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78화 (278/925)

49. 스포츠 교류전 (8)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측 응원 단상 위.

현재 1학년 기수장이자 해당 기수 응원단장인 장남욱은 단상에 오른 이후 성실하게 관객석을 보며 호응을 유도했다.

그러나 장남욱의 신경은 줄곧 주 경기장 중앙에 설치된 무대에 쏠려 있었다.

장남욱은 스타디움 내 전원이 나가자 곧바로 등을 돌려 ‘별 처녀의 눈’을 사용해 주 경기장 쪽, 무대 속을 봤다.

사전에 누군가가 백리안이나 천리안 스킬을 대비해 결계나 그에 준하는 방어책을 세운 탓인지 안은 흐릿하게 보였다.

무대 속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장남욱은 확신했다.

‘……이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명이나 다름없어!‘

장남욱이 안경을 벗고 별 처녀의 눈으로 볼 대상을 도시후 하나로 한정해 출력을 올렸다.

이능파가 쏠리는 감각과 동시에 무대 속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별빛 사이로 보이는 도시후는 막 모든 스태프를 쓰러뜨린 상태였다.

장남욱은 들고 있던 응원 깃발을 부술 기세로 세게 움켜쥐었다.

‘정말로 시후가 저기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은광고와 군사관학교 고등부의 교류전의 중심에는 도시후가 있었다.

교류전의 계기가 된 농구 시합도 도시후가 유상훈에게 한 제안에서 시작됐다.

또한, 도시후는 군사관학교 고등부에 소속했으나 은광고 학생회장 도원우의 육촌 동생이기도 했다.

도시후는 교류도 없고 접점도 없던 사관학교 생도회와 은광고 학생회가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도왔다.

교두보 역할을 한 도시후가 각 학교의 생도회장과 학생회장을 스포츠 교류전에서 살해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

적어도 두 학교가 두 번 다시 교류하지 못할 것은 분명했다.

‘의신이 말대로 될 거야. 무슨 일이 생기면 전부 시후 책임으로 몰리겠지……!’

장남욱의 눈으로도 꿰뚫어 보기 어려웠던, 마신 아바리티아의 사제가 벌인 이번 사태의 증거를 잡기는 매우 어렵다.

거기에 TC 그룹의 자제이자 군사관학교 수석 도시후가 마족에게 조종당했다고 하면, 경호 담당이나 사관학교 교관 등 이번 일을 책임져야 할 이들이 많았다.

반면 도시후는 해군 커리큘럼에 관한 집착으로 자살 미수나 다름없는 짓을 잔뜩 저질렀고, 그 건에는 증인도 증거도 넘쳐 났다.

조의신은 이번 일의 배후가 도시후의 그런 행적을 이용해 이번 건을 무마하리라 예측했다.

―상대는 도시후가 열등감과 스트레스로 우수한 육촌 형과 생도회장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살해한 후, 자살했다는 시나리오를 완성시킬 거야.

―이번 암살을 기획한 존재도, 또 암살에 관여하지 않은 존재도 그런 시나리오를 원할 것 같아.

도시후가 처한 상황이나 여태껏 일어난 괴사건들, 또 지금 이 상황을 보면 조의신의 예상이 맞은 것 같았다.

‘시후야……!’

장남욱이 끔찍한 상황에 처한 친구의 이름을 속으로 불렀을 때였다.

그러자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도시후가 마치 장남욱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멈춰 섰다.

정신이 든 듯한 도시후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장남욱은 당장 저 무대 밑에서 도시후를 빼 오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시후랑 의신이를 믿어야 해. 지금 여기서 내가 나서면 의신이가 세운 계획이 흐트러질지도 몰라!’

도시후가 정신이 든 건 잠깐이었다.

플레이어로서 아직 미숙한 데다 정신이 흐트러진 장남욱이 ‘별 처녀의 눈’의 출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한편, 장남욱의 눈으로 도시후를 관찰하는 게 불가능해진 순간.

도시후는 신체의 통제권을 상실한 것처럼, 실에 묶여 조종당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후는 두 학생 대표가 서 있는 무대 바로 아래를 향해 비척비척 걸어갔다.

퍽!

그때, 따뜻한 이능파 덩어리가 도시후의 얼굴을 후려쳤다.

“악!”

도시후와 같은 기수의 생도들이 늘 장남욱이 때리도록 양보하는 얼굴 쪽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짧게 소리 지르고 후끈거리는 뺨을 붙잡던 도시후는 구속이 일시적으로 풀렸음을 감지했다.

