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60화 (359/925)

58. 천적 (2)

독고미로는 촬영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걸 인지했다.

갑자기 디바이스가 먹통이 된 점, 메인 MC 최지나가 직접 자신을 데리러 온 점 모두가 이상했다.

‘평소에는 염준열 선배님이 데리러 오시는데…… 녹음이 길어진 걸까?’

최지나와 함께 도착한 스튜디오 안은 어수선했다.

사전 녹화를 마친 여래훈이 석장을 들고 결계를 치고 있었고, 스태프들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1학년 0반 아이 중 몇몇이 보이지 않았다.

반드시 이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소꿉친구도 없었다.

‘한이는 어디에 갔지?’

그나마 남은 아이들도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중인지 궁금했지만 최지나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독고미로의 질문에는 일단 사전 녹화를 마치면 설명해 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무대에 영향을 줄 만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나 보네. 싸움…… 아니, 이계 공략인가?’

독고미로는 싸움질에는 이력이 난 덕에 지금 긴장감 어린 공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전투에 대비하고 있다고 판단한 독고미로는 무대 위에서 마이크 상태를 확인하고 동선을 점검하면서도 복잡히 사고를 회전시켰다.

‘남은 사람들과 자리를 비운 사람의 차이점은 뭐지?’

교사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걸 보고 전투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계 공략에 나선 건가 싶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2학년 0반 학생들이 저 자리에 있었으니까.

‘1학년을 보내고 2학년이 남을 리가 없잖아.’

독고미로는 모르는 척 은광고 학생들 쪽에 손을 흔들어 줬다.

1학년 0반 아이들은 반갑게 손을 흔들고, 2학년 0반 일당은 독고미로의 인사에 기분이 좋아진 듯 잠시 헤벌쭉한 얼굴을 했다.

“미로야, 잘해!”

“파이팅!”

“독고미로 절대 우승해!”

은광고 측 방청석 쪽에서 흐른 응원의 목소리에 이어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박수 소리가 흘렀다.

독고미로는 아직 상황 파악을 다 하지 못했지만, 지금 여기에서 박수를 보낸 사람들이나 이계 공략을 나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신했다.

‘굳이 이계 공략에 대해 말하지 않은 건 내가 무대의 위에 서게 배려해 준 걸 거야.’

독고미로는 스태프의 수신호를 확인하고 무대의 위에 섰다.

카메라 감독들이 렌즈를 통해 독고미로를 잡는 것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 뻔했지만, 자신을 다잡았다.

‘지금 이곳에 없는 사람들도 날 응원해 주고 있어. 그 사람들에게 무대를 보여 주기 위해선 카메라가 필요해!’

독고미로는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하며 전주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수십 대의 카메라를 마주한 독고미로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지하 주차장.

갈라진 땅과 완파된 자동차의 잔해 사이로 에너미가 날뛰고 있었다.

이계의 입구에서 쏟아지는 에너미의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에너미가 등장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바람술로 에너미 둘의 발을 묶어 두던 사월세음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사월세음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는데, 한이와 보조를 맞춰 싸우고 있는 민그린 쪽은 여유가 없어 보였다.

민그린은 플레이어 슈즈를 신은 발로 에너미의 어깨를 타고 뛰어올라 머리를 걷어차던 중에 발에 충격이 갔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윽……!”

민그린이 평소에도 플레이어 슈즈를 착용하긴 했지만, 이는 민그린의 발힘에 의해 밑창이나 바닥이 망가지는 걸 방지하는 용도지 전투용은 아니었다.

발기술을 쓸 때 착용하는 부츠와 플레이어 슈즈는 충격 흡수량이나 공격력 보조 효과가 크게 차이가 나 싸우기 쉽지 않았다.

이 점은 한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보호대 없이 맨손으로 에너미의 공격을 받아치고 싸우는 데에는 평소보다 몇 배의 힘이 들었다.

“효돈이는 맨손으로도 잘 싸우네.”

수비대로 나선 1학년 0반 학생 중, 가장 많은 에너미를 쓰러뜨린 건 맹효돈이었다.

맹효돈은 저번 실습 때보다 유연하게 전장에서 움직였는데, 탁거산이 교정한 전투 자세가 어느 정도 몸에 익은 듯했다.

“보호대가 없으니까 이능파를 주먹 위에 유지하기 힘들어……!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퍼억!

한이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막 혼자서 에너미를 소멸시킨 맹효돈이 이쪽으로 달려와 맨주먹으로 에너미를 날려 버렸다.

