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55화 (354/925)

57. 무대의 위 (6)

권레나와 호적상 자매지간인 이여름.

지난 추석, 이여름을 만난 직후 권레나의 태도가 묘했기에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 그녀에게는 별다른 문제점이 없었다.

권레나를 괴롭힌 양부모의 친딸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르게 산 사람이었다.

‘남궁물산, 그것도 이계 산업 1사업부 소속이라는 점만 빼면…….’

그러나 남궁 그룹 상층부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막 입사한 직원까지 흑막과 연루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남궁 그룹 전체도 아닌 남궁물산 소속의 정직원 수만 따져도 만 오천 명이 훌쩍 넘어가는 데다가 이계 산업 시장의 확장으로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는 중이니까.

“아는 분이야?”

“응, 우리 언니야!”

“아, 레나의 무기 아이템을 사 줬다는 그 언니 말씀이시죠?”

권레나의 언니란 말에 반 아이들이 호기심과 반가움에 찬 얼굴로 이여름 쪽을 봤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이여름은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권레나의 존재를 알고 손을 작게 흔들었다.

그러나 이여름이 바로 이쪽으로 오지는 못했다.

상사한테 잠시 동생과 그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와도 되냐고 묻는 것 같았는데, 상사는 이여름의 말에 난색을 표하는 것 같았다.

“인사도 안 시켜 주는 거야? 저기 개 빡빡하네.”

“근무 시간도 아닌데 왜 저렇게까지 굼.”

“단체 행동 중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2학년 0반 선배놈들이 혀를 차면서 그런 말을 했는데, 다 맞는 말 같았다.

다행히 상사와 이야기가 잘 끝났는지 이여름이 이쪽으로 왔으나 뒤에서 심사가 뒤틀린 표정을 한 이들이 두세 명 보였다.

‘단체 행동 중이라 엄격하게 구는 건 이해가 가. 그래도 저기 분위기는 별로인 것 같네.’

권레나는 미안해하면서도 반가워하며 이여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언니! 지금 얘기해도 괜찮아요?”

“응. 친구들이야?”

“네! 아, 선생님도 같이 왔어요.”

권레나는 빠르게 일행을 소개했다.

이여름은 우리 일행 전원에게 권레나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는 말과 함께 명함을 건넸다.

“혹시 언니는 인터뷰하셨어요?”

“아니, 잠깐 심부름을 하느라…… 사실 그분하고 접점이 없어서 질문을 받아도 곤란했어.”

“어? 같은 부서 소속 아닌가요?”

“같은 부서긴 해도 그분은 외근을 자주 나가셔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어.”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여름의 말을 끊었다.

“……이여름 씨, 아직 인사 안 끝났어요?”

“죄송합니다! 지금 가요. ……그럼 다음에 보자.”

멀어지는 이여름을 두고 권레나가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꾹 참고 보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저렇게 굳이 몰려다닐 필요가 있나?”

“회식이나 야유회 갈 때 누가 자리 비우면 발작하는 상사 있잖아. 그런 놈이 위에 있는 거 아님?”

“흠,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금찬왕찬의 코멘트에 용제건이 한마디 했다.

“여름 씨는 방금까지 따로 행동했던 것 같아. 계속 건물 안에 있던 것 아닐까? 다른 사람과 달리 옷에 찬 기운이 안 묻어났거든.”

“밖에서 인터뷰하는 사이 건물 내부에서 심부름을 했던 것 같군.”

황지호도 한마디 덧붙였는데, 나도 거기에 동의했다.

이여름은 신입 사원인 것도 있고 해서 다소 겉도는 건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 심부름을 하던 중에 만났으면 좀 얘기하기 편했을 텐데.”

“그러게요. 다음엔 더 오래 대화하고 싶어요.”

위화감을 뒤로하고 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배정받은 좌석으로 이동했다.

용제건은 무대를 돌아보며 염준열의 모습을 찾고, 황지호는 한이를 상대로 이야기를 나누다 처웃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나 싶기도 했다.

*    *    *

파이널 라운드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나 무대, 조명, 의상, 장비 교체 등이 필요한 시간은 사전에 촬영한 무대를 보여 주거나 출연자 간의 토크로 채우게 된다.

생방송에서는 새로 작곡가에게서 받은 경연곡과 세 사람의 단체 공연을 선보이고 사전 녹화에서는 원하는 곡을 하나씩 부를 예정이라 한다.

