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23화 (322/925)

54. 동생 (3)

“……보고는 이상입니다.”

전무영이 브리핑을 마쳤다.

보고의 주제는 어느 실종된 초등학교 교사의 행적과 그 교사가 담당한 교실을 관찰한 일지였다.

초등학교 잠입은 물리적으로 어렵진 않았으나 정신적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전무영은 보고 도중에 몇 번이나 자괴감이 일어 말이 느려졌지만, 담담하게 모든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구두 보고를 최대한 짧게 하기 위해 공을 들여 간략하게 요약한 보람이 있었다.

전무영은 사전에 인쇄해 둔 보고서를 건넸다.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로 정리해 왔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성국언은 그런 전무영의 사고 회로를 훤히 꿰뚫는 것처럼 웃음을 눌러 참으며 종이 서류 더미를 받아 들었다.

‘매번 보고서를 종이로 인쇄하고 파쇄하는 과정이 번거롭지 않으신가?’

성국언은 디바이스 조작에 미숙한 것도 아닌데 늘 종이 서류를 고집했다.

나이가 지긋한 국회의원들이 종이 보고서 인쇄를 요구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긴 했다.

그러나 성국언은 국회의원 중 최연소다.

성국언은 첨단 문물에 익숙했고, 그가 은광고에 재학할 때부터 은광고에선 디바이스를 전교생에게 보급하고 홀로그램 화면으로 수업 자료를 배부하곤 했다.

‘아직 그 선생님 영향이 남아 있나 보군.’

성국언과 전무영은 두 살 차이로, 전무영이 고1일 때 성국언은 고3이었기에 은광고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 건 1년뿐이었다.

그럼에도 1년 동안 보인 학생회장 성국언의 강렬하고 파격적인 행보는 도통 잊을 수 없었다.

은광고의 이사장을 상대로도 사퇴와 폐교를 운운하던 성국언이 유독 잘 따르던 교사가 있었다.

딱히 학생 편을 들던 교사도 아니었지만, 교사와 학생 모두 공평하게 대하던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 교사는 아날로그 한 문구와 종이를 선호했었다.

그 영향을 받은 건지 성국언도 종이를 애용했다.

‘……그렇게 일찍 가실 줄은 몰랐는데.’

교사의 부고가 들린 건 성국언이 졸업한 직후였다.

나이는 30대 후반에 평소 건강해 보였던 교사였는데, 사인(死因)은 병사라고 했다.

교사는 가족이 없었고 고인이 생전에 조용히 장례식을 치러 달라는 유지를 남겼기에 주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조문을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성국언은 그걸 어떻게 알고 전무영을 비롯한 가까운 이들을 몇 명 모아 조문을 갔다.

‘장례식장에서 상주를 봤을 때 깜짝 놀랐었지.’

조문을 간 성국언 일행은 크게 놀랐다.

상주가 동료 교사 중 하나였던 용제건이었으니까.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성국언은 장례식장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나 내내 눈에 비통함과 함께 사나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에 반해 상주를 맡은 용제건은 태연해 보였다.

오히려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온 게 신기하고 좋은지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성국언이 장례식장 밖으로 용제건을 불러내 폭발했다.

―왜 당신이 상주입니까?

―가족이 맡을 수 없으니까 내가 상주를 한 건데.

―상주는 고인의 죽음을 가장 깊게 애도하는 이가 하는 겁니다. 유희 거리로 삼아서 지켜보는 진족이 아니라!

성국언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는데, 그에 반해 용제건은 여유롭게 웃었다.

둘의 기백에 눌려 동행한 이들은 말릴 생각을 못 하고 그 상황을 계속 지켜봤다.

―내가 왜 그 죽음을 유희로 삼아서 지켜봤다고 생각한 거지?

―당신은 용왕신의 여의주에서 화한 진족이야. 당신의 근원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여의보주(如意寶珠)’였지.

―잘 아네. 숨기지도 않았지만.

―인간의 세계에서 여의보주의 전능함이 사라졌다고 해도, 병 정도는 치료할 수 있었을 거 아니야! 그런데 선생님이 죽는 걸 지켜보다가 상주를 한다고?

어느 사이엔가 성국언은 존댓말도 안 쓰고 있었다.

