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44화 (343/925)

56. 오류 (1)

한밤중, 황명호 대저택.

조명이 꺼진 복도 사이로 누군가가 기척을 죽이고 이동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향하는 곳은 대저택에 묵은 호족의 은인이 있는 방이었다.

이윽고 조의신의 방문 앞에 도달한 이가 긴장한 기색으로 주변을 살피다 숨을 가다듬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야심한 시각에 조의신을 찾은 자는 김신록이었다.

‘황호 님께서는 아무리 늦은 시각이라도 분신 하나를 깨워 두고 계시지만, 지금은 토족의 수장과 이야기하는 중이니 괜찮겠지.’

조의신이 김신록에게 두 번째 리플레이를 사용한 후, 김신록은 조의신과 1 대 1로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리플레이를 사용하고 시간이 그럭저럭 지나 몸 상태도 회복되었으나 여전히 황호와 적호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김신록은 조의신이 저택에서 머무는 지금을 기회로 여겼다.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리플레이 건은 포기한 척, 잊은 척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오히려 방해를 받아. 낮에는 황호 님과 망할 용이 방해하고, 밤에는 적호 님이 보고 계시니까 힘들어. 등잔 밑이 어두운 법, 얘기를 나눈다면 지금이 좋겠지.’

조의신이 리플레이를 사용한 순간 본 꿈.

그 안에서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 중 조의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또 가능하면 자신에게 리플레이를 한 번 더 써 주었으면 했다.

물론 이걸 오늘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조의신 군은 신수와 함께 잠들었겠지? 조의신 군 앞이라 신수가 대놓고 이를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견제를 할 거다. 또 오늘은 이미 늦은 시각이고, 그가 1주기를 치른 지 얼마 안 됐어. 오늘 리플레이를 사용하는 건 어렵겠지. 약속만 잡아야겠군.’

김신록이 생각을 정리하고 노크를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그러나 김신록의 손이 문의 표면에 닿기 전, 저릿한 예기가 느껴졌다.

김신록은 저도 모르게 손을 멈추고 경악했다.

김신록에게 예기를 날린 존재는 김신록이 세운 계획에서는 상정하지 않은 존재였다.

“백호 님…….”

예기의 주인은 백호였다.

백호에게 무(武)를 배운 제자로서 굳이 등을 돌려 백호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김신록은 스승의 기운과 감정을 그럭저럭 헤아릴 수 있었다.

김신록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필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호족의 은인에게 장난을 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잠시 들른 것뿐입니다.”

“…….”

백호는 김신록의 변명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초조해진 김신록이 사죄의 말과 함께 부탁했다.

“백호 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황호 님이나 적호 님께는 말씀하지 말아 주십…….”

“늦었다.”

백호의 짧은 말이 끝난 직후, 복도의 조명이 일제히 켜졌다.

김신록은 백호가 말한 ‘늦었다’라는 말을 이해하고 속으로 혀를 찼다.

곧 은은한 조명 사이로 고등학생 모습을 한 황호가 걸어왔다.

“다들 여기에서 뭣들 하는 거냐. 어린 것들을 재우느라 얼마나 수고를 들였는데, 다 큰 것들이 말썽이구나.”

“황호 님…….”

황호는 김신록이 서 있는 방문을 흘끗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제 얕은 꾀가 순식간에 전부 간파되었음을 깨달은 김신록도 한숨을 쉬고 싶어졌다.

“여전히 너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로군.”

“……죄송합니다.”

“하하하! 예전과 다르게 금방 사과를 하게 되었구나.”

김신록이 바로 사과를 하니 황호는 유쾌하게 웃어 댔다.

그 태도를 본 김신록은 이대로 큰 질책 없이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으나 이는 금세 깨졌다.

“아들아…… 여기에서 뭐 하는 거냐.”

적호의 질책에 김신록은 제 잠입이 완전히 망했음을 깨달았다.

이제 당분간 조의신에게 접근하는 건 불가능해지리라.

“네게 잔소리를 하는 건 적호에게 맡기마.”

“…….”

적호의 잔소리는 길게 이어졌으나 황호와 백호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황망한 얼굴로 실컷 잔소리를 듣고 나니, 적호의 화살이 이번엔 황호로 향했다.

“황호, 당신은 뭘 했길래 얼굴이 그 모양입니까? 옥토연과 한 이야기가 당신의 심력을 그만큼이나 소모하게 했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윤회의 굴레’에 관해선 우리보다 토족이 해박하니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망할 달토끼가 내 속을 긁은 건 사실이나 그뿐만이 아니다.”

조도가 그리 높지 않은 조명 탓인지 황호의 얼굴은 다소 어두워 보였다.

