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80화 (280/925)

49. 스포츠 교류전 (10)

지난 주말, 장남욱이 황명호 대저택을 방문한 다음 날.

이번 스포츠 교류전에서 사용할 예정인 경기장들을 방문해 호랑이들과 사전 답사를 마친 후.

장남욱이 본 것과 도시후의 광림, 그리고 스타디움의 상황을 보니 이번 일의 배후가 무엇을 어떻게 노릴지 거의 짐작해 낼 수 있었다.

‘마족이 도시후를 이용해서 스포츠 교류전을 끝내려는 게 분명해. 두 학생 대표를 대중 앞에서 암살하려 들겠지. 관객석 곳곳에도 씨앗이 심겨 있는 걸 보면 호족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고.’

암살 계획은 상대가 인지한 시점에서 실패하기 마련이다.

도시후를 구하고 스포츠 교류전이 무사히 진행되도록 손을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모처럼 장남욱의 관찰력 덕에 이쪽에서 선수를 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쪽의 피스를 보호하면서 상대의 피스를 사로잡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 결과 나는 황지호에게 백호군을 학생이나 교직원의 신분을 빌려 은광 스타디움에 부르는 것 외에도 부탁을 몇 개 더 했다.

첫째는 은광 스타디움에 필요 최저한의 호족을 부르되, 전원 신분을 학생이나 교직원으로 위장하거나 모습을 감출 것.

둘째는 제갈재걸과 공청훤을 개막식이 열리는 동안 학교에 머물게 할 것.

셋째는 개막식 일정에 벽사 의식을 넣을 것.

마지막, 넷째는 통신을 차단할 것.

황지호가 위 사항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럼 네가 부탁한 사항을 정리해 보겠다. 첫째는 개막식 때 은광 스타디움에 오는 호족의 수를 줄일 것. 입장하는 호족은 모습을 감추거나 신분을 숨길 것. 맞나?”

“그래. 마족이 가진 ‘눈’으로 호족의 존재 여부를 살필 테니까.”

“신문부 부장에게 연락해 이번 교류전에 관해 취재하겠다고 자청한 것과 관련이 있나?”

“어.”

황명호 대저택의 응접실.

주말인데도 황지호는 교복 차림이었다.

뻔뻔한 노친네가 탄산수와 잘게 간 배로 만든 배 슬러시를 마시다 말했다.

“백호에게 교직원이나 학생 신분으로 개막식에 오라고 한 것도 그 ‘눈’을 경계해서인가?”

“응. 스태프로 섞여 들어와서 입장객 명단을 입수한 후 ‘눈’을 통해 실제 관객과 대조할 가능성도 있잖아.”

“조의신 네가 모든 스태프의 명단을 외워서 개막식에서 얼굴을 대조할 예정인 것처럼 말이지.”

황지호는 유쾌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실습 이후 계속 바닥을 치던 노친네의 기분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백호, 너는 학생 신분을 쓰도록. 나야 당연히 문제가 없고…… 적호는 적연으로 모습을 감추게 하겠다. 용제건은 학교에 내버려 둘까.”

용제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그편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용제건은 마족의 ‘눈’을 감지하는 데다 본인 역시 강하다.

용제건의 행방을 알 수 없거나 경기장에 등장하면 마족이 경계할 가능성이 크다.

“네 두 번째 부탁도 첫 번째 부탁과 관련이 있겠군. 제갈재걸과 공청훤을 학교에 붙잡아 두는 것 말이다.”

“응. 마족의 약점은 언령 스킬이니까. 언령 스킬을 사용하는 플레이어가 있으면 경계해서 오지 않을 수도 있어.”

진족 중에서도 천족과 마족은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로, 존재의 성립 법칙이나 원리가 인간이나 여타 진족하고는 차이가 있었다.

천족과 마족에겐 다른 진족과 차별화되는 강점도 있었으나 약점도 존재했다.

마족의 경우 그 약점이 언령이었다.

‘언령 스킬을 사용하는 자는 드물어. 그리고 두각을 드러내는 이는 보통 젊은 시절에 마족의 손에 당했지. 현재 은광고와 연관된 언령술사는 제갈재걸과 공청훤, 두 사람뿐이야.’

게임 속 언령 스킬 플레이어의 죽음에는 늘 마족들이 크고 작게 연루되어 있었다.

플마고에서 최편득의 추종자들이 마족에게 얻은 씨앗으로 학생을 인질 삼아 제갈재걸이 목숨을 잃은 게 그 대표적인 예다.

마족은 언령술사를 대놓고 죽이지는 않았는데, 이는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약점이 드러나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교묘하게 언령 스킬 보유자를 죽여 왔다.

“마족의 약점이 언령이라니. 처음 듣는 사실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적호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적호 외에도 백호군과 황지호도 말은 안 하지만 마족이 신인의 환생, 공청훤을 노리리라 짐작한 것 같았다.

