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10화 (310/925)

52. 연휴와 개교기념일 (7)

길었던 연휴가 끝나고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중간고사 준비 기간 동안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연달아 터졌다.

학교 내부에선 2학년 0반과 방송부가 충돌했고, 외부에서는 은광고의 어느 공개 파티가 좋은 의미로 사고를 쳤다.

1학기 때 현상 수배범 최편득을 직접 잡아 족치기 위해 모인 이들은 꾸준히 사람을 모으고 파티를 이어 가는 중이었다.

때로는 현상 수배범 사냥 파티로, 때로는 스터디 파티로 형태를 바꿔 가면서 그들은 최편득을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던 중, 그들은 오랜 기간 행방이 묘연했던 플레이어 수배범을 직접 잡아냈다.

범죄 패턴이 최편득과 유사한 놈이라는데 보통 중범죄자가 아니었기에 협회와 경찰청으로부터 표창을 받게 되었다.

그 사건은 우리 반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그걸 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최편득 잡을 때까지 계속 파티 유지할 거라는데? 이러다가 수배범 몇 명 더 잡는 거 아냐?”

최편득 얘기가 나오자 맹효돈이 나를 흘끗 보다 고개를 돌렸다.

나는 최편득의 생일 파티 때 맹효돈을 구출했고, 최편득의 행적은 만천하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걸 맹효돈이 안다.

그날 이후로 계속 실종 상태인 최편득을 보고 생각하는 바가 있을 텐데 나에게 한마디도 묻지 않는 게 그다웠다.

“얘들아! 미로 왔어!”

김유리가 밝은 목소리로 외치며 교실로 들어왔다.

김유리의 옆에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과 분홍색의 머리카락을 가린 독고미로가 서 있었다.

플레이리스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주목도가 커지는 바람에 소란을 피하고자 얼굴을 가리고 온 것 같았다.

독고미로는 교실에 들어오자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아이들에게 붙임성 있게 인사했다.

“안녕! 오랜만에 본다. 잘 지냈어? 도중에 학교 오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나서…….”

독고미로는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 태도가 자연스럽게 변했다.

등교하여 중간고사를 치를 예정인 11명 중에선 독고미로가 가장 늦게 합류했는데, 순식간에 아이들과 섞여서 어울렸다.

특히 독고미로는 한이한테 말을 많이 걸었는데, 한이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독고미로의 말을 다 받아 주었다.

‘쟤는 황지호가 한 말은 일부러 못 들은 척하고 무시할 때가 많은데.’

자칭 죽마고우, 황지호는 한이가 일부러 그러는 걸 알아도 좋다고 처웃을 것 같긴 했다.

아이들과 한 번씩 말을 주고받은 독고미로가 조금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나 이번 주에도 살아남으면 최후의 1인을 뽑는 파이널 스테이지에 나갈 수 있어.”

시험 기간에도 플레이리스트는 계속 방영되었고 최후의 플레이어를 뽑는 과정에서 출연진은 점차 줄어들었다.

독고미로는 현재 무사히 살아남아 추석 특별 방송에도 출연했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생방송 퍼포먼스는 아직 어색하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독고미로의 음원 판매량과 영상 조회수는 상승세를 이어 갔다.

그 덕에 독고미로는 내장산의 성자에 이은 유력 우승 후보로 꼽히는 중이었다.

“괜찮으면…… 마지막 무대에 방청하러 올래? 아직 출연이 확정된 건 아닌데, PD님이 가족이나 친구를 초대해도 된다고 하셔서.”

독고미로의 제안에 반 아이들이 화색을 띠었다.

“갈게요!”

“가고 싶어!”

사월세음에 이어 민그린이 적극적으로 참석 의사를 표했다.

요새 작업 중에도 독고미로의 노래를 듣고 있다는데 라이브로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방송국이면 모르는 사람이 많을 텐데, 자진해서 가겠다고 말했어. 반 아이들과 함께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민그린은 이제 불특정 다수가 있는 장소에도 갈 수 있을 만큼 타인에 익숙해졌다.

