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18화 (417/925)

63. 감시 (5)

한이의 어린 시절, 한이에게는 오랫동안 동갑 친구가 없었다.

자아가 형성된 시점, 한이의 세계는 은광한빛고아원뿐이었고 그곳에는 한이와 동갑인 아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한이랑 동갑인 아이들이 없구나.”

“언니랑 오빠들이 그만큼 잘 챙겨 주면 되지.”

“언젠가 한이 친구가 들어올 수도 있어.”

하지만 은광한빛고아원이 은광한빛보육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이가 광일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보육원엔 한이와 동갑내기 아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한동안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

막 초등학생이 된 한이는 지금만큼 기척 감지에 기민하지 못했고 입 모양도 잘 읽지 못했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자신의 귀한 아이와 친구가 되는 걸 원치 않았고, 아이들도 대화하기 어려운 한이와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거기에 당시 광일초등학교의 교사진들은 교육에 열의가 없어 그런 상황을 모르는 척 방치해 한이는 빠르게 고립되었다.

그런 한이를 지지해 준 게 보육원의 자원봉사자 공청훤이었다.

“학교에는 사람이 많으니 기척을 감지하고 입 모양을 읽기 쉽지 않죠. 같이 연습해요.”

당시 학생이던 공청훤은 학업에 쫓기면서도 자주 들러 봉사활동을 하고, 직접 독화술을 배워 한이에게 가르쳐 줬다.

하지만 독화술을 완벽히 터득해도 친구는 생기지 않았다.

귀가 들리지 않는 한이가 자신들의 말을 이해한다는 걸 신기해하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대화가 가능해진 것만으로 충분해.’

공청훤의 가르침과 보육원 사람들의 보살핌 덕에 한이는 친구가 없어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다 학년이 바뀌었을 때, 처음으로 한이에게 동갑내기 친구가 생겼다.

한이와는 다른 이유로 학급에서 고립되어 있던 독고미로였다.

―난 아이돌이 될 거야! 한이는 꿈이 뭐야?

―잘 모르겠어.

―그럼 같이 생각하자!

독고미로는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밝고 멋졌다.

학교생활이 그리 즐겁진 않았지만, 독고미로와 만나고 이야기하기 위해 등교한다고 생각하면 버틸 만했다.

하지만 꿈 같은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학년이 바뀌었을 때 또 같은 반이 되었다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독고미로는 한이를 멀리했다.

―나, 솔로 아이돌 데뷔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이제 혼자 다니려고!

―무대 위가 무섭긴 한데, 혼자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익숙해지면 괜찮아질지도 몰라.

―애들 앞에서 나한테 인사 안 했으면 좋겠어.

―내 옆에 앉지 마. 다른 데로 가.

한이는 독고미로가 왜 갑자기 이상하게 구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독고미로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둘은 각각 고립되었고, 홀로 남은 한이는 처음 사귄 동갑내기 친구를 잃고 힘들어했다.

독고미로가 더 이상 자신의 친구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은광고에 입학한 이후, 다시 독고미로와 만나니 그때 있었던 일들이 뭔가 이상했다는 걸 뒤늦게 느꼈다.

플레이리스트에 출연한 독고미로를 두고 그녀의 옛 소문에 관해 떠들던 초등학교 SNS 계정도 있었다.

‘미로가 나를 멀리하던 시점에 무슨 일이 있던 것 같아.’

한이는 그 동창들의 계정들과 서로 팔로우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팔로우하는 계정 한정으로 공개된 글을 읽을 수 없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고, 소문을 퍼뜨리려고 각을 잡던 계정들은 하나하나 사라졌다.

사라진 건 황호가 조의신의 의견을 받아들여 던진 미끼에 낚인 이들의 계정이었다.

이들은 황명 그룹의 손에 의해 처리되었으나 한이는 알지 못했다.

한이의 인간관계는 몹시 협소했기에 더 캐 볼 구석도 없었다.

실마리를 던진 건 독고미로의 홈마, 정해온이었다.

“너, 광일초등학교 출신이지?”

“네.”

한이의 대답에 정해온이 거의 숨도 쉬지 않고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고민한 티가 나는 말투였다.

“그때 미로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면, 미로의 사진을 찍고 다니는 게 미로한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네?”

“심증과 상황 증거는 있어도 증인이나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태야.”

정해온은 단서를 잡은 것 같았으나 한이에겐 정보가 거의 없었다.

한이는 우선 솔직히 자신이 아는 게 없다고 밝히기로 했다.

“……저도 잘 몰라요.”

