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53화 (352/925)

57. 무대의 위 (4)

황지호가 말한 ‘혜택’이라는 말에 떠오른 건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였다.

게임을 클리어한 후 초상우주의 심사를 통과한 플레이어가 얻은 능력이니 일종의 혜택이라 볼 수 있다.

그게 사실이긴 하나 황지호가 저걸 어떻게 안 걸까.

‘은호가 얘기했겠지.’

답은 금방 나왔다.

내가 3일 정도 잠들어 있었다 하니 은호와 황호가 대화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 거다.

그리고 황지호와 은호의 관계를 고려하면 말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어디까지 말했을지 짐작해 보다가 문득 어떤 사실이 실감이 났다.

‘정말 여기에 온 거구나.’

여러 가지 일이 한 번에 터져서 그런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피부로 직접 느끼진 못했다.

플마고를 알고 있는 존재가 이 세계로 왔고, 그게 은호라는 게 새삼 실감 났다.

“……뭐,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할까.”

눈을 반짝이던 노친네가 갑작스레 태도를 바꿨다.

왜 저러나 했더니 시선 끝에 용제건이 있었다.

이쪽을 보고 웃는 게 아직도 듣고 있었나 보다.

용제건은 웃음 반, 아쉬움 반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지금 말해도 상관없는데.”

“용제건, 너 때문이다.”

“하하하, 난 지금 선생님인데 그렇게 말해도 돼?”

“여기에 있는 이들은 별로 신경 안 쓸 거다. 봐라.”

실제로 다른 일행들은 괴짜 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소지한 아이템 카드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느라 바빴고, 2학년 0반 선배놈들은 제갈재걸에게 변명을 하기 바빴다.

2학년 0반 선배놈들은 무기 아이템 외에도 공격형 소모 아이템이 많았다.

아이템 카드 검수를 맡은 플레이어 경비가 ‘중무장 상태군요……. 이계 공략을 하다 오셨습니까? 은광고는 실습을 자주 한다고 들었는데 고생이 많네요.’라고 순수하게 감탄하며 코멘트할 정도였다.

물론 오늘 2학년 0반은 이계 공략을 한 적이 없었고, 그 사실을 잘 아는 제갈재걸은 평소에도 그런 아이템을 들고 다니는지 걱정스럽게 물었다.

“살다 보면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잖아요? 플레이어로서 불상사에 대비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의 사태에서 상대보다 레벨이 달리면 템빨이라도 세워야죠.”

“제갈재걸 선생님을 노리는 악의 집단이 쳐들어오면 어떡해욧!”

“맞아욧!”

저런 말을 한 게 2학년 0반이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용의주도한 악동들이 저런 아이템을 상시 구비하고 다니는 건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었으나 든든하기도 했다.

‘악의 집단이라니. 금찬왕찬은 그때 일을 아직 기억하고, 대비하고 있나 보네.’

올해 봄, 제갈재걸을 노린 최편득의 추종자 집단의 음모가 있었다.

제갈재걸은 악의 집단이라는 표현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그 악의 집단은 실재했고 도서관 지하에서 격퇴되었다.

제갈재걸이 가진 능력을 고려하면 그 외에도 또 다른 악의 집단이 노리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저번 최편득의 추종자 집단은 제갈재걸이 은광고의 교무부장이라는 이유로 노렸어. 하지만, 만약 제갈재걸이 또 노려진다면 그 이유는 아마…….’

제갈재걸의 희귀 스킬, ‘언령’.

언어를 통해 힘을 발휘하는 그 힘은 마족(魔族)의 약점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지력을 노리는 마족(魔族)의 입장에서 제갈재걸의 능력은 눈엣가시일 것이다.

그리고 제갈재걸이 노려질 만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홍규빈의 집이 그랬어. 제갈재걸은 이능술사가 되겠다는 홍규빈의 꿈을 도왔고…… 그 결과 제갈재걸은 많은 걸 잃었지.

제갈재걸은 홍규빈이 남궁 그룹을 나오던 과정에 개입했다.

그 결과 제갈재걸이 많은 걸 잃었다고 하나 현재 그는 많은 존경을 받는 플레이어이자 한국 최고 명문고의 교무부장이다.

그걸 남궁 그룹에서 좋게 볼 것 같진 않았다.

