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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07화 (307/925)

52. 연휴와 개교기념일 (4)

이름 없는 조연의 튜토리얼에서 사망한 감독관 김신록.

게임 속에서는 그의 이름도 나오지 않았기에 그가 주요 캐릭터의 아들, 제자, 친구라는 건 전혀 몰랐다.

김신록이 어떻게 죽어 갔는지도 당연히 알지 못했다.

‘웅족의 습격을 받았다는 것 외에도 뭔가 있었던 건가.’

김신록은 내가 이 세계에 온 직후, 플마고 속의 감독관과 마찬가지로 빈사 상태로 등장했다.

그 시점에서 내 개입으로 달라진 것이라곤 체육관에서의 생존 여부뿐이다.

습격 과정에서 김신록이 어떤 정보를 얻었다면 리플레이의 사용 없이도 얻을 수 있던 정보일 것이다.

그래서 김신록에게는 리플레이를 사용해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신록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던 거야.’

조금만 늦었으면 사망했을 정도의 중상을 입었으니 기억 일부가 쇼크로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긴 꼬리’의 단서를 잡았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내가 그런 경험을 다시 겪게 한 거니까.

“네가 겪은 것과 달라진 게 있나? ‘조의신이 존재하지 않을 때의 미래’는 어땠지?”

황지호의 질문에 김신록이 조금 늦게 답했다.

머릿속에서 꿈의 내용을 다시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전부 제가 겪은 대로였습니다. 다만, 조의신이 없었습니다. 꿈에서 저와 13조 수험생들은 죽었습니다.”

리클라이너에서 일어나려던 김신록이 자신의 무릎 밑을 가만히 봤다.

김신록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다쳐 재생 시술을 받았다고 들었다.

아직 그 감각이 생생한가 보다.

당시 사이가 데면데면했다고 하나 그날 아들이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잘 알고 있을 적호가 속 끓는 얼굴을 했다.

“일어나지 마라. 이야기를 지금 할 필요는 없다. 아직 힘들면 좀 더 쉬는 게 어떠냐? 황호, 제 아들의 찻잔이 비었습니다. 차를 더 준비해 주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기억이 생생할 때 전하고 싶습니다.”

김신록은 리클라이너에 자신만 앉아 있는 게 불편한지 응접실 중앙 소파로 이동했다.

적호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내내 김신록의 등을 토닥였다.

자리에 앉은 후에는 황지호가 새로 채운 찻잔을 몸소 김신록의 손에 쥐여줬다.

아주 극진한 태도를 보이는 게, 적호가 저러다가 나와 황지호 머리 위에 벼락을 날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차라리 벼락을 맞고 나면 마음이 편할 것 같긴 한데…….’

아버지의 간호 덕에 평정을 찾은 김신록이 입을 열었다.

“……은광고를 습격한 조련계 웅족과 조우한 직후의 일입니다.”

김신록은 리플레이로 본 악몽을 설명했다.

정면에서는 웅족이, 후방에서는 웅족이 아닌 진족과 대치했다고 한다.

“웅족도 아닌 진족이 일격에 네 다리를 그리 만들었단 말이냐.”

“내가 알아채지 못하게 12지의 합작품인 은광고의 결계를 조작할 수 있는 건 수장들뿐이다. 그 수장이 결계를 깬 후, 웅족과 함께 습격을 감행한 것이겠지.”

적호와 황지호의 음성에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두 호랑이의 노기가 누그러진 후에 김신록이 이어서 말했다.

“그자는 기습을 가한 후, 말을 남겼습니다. 그 말을 생각하면 긴 꼬리에게는 후예가 있는 듯했습니다.”

“무슨 상황이기에 갑자기 후예를 언급했지? 묘하군. 혼선을 줄 의도로 한 발언일 가능성이 있지 않나?”

“……아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황지호가 재차 물었지만 김신록은 말을 흐릴 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기억이 잘 안 나서 저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아들아, 말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된다.”

적호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되려 김신록에게 말할 용기가 생긴 것 같았다.

김신록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후예 중에 이런 혼혈이 없어서 다행이군.’이라고 말했습니다.”