낯선 사관학교 생도도 많은 스포츠 경기장에도 가서 아이스 퍽을 걷어차 링크에 박아 버릴 정도니 정말 많이 성장한 거다.

플레이리스트 촬영은 밤늦게 한다는데도 민그린 외에도 모든 반 아이들이 선뜻 가겠다 답했다.

똑똑.

단체 방청 계획으로 한창 들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직 조례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니 함근형 선생님은 아닌 것 같은데.

“들어오세요.”

문에 가장 가까이 있던 내가 대표로 말하자, 조금 시간을 두고 자동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2학년 명찰을 달고 있는 은광고 여학생이 서 있었다.

손에는 분홍색 리본으로 포장된 바구니가 들려 있었는데, 여기저기에 독고미로 사진이 붙어 있었다.

‘어디에서 본 거 같은데. 아, 스포츠 교류전 개막식 때 독고미로 사진 찍던 홈마인가?’

독고미로의 팬인 듯한 선배는 제대로 말을 못 하고 독고미로를 보며 입을 연신 뻐끔거렸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저기…….”

독고미로는 그 선배를 바로 알아보고 싹싹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번 촬영 때 사진 찍어 준 분이시죠?”

독고미로가 알아보자 선배는 감동한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여전히 카메라에 민감한 독고미로는 홈마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보고 기억한 것 같았다.

독고미로가 예쁜 사진 찍어 줘서 고맙다고 말하자 홈마 선배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뻐했다.

“……미로야, 시험 잘 봐. 플레이리스트에서도 힘내고. 이번 주에도 응원할게.”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시험 잘 보세요!”

조공품을 넘긴 선배는 밖으로 후다닥 뛰쳐나갔다.

복도에서 큰 소리가 났는데 뛰다가 넘어진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홈마 선배가 교실 밖으로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례가 시작되어 함근형 선생님이 등장했다.

“오늘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된다. 다들 건투를 비마.”

함근형 선생님이 짧은 말로 아이들을 격려했다.

조금이라도 더 공부할 시간을 주려는 듯 함근형 선생님은 평소보다 이르게 조례를 마치려고 했다.

그 전에 김유리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선생님! 등교 안 하는 애들도 시험 보나요?”

“원격 시험을 신청한 학생은 다섯이다. 전원 1학년 0반 중간고사에 응시할 예정이다.”

우리 반은 총 16명.

오늘 등교하여 시험을 치는 학생은 11명.

즉, 등교하지 않은 학생은 다섯 명인데, 이들은 모두 진급할 생각은 있는 듯하다.

‘우리 반에 낙오자가 나오지 않길.’

이 생각을 하고 바로 후회했다.

이런 소리를 하다가 민그린이 낙오 했는데…… 괜히 불길했다.

*    *    *

중간고사 기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일반 에너미학의 경우, 공청훤 선생님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시험 범위였기에 시험 전날 수강생들이 죽어 갔다.

일반 에너미학 수강생 중 가장 여유가 넘치는 건 황지호였다.

“답을 확인하는 중인가? 이 몸도 함께하지.”

반 스터디를 하는 자리에서 나와 한이가 시험 답안을 서로 대조하고 있을 때 노친네가 끼어들었다.

한이가 ‘어차피 넌 40점일 텐데 답을 확인해서 뭐 하게.’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였다.

답을 확인한 결과 황지호는 예상대로 40점이었고 한이는 몇 문제를 제외하면 다 맞았다.

한이는 성실하게도 곧바로 틀린 문제를 분석하려 했다.

“농락계 사령종 에너미가 SR급 이상의 던전형 이계에서 플로어 마스터로 등장했을 경우, 공략 방법을 셋 이상 서술하는 문제 말인데…… 어떻게 썼어? 두 개까지는 썼는데, 남은 하나는 잘 안 떠올랐어.”

내가 답하기 전에 황지호가 불쑥 대답했다.

“‘계’를 고려하면 하나, ‘종’에 집중하면 셋, 던전형 이계의 플로어 마스터의 특성에 따라서 하나를 더 떠올릴 수 있지. 다섯 개 중 어떤 걸 썼지?”

