상에 관해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크르르……!

순간 어디에선가 지옥의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향록이 지옥의 약을 만들다가 흥분한 건가.

“내가 한 짓이 아니다.”

컹! 크르르!

“그래, 내가 잡았다. 확인하기 위해 손을 살폈을 뿐이다.”

황지호가 올무한테 뭐라고 하고 있었다.

왜 저놈은 우리 올무한테 혼잣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별채에 들어가니 독한 냄새가 더 진해졌다.

“황호, 백호 안녕! 인간도 안녕!”

곧 향록이 나타나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는데, 손을 크게 흔들 때마다 지옥의 약 냄새가 훅훅 나 올무가 뒷걸음질 쳤다.

“의뢰한 건 준비됐나?”

“거의! 증혈(增血)과 이능파 안정에 즉각적인 효험을 보이는 영약 말하는 거 맞지? 조의신의 진맥 결과에 따라 조금만 조정하면 완성이야! 그런데 대금으로 진족을 하나 준다는 거 진심이야?”

영약의 대금으로 진족을 하나 준다고?

그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곧장 의문이 풀렸다.

“그래. 마침 고문 중이던 웅족 하나가 악몽을 견디다 못해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남은 건 육신뿐이니 마음껏 시험하도록.”

“악몽……? 설마 인섬니움이 현세에 남긴 티끌에 오염된 진족이야?”

향록의 얼굴이 순간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12지 진족의 수장뿐만 아니라 녹족의 수장도 그 악몽, 인섬니움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래. 정신이 붕괴되더니 티끌도 날아가더군. 인섬니움의 흔적이 남은 게 마음에 안 드나?”

“응, 마음에 안 들어! 많이 별로긴 한데…… 인섬니움이 어떻게 정신을 파괴했는지 살펴보고 싶어! 꼭 그걸로 줘!”

향록은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먼저인가 보다.

거래를 마친 향록이 내 쪽으로 왔다.

맥을 짚어 보던 향록이 말했다.

“손이 잘릴 뻔한 것 같네. 통각 수치는 정상이라 고통은 다 느꼈을 텐데. 그런 것치곤 정신은 안정되어 있고…… 혹시 고통에 익숙해?”

향록이 뭐라 말할 때마다 호랑이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정상이면 정상이라고 하지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호흡하기 곤란했던 적은 없었어?”

고개를 젓자 향록이 다시 맥을 짚다가 별채 안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서 잠시 이능파가 흘러나온 후, 향록이 다시 등장했다.

손에는 사슴 마크가 그려진 약탕기와 옹기그릇이 있었다.

“황호가 특별히 맛없게 만들라고 해서 힘냈어!”

……그럼 저건 필요 이상으로 맛없이 만들어진 영약인가!

아까부터 입을 다물고 있던 황지호 쪽을 보니 황지호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백호군, 백호군 품에 있는 올무까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향록의 솜씨는 너도 알고 있겠지. 이 몸이 만든 보양 디저트처럼 맛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그 한약 아이스크림 말하는 건가.

그냥 평범한 과일 맛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했던 그건 온갖 약재를 배합한 별미였다.

갓 구운 크루아상과 곁들이니 풀 냄새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 주재료에 삼 종류가 들어갔다는 걸 알았을 땐 놀랐다.

그러나 이 갓 우려낸 영약에 그런 자비와 배려는 없었다.

“…….”

왕! 왕왕!

백호군과 올무가 가만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둘의 독촉에 결국 옹기그릇에 손을 뻗었다.

영약을 삼킨 직후, 내 의식이 일순 날아갔다.

온 신경이 ‘맛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처음 의식이 날아갔을 때 정신을 잃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행운도 오지 않았다.

전부 마시고 나니 이능파가 안정되고 몸에 피가 도는 감각이 느껴졌지만, 맛없음으로 인해 고통받는 정신은 여전했다.

향록이 또 호흡이 어쩌고, 만약 부작용이 있으면 어쩌고 하며 덧붙이고 물러나긴 했지만, 솔직히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영약의 맛없음에 취해 있고, 올무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꼴을 본 후에야 황지호는 매우 흡족해하며 기분을 조금 풀었다.

“들으나 마나 용제건을 그 장소로 부를 계책을 세운 것도 너겠지. 또 예상 이상으로 공략 난이도가 오른 것도 관계가 있겠고. 무슨 일이 있었지?”

이 질문의 답은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곧이 입을 열었다.

거래의 재료인 ‘부와 생명의 무게’에 관해서는 숨겼지만, 시델렌티움의 협력을 얻기 위해 그리 행동했다고 답했다.

“마족과는 평생 마음이 맞을 일이 없을 것 같군. 감히 ‘왕’이라는 호칭을 붙인 족속들은 더더욱.”

이번 일에 관해 한창 대화하고 있을 때.

디바이스가 전화 수신을 알렸다.

[발신자: 장남욱]

예정보다 이르게 장남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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