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61화 (360/925)

58. 천적 (3)

“제갈재걸 선생님!”

콰콰쾅!

제갈재걸의 이름을 부르는 비명과 동시에 폭발음이 터졌다.

지하 주차장의 설비가 일부 파괴된 것인지 폭발의 여파가 남긴 연기 사이로 조명이 깜빡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에너미였어! 갑자기 바닥에서 나타났는데, 여기는 이계의 입구가 아니잖아, 어떻게…….”

“기척을 숨기고 접근했나? 아니, 그런 것치곤 뭔가 이상한데…….”

“제갈재걸 선생님! 어디 계세요? 괜찮으세요?”

“선생님의 기척이 멀어졌어……!”

콰콰콰콰! 콰쾅!

1학년 0반 학생들의 목소리에 답하듯 잇달아 폭발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이능파가 여기저기에서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다시 이계의 입구에서 에너미가 흘러나올 조짐이 느껴졌다.

“다시 이계의 입구 쪽에서 에너미가 나올 거야!”

“하지만 선생님이……!”

조명이 몇 개 부서진 탓에 지하 주차장은 방금보다 더욱 어두워졌고, 무기 없이 싸우는 플레이어들은 평소보다 체력과 이능파가 더 소모된 상태였다.

거기에 지원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전력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제갈재걸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란과 불안이 가중되었다.

에너미를 마주한 플레이어들의 손이 잘게 떨렸다.

그때, 맹효돈이 조명이 꺼져 잘 보이지 않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에 있다!”

“응……?”

차분한 음성이 어둑한 지하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나는 괜찮다. 걱정하지 말렴.”

파아아……!

제갈재걸의 목소리와 함께 온화한 빛이 바닥에 깔렸다.

제갈재걸이 이능파로 바닥에 새긴 반듯한 글씨체의 언령이 뿜는 빛이었다.

글씨가 발하는 빛에 둘러싸인 제갈재걸은 처음 폭발이 일어난 장소에서 멀어져 있었는데, 일부러 학생들과 강력한 에너미를 떨어뜨리기 위해 그쪽으로 유도한 듯했다.

“언령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 잡는 데에 시간이 걸렸구나. 미봉책이지만 우선 움직임을 막아 뒀단다.”

제갈재걸을 습격한 에너미의 모습을 본 아이들이 숨을 삼켰다.

척 보기에도 제갈재걸보다 두세 배 더 큰 몸집의 에너미의 눈과 귀 부분이 얼기설기 꿰매어져 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에서 추측 가능한 에너미의 성향이 플레이어들의 경각심을 더욱 부추겼다.

“이거, 교과서에서 본 적 있어. 본능과 감각을 일부 억제해 파괴력을 올리는 타입의 ‘억제계’ 에너미야……!”

에너미는 피부로 공기와 이능파를 감지하는 듯, 플레이어들을 향해 몇 번이나 돌진을 시도했다.

그 시도를 모두 막은 건 제갈재걸이 바닥에 새긴 언령들이었다.

억제계 에너미는 이능파로 쓰인 문자를 밟으면 행동에 제한이 생길 거라는 걸 직감하는지, 빛에 닿기 직전 발을 빼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저 선생이 잘 막긴 했는데, 이거 안 좋은 거 아니야?’

그 장면을 지켜보는 맹효돈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에너미는 시각과 청각이 봉인되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제갈재걸의 주력 기술인 언령이 직접적으로 통하지 않는 상대인 셈이다.

‘바닥에 함정처럼 이능파랑 문자를 깔아서 움직임을 막긴 했는데,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아까도 기분 나쁘게 등장했고!’

지금 등장한 에너미는 마치 언령 사용자를 상대하리라 상정한 듯한 타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 에너미가 등장한 곳이 이계 입구가 아니라 제갈재걸의 등 뒤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제갈재걸도 저 에너미로부터 위화감을 느낀 건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경고했다.

“이 에너미는 나에게 맡기고 멀리 떨어지렴!”

“그, 그렇지만 이 에너미에게는 언령이…….”

“이능파량이나 파괴력을 고려해 봤을 때 이 에너미는 SSR급이야.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1학년생이 이 희귀도의 에너미를 상대하긴 어려워!”

에너미의 희귀도가 SSR급으로 추정된다는 말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여기에 있는 이계들은 SR급이었을 텐데!”

“이, 이계 주변에 발생하는 에너미는 이계의 희귀도에 맞춰서 등장하지 않나요?”

