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98화 (298/925)

51. 학생 대표 총선거 (6)

4쿼터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마지막 경기, 마지막 쿼터라는 생각인지 다들 힘을 아끼지 않았다.

흐름을 끊기 위해 상대 팀이 주도권을 잡는다 싶으면 바로 감독들이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4쿼터에 들어 벌써 두 번째 타임아웃이 선언되었다.

“저기 0반 선배님들이 뭐 하실 모양인 것 같은데.”

타임아웃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이온 음료를 나눠 준 김유리가 농구대 뒤쪽을 가리켰다.

저 명당을 어떻게 단체 예약한 건지, 2학년 0반 선배놈들이 농구대 뒤를 점령한 상태였다.

“이제 승부는 절정에 이르렀다!”

“1학년 에이스 슈터가 열심히 하는데 선배인 우리도 뭔가 해야지.”

“그래, 은광고의 승리를 위해서 우리가 움직여야 할 때다!”

금찬솔과 왕찬솔이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게 보였다.

얼마 전에 이사장실을 습격하려다 제갈재걸에게 크게 혼나 얌전하게 교류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마지막 경기다 보니 좀이 쑤셨나 보다.

‘……우리 학교에 해가 될 일은 할 것 같지 않으니 일단 두고 볼까?’

경기가 재개되었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양 팀 모두 플레이가 거칠어졌다.

곧 은광고의 파울로 사관학교 고등부 측에 자유투가 주어졌다.

상대 팀의 파워 포워드가 자세를 잡고 슛을 쏘려 할 때였다.

갑자기 2학년 0반 놈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받아라! 필살, 자유투 방해!”

“코트의 수호신 제갈 쌤 소환!”

각자 어디에서 꺼냈는지 제갈재걸의 얼굴이 인쇄된 거대한 패널을 꺼냈다.

슛을 쏘는 선수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관객석에서 거대한 얼굴 스무 개가 튀어나온 셈이다.

휙!

집중력이 흔들렸는지 골은 링을 맞고 튕겨 나왔다.

2학년 0반 놈들이 제갈재걸과 자신들의 승리라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어떠냐, 제갈재걸 선생님의 위용이!”

“아자!”

NBA나 KBL 가릴 것 없이 팬들에 의한 자유투 방해는 존재했다.

물론, 팬들이 선수 눈에 레이저를 쏘는 등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팬들이 관중석에서 웃긴 차림이나 눈길을 끄는 퍼포먼스로 집중력을 흩트리는 일은 흔히 존재한다.

3차전에 와서 갑자기 은광고의 미친놈들이 자유투를 방해할 거라 생각하지는 못한 건지, 군사관학교 고등부 선수들이 당황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질 수 없다!”

“우리도 한다!”

은광고 쪽 골대 밑이 움직였다.

빡빡이들끼리 자리 교체를 하는 것 같았다.

‘……아는 놈들이잖아!’

골대 뒤로 이동한 건 예전에 틸트로터를 타고 홍천군 가리산까지 와 도시후를 패던 놈들이었다.

쟤들도 뭔가 하려나 보다.

은광고 쪽에 자유투가 주어져 우리 팀의 포인트 가드가 슛을 쏘려 할 때였다.

군사관학교 고등부의 응원 깃발이 올라가자 갑자기 플레이리스트에서 ‘내장산의 성자’가 부른 노래가 재생됐다.

랩 부분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깃발 그 뒤에서 수건으로 급조한 승복을 입은 빡빡이가 립싱크를 하며 나타났다.

진지한 얼굴로 ‘내장산의 성자’가 플레이리스트에서 선보인 랩을 커버하는데, 어설픈 승복과 완벽한 입 움직임과 몸동작이 절묘했다.

도시후의 친구 놈들이라 그런지 다 그놈이랑 똑같은 또라이인가 보다.

휙!

은광고의 포인트 가드가 빵 터지는 바람에 자유투가 빗나갔다.

다음으로 파울을 따내 자유투를 쏘게 된 건 유상훈이었다.

현재까지 자유투 성공률이 100%인 유상훈을 두고 사관학교 고등부 응원단이 긴장하는 게 보였다.

