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두 번째 시도 (1)
은휘관 이사장실, 오전.
황명호의 모습을 한 황호가 적호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보고의 내용은 1학년 0반 소속 이레나, 아니, 권레나에 관한 것이었다.
“권제인이 그저 제자를 끔찍이 여기는 줄 알았더니,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피가 이어진 친족이었군.”
황호는 중간고사 기간에 적호에게 권레나의 뒷조사를 명하기 전에 이미 학기 초에 1학년 0반 구성원에 관한 뒷조사를 명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 호족은 그녀가 환몽 경매 참석자라는 것, 학대의 여지가 있다는 것 외에는 파악하지 못했다.
최근 적호가 계속 우족과 사족을 조사하러 가겠다 졸라 대기에 일을 더 시킬 겸, 정신적으로 몰려 있는 듯한 급우의 사정을 캐 볼 겸 적호에게 조사를 명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도 결과, 의외의 정보를 얻게 되었다.
‘환몽 경매의 피해자 사월세음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 외에도 다른 원인이 있을 가능성을 상정해서 조사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잠깐, 조의신은 알고 있던 것 같은데.’
조의신이 어느 날 서돌의 기척을 묻혀 돌아온 날이 있었다.
은인이 몹시 거슬리는 진족과 엮였을지도 모르니 황호는 뒷조사를 지시했었다.
조사 결과, 조의신이 말한 대로 그는 권제인을 만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것까진 트집 잡을 부분이 없었으나 보고서에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발견했다.
‘영원의 호수 팀의 서브 마스터 재러드 리가 은광고까지 조의신을 데리러 왔다는 게 이상한 점이었지.’
세계 10대 프로 플레이어 팀의 2인자가 일개 학생을 바래다주는 건 이상했다.
마치 중요한 손님을 모셔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황호가 이상하게 여겼던 순간은 하나 더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두 순간은 같은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체스 시합이 열리던 시기였어. 권제인의 인터뷰 기사를 준비하던 중 조의신이 아주 이상한 태도를 보였지.’
천 페이지에 달하는 권제인의 자료를 순식간에 독파한 조의신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관찰 중에 저도 모르게 말을 걸 만큼 조의신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상하군.
―뭐가.
―뭔가 알아낸 얼굴인데, 수상하게 웃질 않아서.
지금 알아낸 권레나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생각해 보면 그런 표정을 지은 이유도 납득이 갔다.
‘그때 알아낸 거겠군. 방대한 자료 속에서 단서를 잡아 권레나의 비밀을 알아냈고, 그날 체스 시합을 마친 후에 권제인과 직접 만나 확인했겠지.’
사고를 마친 황호가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하하하, 이런 중요한 걸 첫 번째 조사에선 알아내지 못하다니.”
“서족과 영원의 호수 팀이 정보 은폐 공작을 벌여 알아내기 어려웠습니다.”
“너 정도가 아니면 알아내기 어렵다는 거겠군.”
그 말에 적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네, 그러니 제가 우족과 사족의 조사를 맡겠습니다.”
황호는 혀를 차며 그 말을 잘랐다.
“쓸데없는 생각 마라. 아직 ‘성헌’의 조사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또, 네 아들이 나에게 와서 조의신의 그 능력을 시험해 보자 조르는 건 알고 있나?”
“네? 그 아이가 당신에게 그런 걸 부탁하고 있습니까?”
“그래. 중간고사 핑계를 대면서 미루고 있지만, 곧 다시 시험해 봐야겠지.”
적호는 아연실색하며 입을 다물었다.
“우족이나 사족의 본거지에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네 아들은 네가 없는 곳에서 악몽을 꾸게 될 것이다.”
“…….”
황호의 말에 적호가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
그 모습에 만족한 황호가 화제를 바꿨다.
“이번 건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도록. 첫 번째 보고가 올라왔다. 함께 확인하지.”
“……알겠습니다.”