파아앗! 콰쾅!

김신록의 말에 호랑이들이 이능파를 발산하는 바람에 응접실의 가구가 몇 개 터져 나갔다.

아직 가을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새로 인테리어를 하게 될 것 같다.

백호군의 주변은 멀쩡한 게 황지호나 적호처럼 이능파를 터뜨린 것 같진 않았지만, 눈에 살기가 어려 있었다.

“네게 치욕을 주며 그리 말했겠군. 다른 말도 했겠지.”

“감히, 내 아들에게……!”

황지호는 왜 김신록이 바로 말을 하지 못했고, 또 어떤 말을 생략했는지 짐작했을 거다.

적호는 예전에 백호군에게 주먹을 날렸을 때처럼 듣도 보도 못한 상스러운 욕을 하기 직전의 얼굴을 했지만, 아들을 보고 욕설을 간신히 삼킨 것 같았다.

끓어오른 화를 식히기 위해서인지 황지호는 오미자차에 얼음을 넣어 차갑게 식혀 호랑이들에게 내밀었다.

그 와중에도 김신록과 나에게는 따로 뜨거운 차를 건네긴 했다.

나는 찻잔으로 식은 손을 데우며 생각에 잠겼다.

‘단서가 생겼으니 생각해야 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같이 화를 내도 호랑이들의 마음을 달랠 수 없을 거다.

외부인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에 둘 수를 고찰하는 것뿐이다.

남아 있는 긴 꼬리의 후보는 우족(牛族), 사족(蛇族), 마족(馬族), 원족(猿族).

네 진족 중 마족(馬族)은 마족(魔族)의 눈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따로 동맹도 맺은 상태이니 배신자일 가능성이 크게 떨어졌다.

‘그렇다면 우족, 사족, 원족. 셋으로 후보를 좁힐 수 있겠지.’

내가 파악하고 있는 세 수장의 행적.

세 수장이 12지 회담에서 한 발언.

김신록이 리플레이를 통해 들었다는 말.

이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니, 어떤 결론에 이르렀다.

“무언가 알아낸 모양이군. 조의신, 말해 봐라.”

어느 사이엔가 호랑이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몰려 있었다.

호랑이들의 짧은 폭주로 응접실 풍경은 개판이었지만 내가 생각을 가다듬는 동안 다들 진정한 것 같았다.

“남은 긴 꼬리의 후보 둘을 감시했으면 좋겠는데.”

“……둘이라고?”

황지호는 바로 알아챌 줄 알았는데 김신록 생각에 냉정한 사고가 어려운 듯했다.

“마족(馬族)과의 동맹으로 긴 꼬리의 유력 후보는 우족, 사족, 원족으로 좁혀졌잖아.”

여기까지 말하니 황지호가 눈을 조금 크게 뜨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원숭이들에게는 후예가 없었지.”

12지 동맹 회담 당시, 용족의 수장 청룡은 은광고에 소속한 용제건과 염준열을 고려해 호족에게 전면적으로 협력하겠다 선언했다.

그 선언 뒤로 이런 대화가 이어졌다.

辰[만렙 청룡] “우리 후예, 특히 준열이 다치면 동맹이고 뭐고 너네 신역 다 불바다 될 줄 알고 있어라.”

申[우주최강 제천대성] “아, 알았다, 알았어. 후예 없는 진족은 서러워서 죽겠네.”

여기에서 ‘申[우주최강 제천대성]’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 즉 원족이다.

“원족은 개체 수도 적고 후예는 한 명도 없다. 마주칠 때마다 후예의 존재를 부러워하곤 했지.”

황지호가 말을 이었다.

“우족과 사족, 둘 정도면 감시할 수 있겠군. 저강렵의 움직임도 지켜보고, 흑마 측에 파견해야 하는 이도 있으니 전면적인 감시는 어려울 거다.”

“황호, 제가 가겠습니다!”

적호가 의욕에 차 외쳤으나 황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긴 꼬리의 근거지에 네 적연을 꿰뚫어 본 그자가 있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호족 중에 저 이상으로 정보 수집에 능한 이는 없습니다.”