응원단석에 선 장남욱은 자유투 방해를 말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자유투를 대비해 눈의 초점을 흐리게 하면 ‘제갈재걸’이라는 글씨가 뜨는 초대형 매직 아이를 준비 중인 2학년 0반 선배놈들을 보고 침묵을 택했다.

“이번엔 더 심한 걸 준비하려나 봐!”

“관객석에서도 다 터졌는데.”

응원용 깃발로 가려 둬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짓을 하려는 것 같았다.

‘우우우우!’ 하는 야유가 쏟아졌는데, 특히 2학년 0반 선배놈들이 가장 큰 소리를 냈다.

본인들이 방금 했고 앞으로도 할 자유투 방해에 관해선 잊은 건가.

유상훈은 괜찮다는 듯 여유 있게 손을 들어 은광고 관중석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사관학교 고등부의 비장의 자유투 방해 공격기가 공개되었다.

“태양권!”

머리를 지나치게 짧게 민 사관생도들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태양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뒤에선 어떤 놈이 이능파를 쏜 건지 번쩍번쩍 후광이 비쳤다.

나도 잠시 저 반짝이는 머리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유상훈은 동요 없이 슛을 쐈다.

유상훈의 손을 떠난 농구공이 완벽한 호선을 그리며 링을 통과했다.

“들어갔다!”

“넣었어! 저걸 보고도 안 웃었나 봐!”

자유투에 성공해 스코어가 바뀌고 관중들이 유상훈의 이름을 외쳤다.

“이거 봐.”

자막이 첨부된 중계 영상을 띄워 두고 있던 한이가 갑자기 우리 쪽에 홀로그램을 보여 줬다.

홀로그램 속 유상훈이 자유투를 쏘고 있었다.

화면을 본 아이들이 경악했다.

“헐, 이게 뭐냐.”

“와……!”

한이뿐만이 아니라 방송부가 송출하는 농구 중계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도 말은 안 했지만 놀랐다.

‘유상훈이 눈을 감고 자유투를 쐈어!’

화면 속 유상훈은 눈을 감고 있었다.

유상훈이 눈을 감고 자유투를 성공시킨 이후 움직임이 현저히 좋아졌다.

특히 도시후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던 유상훈의 태도가 변한 게 눈에 띄었다.

유상훈의 컨디션이 좋아진 걸 코트에 있는 선수들도 느꼈는지, 패스가 유상훈 쪽으로 몰리고 응원단도 유상훈의 이름을 외치도록 유도했다.

우리 반 아이들을 비롯한 모든 은광고 관중이 다 서서 응원했다.

“안 돼!”

“또 저 새끼네!”

맹효돈이 말한 대로 유상훈이 공을 잡자 그림자처럼 도시후가 달라붙었다.

도시후는 오늘도 뭣 같은 수비를 선보여 유상훈의 득점력을 거의 반으로 깎아 먹은 상태였다.

몇 번 도시후에게 블로킹 당한 유상훈은 정면 대결을 피하고 공을 다른 선수한테 돌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유상훈이 강행 돌파를 시도해 슛을 쐈다.

예전에 유상훈과 한 1 on 1에서 나를 몇 번이나 좌절시킨 뱅크슛이었다.

‘……아슬아슬해. 도시후의 블로킹 때문에 슛 폼이 무너졌어!’

도시후의 손을 지나쳐 공은 백보드로 향했다.

그리고…….

유상훈이 날린 공이 링에 맞고 빙글빙글 돌다가 그물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들어갔어!”

“다시 은광고가 역전했어!”

체육관이 은광고 측에서 외치는 함성으로 들끓었다.

유상훈보다 훨씬 키가 큰 팀원들이 땀에 젖은 그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거나 등을 퍽퍽 두드렸다.

그 이후로 유상훈의 맹공이 이어졌다.

도시후를 속 시원하게 날려 버리진 못해도 저 성가신 수비를 뚫고 몇 번이나 슛을 쐈다.

그리고 은광고가 리드한 채로 남은 시간이 줄어들었다.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30초.

은광고 응원단원들이 은광고 관중들을 유도해 같이 카운트다운을 했다.

마지막까지 사관학교 고등부가 포기하지 않았기에 긴장된 마음으로 숫자를 하나씩 외쳤다.

