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63화 (362/925)

58. 천적 (5)

이계 입구가 발생한 방송국의 지하 주차장, 플레이어들은 무기 없이 에너미를 상대하게 되었다.

이계의 입구가 늘어나고 에너미의 희귀도가 상승하는 등 이상 현상이 이어지는 위기 속.

돌아이가 민간인을 기절시키며 등장했다.

1학년 0반 아이들은 같은 반 아이의 무사를 확인해서 안심했으나, 곧 화들짝 놀라 말했다.

“태호권을 응용한 발놀림이네. 설마 실수라고 하진 않겠지.”

“……실수는 아닌 것 같은데. 발로 내리찍는 게 엄청 깔끔했어.”

“지호야? 방금 차에 타고 있는 건 에너미가 아니라 인간 같았는데요…….”

끼에에에!

우우우…….

방송국 경비를 담당한 프로 플레이어 팀이 에너미를 쓰러뜨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1학년 0반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인간이라.”

휙!

황호가 승용차 지붕에서 바닥으로 착지했다.

황호는 곧바로 승용차 문을 열려 했는데, 잠겨 있던 걸 힘으로 연 건지 ‘우지직!’ 하는 비정상적인 소리가 났다.

강제로 문이 열리자 기절하는 바람에 차 문에 기대 늘어져 있던 인물이 굴러떨어졌다.

“그래, 하는 짓은 금수만도 못하지만 이자는 인간이지.”

“그게 무슨…….”

제갈재걸이 반사적으로 바닥으로 엎어진 인물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맹효돈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여전히 그의 광림 ‘싸움꾼의 인력(引力)’으로 제갈재걸을 묶어 두고 있었다.

퍽!

황호가 엎어져 있던 인물을 한 번 더 걷어차자 몸이 돌아가 얼굴이 보였다.

그쯤 되자 1학년 0반 아이 중에 그 얼굴을 알아보는 이가 속출했다.

“어! 전에 멋대로 약속 시간을 어겨서 미로를 곤란하게 한 플레이리스트 서브 PD예요!”

“그래서 두들겨 팬 거야? 맞아도 싸긴 한데.”

“……난 그때 얼굴을 잘 안 봐서.”

“어, 차 안에 뭐가 있다.”

맹효돈이 차 안을 가리켰는데, 척 봐도 방송 기자재가 아닌 듯한 이계 금속 덩어리가 보였다.

이계 금속 덩어리의 표면은 굵직한 케이블로 차 여기저기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미리 개조하여 자동차 배터리와 발전기에 연결해 둔 것 같았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벽에 붙여 주차한 차의 바닥과 지하 주차장 바닥도 케이블로 이어져 있었다.

“……발매가 중단된 이계 시뮬레이터구나. 지력을 끌어다 쓰는 타입이야.”

이계 금속 덩어리의 정체를 알아본 제갈재걸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지력을 빨아들인 구형 이계 시뮬레이터는 무거운 이능파의 기운을 주변에 뿌리고 있었다.

“네? 지력이요? 그런데 왜 여기에 이계 시뮬레이터가…….”

“이런 걸 들여올 수 있나? 뭐 검색대도 있었잖아.”

“무기가 아니라서 검색대에 걸리진 않아도, 이계 금속 덩어리니까 플레이어가 직접 보면 알 텐데…….”

“방송국에는 출입하는 업체가 많아. 방송국 자체 프로덕션, 협력 업체, 연예인의 소속사 직속 업체, 외주 업체…… 방송국 안에 직접 들여오는 기자재를 정밀 체크 하는 것만으로도 벅찰걸?”

“지하 주차장에만 있었다면 배제하기 어려웠겠군요…….”

황호가 구형 이계 시뮬레이터의 전원을 껐다.

전원이 꺼진 후에도 이미 등장한 에너미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언뜻 느끼기에도 공기가 가벼워진 듯한 감각이 들었다.

원리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이계 시뮬레이터가 지력을 활용해 이계와 에너미 쪽에 버프를 준 듯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

“저 사람 손에 뭐가 있어!”

황호에게 걷어차인 인물의 손목에 묘한 장치가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 일반적인 손목시계처럼 보였던 장치에는 바늘이 장착되어 있었다.

황호가 신중하게 발끝으로 장치째로 손목을 짓밟으니 ‘쉭’ 하고 바늘이 길게 뻗어 나왔다.

동시에 바늘 끝에서 끈적한 액체가 뻗어 나왔다.