플레이어들이 지당한 의문을 입에 담았지만, 그 대답을 듣기 전에 전장에 이변이 생겼다.

쩌적…… 뚜두둑……!

바닥과 벽이 융기하기 시작했다.

누가 스킬이나 광림을 써서 공간에 변화를 준 것도 아닌데, 이들이 있는 장소가 물리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아직 이계 공략 경험이 얼마 없는 1학년 0반 학생들은 잘 알지 못했으나, 제갈재걸을 비롯한 성인 플레이어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플로어 마스터 에너미나 보스 에너미가 공간을 변형할 때 뜨는 이펙트인데.”

“말도 안 돼, 여긴 이계의 안이 아니라 밖이라고!”

맹효돈은 아직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이 현상의 정체를 추측했다.

싸움 머리 하나만큼은 비상한 맹효돈은 금세 핵심을 파악했다.

‘지금 저 SSR급 에너미가 이계 안에서 플로어 마스터나 보스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쓰고 있다는 건가?’

점점 늘어 가는 변수와 이상 상황 탓에 냉정을 잃는 플레이어가 속출했다.

그 와중에도 제갈재걸은 변형된 바닥 탓에 일그러지기 시작한 글자를 다시 새기고 광림 발동을 준비하며 전장에 대처했다.

그때, 변수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사, 살려 주세요……!”

지하 주차장 구석, 찌그러진 자동차 안.

뒷좌석 쪽 깨진 유리창 사이로 방송국 스태프 명찰을 목에 건 인물이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경비를 맡은 프로 플레이어 팀 멤버가 탄식했다.

“오자마자 민간을 대피시키지 않았나……!”

“차 안에 있었나 봅니다. 바로 구출하죠! 제가 가겠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제갈재걸이 자동차를 향해 달려갔다.

맹효돈이 그 스태프의 얼굴을 보고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 저 새끼는……!”

어딘가에서 본 얼굴이었다.

맹효돈에게 있어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었는지, 아니면 맹효돈의 기억력의 한계인 건지 저 사람을 어디서 어떻게 만난 건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은 안 나는데, 뭔가 찝찝하다.’

맹효돈은 저자가 딱히 좋은 인연으로 만난 인물이 아니란 건 확신했다.

맹효돈은 머리가 그리 좋은 편도 아니고 통찰계 스킬이나 광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스킬도, 광림도 직접적인 싸움과 관련된 것뿐.

그렇기에 맹효돈은 자신이 느낀 불길한 감을 믿기 힘들어 행동을 망설였다.

맹효돈이 손을 내리기 전, 머릿속에 탁거산이 한 말이 스쳐 갔다.

―너는 머리는 나쁘지만, 싸움은 타고났다.

탁 도인이 굳이 머리 운운한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맹효돈도 틀린 말이라 생각하진 않았기에 반박하지 않았다.

―싸움터에서는 네 감을 믿고 행동해라!

스승의 말을 떠올린 맹효돈은 곧바로 자신의 광림 ‘싸움꾼의 인력(引力)’을 발동했다.

파아앗!

‘싸움꾼의 인력(引力)’이 발동하자 맹효돈 주변에 사각의 링 모양으로 이능파 지대가 크게 형성되고 주먹 모양의 이능파 덩어리가 떠올랐다.

이 광림은 발동 중, 맹효돈의 스테이터스를 크게 상승시키고 광림이 해제되거나 맹효돈이 쓰러질 때까지 지정한 대상을 일정 구역에 묶어 버린다.

맹효돈의 뒤로 주먹이 여러 개 떠올라 지정한 대상들을 가리켰다.

파아아아……!

광림이 발동한 이상, 싸움꾼 맹효돈이 지정한 싸움터인 이 사각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동시에 지정당한 대상은 맹효돈을 ‘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맹효돈이 지정한 대상은 억제계 에너미를 비롯해 현재 소멸되지 않은 모든 에너미들.

그리고 제갈재걸이었다.

“효돈아, 지금 나한테 광림을 쓴 거니?”

민간인이 위치한 곳에 도달하기 전, 제갈재걸의 발이 묶였다.

싸움터로 지정된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갈재걸이 당혹스러워하며 맹효돈을 봤다.

그 순간.

쿵! 퍼억!

“으아아악!”

누군가가 제갈재걸이 향하던 승용차의 지붕 위로 착지하곤, 곧바로 창문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던 사람의 머리를 후려쳤다.

전광석화와 같은 솜씨로 상대를 기절시킨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늦지 않았군.”

