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76화 (375/925)

59. 정체 (11)

조의신의 생일은 11월 1일.

이번 주 일요일이었다.

황호와 김유리를 제외한 1학년 0반 아이들은 이 사실을 처음 안 건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조의신의 생일을 몰랐던 것 같았다.

“의신이 생일은 언제 들었어? 나도 진작에 물어볼걸.”

“디바이스 코드 등록할 때 이름을 지정하지 않으면 디폴트 닉네임이 뜨잖아. 주소록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봤는데, ‘jo2god111’이라고 쓰여 있더라.”

“그게 부반장의 ID입니까? ……상당히 어렸을 때 만들었나 보군요.”

“하하하…… 외우기 쉬운 ID네.”

조의신은 아이디가 필요할 때, ‘jo2god111’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조의신’이라는 이름 석 자중 ‘조’는 영어로 그대로 변환해 ‘jo’.

‘의’는 한국식 발음으로 읽어서 ‘2’.

‘신’은 신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god’으로 치환한 듯했다.

목우람의 평가대로 어린아이가 만들었을 법한 유치한 ID였다.

이 자리에 송대석이 있었다면 아주 신랄한 표현으로 조의신의 ID를 평가했을 것이다.

“그럼 ‘111’ 부분이 생일인 거야?”

“응. 저번에 신경 쓰여서 물어봤더니 생일이래.”

“그것 만으론 생일인지 알기 어렵네. 뒤에 생일을 쓸 거면 보통은 0111, 1101 이런 식으로 쓰지 않나?”

“나도 1월 11일이 생일인지 11월 1일이 생일인지 헷갈렸는데, 11월이라고 하더라.”

조의신의 생일 이야기가 나오자 그를 축하해 주고 싶었는지 1학년 0반 전원 파티와 선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광림 제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김유리.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있던 황호.

환몽 게이트에 휘말린 권레나와 사월세음.

부모에게 팔려 파이트 클럽에 갇혀 있던 맹효돈.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던 민그린과 송대석.

세계 10대 플레이어 팀 ‘세 기사의 맹세’에게 추적당하던 목우람.

또, 한이는 인지하지 못했으나 은광한빛보육원을 노린 용역 집단이 한이를 협박했을 때 조의신이 뒤에서 도운 적이 있었다.

현재 등교 중인 1학년 0반 학생들은 조의신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을 리 없던 아이들이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들 조의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 했다.

“부반장이 내 생일 때 케이크 사 줬는데. 내가 케이크 살게.”

“어, 나도 저번 생일에 선물 받았어.”

“너도?”

맹효돈의 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간증 선언이 나왔다.

개학일 3월 2일 이후부터 현시점까지 생일이 지난 1학년 0반 소속 학생들은 여섯 명.

3월 27일생 김유리.

5월 21일생 사월세음.

7월 13일생 맹효돈.

8월 26일생 민그린.

9월 23일생 목우람.

호적상 10월 3일생으로 되어 있는 황호.

생일이 지난 이들이 확인해 본 결과, 조의신은 여태까지 반 아이들의 생일을 모두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조의신과 마찬가지로 반 아이들의 생일을 챙긴 김유리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듯했었으나, 다른 아이들은 몰랐던 것 같았다.

“의신이는 여태까지 반 아이들 생일을 다 챙겼구나…….”

“난 다른 애들 생일은 몰랐는데, 어떻게 안 거지? 아, 내 생일은 예전에 작품 활동 하던 시절에 인터뷰한 미술 잡지에서 봤다고 하더라.”

“대화하다 보면 가끔 생일 얘기할 때가 있잖아. 그때 듣고 기억해 뒀다가 선물한 것 같아.”

조의신은 플마고 설정집을 통해 주요 인물들의 생일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의심을 사지 않고 선물을 건네기 위해 생일 전에 생일을 언급하도록 대화를 유도해 자연스럽게 행동하긴 했지만.

물론 예외도 있었다.

“하하하, 제 생일은 좀 나중에 아신 것 같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에 축하해 주셨습니다.”

“우람이는 2학기 때부터 등교했으니까 잘 몰랐나 보다.”

“그런데 너 생일이었냐? 언제?”

“9월이었습니다. 꽤 많이 지났죠.”

조의신은 플마고에 출연하지 않은 목우람의 개인 정보를 파악하진 못했다.

그 탓에 생일 축하가 늦어지긴 했으나 어쨌든 그는 반 아이들의 생일은 빠짐없이 축하한 것 같았다.

반 아이들은 반 친구이자 은인인 조의신을 위해 자연스럽게 생일 파티와 선물에 관해 이야기했다.

“의신이가 우리 반 분들을 챙기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의신이 생일이 며칠 안 남았는데, 왜 저는 몰랐죠?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겠어요!”

“이번 주 일요일이 부반장 생일인데, 큰일 났습니다. 선물을 살 만한 소지금이 없습니다. 일요일까지 근로 아르바이트에 힘쓰겠습니다.”

“……우람아, 또 어디에다가 쓸데없이 돈을 쓴 거야? 나랑 같이 선물 사자! 그때까지 절대 돈 쓰지 마!”

“네, 그러면 레나가 돈을 쓰라고 할 때까지 절약하겠습니다.”

“아…… 지금부터 초상화를 그려야 하나? 아니, 걔한테 줘야 할 그림이 있는데 생일 선물로 그림을 또 주는 건 좀 그럴까?”

“먹을 거 사도 되냐. 부반장은 오렌지 들어간 거 잘 먹던데.”

“그런데 파티는 어떻게 해? 될 수 있으면 깜짝 파티로 준비하고 싶다.”