“구조를 요청해 안아 들었거나 손을 잡았을 때 곧바로 주사하려 했나 보군.”

“그런……! 도와주러 온 플레이어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였을까요?”

“설마 제갈재걸 선생님을 노린 거야?”

플레이어를 향한 선명한 악의에 싸우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전의를 잃었다.

마침 에너미도 묘하게 얌전해진 탓에 부상자가 나오진 않았지만, 침묵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행히 정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바닥을 박차는 소리에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들어 주차장 입구 쪽을 바라봤다.

시선 끝에 함근형을 필두로 프로 플레이어 여럿이 달려오고 있었다.

“……함근형 선생님!”

“다친 데는 없나?”

광림을 사용하는 중인지 함근형의 눈이 이능파로 형형하게 빛났다.

가뜩이나 무서운 얼굴에 저 광림까지 쓰고 있으니 더욱더 흉악한 인상이 되었지만, 반 아이들은 몹시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는 괜찮아요!”

“선생님, 의신이는 못 보셨어요? 의신이가 더 빨리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의신은…….”

함근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함근형은 말을 신중하게 고르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용제건 선생님이 곁에 계신다.”

“네……? 그건 아는데요…….”

“그럼 용쌤은 어디 가신 거예요? 설마 그쪽에도 에너미가…….”

“에너미는 없다. 걱정 말거라.”

에너미가 없다는 말에 아이들이 안심했으나 황호는 의심스러워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황호가 추궁하기 전에 함근형이 앞으로 나섰다.

“무기가 없는 플레이어들은 전원 뒤로 물러나라. 마무리는 우리가 맡지.”

“함근형 선생님, 가세하겠습니다. ……효돈아?”

“어? 네. 저도 같이…….”

“무기가 없는 플레이어들은 물러나라고 했다.”

착잡한 얼굴을 하던 제갈재걸도 앞으로 나섰다.

맹효돈은 광림을 해제하고 함께 싸우려 했으나 함근형에 의해 결국 뒤로 빠지게 되었다.

“이제 선생님들하고 프로 플레이어한테 맡기자.”

“아, 우리 의신이 찾으러 갈래?”

삐잇!

마침 결계가 해제된 여파로 통신이 재개되었다.

황호는 곧장 조의신에게 메시지를 몇 개 날렸는데, 읽음 처리도 되지 않고 답변도 오지 않았다.

조의신이 제 안위를 걱정하는 메시지를 무시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속이 답답했다.

황호가 홀로그램 화면을 노려보며 말했다.

“……조의신이 메시지에 답을 안 하는군.”

“어? 그건 늘 있는 일 아닌가요?”

황호가 반에서 대놓고 조의신에게 메시지 좀 바로 확인하라고 몇 번 잔소리를 했었다.

그 탓에 1학년 0반 아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황호는 조의신이 아닌 다른 상대에게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상대도 상황이 비슷했다.

“……망할 용하고도 연락이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용제건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날린 후 연락을 끊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황호가 받은 메시지는 이러했다.

[용제건] 의신이는 무사해. 일단 내가 데려갈게.

[용제건] ^^

황호가 화면을 본 채로 굳어 있으니 아이들이 뒤로 몰려와 홀로그램을 흘끗 봤다.

용제건의 ‘^^’를 보고 황홀한 표정을 연상했는지 반 아이들이 잠시 딱딱히 굳었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답변은 받았네.”

“어, 그런데 용쌤이 의신이를 데려갔다고요?”

“미로 공연 안 보고 가는 거 보니까 무슨 일이 있나 봐.”

“의신이도 걱정되는데, 미로를 응원하기로 했으니 용쌤을 추적하긴 힘들겠네요…….”

함근형과 제갈재걸을 비롯한 프로 플레이어들의 활약으로 이계 공략은 무사히 완료되었다.

그러나 황호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황명호 대저택 별채에 있는 어린 분신 쪽에서 은호가 ‘의신이 형은 어떻게 됐나요? 얼른 저택으로 모셔 오죠.’라고 거듭 당부하는 게 들려 머리가 아파졌다.

*    *    *

하늘 위.

나는 현재 방송국을 벗어나 용제건과 함께 비행하는 중이었다.

내가 옷을 갈아입자마자 용제건은 곧바로 나와 함께 하늘 위로 날아올랐는데, 부상할 때는 불투명한 공간으로 몸을 숨겼지만 일정 고도 이상이 되자 그는 공간술을 해제했다.