“……사령종이 빛에 약하다는 점을 이용해서 하나, SR급 이상의 던전형 이계에서 주로 등장하는 함정 기믹을 활용한 방법 하나. 이렇게 두 개 썼어.”

“그럼 ‘계’와 ‘종’에서 공략 방법을 더 찾아보는 게 좋겠군.”

황지호는 40점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창하게 이론을 읊었다.

한이는 황지호의 설명을 들으며 추가로 질문을 던지고 필기를 했다.

“……고마운데 분해.”

“하하하하! 과찬이다!”

좋다고 처웃는 황지호를 나와 한이가 비슷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황지호처럼 여러 가지 의미로 사기를 치는 놈이 있긴 했지만, 반 아이들은 대체로 정당한 방법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저 ‘플레이어의 전투 이론 2’에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파티원의 수에 따라 능력이 증감하는 스킬과 광림의 존재가 잘 이해가 안 가서요…….”

“그건 사례를 먼저 보고 이론을 공부하는 게 쉬워.”

“눈에 띄는 사례가 교과서에 없던데…… 아, 혹시 유명한 플레이어의 능력을 봐야 하는 건가요?”

“맞아. 성국언 선배님 광림과 스킬은 ‘국언무쌍’이라는 별명하고 달리 혼자 싸우기에는 잘 맞지 않는 이능이야.”

사월세음에게 성국언의 이능을 사례로 들어 이론을 설명해 주니 금방 이해했다.

맹효돈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학을 붙들고 있어 반 아이들의 중간고사 기간은 대체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예외가 있다면 시험 기간 내내 안색이 좋지 않았던 권레나였다.

‘……시험이 끝나면 이야기할까.’

중간고사 기간에 괜히 말을 하면 권레나의 컨디션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지금은 목우람과 함께 공부 중인 권레나의 안색을 수시로 확인하는 게 고작이었다.

*    *    *

중간고사가 끝났다.

시험 종료 후, 바로 다음 날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번 시험에도 학년별로 상위 20명은 변함이 없었다.

‘이번에도 염준열이 수석을 놓쳤네…….’

플레이리스트 촬영과 학생회장 선거를 치르면서 차석을 유지한 것도 충분히 굉장한데.

내 제자가 의기소침하기 전에 칭찬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뭐라고 칭찬 문구를 작성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번에 1학년 0반 중에 낙제한 사람이 있대.”

“억!”

내 고민은 김유리의 충격적인 발언과 낙제 후보생 맹효돈의 비명으로 중단되었다.

“효돈아! 40점 넘은 거 같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찍은 것도 몇 개 맞아서 48점 맞았는데…….”

맹효돈은 마킹 실수 등의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낙제 여부는 개별적으로 디바이스로 발송된 성적표를 확인해 보면 될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재시험 안내문에 낙제생 이름은 안 떠도 과목명이 나오니까 그거 보면 효돈이가 낙제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민그린은 1학기 중간고사 시작 직전에 도망치는 바람에 0점을 받아 낙제한 경험이 있었다.

재시험 경험자 민그린의 조언을 받아 김유리가 게시판 공지를 확인했다.

“효돈이는 아니야. 재시험 공지에 수학은 없어!”

“아, 살았다!”

맹효돈이 불끈 주먹을 들어 올렸다.

반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쟤가 아니면 원격 시험 친 놈 중에서 나왔겠지.”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재시험도 원격 시험으로 볼 수 있냐?”

“1학년 0반 낙제생은 공통 과목에서 나왔다는데.”

“아…… 그 광림이랑 스킬 어쩌고 하는 거 어렵더라.”

반 아이들은 등교 거부자 중에 낙제한 아이가 있겠거니, 하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덜그럭, 툭.

그때, 가방과 노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의 근원지에 권레나가 앉아 있었다.

홀로그램 너머로 보이는 권레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설마…….’

내가 앉은 곳에선 권레나의 홀로그램 내용물이 전부 보이지는 않았지만, 페이지 상단을 보니 성적 안내문 양식 같았다.

권레나는 디바이스로 성적표를 확인하던 중인 것 같았다.

“그거…… 나야…….”

“응?”

권레나가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낙제했어…….”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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