홀로그램으로 보고서를 확인한 황호와 적호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두 수장 다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하고 있군요.”
“속단하기 이르지만 ‘둘 다’일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보고서를 본 후, 적호는 당장이라도 직접 조사에 나서고 싶었으나 아들 생각에 참았다.
그 사고의 흐름을 꿰뚫어 본 황호가 적호에게 일감을 던졌다.
마침 맡길 일이 있었다.
“이 건은 좀 더 조사해 보겠다. 아, 최근 주오 그룹에서 사관학교와의 교류전 개막식에서 벽사의 춤을 춘 학생…… 백호에 관해 캐는 이가 있다더군. 이 건은 적호, 네가 맡도록.”
* * *
권레나의 낙제 건으로 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송대석은 눈치 없이 ‘교과서 잘 보면 40점은 충분히 받을 수 있…….’까지 말했다가 민그린에게 정강이를 까여 바닥에 주저앉았다.
덧붙여 목우람은 ‘저도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함께 낙제하겠…….’까지 말했다가 맹효돈에게 옆구리를 주먹으로 맞고 입을 다물었다.
“흠…….”
순간 노친네가 처웃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황지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볼 뿐이었다.
저 얼굴을 보니 찝찝하긴 했지만 지금 당면한 문제는 따로 있었으므로 무시하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반에서 가장 의사소통 능력이 우수한 김유리가 다정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태도로 권레나를 위로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그러나 수업 내내 권레나는 어딘가 넋이 나가 보였고, 반 아이들은 중간고사가 끝난 걸 속 편하게 기뻐하지 못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유급시키려고 이 세계에 온 게 아닌데.’
게임 속에서 권레나가 낙제 점수를 받았다는 묘사는 한 번도 없었다.
과정이 어떠한들 결과적으로 여태까지 내가 한 행동이 권레나의 유급 위기로 이어진 셈이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이 생각은 신문부에서 일과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오늘은 2학년 중에서 차기 신문부 부장을 뽑는 날인데도 도통 집중할 수 없었다.
차기 신문부장은 제갈재걸과 신문부를 2학년 0반의 마수로부터 지켜야 하므로 정신과 위장이 튼튼하며 이능이 우수한 플레이어여야 했다.
그렇기에 선출 과정이 복잡하고 길어졌는데도 신문부실을 나설 때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 거의 없었다.
“조의신, 아직 유급이 확정된 게 아니다.”
기숙사로 가기 전, 황지호가 나를 빈 교실로 불러냈다.
갑자기 결계를 치기에 긴 꼬리에 관해 이야기하나 했는데, 나온 건 권레나 이야기였다.
“시험지를 살펴보니 성적은 38점이었다. 마지막 열 문제를 전부 밀려서 마킹하는 바람에 받은 점수였지. 단순히 긴장해서 한 실수였다.”
그 실수가 재시험에서 반복될 수 있지 않은가?
황지호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덧붙였다.
“실수가 걱정되면 주관식이나 구술형 시험을 권하는 방법도 있다.”
“……그거 직권 남용 아니야?”
“교칙이 허용하는 범위와 재시험의 취지를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재시험은 학생 개인의 역량과 공부한 결과물을 재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황지호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숨쉬기가 편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황지호가 폭탄선언을 했다.
“‘권레나’의 가족 건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상의해라. 돕도록 하마.”
‘이레나’가 아니라 ‘권레나’라고 부르는 걸 보니 드디어 이 노친네가 권레나의 비밀을 눈치챘나 보다.
또 태도를 보니 내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아는 듯했다.
내가 대놓고 싫어하는 얼굴을 하자 황지호는 만족해하고는 처웃었다.
‘……그래, 저놈이 알고 있으면 언젠가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지익회관 스터디 룸으로 향했다.
신문부원들과 부실에서 저녁을 먹는 사이에 기숙사 급식 시간도 끝나 지익회관 주변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시험 기간 중 항상 반 이상 차 있던 시뮬레이션 룸도 텅텅 비어 있었다.