“너만큼 정보 수집에 능하지 않더라도 제 몸을 사릴 줄 아는 호족을 보낼 거다.”

황지호와 적호가 옥신각신했으나, 김신록이 불안한 얼굴로 적호를 보자 금방 상황이 정리되었다.

적호는 고초를 겪은 아들을 내버려 두고 적진에 뛰어들 정도로 매정하지 못했다.

“고맙습니다, 조의신. 하마터면 중요한 정보를 놓칠 뻔했습니다.”

김신록이 눈을 떴을 때보다 한결 나아진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악몽을 꾸게 하고 이런 인사를 들어도 될지 모르겠다.

뭐라 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김신록이 말을 덧붙였다.

“사실 가격당한 후 통증으로 정신이 흐려졌습니다. 제가 놓친 정보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의신만 괜찮다면 지금 한 번 더 그 이능을 제게…….”

“아들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적호가 말을 끊고 황지호가 김신록을 나무랐다.

“조의신이 그 이능을 지금 다시 사용할 수 있다 해도 불허한다. 오늘은 쉬고 내일 일찍 중앙 구역 제1양호실에 들러서 정밀 검사를 받고 최소 3일은 쉬도록.”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연속해서 그 꿈을 보는 게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너뿐만이 아니라 조의신에게도 데미지가 있을 수도 있다.”

갑자기 내가 끌려 나왔다.

나는 괜찮긴 한데, 괜히 여기서 입을 열면 김신록이 무리를 할 빌미를 주는 게 우려되어 입을 다물기로 했다.

“꿈과 정신에 간섭하는 능력은 시전자의 정신에도 영향을 주는 게 보통이다.”

나는 꿈을 꾸지 않으니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도 장담은 할 수 없으니 입을 다물었다.

황지호는 나와 김신록을 번갈아 보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의신, 너도 내일 양호실에 들러 김신록과 함께 검사받도록.”

영약을 먹는 게 아니라 그냥 검사받는 것 정도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황지호가 유난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    *    *

기숙사 건물 앞.

백호군과 함께 나를 바래다준 올무가 온몸으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왕왕! 끄응…….

황명호 대저택이 있는 방향을 봤다가 나를 보는 게, 지금이라도 돌아가자는 것 같았다.

호랑이들은 내가 추석 연휴 내내 황명호 저택에 머물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기숙사에 반 아이들도 있었고, 호랑이 가족 사이에 며칠 내내 끼어 있기도 그랬다.

중간고사를 핑계로 거절하니 황지호가 선심 쓰듯 말을 꺼냈다.

―정 뜻이 그러하면 보내 주지. 대신 10월 3일에는 시간을 비워 둬라.

―……아, 내일 양호실에서 검사받는 것도 잊지 말도록. 시간 내로 오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겠다.

그 헛소리에는 대답을 안 하고 ‘이만 갈게. 좋은 한가위 보내라.’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검사 건은 몰라도 10월 3일 건은 여차하면 무시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지호와 달리 눈앞의 귀엽고 착한 올무는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은 시험 기간이라서 안 돼. 시험이 끝나면 더 자주 보러 갈게.”

끄응…….

몸을 낮추고 올무에게 열심히 작별의 인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부반장, 오셨습니까?”

날 부른 사람은 목우람이었다.

목우람은 1학년 기숙사 건물 로비에 있었나 보다.

목우람은 내 발치에서 저를 올려다보는 올무를 보며 물었다.

“부반장의 애완동물입니까?”

“아니야.”

리드는 백호군이 쥐고 있는데 나와 올무가 몹시 친하게 보여 내 애완동물이냐고 물은 것 같았다.

하지만 올무는 내 애완동물이 아니라 천사다.

어떻게 하면 올무를 잘 소개할 수 있을지 고심하는 사이, 목우람은 올무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는지 화제를 바꿔 버렸다.

“혹시 오는 길에 레나 님 못 보셨습니까?”

“아니. 왜?”

내 말에 목우람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레나 님께서 잠시 학교 앞으로 가족을 뵈러 가신다고 했는데 조금 늦으셔서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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