“둘에게는 내일 잡무를 맡기도록 하겠다. 그럼 세 번째 부탁을 확인해 볼까. 학생회장과 생도회장이 개회사를 읊기 직전, 백호가 벽사의 검무를 추었으면 한다고?”

“어, 개회식 일정표를 조정해 줘. 못 해?”

“하하하하! 이 몸이 고작 그걸 못 할 리가.”

황지호가 처웃으며 답했다.

“일정이 상당히 빡빡해질 거다. 학교장들의 축사가 끝난 직후에 너와 백호가 도시후의 정신 지배를 풀어야 할 텐데.”

언뜻 듣기에는 무리한 계획으로 들리긴 했지만,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다.

도시후가 마족의 정신 지배에 잠식되었다고 하지만 사관학교의 수석이 저항 한 번 못하고 제 혈육과 선배를 죽일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도시후에게는 장남욱 같은 좋은 친구가 있었다.

한 번쯤은 정신을 차려 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들었다.

“할 수 있어.”

“자신만만하군.”

“하여튼 축사가 끝날 때, 그때 도시후가 당한 정신 지배를 풀고 벽사의 의식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설령 도시후가 마족의 정신 지배에 완전히 먹히더라도 상관없었다.

‘왕이 가라사대’가 발동하면 도시후는 즉시 정신을 차릴 거니까.

“그렇게 되면 마족의 신경은 도시후 쪽으로 쏠려서 집중력이 떨어질 거야. 그때를 노려서 마족을 공격해 줘. 그 전까지 관객석 체크 끝내고.”

“그러마.”

“네 번째 부탁은 어때? 할 수 있겠어?”

내가 한 네 번째 부탁은 통신을 차단할 것.

수련회 직후 황지호와 용제건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용제건, 통신이 차단된 직후 ‘눈’의 존재를 느꼈나?

―아니. 통신이 차단되기 전까지는 ‘눈’을 느꼈지만, 그 이후는 달라. 통신과 위성 경보를 차단하면 ‘눈’도 사용하지 못하는 리스크가 있는 것 같아.

통신에 사용하는 전자기파와 ‘눈’에 사용하는 이능파를 분리해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기술은 아직 얻지 못했다.

그러나 통신과 위성 경보를 모두 차단하는 건 지금도 가능했다.

“길게는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마족을 잡기 전까지는 불통 상태를 유지하지.”

관객들의 디바이스의 신호가 일시에 끊기면 협회의 위성관리팀 측에서 나서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일정 시간 위성의 경보도 차단해야 하니까 협회 쪽에 미리 얘기해 두는 게 좋겠군.”

그 점은 문제없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일을 시켜도 좋다는 협회 소속 고위 직원이 있었으니까.

“홍규빈 팀장님께 연락할게.”

홍규빈에게 연락을 했지만 바로 답변이 오지 않았다.

마침 홍규빈이 부하를 부려 먹을 권한도 줬으니 좀 기다리다가 연락이 안 되면 윤 대리에게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마족을 사로잡을 생각입니까? 인명 피해를 내지 않고 잡는 건 상당히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만.”

“그건 문제없다. 백호의 벽사 행위를 도운 후, 조의신이 나와 합류해 마족을 잡겠다고 했으니까.”

“네? 그래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적호의 의문에 황지호가 나를 대신해 답했다.

“조의신이 마족의 약점이 언령이라고 하지 않았나. 언령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면 포획은 어렵지 않겠지.”

“아……!”

황지호의 말에 적호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조의신은 다른 이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중에 언령이 있을 거다.”

“언령도 사용할 수 있다니! 조의신이 다른 이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은인은 귀한 능력을 가진 것 같군. 하하하!”

적호의 감탄에 언령을 쓰는 건 난데 황지호가 과시하듯 말했다.

노친네의 처웃는 소리를 무시하고 있다 보니 홍규빈에게서 답변이 왔다.

[홍규빈] 의신아, 방금 메시지로 말한 은광고와 군사관학교 고등부 교류전 개막식 말인데.

[홍규빈] 혹시 도시후라는 사관생도도 참석하니?

홍규빈에게 말한 건 위성 신호 차단에 관한 건뿐인데, 왜 도시후의 이름을 언급한 걸까.

“잠깐 홍규빈 팀장님과 통화하고 올게.”

“여기에서 받아도 상관없다. 이번 일에 관계가 있나?”

“그럴지도 몰라.”

“받아 보도록.”

호랑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홍규빈과 통화를 마쳤을 때, 예상치 못한 정보를 얻었다.

*    *    *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병원, 의료진 전용 휴게실.

어느 간호 장교가 초조한 얼굴로 여러 개의 홀로그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홀로그램에 뜬 건 전부 뉴스 페이지였다.

간호 장교가 몇 번이나 새로고침을 반복해도 눈에 띄는 속보는 올라오지 않았다.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은광고 방송부 측에서 생중계를 재개했을 때였다.

‘어째서, 저들이 살아 있는 거지……!’