“아이템을 상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은데. 나도 평소에 뭔가 더 들고 다닐까.”

용제건이 그렇게 말해도 그가 아이템 카드를 잔뜩 챙기고 다니는 모습은 상상이 안 갔다.

플레이어블 캐릭터 시절, 용제건의 소지 아이템은 하나밖에 없었다.

희귀도가 UR+급에 달하는 그 아이템의 이름은 ‘용왕신의 비늘’.

용제건이 인간계로 갈 때, 용왕신은 자신의 비늘을 하나 떼어 그에게 건넸다.

용왕신의 역린에 가까운 위치에서 떼어 낸 그 비늘은 용왕신의 신기가 담겨 있어, 일정 조건을 충족시키면 용왕신을 인간계에 강림시킬 수 있다고 한다.

‘흑막은 ‘용왕신의 비늘’의 존재를 알았던 걸까.’

콘크리트층 붕괴 사건 당시 눈이 내리는 은광고 안.

용제건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였고, 플레이어인 나는 그의 소지품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했다.

나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당연히 비장의 아이템인 ‘용왕신의 비늘’을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이 아이템은 용제건이 죽는 순간까지 사용할 수 없었다.

사용을 시도할 때마다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지긋지긋하게 떴다.

‘왜 쓰지도 못 하는 UR+급 아이템을 만들고 소지품 창에 넣었냐고 원성이 자자했었지.’

나도 그 원성을 쏟은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어차피 용제건은 소지한 아이템이 없으니 단축키 칸에 ‘용왕신의 비늘’ 항목을 등록해 뒀다.

그러나 수없이 반복한 리플레이 속에서, ‘용왕신의 비늘’이 사용 가능한 상태로 전환되는 순간은 오지 않았다.

‘용제건이 용왕신으로부터 비늘을 받은 건 유명한 일화야. 그날 그 시간에 용제건이 학교에 있으리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니 흑막이 손을 썼겠지.’

보안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한 후, 황지호의 말에 대충 선대답을 하며 걷고 있자니 저편이 떠들썩했다.

복도 저편을 보니 독고미로가 빠른 걸음으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독고미로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이쪽으로 걸어올 때마다 화려한 색의 머리카락이 조명을 받아 크게 흔들리는 게 눈에 띄었다.

“얘들아, 어서 와. 갑자기 인터뷰 얘기 꺼내서 미안해.”

“아냐, 초대해 줘서 고마워! 아, 오늘은 머리 풀고 찍을 거야?”

“머리 푼 것도 잘 어울린다!”

독고미로가 길게 미안해할 틈을 안 주고 김유리와 권레나가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독고미로는 아직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할지 정하지 못한 모양이었는데, 그걸 들은 아이들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이것저것 시도해 보자며 신나 했다.

“미로다……!”

“와, 실물이 더 쩐다.”

독고미로를 보고 달려드는 게 아닌가 싶어 경계했던 2학년 0반 선배놈들은 의외로 얌전했다.

선배놈들은 독고미로를 두고 안절부절못했는데, 제갈재걸만 한 팬심은 없어도 실물을 본 횟수는 제갈재걸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라 괜히 낯을 가리는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 미로의 홈마 소환!”

“슬슬 나오셈!”

금찬솔과 왕찬솔이 민망함에 못 이겼는지 공연히 홈마를 불러 댔다.

그런데 소환을 외친다고 해서 사람이 그냥 나올 리가 없었다.

독고미로는 곤란한 표정으로 금찬왕찬을 보다가 애매한 얼굴로 창 너머를 봤다.

아마 카메라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으니, 홈마의 위치도 어렵지 않게 찾아낸 모양이었다.

역시나 독고미로가 본 쪽에 저번에 한 번 본 그 2학년 0반 소속 홈마가 머리와 카메라를 든 손을 빼꼼 내밀고 있는 게 보였다.

“저기 있네!”

“잡으러 가자!”

홈마 선배가 놀라 도망치려 했으나 금찬왕찬 콤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독고미로의 홈마 소환 의식이 물리적으로 완료되었다.

“……너무 가까우면 사진 찍기 힘든데.”

독고미로의 홈마는 금찬솔과 왕찬솔의 손을 쳐 내며 불만을 표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로야! 안녕! 오늘도 응원할게!”