비록 사전 녹화라고 하지만, 방청객이 있는 편이 그림이 좋으니 녹화 과정에 인터뷰에 참가한 이들 전원이 동원되었다.

첫 사전 녹화 무대의 주인공은 여래훈이었다.

“어, 이 곡은……!”

“첫날에 한 프리스타일 랩 배틀 곡을 편곡했나 봐!”

낯선 반주가 들려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으나 가사가 이어지니 여기저기에서 알아듣는 사람이 속출했다.

여래훈이 읊는 내용은 그 랩 배틀의 연장전을 하자는 일종의 도발이었다.

그러자 무대 사이드에 있는 스크린에 여래훈과 프리스타일 랩 배틀을 한 힙합 뮤지션이 심사위원석을 박차고 올라가는 게 비추어졌다.

카메라가 당황하지 않고 따라가는 게 미리 연출된 내용이었던 것 같았다.

무대에 오른 두 래퍼가 마주 보고 약 1분간 치열하게 랩을 주고받았는데 합이 완벽하게 맞았다.

여래훈과 하이파이브를 한 힙합 뮤지션이 환호 속에서 자연스럽게 퇴장하고, 이후 여래훈의 독무대가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여래훈이 무대를 마치고 자신을 응원하러 온 대사와 신도들을 향해 합장 인사를 하고 내려간 후에도 환성이 계속되었다.

화면 너머로는 느낄 수 없던 현장의 박력은 굉장했다.

“와…… 진짜 잘한다.”

“멋진 무대였습니다. 순간 영감이 떠오를 듯 말 듯 했습니다.”

“……우리 미로만큼은 아니야! 아무튼 아님!”

“……배신자들아, 미로를 응원해라!”

“그만하고 자리에 앉으렴!”

2학년 0반 선배놈들이 위기를 느꼈는지 우리보고 뭐라 하긴 했으나 정작 저놈들도 넋을 잃고 여래훈의 무대를 보긴 했다.

“다음 무대는 누구야?”

“레나 언니랑 같은 직장 다니는 분.”

“오, 그럼 미로는 마지막 무대야?”

“사전 녹화는. 방송은 어떤 순서로 될지 모르겠다.”

다음 무대가 준비되는 사이, 무대 위에 있던 소품과 장비가 교체되었다.

무대 아래에서 장비가 오가는 게 보였는데 보안 절차가 까다로웠는지 보안을 담당한 플레이어와 무대 장비 외주 업체가 실랑이를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맹효돈이 다소 뚱한 얼굴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

“효돈아, 왜 그래요?”

“왜? 배고파?”

“아니, 그냥…… 여기 들어올 때 보안 절차 개 까다로운 것 같아서.”

그게 뭐가 문제지?

사월세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의문스러워하는 얼굴로 맹효돈을 봤다.

맹효돈은 주저하다가 말했다.

“……들어가기 어려운 곳은 나가기도 힘들잖아. 그냥, 그랬어.”

“아…….”

사월세음과 맹효돈이 동시에 어두운 얼굴을 했다.

까다로운 보안 절차를 거친 후에야 올 수 있는 무대를 두고 사월세음은 환몽 경매장을, 맹효돈은 파이트 클럽을 연상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술렁였다.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려지는 사람이지.’

흑막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가 벗어난 사월세음과 맹효돈.

이 둘만 있는 게 아니다.

흑막이 노린 게 분명한 용제건, 최편득의 추종자가 제거하려다 실패한 제갈재걸.

‘그리고 남궁 그룹과도 연관이 있는 사람이 많아.’

예전 남궁 그룹은 지력 터미널이 엮인 재개발 건을 두고 은광한빛보육원을 노린 적이 있었다.

그 건으로 우리 반 아이들이 휘말렸다.

남궁 그룹이 노리다 실패한 한이.

봉사 활동을 가다가 휘말린 권레나와 민그린.

이후 은광한빛보육원을 적극적으로 비호한 황명 그룹의 황지호.

‘그리고 아직 흑막과의 관련성은 모르지만, 세 기사의 맹세가 노리는 게 분명한 목우람도 있어.’

이만한 인원이 은광고가 아닌 다른 폐쇄적인 공간에 장시간 모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학교 정식 일정도 아니니 전력도 은광고 외부 행사에 비해 적고, 적습에 관한 대비도 덜 되어 있다.