간호 장교가 눈을 부릅뜨고 살해당할 예정이었던 두 인물을 화면 너머로 노려봤다.

열리기 시작한 돔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과 환한 조명 아래, 은광고 학생회장과 고등부 생도회장이 늠름하게 개회사를 읊었다.

―제1회 은광고와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고등부의 스포츠 교류전 개회를 선언합니다.

화면 너머로 관객들이 외치는 환호가 길게 울렸다.

간호 장교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암살 계획의 실패는 가담자의 파멸로 이어졌다.

상대는 어리고 TC 그룹 내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지만, 무려 그 선박왕의 아들이었으며 사관학교에서 가장 촉망받는 생도였다.

암살 계획 말단에 위치한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릴지는 뻔했다.

있는 죄는 그대로 받고 없는 죄도 덮어쓸 게 분명했다.

그런 리스크가 있다는 걸 알긴 했지만, 그만큼 대가가 달고 컸기에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

간호 장교는 탈주병을 해외로 빼 주는 진족 브로커의 소문을 떠올리며 낙관적인 생각을 했다.

‘플레이어 군사경찰의 수사가 들어가기 전에 당장 여길 떠야 한다. 선금을 현금으로 다 인출해 놓길 잘했군!’

정신없이 달려 도착한 군사관학교 부지 외곽 출입문.

가장 허술하게 출입 관리를 하는 이곳엔 입구에 군인은 없고 생체 인식형 출입 관리기기만이 존재했다.

계획한 대로 무사히 입구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아무도 없어야 할 산길에 선객이 있었다.

“……남궁규연 생도, 지금 뭐 합니까?”

퍽! 휙!

남궁규연이 군사관학교 부지의 경계선 밖으로 이어진 산에서 삽질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늘 상비하던 야전삽으로 야무지고 꼼꼼하게 굳은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녀는 불순한 눈으로 간호 장교를 흘끗 보다 계속 땅을 팠다.

“왜요? 지금 그게 궁금함요?”

남궁규연의 말투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남궁규연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군기 문화를 존중해 예의는 잘 지켰다.

그러나 평소 ‘다’나 ‘까’를 써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던 남궁규연이 친구끼리 있을 때나 쓰던 말투를 자신에게 쓰고 있었다.

간호 장교가 남궁규연을 무시하고 이동하려 했지만, 그녀가 한 말에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시후가 맛탱이가 가고 있는데 이능파 검사는 늘 정상이라 이상했음요. 뭐, 겉보기엔 미쳤어도 속은 멀쩡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남궁규연이 품에서 파일철을 꺼내 종이를 꺼냈다.

그 안에 있는 건 도시후의 이능파 검사 기록이었다.

“……검사 기록에 문제가 있었나.”

간호 장교가 긴장한 말투로 말을 꺼내자 남궁규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 문제 없음요. 근데 이거 잘 보니까 시후랑 비슷한 키와 체중을 가진 졸업한 생도랑 이능파 수치가 완전히 일치하던데.”

도시후의 이능파는 마족의 간섭으로 크게 어그러진 상태였다.

이를 드러낼 수 없어 도시후의 검사 결과를 타인의 것으로 전부 덮어씌워 버렸다.

‘하지만 증거가 없을 터……!’

색이 비슷한 이능파가 존재하듯, 수치가 비슷한 이능파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간호 장교는 심혈을 기울여 정보를 조작하고 도시후와 비슷한 조건의 생도의 데이터를 가져다 썼으니 문제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심증은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물증이 없더라고요. 누군가 자료를 조작한 것 같아도 그게 누군지 알 수도 없고. 그래서 오빠한테 부탁해서 좀 알아봤는데…….”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의 남궁규연이 갑자기 입꼬리를 크게 올리며 미소지었다.

“시후 검사한 놈들 중에 TC 그룹 놈팡이한테 돈을 처받은 개새끼가 있더라고!”

그렇게 외친 남궁규연이 이능파가 실린 야전삽을 땅 깊숙하게 꽂았다.

콰콰콰콰!

그 직후, 지반이 크게 움직여 간호 장교를 파인 구멍 안에 거꾸로 처박았다.

간호 장교가 대응할 틈을 노리긴커녕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전광석화처럼 발동한 이능파에 버둥거릴 때였다.

지면 위로부터 낮은 음성이 들렸다.

“플레이어 협회 규정 집행부다. 협회 규정에 따라 귀하의 광림, 스킬, 카드화와 실체화 능력을 봉인한다.”

간호 장교는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 정신을 까무룩 잃었다.

남궁규연이 입과 코로 흙을 먹는 바람에 헐떡거리는 간호 장교를 싸늘하게 보다가 검은 코트와 가죽 장갑을 착용한 인물을 향해 한마디 했다.

“규빈 오빠, 군경에 넘기기 전까지 아는 거 다 토해 내게 하셈요. 나한테도 좀 알려 주고.”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8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