‘오늘은 계획만 짜고 쉴까.’
재시험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오늘은 권레나를 달래 주고 가볍게 공부 계획을 짤 생각이었다.
그런데 스터디 룸에 도착하니 사월세음과 목우람밖에 없었다.
‘맹효돈은 오늘부터 탁 도인하고 밀린 훈련을 한다고 했고, 한이는 보육원 사람들과 약속이 있다고 했지.’
권레나는 잠시 자리를 비웠나 싶었는데, 사월세음이 좀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다가 레나 못 보셨어요?”
지익회관은 인적이 거의 끊긴 상태라 권레나가 주변에 있었다면 알아챘을 거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잠깐 바람 쐬고 오신다고 하셨는데…… 늦으셔서요.”
“디바이스로 연락해 봤는데 연결이 안 됩니다. 메시지도 읽음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들고 오셨던 바이올린 케이스를 갖고 나가셨으니까 현악부 쪽에 가셨을지도 모르겠네요.”
테이블 위에는 블루베리가 세 알 올라간 단호박 컵케이크와 종이컵이 각각 네 개 놓여 있었다.
사람 수에 맞춰서 준비해 둔 듯했는데, 종이컵이 세 개가 이미 채워져 있었고 그 내용물이 식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자리를 비운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사월세음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셋은 저녁을 먹고 여기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권레나를 기운 내게 해 주려고 사월세음이 먼저 와서 컵케이크와 차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레나는 블루베리를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힘내시라고 블루베리가 들어간 컵케이크랑 블루베리 잎차를 사 왔거든요. ……그런데 이걸 보더니 갑자기 레나가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했어요.”
사월세음의 말을 들으니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권레나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근원인 사월세음.
그가 권레나의 낙제 소식을 듣고 곧바로 그녀를 격려하기 위해 선물을 마련했다.
그걸 보고 권레나가 어떻게 느꼈을지 뻔했다.
“찾아올게.”
“아, 그러면 저도 같이……!”
“기다리고 있어. 혹시 이쪽으로 올지도 모르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스터디 룸을 나설 때는 빠르게 걷고 있었지만, 입구에 가까워졌을 시점엔 전속력으로 뛰고 있었다.
‘거기에 있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머릿속에 권레나가 있을 법한 장소의 후보, 그녀가 연락할 사람들을 떠올렸다.
권레나의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유력한 후보가 바로 떠올랐지만 좀처럼 인정하기 싫었다.
내 추리의 결과물을 확인하기 위해 광림을 사용하기로 했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대상 캐릭터의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을 사용합니다.〉
천동하의 광림이 발동하자 뇌에 수많은 정보가 밀어 넣어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내가 예상한 장소에 권레나가 서 있었다.
‘권레나는 두 번째 시도를 할 생각이야……!’
곧바로 플레이어의 궤적의 선택 캐릭터를 천동하에서 사월세음으로 바꾸었다.
〈해당 캐릭터의 스킬, ‘비행’을 사용합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 여기며 하늘로 날아갔다.
내가 비행 스킬을 쓰는 게 알려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알려진다’라는 것에 생각에 미치니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밤하늘을 가르고 날아가는 동안 급히 메시지를 작성했다.
[나] 김신록 선생님, 기숙사 1학년 건물 외벽 감시 CCTV 꺼 주세요.
[김신록] 알았습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나] 감사합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익회 고문답게 김신록은 바로 일을 처리해 줬다.
질문이 더 오긴 했지만 답변할 여유가 없었다.
‘저기 있다……!’
나는 바로 권레나와 몇 걸음 떨어진 장소에 착륙했다.
밤하늘을 멍하니 보던 권레나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봤다.
입학 첫날 권레나가 몸을 던진 1학년 건물 옥상 위, 그녀가 두 번째 시도를 하기 위해 서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