용제건은 그 사실에 개의치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용왕신이 허락한다면 여의보주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겠지. 하지만 굳이 쓰지 않았어.

―그렇다면 왜……!

―여의보주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야. 본인이 원하지 않는 소원은 안 돼.

그 말에 성국언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용제건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성국언도 그걸 알았다.

그래도 성국언은 용제건을 용서하지 못했다.

성국언의 눈에는 저 과정이 진족이 인간의 자살을 방조한 것처럼 보인 것 같았다.

‘그날 용제건 선생님이 거짓말을 한 것 같진 않아. 하지만 모든 것을 말하는 것 같지도 않았어. 교묘하게 어떤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고인과 접점이 없던 전무영은 냉정하게 그날의 상황을 지켜봤기에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자신의 그러한 생각을 성국언에게 전하지는 못했다.

괜히 성국언의 상처를 헤집는 꼴이 되는 것 같았으니까.

지이익…….

전무영의 회상은 파쇄기에 종이가 잘게 갈리는 소리에 중단되었다.

어느 사이엔가 모든 보고서를 확인한 성국언이 서류를 파쇄하고 있었다.

“그 실종된 초등학교 교사의 행방은 찾았나?”

“찾지 못했습니다. 3일간 무단결근을 하는 동안 집에 있던 것으로 파악했습니다만, 4일째에 사라졌습니다.”

“흠…….”

성국언은 조각 난 종잇조각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성국언의 임기가 시작된 직후 광일동 초등학교에 얽힌 어느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었다.

어느 초등학생이 성국언에게 보낸 투서를 시작으로 눈덩이 굴러가듯 사건이 커져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으나, 결국 가해자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대중에게 잊힌 사건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뒤늦게 그 가해자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사건과 이유로 사고를 당하거나 감옥에 가거나 실종되었다.

최후에 남은 이 교사도 끝내 실종되고 말았다.

‘진족이나 프로 플레이어 팀이 개입한 거다. 아마 전자겠지.’

프로 플레이어 팀이 국내에서 이 정도로 은밀하고 교묘하게 공무원 다수를 처리하기 위해선 한국을 잘 이해하면서도 힘이 있어야 했다.

그럴 만한 곳은 세 군데 정도였다.

첫째는 염방열의 붉은 사자.

둘째는 권제인의 영원의 호수.

마지막으로 이계 공략을 거의 하지 않아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송만석의 한강 싸이클링 팀.

그러나 셋 중 움직일 동기가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래서 전무영과 성국언은 배후에 진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시기에 전학 온 아이가 신경 쓰인다. 네 능력을 꿰뚫어 봤다고 했지.”

“네.”

“그런데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고?”

“네, 같은 반 아이들은 아직도 폭언을 뱉고 있습니다. 임시 담임으로 온 이가 제대로 된 인물이라 교정이 될 것 같긴 합니다만…….”

전무영은 최근에 다른 반에서 만난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고도 언급했다.

따돌림당하는 아이에 관해 추가 설명을 들은 성국언이 불쑥 말했다.

“그 아이와 만나 보고 싶다.”

초등학교 잠입을 명령하더니, 이제는 초등학생과 만날 계획을 세우란다.

전무영의 자괴감은 점점 커졌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하핫! 조금만 더 참아라. 이제 곧 그 비밀이 밝혀질 것 같으니까.”

전무영의 표정이 죽었으나 성국언의 호쾌한 웃음소리는 커져만 갔다.

“어떤 아이인지는 직접 보면 안다. 그 아이 건은 내가 맡지!”

*    *    *

초등학생 버전의 황지호에게 국회의원 성국언이 접촉했다고?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불필요한 일을 할 리가 없긴 했지만, 왜 굳이 저놈을 만나려 드는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전무영의 은신 스킬을 몇 번 꿰뚫어 봐서 그런 것 같은데? 은신 스킬을 파훼하는 건 쉬웠지만, 광림으로 추정되는 그 능력은 좀 어렵더군.”

“왜 그걸 티를 내. 모르는 척하지.”

“네가 광림으로 사용하는 그 능력의 파훼법을 전무영을 대상으로 연습하고 있었으니까.”

왜 그런 쓸데없는 연습을……!

어차피 전무영의 ‘그림자 없는 시간’이 쉽게 깨질 리가 없는데.