도시후의 뺨을 때린 이능파 덩어리는 금방 사라졌다.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주먹 크기 정도 되는 그 이능파 덩어리는 새 모양을 하고 있던 것 같았다.

정체불명의 무언가도 거슬렸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몸이 움직여……!’

그러나 다시 수백 가닥의 실이 스멀스멀 도시후를 휘감으려 하고 있었다.

상황 파악이 끝난 도시후는 자신이 저 속도에 대항할 수 없고, 다시 실에 몸이 묶이면 조종당할 것을 직감했다.

자신이 조종당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지!’

도시후는 광림을 발동했다.

빛을 머금은 사슬이 도시후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 사슬로 저항할 셈이냐? 허세 부리지 마라. 네 광림은 대상이 눈앞에 없는 한 무용지물이라는 걸 알고 있다.]

방금 정신이 멀어지기 전 들린 목소리가 재차 들렸다.

누군가의 말대로 지금 도시후의 광림 범위 안에 있는 건 기절한 스태프와 무대 위에 있는 도원우와 생도 회장뿐이었다.

지금 수작을 부린 누군가에게 광림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도시후는 광림을 사용하기 위해 이능파를 최대로 끌어 올렸다.

이능파를 머금은 광림의 사슬 탓에 마족의 실이 도시후에게 닿지 못했다.

[이능파로 방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터. 시간문제다.]

팟!

광림으로 완전히 구체화된 사슬이 도시후의 몸에서 분리되었다.

그리고 도시후의 몸에서 한 번 떨어져 나간 사슬은, 다시 도시후 쪽으로 움직였다.

누군가의 경악한 목소리가 도시후의 귓가를 울렸다.

[설마……!]

도시후가 전력으로 뽑아 낸 이능파 구속의 사슬이 그의 주변을 빠른 속도로 휙휙 돌았다.

사슬이 묶은 것은 도시후였다.

얼마 남지 않은 도시후의 이능파를 흡수한 사슬은 단단히 그를 구속한 후에야 움직임을 멈췄다.

사슬이 몸을 옥죈 탓에 신체에 데미지가 들어 왔지만, 도시후는 고통을 참으며 외쳤다.

“자! 나는 이제 이능파가 봉인돼서 폭탄 점화도 못 하고 광림도 못 써! 어쩔 거야!”

*    *    *

모든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최후의 순간에 흑막의 손을 잡거나 제 운명에 좌절하고 비관하다 간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힘이 미치지 못했거나 뒤에 남은 이들을 믿고 희생했을 때는 있을지언정 포기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가장 마지막에 쓰러진 백호군도 그랬다.

백호군은 다른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남긴 유지(遺旨)를 전부 짊어지고 배드엔딩을 마주했다.

그런 내 최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눈앞에 있는데 존경심이 솟는 건 당연했다.

나는 백호군의 말이라면 사월세음의 광림, ‘왕이 가라사대’가 무사히 발동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도 플레이어의 궤적 가용 시간은 크게 줄었어. 마신의 고위 사제가 건 정신 지배에 정면으로 대항한 탓일까.’

도시후 하나를 대상으로 광림을 발동했을 뿐인데 카드에 표기되는 제한 시간은 크게 줄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광림을 아낄 수는 없었다.

나는 ‘무명의 운명’ 아이템 카드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홀스터에서 뽑아 들어 손에 쥐었다.

“그럼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내 말에 백호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능 특목고 간의 교류전 절차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가장 문제가 된 건 장소 확보였다.

각 학교 교내에 있는 시설을 활용하려면 네 자릿수가 넘는 타교생, 관객들을 학교 안에 들여야 했는데, 보안 절차상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결과 교류전을 위해 수천 명의 플레이어가 수용 가능한 시설을 대여하기로 했다.

개막식장으로 선정된 은광 스타디움은 황명건설이 시공한 경기장으로, 플레이어의 폭주와 에너미에 대비한 이능파 대책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그런 사유로 은광 스타디움에서 이능파와 통신이 끊기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다.

그러나 아바리티아의 사제는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

‘……돔의 지붕을 닫는 연출이 갑자기 추가된 것도 마음에 걸려요. 대체 누가 통신을 차단한 걸까요. ‘눈’의 사용이 불가능해졌어요.’

마족에게는 원거리를 관찰할 수 있는 ‘눈’이 있었다.

발동 조건과 봉쇄 조건은 마족 저마다 달랐지만, 아바리티아의 사제가 소속한 마족 집단이 사용하는 ‘눈’은 통신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무선 통신에 사용되는 전자기파에 이능파를 섞은 이 ‘눈’은 몹시 우수하여 용족의 용제건이나 서족의 서돌 정도되는 기민한 감각의 존재들을 제외하면 시선을 차단하기는커녕 감지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단점도 있었다.