마침내 숫자가 한 자릿수가 되었다.

“3! 2! 1!”

삐이이!

와아아아아아!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 소리가 관객들의 함성과 함께 길게 울렸다.

은광고 벤치에 앉아 있던 농구부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와 후보 선수들이 선수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MVP인 게 확실한 유상훈은 선수들한테 파묻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이겼다! 이겼어!”

“지금 우리가 이긴 거지?”

우리 반 아이들도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맹효돈은 여전히 반 여자아이들을 어색해했는데 지금은 그게 신경도 안 쓰이는지 정신없이 하이파이브를 날리고 교가를 따라 불렀다.

곧 선수들이 진정하고 정렬하자 정복을 갖춰 입은 사관학교장이 우승컵을 들고 나타났다.

사관학교장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관생도들을 한 번씩 격려하고는 은광고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사관학교장은 은광고 농구팀 선수들과 악수를 한 번씩 하고 메달을 걸어 준 후, 마침내 우승컵을 건넸다.

짝짝짝짝!

농구부 주장이 우승컵을 들어 보이자 관객들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환성을 보냈다.

시상이 끝나자 농구팀이 감독에게 몰려가 우승컵을 안기고 헹가래를 쳤다.

그다음으로 헹가래를 당한 건 우승 메달 말고도 MVP 메달을 걸고 있던 유상훈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상희가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다른 응원단원들이 달래자 유상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웃었는데,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 위화감은 꼿꼿하게 서 있는 도원우로부터 느껴졌다.

‘……이상하다.’

도원우는 유상희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도원우는 내가 알고 있던 플마고 속 학생회장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왜 오늘은 도원우가 안 추하지?’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선수들이 응원단 쪽으로 왔다.

응원단원들에게 우승컵을 들어 보라며 내주었는데, 다들 기뻐하며 한 번씩 우승컵을 들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관객들과 응원단에게 감사 인사를 한 은광고 농구 선수들은 폐막식 참가 준비를 위해 물러갔다.

도원우는 마지막까지 조금도 추하게 굴지 않았다.

*    *    *

언령에 묶인 사제는 자신이 이대로 범굴로 끌려가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의식이 끊기기 전, 제가 섬기는 탐욕의 마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전능하신 탐욕의 아바리티아시여, 지금 당신의 종이 믿음을 시험받고 있나이다.

‘본다’, ‘본 것을 공유한다’는 욕망에 못 이겨 제3의 눈을 열고 다른 마족들과 시야를 공유해 왔다.

마족의 사제는 언령을 쓰는 까마귀가 범의 곁에 있다는 사실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여태까지 쌓아 온 모든 신력과 마신의 축복 그리고 눈을 잃는다고 해도.

―제 믿음을 증명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그러자 마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사제는 탐욕스럽도다.

마족의 사제는 그것이 아바리티아가 내릴 마지막 목소리임을 알았다.

그 직후, 황호의 공격으로 인해 의식이 끊겼으나 마족의 사제는 한 점 후회도 없었다.

마신과 접촉할 신력과 축복을 잃고 신단(神壇)이 무너지고 썩는다 해도, 그의 ‘눈’은 남을 테니까.

그리고 그 유지는 전해졌다.

“갑자기 없어져서 어딜 갔나 했는데.”

독 안개가 사라진 연구실 안.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온실 가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독기와 마기가 사라진 신단을 본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아바리티아의 사제에게 일어난 일을 짐작했다.

“하하하! 역시 그랬군. 잡혔구나?”

얼마 전,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에 의해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소유한 동결형 이계가 하나 깨졌다.

최근엔 아바리티아의 사제가 어찌 의뢰를 수행할지 기대하며 지켜봤지만, 갑자기 눈이 차단되더니 그는 사라져 버렸고 인간의 축제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심기가 불편하던 인비디우스는 이 죽은 온실을 보니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마신 인비디우스의 본질은 ‘질투’.

그 인비디우스를 모시는 사제 또한 늘 질투에 몸을 떠는 신세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제 그가 봤던 모든 것이 제 것이 되리라는 생각에 질투에서 벗어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원하는 걸 발견했다.

“여깄군!”

뿌리까지 전부 썩은 나무 위, 자주색의 안구가 열려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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