“뭐야, 너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정해온이 실망하며 물러나기 전, 한이가 그녀를 붙잡았다.

“선배님이 알고 계신 심증과 상황 증거에 관해 말씀해 주시면 알아볼게요.”

정해온은 망설이는 것 같았다.

괜히 자신이 독고미로의 소문을 퍼뜨리는 계기가 되는 건 아닌가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한이는 정해온을 설득하기 위해 한 번도 입에 담지 못했던 진심을 말했다.

“미로는 제가 처음 사귄 친구예요.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정해온은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로는 카메라를 무서워하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원인은 아마…….”

정해온이 구형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하나 꺼냈다.

“어렸을 때 카메라를 이용한 괴롭힘을 당한 탓일지도 몰라.”

사진에 찍혀 있는 건 잔뜩 얼어 있는 표정의 어린 독고미로였다.

학교에서 찍힌 듯했는데, 독고미로의 뒤로 실실거리며 독고미로를 보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 사진은 독고미로가 플레이리스트에 출연한 직후,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라왔던 매물이라고 한다.

“……이걸 판 사람은요?”

“얼마 전에 사고를 크게 쳐서 소년원에 갔어. 금찬이 힘도 빌려서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단서가 없어.”

정해온이 말하는 금찬은 2학년 0반의 반장 금찬솔을 가리키는 듯했다.

‘금찬솔 선배는 뛰어난 플레이어인 데다 집안도 보통 집안이 아니야. 그런데 단서를 못 찾았다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플레이어로서 출중한 힘을 가지고 금찬솔보다 더 강력한 집안 출신인 지인이 떠올랐다.

황명 재단의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잘 처웃는 급우였다.

하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아니, 걔 힘을 빌리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잖아.’

독고미로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

한이는 독고미로가 등교한 당일, 곧바로 이를 실행했다.

하지만 독고미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기에, 한이는 최후의 패를 꺼냈다.

“그렇게 말하기 싫으면, 나와 대련해!”

말리러 온 반 아이들 앞에서 한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한이가 소리를 지르는 건 처음 본 아이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독고미로도 잠시 놀란 얼굴을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이가 싸우고 싶다니까 받아 줄게.”

그렇게 말하는 독고미로의 눈에 패기가 넘실거렸다.

*    *    *

신호가 떨어지고, 숫자가 0으로 바뀌자 독고미로와 한이가 바닥을 박차고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파박!

학생들의 이능을 견디도록 설계된 체육관 바닥에서 희미하게 열기와 이능파의 흔적이 피어올랐다.

두 사람 다 이능파를 실어 달린 듯했다.

“하압!”

한이는 바로 태호권의 기본자세, ‘호랑이 발걸음’으로 독고미로의 품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호랑이가 사냥감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도약력이 돋보이는 발기술을 선보인 한이가 날카롭게 주먹을 내질렀다.

카앙!

보호대와 모닝스타가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독고미로의 턱을 노렸던 한이의 주먹은 모닝스타의 몸통에 막혀 있었다.

“많이 연습한 것 같군. 한이의 공격기와 발기술의 연계가 훨씬 좋아졌어.”

황지호가 옆에서 곱상한 눈을 휘며 한이를 칭찬했다.

그러나 황지호의 관전평은 한이의 칭찬에서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독고미로는 파출소…… 아니, 지구대 하나 정도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돌파할 만한 실력자다.”

모든 경찰관이 플레이어였던 건 아니지만, 이계 충돌이 일어난 시대인 만큼 모든 공공시설은 에너미와 이능을 가진 범죄자의 습격에 대비가 되어 있다.

하물며 광일파출소장은 플레이어 출신에 경찰대까지 졸업한 엘리트가 아니던가?

독고미로는 그런 상황에서도 파출소를 단독으로 제압한 실력자다.

퍼억!

황지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독고미로가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한이의 배를 걷어찼다.

한이는 비명을 삼키며 뒤로 날아갔다.

“……!”

특별한 기술이나 무도를 통해 익혔다기보다는, 막싸움에서 상대방의 빈틈을 노려 갈기는 한 방 같은 발차기였다.

독고미로의 공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독고미로는 밸런스가 무너진 채로 날아오른 한이 쪽으로 모닝스타를 크게 휘둘렀다.

“위험해요!”

“한이야, 피해!”

“야, 뭐 해! 막아!”

어느 사이엔가 자리에서 일어난 반 아이들이 아우성쳤다.

독고미로가 휘두른 모닝스타가 호를 그리며 한이에게 꽂히려 했다.

모닝스타의 묵직한 한방이 한이에게 닿기 전.