“전무영이 이 모습을 한 나의 주소지를 캐더군. 아마 우연을 가장해 집 근처에서 만날 생각인 것 같은데……. 일단 가짜 부모 역을 맡은 부하를 그 주소지에 대기 시켜 둔 상태다. 이 몸은 현재 친척 집에 놀러 가 자리를 비운 상태라는 설정이지.”

“성국언 선배님과 마주치지 않을 생각이야?”

“당분간은.”

그래서 굳이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있었던 건가?

아니, 그래도 꼭 저래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을 또 읽었는지 황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다른 분신들은 모두 바쁜 상태라서 말이다. 뭐, 모든 분신들의 나이대는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으니 상관은 없다만, 그건 그거대로 이능파를 소모한다.”

이능파 절약을 위해서 저런 건가?

황지호가 바쁘긴 바쁜 모양이다.

그렇다면 고등학생 분신도 어딘가에서 일하는 중인 모양이다.

뭘 하는지는 별로 안 궁금해서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럼 TC 연구소 건은 도원우를 포함해 우선 지켜보는 것으로 하지. 무슨 일이 있다면 바로 알려 주마.”

황지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TC 연구소와 ‘상위 존재 인공 강림 프로젝트’.

체스 판 위에 올라온 새로운 피스를 고려해 다시 수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

*    *    *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

오늘은 권레나의 재시험이 있는 날이다.

1학년 0반 일동은 말은 안 했지만 전원 긴장한 상태였다.

다들 걱정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커 보였으나 김유리가 사전에 ‘너무 격하게 응원하면 오히려 레나가 긴장할 수도 있어!’라고 좋게 말해 뒀기에 폭주하는 인물은 없었다.

목우람은 다른 방향으로 폭주하고 있긴 했다.

“아, 그럼 우람이는 탁거산 선생님한테 고용된 거야?”

“네, 그렇습니다. 부반장의 빵셔틀의 흡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미행한 적이 있는데, 탁거산 선생님께서 제가 있는 걸 눈치채셨더군요.”

“나도 눈치 못 챘는데 도인…… 아니, 스승님은 저 새끼가 숨어 있는 거 바로 알더라.”

“뭐? 저놈이 눈치 못 챘다고? 그냥 호구인 줄 알았는데 재주가 있…….”

“대석아! 대놓고 호구라고 하지 마!”

탁거산은 목우람의 사정을 듣고선 제자의 일탈을 방지하는 데에 쓸 만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방윤섭의 흡연, 땡땡이 등 각종 탈선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자신에게 알리는 대가로 빵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목우람은 권레나 재시험 건으로 불안한 마음을 해소할 겸, 부업을 할 겸 방윤섭을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이미 목우람은 몇 번 자잘한 탈선행위를 신고해 빵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방윤섭은 주수혁과 맹효돈이 감시하고 있는 데도 아직도 저러고 다닌 건가.’

어떤 의미로 방윤섭도 대단한 놈이었다.

이제 목우람이 있으니 더더욱 탈선행위가 어려워졌을 텐데,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우람이가 어제 탁거산 선생님께 받은 빵 나눠 줬어. 밤빵 맛있더라.”

“다행입니다! 레나……의 입에 맞아서.”

“응, 근로 알바도 다시 시작하고 윤섭이 쫓아다니느라 바빴을 텐데 공부도 봐주고, 빵도 나눠 주고…… 정말 고마워.”

목우람은 그날 이후로 정말로 ‘레나 님’이라는 말을 쓰는 걸 자제하는 중이었다.

권레나도 목우람의 변화에 기뻐하고 있었고 호칭 변화를 계기로 더 친해진 듯했다.

‘이제 목우람이 권레나의 비밀을 알았다는 것도 전해야 하는데.’

목우람이 권레나가 진정하면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했다.

재시험 직전에 또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럴 틈이 없었다.

‘재시험이 끝나면 독고미로의 플레이리스트 촬영장 초대 건도 이야기해야지.’

그리고 다음 날.

권레나는 무사히 재시험을 통과했다.

재시험 통과를 기념해 간식을 사 들고 아침 일찍 등교하려 할 때였다.

“나 좀 보자.”

“수상한 부반장아, 시간 좀 내라.”

2학년 0반 학급 임원 콤비, 금찬솔과 왕찬솔이 나를 호출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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