그렇게 등장한 누군가는 1학년 0반의 돌아이로 이름난 존재였다.

*    *    *

전투 중이라곤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도 염준열의 기척을 읽지 못했다.

내 제자의 성장이 기쁘기도 했지만, 제자에게 험한 꼴을 보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터벅, 터벅.

염준열이 힘없는 발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사이 용제건은 까마귀 가면을 벗었는데, 염준열의 시선이 내 명찰이 붙어 있는 교복과 까마귀 가면 쪽에 잠시 고정됐다.

염준열은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그러나 멈춘 이후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망설이는 걸까.’

지금 용제건에게 건넨 까마귀 가면은 평소에 염준열과 수업을 할 때도 착용하던 것이다.

총명한 염준열이라면 지금 이 상황과 내 모습을 보고 모든 걸 눈치챘을 게 분명했다.

염준열 입장에선 한 살 어린 후배가 스승 노릇을 했으니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착한 제자 염준열은 그 정체가 어쨌든 스승으로 삼은 인물에게 화를 내지 못할 거다.

그래서 나는 염준열의 스승이 아니라, 후배 조의신으로서 말을 걸기로 했다.

“염준열 선배님, 다친 곳은 없어요?”

내 말에 용제건이 ‘하’ 하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내 생각에도 지금 내가 두는 게 최선의 수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

나를 보던 염준열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그 눈을 본 나와 용제건이 딱딱히 굳었다.

“……그렇게 나를 부른다면, 지금 나는 ‘염준열 선배님’으로서 답해야겠구나.”

잠긴 목소리로 말을 마친 순간, 염준열의 눈가에 고인 물기가 한 방울 맺혀 떨어졌다.

용제건이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숨 쉬는 걸 중단하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나는 내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용제건과 비슷한 모습으로 염준열을 보고 있을 것 같았다.

염준열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크게 했는데,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물기가 사라진 상태였다.

대신 염준열은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시선을 받으니 바늘을 삼킨 것처럼 속이 따끔거렸다.

‘나중에 염준열에게 다시 사과하자. 지금은 시간이 없어.’

죄책감 탓에 쓰린 속을 억누르며 말했다.

“곧 통신이 재개될 거예요. 비활성화된 이곳의 기록기기도 다시 기동하겠죠. 그렇게 되기 전에 움직여야 해요.”

나는 염준열을 외면하고 화살 밭에 쓰러진 카드모스 쪽을 보며 말했다.

카드모스가 등장하는 시나리오와 그 향후의 전개를 고려해 다음 수는 이미 정해 뒀다.

“용제건 선생님, 저자를 데리고 이곳을 이탈해서 한반도 내의 용족의 본거지 쪽으로 가 주세요.”

이대로 내버려 두면 플레이어 협회 쪽에서 카드모스를 데려가게 된다.

용족의 입장에선 용족과 용족의 후예를 살해하려 한 용을 협회에 넘기고 싶지는 않을 거다.

용족은 협회와 가깝지는 않지만, 척진 관계도 아니므로 언젠가 카드모스를 넘겨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될 테니까.

‘지금 카드모스는 용족의 손에 있어야 해.’

용제건은 나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염준열의 눈물을 본 이후로 용제건의 기분은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용족을 위해서라도 내 제안을 거절하긴 어려웠을 거다.

“너는?”

“저는 일단 이곳에서 이탈할게요. 예비 옷이 있으니 그걸로 갈아입고 움직일 계획이에요.”

“뭐?”

“용제건 선생님 옷은 나중에 배상할게요.”

“의신아…… 지금 문제는 옷이 아니라…….”

얼굴과 체격을 바꿀 수 있는 광림이 있으니, 아이템창에는 늘 예비 옷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다른 체격으로 변했을 때를 대비한 옷이라 17세의 조의신에게는 맞지 않는 사이즈였지만 피로 엉망이 된 용제건의 옷을 입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이대로 합류하면 황지호가 내 이능파 상태를 보고 뭐라고 하겠지. 그렇게 되면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이번 상황이 수습되는 걸 멀리서 지켜보다가 이탈하는 게…….’

독고미로의 무대를 직접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아쉽지만, 나중을 위해 따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머릿속에서 이동 루트를 계산하고 있을 때, 염준열이 용제건에게 말을 걸었다.

“의신이는 오늘 저와 제건이 형을 구했죠.”

그렇게 말하는 염준열은 착하고 완벽한 내 제자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건이 형, 은인인 의신이도 우리 집으로 데려가서 치료해 주세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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