호쾌한 일격에 날아간 에너미의 머리를 노려 다시 민그린이 발차기를 날리며 에너미에게 중상을 입혔다.

맹효돈이 타격을 하는 순간 절묘하게 이능파를 주먹에 실어 에너미의 내장도 뒤집어 놨다는 걸 감지한 한이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맹효돈은 조금 밑으로 내려간 교복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그냥 원래 맨손이 더 익숙해.”

“익숙해?”

“어…… 야! 사월세음, 뒤로 빠져!”

“위험해!”

그르르륵……!

사월세음이 건 바람술의 속박을 풀어낸 에너미가 달려들었다.

에너미의 발톱이 사월세음에게 닿기 직전, 높게 뛰어오른 한이와 맹효돈이 날렵하게 주먹을 날려 에너미를 바닥에 꽂아 버렸다.

사월세음이 그 광경을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가, 감사합니다……!”

“괜찮냐?”

“네! 그런데 에너미가 너무 강해요! 지호는 괜찮을까요?”

현재 지하 주차장에 발생한 이계는 넷.

조의신이 말한 대로 처음 이곳의 이계의 입구는 셋이었지만, 도중에 하나가 더 추가되어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인력이 분산되었다.

제갈재걸은 그나마 프로 플레이어 팀과 함께 시선이 닿는 곳에 있었는데, 황호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황호는 도착하자마자 제갈재걸이 언령을 발동하기 전에 먼저 에너미를 일소시키며 제 실력을 증명하곤 거만하게 말했다.

―이 몸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만약의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너희 넷은 반드시 같이 움직이도록.

황호는 네 번째 이계가 발생할 때 얼굴을 굳히곤 어디론가 자리를 비웠다.

황호의 실력을 눈으로 봤어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여기 있는 거 다 잡고 돌아이 찾으러 가자.”

“네……!”

그렇게 싸우길 몇 분, 겨우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제갈재걸과 프로 플레이어 팀이 맡고 있는 이계 쪽도 일시적으로 잠잠해졌는지, 제갈재걸이 1학년 0반 아이들 쪽으로 왔다.

“다친 곳은 없니? 너희에게 부담을 줘서 미안하구나. ……한 명이 안 보이는데.”

“아, 지호는 네 번째 이계 쪽으로 갔어요!”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이상 사태에서 단독 행동은 금물인데. 어느 쪽으로 갔지?”

“저쪽 기둥 뒤요!”

제갈재걸은 황호가 사라진 쪽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며 말했다.

“저쪽은 내가 다녀오마. 조금 있으면 지원이 올 테니 그때까지…….”

“선생님, 뒤에……!”

그 순간, 기척 감지 스킬이 발동한 듯한 한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    *    *

시야 속 함근형 선생님은 금방 빛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산산이 부서진 전면 유리창 벽이 반사하는 빛과 함근형 선생님이 쉬지 않고 쏘는 태양의 화살이 발하는 빛 탓에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다.

함근형 선생님과 카드모스에게 시야 방해는 의미가 없는지 공방이 이어졌다.

파바바박! 휙! 파아아!

카드모스가 쏟아지는 화살 사이를 날 듯이 움직이며 창으로 화살을 쳐 내고, 사자 가죽 방패로 막아 내며 빛줄기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창천명궁의 사정거리 안에 있는 표적이 그 화살을 전부 피하거나 막는 건 불가능했다.

함근형 선생님이 쏜 화살의 활촉이 카드모스의 피부에 남기는 상흔이 늘어나고, 이윽고 몇몇 화살은 그의 몸에 깊숙하게 박혔다.

‘……아직도 움직이다니!’

용을 쓰러뜨린 신화가 있는 신궁의 힘에 직격당한 이후에도 카드모스는 계속 활발히 움직였다.

투창을 미리 제거하지 않았다면 함근형 선생님을 향해 창을 던지고 반격까지 했을 기세였다.

파아앗! 파바박! 파아아아……!

그때, 태양의 빛 속에 옥색이 섞였다.

용제건의 공간술이 카드모스 사이에 벽을 만들고, 카드모스의 퇴로를 막아 화살의 사각지대를 지우기 시작했다.

“저 용은 나와 함근형 선생님께 맡기고 치료부터 해.”

용제건이 딱딱한 어조로 말하며 나를 봤다.

크게 뜬 옥색의 눈에 엉망인 내 모습이 반사되었다.