‘내가 흑막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흑막이 두고자 한 수는 나에 의해 거의 다 막혔다.

흑막이 마지막에 한 짓을 고려하면 내가 막은 수로 체크메이트를 피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은광고는 무사히 지켜내고 있다.

만약 내가 흑막이고, 은광고에 관해 둔 수가 다 막혔다고 치면 슬슬 새로운 수를 고안해 냈을 것이다.

플마고에서는 둘 필요가 없었던 과감한 수를.

‘징조가 없던 것도 아니야.’

머릿속에 송대석과 황지호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연구실 쪽에 갑자기 무슨 일이 있나 봐.

―월궁계도에 뭔가가 관측되었다 한다.

―아직 좌표는 확정되지 않은 듯하지만······ 이 방송국이 포함되어 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옆에 앉은 황지호에게 작게 물었다.

“관측 결과는 아직 안 나왔어?”

“확인해 보지.”

디바이스를 확인한 황지호가 미간을 좁혔다.

“……통신 상태가 좋지 않군. 분신을 통해서 확인해 보마.”

통신이 두절된 상태란 말에 확신했다.

누군가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    *    *

염준열이 대본을 암기하는 동안 사람들이 그를 배려해 자리를 비워 준 탓에 지금 대기실에 염준열은 혼자 있었다.

대본 암기를 마친 염준열이 시계를 확인했다.

벽에 걸린 아날로그 시계를 보니 슬슬 다시 나가서 진행할 시간이 됐는데, 염준열의 매니저 겸 경호를 담당하는 용족이 부르러 오지 않았다.

염준열은 문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누나? 계세요?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나오지 마!”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듣자 염준열은 즉각 문에서 손을 뗐다.

염준열은 괜찮냐고 되묻거나 문을 여는 등의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다른 분들을 부르자!’

그렇게 판단한 염준열이 디바이스로 메시지를 전송하려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방송국에서 디바이스 통신이 차단되었다고?’

보통 사태가 아니라 판단한 염준열이 각오를 굳혔다.

파아아앗!

강렬한 이능파가 부딪치는 파장이 대기실 너머로 퍼졌다.

용족과 대등하게 이능파를 부딪치는 게, 보통 상대가 아닌 것 같았다.

“누나, 가세할게요!”

“준열아, 안 돼! 상대는……!”

그러나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콰콰콰쾅!

문이 부수어지고, 중상을 입어 비틀거리는 용족 뒤로 그림자가 보였다.

동시에 염준열이 부르려 한 홍룡이 자취를 감추었다.

휘이이…….

허무하게 사라진 홍룡을 두고 염준열이 경악했다.

염준열은 이 감각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느끼는 건 용족을 상대할 때 느끼는 감각이었다.

*    *    *

통신이 끊겼다는 걸 파악함과 동시에 인솔자 입장인 용제건과 제갈재걸에게 알렸다.

“통신이 끊겼다고?”

“내부에서는 이어지는 것 같은데. 지금 대부분 스태프는 인이어를 통해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중인 것 같아.”

“그럼 외부와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군요. 근방의 기지국에 문제가 생긴 걸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나가서 확인하는 거긴 한데…….”

비행 스킬을 가진 용제건이 밖에서 확인하고 오는 게 가장 합리적이었지만, 그는 나가기 싫은 눈치였다.

용제건이 실눈을 뜨고 황홀한 표정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번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지호도 희미하게 무언가를 느꼈는지 스튜디오 벽 저편을 보고 있었다.

‘……저쪽에서 이능파가 일렁인 기분이 드는데.’

그때, 준비가 끝난 건지 남궁물산 사원 출연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마이크를 쥔 그는 허옇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고쳐 쥐고 말했다.

“도망가세요, 지금 즉시 스튜디오 밖, 아니, 건물 밖으로 나가요……!”

콰콰쾅!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능파의 감각을 넘어 물리적으로도 진동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곳에서 폭발한 듯했다.

“준열이 대기실 쪽이야.”

용제건이 눈을 크게 뜨고 시안색 눈으로 폭음의 근원지 쪽을 응시했다.

이상 현상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뭐, 뭐야!”

“왜 이러지……?”

반사적으로 무기 아이템 카드를 쥐고 일어난 아이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기 실체화가 안 돼!”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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