홈마의 불만은 독고미로의 싹싹한 인사와 함께 날아간 듯했다.

독고미로의 홈마가 카메라로 입 근처를 가리며 감격에 젖어 있을 때, 금찬솔이 홈마에게 요구했다.

“님, 미로랑 제갈 쌤 투샷 좀 찍어 주셈.”

“응?”

2학년 0반 선배놈들은 독고미로와 사진을 찍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이 어긋났다.

갑작스럽게 지목당한 제갈재걸이 놀란 얼굴을 했으나, 금찬왕찬은 막무가내였다.

“제갈 쌤하고 미로? 갑자기 왜?”

“왜긴, 이 둘이 같이 있던 적이 거의 없잖아. 그러니까 찍어 둬야지!”

“좋은 거 더하기 더 좋은 거는 아주 더 좋은 거잖아!”

금찬솔과 왕찬솔은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가.

대충 말하는 걸 해석하면 독고미로가 좋은 거, 제갈재걸은 더 좋은 거인 모양이다.

금찬솔과 왕찬솔의 논리에 몇천 년을 산 진족들도 벙쪄 있었는데, 제갈재걸 처돌이들의 모임인 2학년 0반 소속 아니랄까 봐 독고미로의 홈마는 빠르게 납득했다.

“맞는 말이네. 지금 찍어야겠다……!”

독고미로와 제갈재걸이 얼떨결에 둘이 서서 사진을 찍는 사이, 카메라 몇 대와 함께 스태프들이 나타났다.

이동 중에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촬영하고 싶은 듯했다.

“갑작스럽게 미안해요. 생방송 중간중간에 인터뷰를 내보낼 예정이라 편집할 시간이 많이 없어서 빨리 부탁드릴게요.”

“괜찮습니다. 대신 미로 분량 팍팍 뽑아 주세요!”

“이거 뒤에 해야 임팩트가 있을 것 같은데요! 미로 순서는 좀 뒤로 해 주시면 안 되나요?”

“하하하…… 경연 큐시트는 이미 다 나와서요…….”

“……작가님을 곤란하게 하지 말렴.”

금찬솔과 왕찬솔이 제갈재걸의 감독하에 인터뷰를 시작했다.

두 선배놈들은 척 보기엔 말을 막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쨌든 기승전독고미로로 결론을 내리며 같은 학교 학생이자 팬으로서 본 독고미로의 매력을 마구 어필하고 있었다.

팬질도 해 본 놈이 하는 거라고 제갈재걸 광팬다운 말솜씨였다.

작가가 건넨 질문지를 보던 김유리는 자신도 저만큼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듯했다.

김유리를 지켜보던 목우람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건에 관해서 제게 물으시는 걸 깜빡하신 것 같습니다. 정 긴장되시면 제가 대신해서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선배님들이 분량을 충분히 뽑으셔서 어차피 나는 별로 안 나갈 것 같긴 한데…….”

김유리가 말꼬리를 흐리고 권레나가 말을 돌렸다.

“우람이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하자! 아, 우람아. 방청객들한테 협찬사 음료수 나눠 준다고 하던데 미리 받아 오자.”

“……나도 갈게.”

“네? 아, 같이 가죠!”

권레나, 민그린, 목우람 셋이 협찬사 로고가 보이는 부스 쪽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저 새끼한테는 인터뷰 건을 안 물어봤네.”

“우람이는 안 그래도 나쁜 사람들이 많이 꼬이잖아요. TV에 나오면 전국구 단위로 나쁜 사람들이 많이 몰릴지도 몰라요.”

“그건 그렇네.”

맹효돈과 사월세음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그에 동의했다.

사기꾼은 호구를 알아본다.

화면 너머로 그 기운이 전해질지도 모르니 반 아이들이 경계하여 목우람을 카메라에서 멀리한 것 같다.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우리 반 아이들은 사려 깊었다.

김유리가 인터뷰를 시작할 때쯤, 누군가가 우리 쪽으로 왔다.

“오, 아직 인터뷰 중이네.”

“어? 래훈이 오빠, 인터뷰 끝났어요?”

내장산의 성자, 플레이리스트 우승 후보 여래훈이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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