조의신의 모습으로 돌아간 탓에 몸에 맞지 않는 용제건의 옷을 입고 피를 쏟고 있는 게, 전선에 서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이젠 몸을 회복하지 않으면 짐이 될 거야.’

함근형 선생님의 합류로 전세는 이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졌다.

이제 내가 더 나설 필요는 없을 거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이 자리를 우리 반 담임 선생님과 부담임 선생님께 맡기기로 했다.

나는 아직 내 눈앞에 떠 있는 두 장의 카드 중, 곽경구의 카드를 택했다.

〈해당 캐릭터의 광림, ‘100초의 은총’을 사용합니다.〉

파아아…….

100초의 은총이 발동하자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상처가 메워지고 몸에 피가 차오르고 부수어지거나 금이 간 것 같은 뼈가 붙는 감각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정신이 점점 또렷해졌다.

큰 기술인 만큼 광림 사용 가능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능파 소모가 심했으나 사용할 가치가 있었다.

재생이 완료될 즈음, 붙잡힌 어깨에서 ‘꽈악’ 하고 작은 통증이 느껴졌다.

“이게 경구의 힘이구나. 눈을 감고 있었으면 경구가 앞에 있었다고 생각했을 거야.”

카드모스의 용아에 꿰뚫린 이후 계속 나를 지지하던 용제건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바로 앞에서 용제건의 이능파와 옥빛의 공간이 계속 피어오르는 걸 보면 여전히 전투 중이었는데, 용제건의 어조는 어딘가 가라앉아 있는 게 전투 중인 유희의 용답지 않았다.

용제건이 전개한 공간술 너머로 화살의 비와 카드모스의 격전이 보이는 탓에 마치 화면 너머로 전투를 지켜보는 기분도 들었다.

“‘부재자의 기척’으로 느낀 적이 있어. 네가 키모폴레이아에서 쓴 적이 있었지.”

나도 그 사건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키모폴레이아 위에서 오혜지와 곽경구의 광림을 사용했고, 원거리에서 그 기척을 감지한 용제건이 내 정체를 알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그때도 이랬던 거니?”

용제건이 그렇게 묻었을 때, ‘100초의 은총’이 내 몸을 재생시키고 해제되었다.

몸만 재생시킬 뿐이니 등에서 복부로 이어진 관통상 탓에 옷에 뚫린 구멍이나 핏자국은 그대로이긴 했지만.

키모폴레이아에서 저강렵의 상보심금파에 의해 꿰뚫렸다가 회복되었을 때와 상황이 비슷했다.

‘그때도 아마 이랬지.’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어 돌아가기 직전 황지호에게 붙들려 한 소리 들은 것도 그렇고, 그때와 지금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용제건의 질문에 답하기 어려웠다.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맞나 보네.”

콰쾅! 쩌저적……!

갑작스럽게 굉음이 들렸다.

용제건이 전개한 두터운 공간에 카드모스의 부러진 창이 박혀 있었다.

창이 향하는 방향은 용제건 쪽이었다.

‘……마지막까지 용제건을 노린 거구나!’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몰라도 카드모스가 생존보다 임무 완수를 우선시한 건 분명했다.

열세에 몰린 상태에서 평범하게 생존을 위해 움직인다면 노려야 할 상대는 궁수인데, 창끝은 함근형 선생님이 아닌 용제건을 향해 있었다.

함근형 선생님의 맹공에 의해 기세가 꺾이고, 투창 직후 창을 노리고 쏜 화살 탓에 기세가 죽었는데도 공간이 반쯤 부수어져 있는 게 섬뜩했다.

풀썩.

카드모스가 투창한 자세 그대로 화살 밭 위로 무너져 내렸다.

신의 화살이 용 사냥에 성공한 것이다.

그 모습은 신화 속에서 아폴론이 천 발의 화살을 쏘아 퓌톤을 잡은 상황을 연상시켰다.

용제건은 만약을 대비하는 듯 여전히 카드모스 주변에 공간의 벽을 세운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옷도 교환해 가며 네 계획에 가담하고, 목숨 빚을 진 내가 너한테 뭐라 할 자격은 없겠지. 함근형 선생님도 그 성격을 고려하면 네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고 존중해 주려 노력할 거야. 하지만…….”

용제건은 잠시 말을 멈췄다.

내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놓은 후에야 말을 이었다.

“네 제자는 어떨지 모르겠어.”

그 말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 용제건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진 카드모스에서 등 뒤로 향했다.

나도 용제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내 제자, 염준열이 서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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