“……하압!”

한이가 기합을 내지르며 허공에 주먹을 날렸다.

그 풍압을 이용해 한이가 몸을 억지로 틀어 모닝스타를 피하고, 완벽한 낙법을 구사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한이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다시 독고미로에게 달려들었다.

퍽! 카앙! 캉!

두 사람은 쉬지 않고 합을 주고받았다.

모닝스타의 철퇴머리와 보호대가 부딪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어떡해, 아무것도 안 보여……! 한이랑 미로는 안 다친 거지?”

“다들 피는 안 나는 거 같아요!”

권레나와 사월세음의 눈에는 전투의 흐름이 거의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에 반해 전투를 보는 눈이 있는 아이들은 둘의 격렬한 대련을 두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로 진짜 잘 싸운다…….”

“춤출 때랑은 다른 분위기 같아. 저것도 그려 보고 싶어!”

한편, 지나치게 불타오른 아이들도 있었다.

“거기에선 한발 물러나서 이능파를 모아야지!”

“보호대로 직접 막지 말고 흘려 넘겨!”

특히 송대석과 맹효돈은 허공에 헛주먹질을 하며 난리를 쳤다.

두 사람은 상대적으로 한이와 더 알고 지낸 시간이 기니 한이 쪽 훈수를 많이 뒀다.

한이는 독고미로에게 집중하느라 입 모양을 읽지 못하니 전해지지 않을 텐데, 쟤들은 그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퍽!

독고미로가 한 손으로 모닝스타를 휘둘러 한이가 막도록 유도한 사이, 남은 주먹이 한이의 명치를 강타했다.

한이가 뒤늦게 몸을 피하려고 했으나 독고미로가 따라붙는 속도가 더 빨랐다.

“윽…….”

처음으로 한이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급소는 방어구를 착용해 보호하고 있으나 몇 번이나 얻어맞은 탓이라 그런지 데미지가 많이 누적된 듯했다.

둘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으나, 승부는 점점 독고미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전투를 보는 눈이 없는 아이들도 한이의 열세라는 걸 슬슬 알아챌 정도였다.

‘실전 경험의 차이인가. 독고미로는 패왕으로서 수라장을 헤쳐 나왔으니까.’

독고미로가 한이에게 맞춘 타격은 거의 일반적인 대련에서 볼 수 없는, 막싸움에서나 보는 변칙적인 공격들이었다.

태호권 소모임 활동으로 자신을 단련해 온 한이보다는 언제 어디에서 주먹이 날아올지 모르는 일대다수의 싸움터를 경험한 패왕 쪽이 우세한 듯했다.

대련이 길어질수록 그 경험에서 비롯된 차이는 점점 커졌다.

퍼억!

“크윽!”

독고미로의 모닝스타가 한이의 등을 강타했다.

모닝스타가 보호대가 아닌 곳에 직격한 건 처음이었다.

‘……독고미로가 한이를 봐줬군.’

독고미로는 삐죽빼죽한 이능 금속으로 만든 위협적인 형태의 철퇴머리 대신 매끈한 손잡이 부분으로 한이를 때렸다.

독고미로는 이를 악물고 일어난 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이야, 내가 이겼어. 기권해.”

한이는 비틀거리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싸울 수 있어!”

한이는 자세를 가다듬은 후 다시 발을 내디뎠다.

파앗!

한이의 발끝에서 군청(群靑)에 가까운 짙푸른색의 이능파가 번졌다.

호족들은 모두 가지고 있으나 인간 중에서는 희귀한 편에 속하는 도약 스킬이 발동한 것이다.

도약 스킬을 이용해 돌진하는 한이를 보며 황지호가 중얼거렸다.

“……정말 변한 게 없군.”

그러나 한이의 기세는 많이 꺾여 있었다.

한이의 발에서 뻗어 나온 이능파의 빛은 점차 흐려지는 중이었다.

독고미로가 모닝스타를 한 방 크게 날리면 이 대련은 여기에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젠장!”

쾅!

독고미로가 모닝스타를 내던지자 바닥이 움푹 파였다.

독고미로는 그쪽에 눈도 주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독고미로의 맨주먹이 한이의 배에 꽂혔다.

‘허억’ 하고 숨을 들이켜는 한이의 뒤쪽으로 독고미로가 빠르게 이동했다.

“…….”

힘이 다한 한이를 두고 독고미로가 아주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손날로 목을 내리쳤다.

한이는 이내 휘청거리다 그대로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만!”

함근형 선생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승부가 났다.

“독고미로의 승리!”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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