“수석 주술사가 관리 중인 가든에 좀 문제가 생긴 것 같더군. 수석 주술사가 알아서 해결하겠다 하지만 이 몸도 손을 내밀 생각이다.”

현재 수석 주술사가 관리하는 가든에는 웅족 하나가 갇혀 있었다.

희귀도가 높은 이계라 시간과 공간의 축이 왜곡되어 있어 관리하기 까다로웠는데, 문제가 생긴 듯했다.

‘그 가든에는 웅족에게 가족을 살해당한 호족이 있었다고 했지…….’

황호는 웅족과 관련된 화제를 적호와 김신록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꺼냈다.

그만큼 황호가 그들을 신뢰한다는 증거였다.

그걸 알고 있어도 수석 주술사의 가든이라는 말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웅족이 연상되어 김신록과 적호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그러고 보니 말하는 걸 잊었군. 적호, ‘성헌’에 관한 조사는 이제 하지 않아도 좋다.”

“네? 아직 단서를 잡지 못했습니다만…….”

황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를 찾았다. 알아내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묻는 게 좋겠지.”

*    *    *

황명호 대저택에서 맞는 아침.

오늘도 꿈 없이 잘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 몸을 일으키려 하니 아직 졸린 듯한 올무가 품 안에서 버둥거리는 게 느껴져 움직임을 멈췄다.

천사가 아직 더 자고 싶어 한다면 맞춰 줘야지.

나는 올무의 아침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품 안에 올무를 안은 채로 밀린 디바이스 메시지나 확인하기로 했다.

노친네가 보낸 조문 관련 메시지부터 우리 반 아이들, 선배들이 보낸 메시지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대충 봤을 때, 답장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메시지를 제외하고 하나하나 읽고 답변을 날렸다.

대부분이 안부를 묻는 메시지라 멍한 머리로도 그럴싸한 답변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도통 감이 안 잡히는 것도 있었다.

금찬솔과 왕찬솔 선배놈들이 보낸 메시지가 그랬다.

[금찬솔] 수상한 후배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주말입니다!

[왕찬솔] 수상한 부반장님, 잘 주무셨습니까?

[금찬솔] 저희 자리는 아직 잘 있죠?

[왕찬솔] 주말 사이에 갑자기 등교하겠다고 하는 후배님들은 안 계시죠?

지금 이 선배놈들이 뭐라는 거야.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런 건지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아 왜 그러나 싶었다.

조금 정신을 가다듬으니 답이 떠올랐다.

‘플레이리스트 파이널 라운드 생방송 방청권 얘기구나.’

독고미로가 플레이리스트 마지막 날 방송에 우리 반 아이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우리 반에 등교하지 않는 아이들이 다섯이 있는 덕에 방청권 여유가 생겨 금찬솔과 왕찬솔이 이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눈치를 보니 2학년 0반 선배놈들은 다 플레이리스트 방영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방청권 수가 한정되어 있으니 많이 긴장한 것 같다.

[나] 네, 등교한다고 연락 온 애는 없어요.

금찬솔과 왕찬솔의 답변이 한참 없었다.

무반응이었지만, 어쩐지 화면 너머에서 환호를 하며 굴러다닐 선배놈들이 떠올랐다.

[금찬솔] 후배님, 감사합니다!

[왕찬솔] 일단 최후의 5인 후보 명단을 정해 왔습니다!

2학년 0반 선배놈들은 또 배틀로얄 따위를 해서 순위를 정했나 보다.

선배놈들이 보낸 명단을 확인해 보니 가장 윗줄에는 제갈재걸의 이름이 보였다.

[0순위] 우리의 영구 담임 제갈 쌤!

‘그렇게 치열하게 자리싸움을 하고도 0순위로 제갈재걸을 넣는구나.’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제갈재걸 같은 선생님이 담임이면 어쩔 수 없긴 하다.

우리 반 아이들도 반 행사에는 항상 함근형의 존재를 잊지 않는다.

명단을 계속 확인했다.

[1순위] 무적의 반장 금찬솔

[2순위] 좀 많이 모자란 부반장 왕찬솔

[3순위] 가람 갑

반장, 부반장 콤비 금찬솔과 왕찬솔에 이어 방청권을 차지한 건 연극부 에이스 연가람이었나 보다.

다섯 번째로 자리를 차지한 인물을 확인했다.

[4순위] 홈마 하면서 우리 미로 사진 찍어 주는 건 고마운데 제갈 쌤이 걱정하니까 등교 좀 자주 해라

……왜 4순위에 있는 사람만 문장으로 되어 있지?

0반 선배놈들이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이 인물의 정체는 짐작이 갔다.

중간고사를 치를 때 우리 반 교실에 찾아온 적이 있어서 얼굴을 본 적도 있었다.