통신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눈’ 역시 차단할 수 있었다.

첨단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서 무선 통신이 닿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마음먹으면 인간도 쉽게 차단할 수 있었다.

‘씨앗을 심어 둔 사관학교 생도도 써먹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렇게 된 이상 직접…….’

갑자기 섬뜩한 기운이 엄습해 아바리티아의 사제가 이능파를 뿜었다.

쾅! 콰콰쾅!

황금의 결계와 자주색의 독기가 허공에서 뒤얽히다 터져 나갔다.

결계에 묶일 뻔한 아바리티아의 사제가 혀를 찼다.

방금까지 눈을 의지해 은광 스타디움 전체를 감시했던 탓에 방심하고 있었다.

수상한 움직임은 무엇 하나 감지하지 못했는데, 상대는 작정하고 달라붙은 듯했다.

“용제건이 석모도에서 통신이 차단되었을 때, 그 ‘눈’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지. 통신과 그 성가신 눈이 연관된 건 확실해졌구나.”

눈앞에 신역의 수호자, 신화계 호족이 있었다.

30대의 모습을 한 황호였다.

“전부 눈치채고 있었나 보군요.”

“그래. 내가 수호자로 있는 신역에서 어디까지 건방을 떨 생각이었나. 관객석을 전부 돌아보고 왔다. 겁도 없이 혼자 왔더군.”

평정을 가장했지만 아바리티아의 사제는 숨을 들이켰다.

‘관객 중에 다른 마족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있었나! 언제부터 알고 있던 거지……!’

용제건을 비롯해 은광고의 존재 중 성가신 존재들이 몇 안 보이는 건 확인했는데, 대체 황호가 어디에서 섞여 들어와 움직였는지 판단이 안 섰다.

진족은 진족을 알아보지만, ‘눈’을 통해 본 존재가 진족인지 아닌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관객 사이에 섞여 온 황호를 파악하지 못했다.

‘신역 안에서 황호를 상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아바리티아의 사제는 응전하는 대신 즉각 협박에 나섰다.

“절 보내 주지 않겠다면 관객을 죽이겠습니다.”

“…….”

황호가 황금색의 눈을 가늘게 떴다.

아바리티아의 사제는 방금 전까지 스태프로 가장해 움직이며 은광 스타디움 곳곳에 씨앗을 심어 둔 상태였다.

그 씨앗들이 문제없이 심긴 것도 확인했고, 그것들이 지금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 있다는 걸 감지하고 있었다.

경기장에는 우수한 플레이어가 잔뜩 있었으나 정신력이 약한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씨앗을 심어 조종해 움직인다면 다시는 교류전 따위 열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사상자를 낼 자신이 있었다.

“제가 오는 건 확인해도 제 씨앗은 전부 파악하지 못한 것 같군요.”

황호는 아바리티아의 사제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 말이 허세임을 파악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황호가 입을 열었다.

“그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게 있나 보군. 어쩌면 이미 그 눈으로 본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말은 어딘가 안심한 어조였다.

황호는 무언가를 떠보려는 듯했고, 아바리티아의 사제는 이에 걸려든 듯했다.

“아직 모르는가. 선박왕의 아들에게는 진실을 보는 친구가 있고, 인간 중에는 네 얕은 꾀를 전부 간파하고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한 자가 있다는 것을.”

*    *    *

관객석의 동요는 점차 가라앉았다.

무대로 이어지는 입구 앞.

새하얀 이능파를 휘감고 교복 차림의 누군가가 등장했던 탓이었다.

그가 착용한 가면을 본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계를 풀었다.

“아, 행사 순서가 좀 바뀌었나 봐.”

“개회사 직전에 하는 게 나을 것 같긴 하더라.”

“그렇네…… 의미를 생각하면 그래.”

1학년 0반 아이들이 행사 일정표를 떠올리며 말했다.

사전에 일정표를 보지 않은 아이와 업데이트되기 전의 일정표를 본 아이들은 여전히 잘 모르는 눈치였다.

“뭔데? 뭐가 어떻게 바뀐 건데. 개회사 끝나면 바로 무대 치운 다음에 축구 하지 않나?”

구버전 일정표만을 본 송대석이 묻자 사월세음이 답했다.

“설명에 뭐라고 나와 있더라…… 개천신화의 한 장면을 구현한 벽사 의식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되어 있었어요.”

학생 차림의 누군가는 하얀 호랑이 가면을 착용하고 순백의 검을 들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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