선물과 파티에 관한 의견은 많았지만,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그간 학기 중에 반 아이들의 생일은 간소하게 선물을 주고받는 선에서 그쳐 생일 파티를 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황호의 경우, 호족의 생일 축하연에 조의신을 부른 적이 있긴 하나 학급 단위로 한 생일 파티와는 결이 달랐다.

‘조의신의 생일 파티라…… 호족 쪽에서 축하할 예정이었는데, 파티를 두 번 하면 되겠지. 조의신은 0반 아이들을 아끼니 나쁘지 않겠군.’

조의신은 주말에 성국언을 만날 예정이라고 한 게 떠올랐다.

무슨 연유로 성국언을 만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성국언의 성격상 약속한 날이 조의신이 생일이고 반 친구들이 파티를 준비한다고 하면 바로 놓아줄 것이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군.’

황호는 누가 말을 걸지 않는 한 입을 열지 않으며 관망하고 있었으나 계속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가장 큰 이유는 조의신이 자신의 연락을 계속 무시하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조의신의 가족의 기일과 그의 생일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점이었다.

‘가족을 모두 잃은 날과 생일이 일주일밖에 차이가 안 나다니. 그럼 작년 생일은 어떻게 보낸 거지?’

황호는 고작 중학생이던 은인이 생일을 어떻게 보냈을지 상상하고는 밀려오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눌렀다.

올해는 다른 기분으로 생일을 보냈으면 하는데, 은인이 협조할 것 같지 않아 머리가 더욱 아파졌다.

황호를 불쾌하게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생각할수록 마음에 안 드는군.’

생일 파티를 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생일이 의미하는 날이었다.

11월 1일의 전날인 10월 31일, 핼러윈(Halloween)은 성인을 의미하는 ‘hallow’와 전야제 ‘even’이 합쳐진 말이다.

즉, 핼러윈은 ‘모든 성인의 날’의 전야제를 의미한다.

그다음 날인 11월 1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인 만성절.

축일이 따로 정해지지 않은, 이름 없는 성인들의 죽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    *    *

때는 1학기 기말고사 기간 돌입 전.

민그린, 송대석과 함께 홍경복 화백을 뵙기 위해 홍천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곳에서 홍천으로 출장 온 함근형 선생님과 성국언이 마주쳤다.

성국언은 부담임이었다는 함근형 선생님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고, 함근형 선생님도 그런 제자의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함근형 선생님은 성국언을 배려해 자리를 비우려 했는데, 그걸 붙잡은 게 성국언이었다.

―왜 그냥 가려 하시는 겁니까? 사고만 치던 옛 제자가 선생님의 어린 제자한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요.

―내가 여기에 있으면 곤란한 것 아니었나.

―선생님은 좋은 분이세요. 플레이어로서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성국언은 제자를 배려해 물러나려는 함근형 선생님을 보고, 또 그런 함근형 선생님께 호의를 보이는 나와 성시완을 보고 대화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성국언은 함근형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단언했다.

―선생님은 변하셨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10대 시절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머리에 새겨진 편견이라면 더 그렇다.

그러나 성국언은 달랐다.

성국언은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알았고 자신의 오해와 무지를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내 이야기를 들은 김신록은 머릿속에서 옛 제자와 동료 교사가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듯했다.

김신록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무슨 말을 할지 망설이다가 질문했다.

“……그 외에는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 그 아이와 함근형 선생님은 화해한 다음에 어땠습니까?”

성국언은 한반도를 노리는 진족과 그 진족이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지력을 품은 은광고를 침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성국언이 은광고 졸업생에 국회의원이라고 하나 교직원이나 학생이 아닌 한 학교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도와줬으면 해. 위험한 일이니까 생각할 시간은 줄게.

―선생님도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성국언은 그 이후 함근형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 얘기도 밝힐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성국언의 허락 없이 이 이상은 밝힐 수 없어.’

나는 그 이야기를 빼고 두 사람이 한 일상적인 회화에 관해 간략히 전했다.

김신록은 그 별것 없는 이야기를 경청했다.

“……조의신 군, 하나 더 물어도 됩니까?”

“말씀하세요.”

김신록은 내 쪽을 한 번, 용제건 쪽을 한 번 봤다.

그 눈짓을 보니 무엇을 물어볼지 짐작이 갔다.

“이 용의 말에 의하면 조의신 군은 염방열 씨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것 같더군요. 그게 무엇인지 물어도 됩니까?”

용제건은 김신록 앞에서 내가 염방열에게 한 부탁에 관해 언급했다.

그 말을 하며 성국언의 이름을 언급하고 김신록의 멘탈을 흔들었으니 궁금해하는 게 당연했다.

‘될 수 있으면 말하고 싶지 않은데…….’

지금 말하면 방해가 들어올지 모른다.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메시지를 날리는 호랑이가 방해꾼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 호랑이 뒤에는 걱정 많은 은호도 있으니 그랬다.

내가 부상을 당했다는 것도 전해졌으니 말릴 가능성이 더더욱 농후해졌다.

“…….”

용제건은 입이 근질근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용제건도 호랑이들과 같이 말릴지, 아니면 반대로 나를 부추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용제건이 입을 열 게 분명했다.

고민 끝에 말하기로 했다.

“세계 10대 프로 플레이어 팀은 전 세계에서 이계 공략을 하죠. 붉은 사자의 경우 활동 영역이 아시아권에 치우쳐 있긴 하지만, 염방열 씨가 아들의 유학 생활을 대비해 전용기를 하나 샀다고 들었어요.”

염준열이 유학이 결정되자 얼마 안 있어 붉은 사자 측에선 전용기를 구입했다.

아들을 보러 갈 때 편하게 가려고 지른 전용기였다.

“붉은 사자 팀 전용기에 저와 성국언 선배님을 태워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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