‘독고미로의 홈마가 2학년 0반이었구나. 2학년 0반에도 등교 잘 안 하는 학생이 있었나 보네.’

독고미로의 홈마가 은광고 2학년 학생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황지호는 자세한 신상을 알고 있는 것 같긴 했는데, ‘정 궁금하면 말해 줄 수도 있긴 하다.’라고 깐죽거려서 묻지는 않았다.

독고미로의 사진이 올라오는 시간대를 보면 수업 중일 때도 있어 수업은 대체 어떻게 듣나 했는데 그냥 등교를 안 하는 2학년 0반 선배놈이었나 보다.

‘뭐,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도 황지호가 조사했을 때 문제가 없었다면 괜찮겠지.’

그리고 0반 선배놈들이 질척이는 원인이 된 독고미로로부터 온 메시지도 있었다.

[독고미로] 래훈이 오빠가 우리 반에 불교 믿는 사람 있냐는데?

……여래훈은 저번에 권레나보고 불교를 믿네 마네 했는데 아직도 저러나 보다.

‘그렇게 묻는 원인은 내가 예전에 권레나의 리본에 내린 축복 탓이겠지.’

권레나의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 들어 있을 리본을 떠올렸다.

플마고 속 권레나가 악역으로 등장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여래훈의 불필요한 관심을 사더라도 그 리본을 가지고 다녔으면 했다.

어떻게 그 건을 얼버무릴지 생각하다 보니 마침내 내 품의 천사가 잠에서 깨어나 애교를 부렸다.

완벽한 아침의 시작이었다.

*    *    *

은휘관 앞으로 에어 셔틀을 타고 이동하는 도중.

황지호가 은호의 이야기를 했다.

지혜로운 은호.

차를 좋아하는 은호.

의형인 백호를 잘 따르는 은호.

그 모습이 천성헌과 겹쳐졌다.

‘혹시 성헌이는 의형처럼 따를 존재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나를 잘 따랐나?’

그 세계에 있던 천성헌의 이복형은 쓰레기였고, 배경 탓에 사람을 사귀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대학에 와서 사귄 사람들은 학력 위조 루머로 인해 다 떠나갔다.

그 결과 곁에 남은 건 나 하나 정도였다.

그래서 천성헌이 더 나를 잘 따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천은하는?”

나는 이 세계에서의 천성헌의 이름을 댔다.

잠든 은호를 만날 때 천성헌을 데려가야 한다고 말하자 황지호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호가 적연으로 모습을 감추고 데리고 오는 중일 거다. 아, 막 정문을 통과했군.”

황지호가 디바이스를 확인하며 답했다.

적호가 적연을 쓰면 눈에 띄지 않겠지만, 천성헌을 빼 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선 능력, 심성 뭐 하나 부족하지 않은 우수하고 사려 깊은 이복형이 그를 지키고 있으니까.

“천동하 선배님은 잘 따돌렸어?”

“천리안에 대비해 눈을 속일 준비는 해 뒀다. 그에게 오늘 과중한 업무도 부여했으니 괜찮을 거다.”

천리안에 대비해?

마치 천리안에만 대비한다는 말 같아 바로 되물었다.

“천동하 선배님의 광림은 대비했어?”

“천리안 스킬을 강화하는 광림으로 알고 있다. 대책은 세웠…… 조의신, 그 표정을 보니 뭔가 잘못됐나 보군.”

은광고의 학생은 전투 스킬을 학교 측에 공개하는 게 의무다.

그러나 광림을 비롯한 그 외의 정보의 공개는 의무에 해당되지 않는다.

의무는커녕 플레이어 개인 정보 보호법에 의해 철저히 보호된다.

그러니 천동하의 광림을 고작 천리안 스킬의 강화판 정도로 생각했을 거다.

‘……황지호가 천동하의 광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다니! 내 집중력이 그렇게 엉망이었나.’

천동하의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을 품은 눈이다.

천리안 스킬이 사용이 금지되는 이계에서도 약간의 리스크를 지면 그 눈은 발동한다.

은광구를 성가시게 관찰하는 마족의 ‘눈’보다 그 성능이 월등하게 뛰어난, 차원이 다른 눈이다.

어지간한 위장으로는 그 눈을 속일 수 없을 것이다.

“데리고 왔습니다.”

제지할 틈도 없이 붉은 안개 사이로 적호와 천성헌이 나타났다.

천성헌은 붉은 안개에 감싸인 상태로 허공에 떠 있었다.

그 모습이 나타나기가 무섭게 황지호가 중얼거렸다.

“천동하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은휘관의 결계를 꿰뚫어 봤나? 천리안 스킬과는 비교도 안 되는 우수한 눈을 갖고 있었나 보군.”

황지호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누군가가 은휘관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천동하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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