공간술을 해제하기 전에 까마귀 가면을 벗어 내게 내밀긴 했지만, 조금 마음에 걸렸다.

“……비행 스킬을 이용해 이동하면 눈에 띄지 않을까요?”

“아냐, 공중이 안전해. ‘눈’이 안 느껴지거든. 마족들의 ‘눈’은 일정 고도 이상은 포착할 수 없는 모양이야.”

좋은 정보를 알았다.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시선에 민감해 이런 고급 정보를 갖고 있는 거구나.

뿌듯해하고 있을 때, 디바이스를 확인하던 용제건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 바로 황호 이사장 씨한테 연락이 왔어. 너와 연락이 안 된다고 너한테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데? 어떻게 대답할까?”

디바이스 알람은 전부 꺼놨는데, 황지호한테도 메시지가 왔었나 보다.

‘무사하다고 전해야 할 텐데.’

황지호는 반 아이들과 함께 있다.

또 은호와 함께 있기도 했다.

안부를 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용제건이 황지호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니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무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나한테 맡길 생각이야? 정말로? 아, 직접 말하지 않는 게 나중에 더…… 그래, 알았어.”

용제건은 아주 신난 얼굴을 했다.

직접 말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나중에 더’ 이벤트가 뭔 소린지는 잘 이해가 안 갔지만 용제건이 기분이 좋아 보이니 됐다 싶었다.

염준열과 대화한 후부터 용제건의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는데, 역시 내 제자는 용들에게 사랑받는 듯했다.

“하하하! 황호 이사장 씨가 나한테 이렇게 많은 메시지를 보낸 적이 없는데! 곧바로 우리 용족의 영역에 쳐들어올 기세인데?”

“진짜 오지는 않겠죠?”

“뭐, 못 오겠지. 호족의 신역이 학교의 형태로 열려 있는 것과 달리 용족은 좀 폐쇄적이거든.”

플마고에서 등장한 용족의 영역은 크게 둘이었다.

하나는 중국에 입구가 있는 용궁.

다른 하나는 붉은 사자 팀 빌딩의 지하 깊숙한 곳에 마련된 장소였다.

‘붉은 사자의 팀원도 함부로 용족의 영역에 갈 수 없었지.’

용족의 영역이 붉은 사자 팀 빌딩 지하에 존재하긴 했으나, 붉은 사자의 팀원도 염방열 같은 임원이 아닌 한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다.

용족의 영역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건 용족, 용족의 후예 그리고 용족의 무녀뿐이었다.

즉, 용족이 아닌 한 아주 예외적으로만 그 안에 갈 수 있는 셈이다.

용족의 영역은 최소 청룡의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을 테니, 그냥 나는 붉은 사자의 영역에 둘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도 은인에게는 열려 있어. 걱정 마.”

“……전 한 게 없는데요.”

은인 소리에 속이 간지러웠다.

결국 카드모스를 쓰러뜨린 건 함근형 선생님이었으니까.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용제건이 바로 받아쳤다.

“한 게 없어? 그래? 한 게 없는 상태에서 후예, 그것도 준열이를 울린 게 알려지면 큰일 나겠다.”

서늘해지는 내 마음과 역으로 용제건이 아주 기분 좋게 웃었다.

방송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본 내 제자는 눈물을 흘렸던 게 먼 옛날처럼 의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방송 잘하세요. 생방송 보고 있을게요.

염준열이 수천 번은 들었을 법한 상투적인 응원이었는데, 내 제자는 스타 플레이어답게 완벽한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무리해서 보지 않고 쉬고 있어도 돼. 그래도 의신이가 보고 있다면 잘하고 올게.

존경하는 스승이 사실 1학년 후배였다는 걸 알면 혼란스럽기도 하고, 화도 날 텐데 염준열은 어른스럽게 대응했다.

“거의 다 왔군.”

용제건은 그 말과 함께 서서히 비행 속도를 늦추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듯했다.

“네 치료를 위해 용왕신의 무녀들을 대기시켜 뒀어.”

용제건이 가리킨 방향에 오색 채운이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오색의 빛으로 아롱진 구름 사이로 붉은 사자의 팀 빌딩이 우뚝 서 있었다.

‘저들이 용왕신의 무녀인가…….’

다섯 색의 구름으로 덮인 붉은 사자 팀 빌딩의 옥상.

다섯 명의 무녀가 나와 용제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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