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32화 (431/925)

64. 믿음과 시험 (11)

사관학교 교류전 당시, 마족은 도시후의 광림을 이용해 도원우를 암살하려 시도했다.

그때 장남욱에게 도시후의 광림에 관해 듣게 되었다.

이능파를 구속하는 사슬.

사슬 자체도 일단은 실체화되니 그 사슬로 공격을 가할 수도 있지만, 공격력 자체는 낮은 편이라 했다.

그러니 공격형이라고 하기엔 미묘하고 포획형이라는 게 장남욱의 설명이었다.

‘설마 도시후의 사슬이 무지기를 봉인하고 있던 건가!’

사실 하왕조의 우왕과도 싸웠다는 전설을 가진 진족이라면 완력으로 그 사슬을 끊고 도시후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마족이 손을 빌려줬다면 어떨까.

또, 무지기는 ‘사슬’이라는 개념과 극악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어부가 무지기를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다고 했어. 하지만…….’

무지기는 사슬과 쇳덩이에 묶여 강 아래에 가라앉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무지기는 물 위로 다시 올라오게 되었다.

그 계기는 낚시를 하던 어느 어부의 발견이었다.

어부는 초주의 자사(刺史)에게 자신이 낚시 중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노라 고했다.

자사는 수십 명의 어부와 50마리의 소를 동원해 쇠사슬을 끌어 올려 무지기를 물 밖으로 끌어 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하왕조는 진작에 끝나 무지기를 제압할 우왕도 사라졌고, 눈앞에는 평범한 사람과 소들뿐.

무지기는 얼마든지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지기는 제 몸에 사슬이 매인 걸 보고 다시 물 아래로 돌아갔다.

‘도시후의 광림은 무지기를 잡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우연일 리가 없어.’

물에 집착하는 도시후, 수영 연습을 하다가 몇 번이나 빠져 죽을 뻔한 도시후, 뱃멀미를 하는 도시후.

물과 엮인 도시후의 모습을 떠올리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처치는 끝마쳤어요.”

“수고했다.”

마침 무지기의 치료가 끝난 듯했다.

제천대성은 나중에 유상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생각인지 디바이스 코드를 교환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 장면을 보던 도원우가 추한 소리를 할 법한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상대가 제천대성이라 주눅이 든 게 아니라 더는 자신이 유상희에게 추하게 굴 입장이 아니란 걸 깨달은 듯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는지 학생회 임원들과 유상훈이 도원우를 한 번씩 흘끗 쳐다봤다.

나는 도원우에게 쏠린 시선을 분산시킬 겸, 자리를 정리할 겸 말했다.

“곧 플레이어 협회에서 이쪽으로 올 겁니다. 이계는 곧 공략될 테니 협회가 부른 프로 플레이어 팀은 돌아가겠지만, 협회의 집행부가 이 연구소를 조사할 거예요.”

“이 자리는 내가 맡겠다. 다들 돌아가도록.”

도원우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있던 일을 다 책임질 모양인가 보다.

물론, 도원우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으나 일단 여기에선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일 듯했다.

‘도원우의 말대로 물러나야겠지. 여기에 있어 봤자 도원우를 도울 방법이 없어. 일단 대책은 세워 놨으니 나중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추가로 무슨 수를 둘지 생각해야…….’

그때, 누군가가 도원우의 앞에 섰다.

“나도 여기에 남을 거야.”

“……상희야.”

남겠다고 선언한 건 유상희였다.

유상희는 무지기를 치료할 때 제 몸에 남은 상처는 그대로 뒀는지, 목에는 주사기로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유상희는 엉망이 된 연구소와 제천대성의 품 안에 있는 무지기를 내려다봤다.

몸에 걸친 재킷 틈 사이로 보이던 생채기도 사라지고 혈색도 좋아졌으나 무지기는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바보같이 저 쓰레기들한테 속는 바람에 하면 안 될 짓을 했어. 이런 정체불명의 실험에 협력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게 왜 네 잘못인데!”

유상훈이 유상희의 말을 끊어 먹으며 큰 소리를 냈다.

평소에 유상희에게 반말을 쓰는 건 알았는데, ‘너’라고 부를 줄은 몰랐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여기에서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면 곤란할 텐데…….’

기껏 가면을 쓰고, 학생회 임원들과 떨어져 행동해서 정체를 숨겼는데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제 학생회 임원들도 유상훈이 이 자리에 온 걸 다 알게 되었다.

영민한 학생회 임원들은 알고도 모른 척해 줬다.

대신 유상희의 말에 함께 반박해 줬다.

“맞아요, 속이는 게 잘못이죠.”

“속는 게 잘못이란 건 사기꾼들의 논리지.”

“저 쓰레기들은 우리 그룹의 이름을 달고 있었어. 그러니 이 자리에선 내가 책임을 져야 해.”

도원우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들이 유상희를 설득했지만, 유상희는 끝까지 남겠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내가 여기에 드나든 건 금방 밝혀질 거야. 플레이어 협회의 조사에 빨리 협력하고 싶어.”

유상희는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더 설득할 길이 없었다.

유상희의 존재를 은폐하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그녀가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다.

유상희와 도원우를 이런 곳에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속이 뒤틀렸다.

“사람이 오는군. 소란을 피하려면 자리를 비우는 게 좋을 거다.”

제천대성이 위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이 나오니 지명수가 자리를 수습했다.

“가자, 얘들아.”

“하지만…….”

“여기는 두 사람한테 맡기자.”

유상훈은 유상희가 남는 것에 큰 불만을 표했지만, 자신이 여기 남아 봤자 설득도 못 하고 일만 복잡해지리라는 걸 깨닫고 발걸음을 뗐다.

나는 유상훈을 달랠 겸, 다른 이들을 안심시킬 겸 말했다.

“천동하가 올 거다. 믿을 만한 사람들을 모아 온다고 했다. 상황을 수습하는 데에 도움을 줄 거야.”

TC 그룹과 관련된 천씨 들의 행보는 영 탐탁지 못했으나 천동하는 믿을 수 있었다.

천동하가 온다는 말에 염준열을 비롯한 학생회 임원들은 그나마 안심하며 자리를 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기숙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직 가야 할 곳이 있어.’

운명력이 남긴 단서를 캘 필요가 있었다.

디바이스를 켜 위치를 확인하고 이동 타입의 광림을 사용하려 할 때였다.

“내가 가기 전에 일이 끝났나 보군.”

20대 모습을 한 황지호가 내 앞에 서 있었다.

황지호의 등 뒤로 사라지는 이계의 틈이 보였다.

파아아……!

저 멀리 협회가 파견한 플레이어 팀이 접근하는 게 보이는 것과 동시에 이계 공략 종료 알림 메시지가 디바이스에 도착했다.

메시지를 보니 황지호는 제일 먼저 공략을 마쳤으나, 아직 다른 이계 둘은 공략 중인 듯했다.

‘……생각보다 빨리 공략했어!’

황지호가 맡은 이계의 희귀도가 낮았던 건가?

아니, 희귀도는 세 곳 다 같았는데.

20대 모습을 한 황지호는 방금 이계 공략을 마친 것 치곤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평소와 다른 건 목 근처의 셔츠 단추를 두 개 정도 더 푼 것뿐이었다.

“어디에 가는 거지? 이번엔 동행하마.”

황지호는 내가 아직 귀가할 생각이 없는 걸 아는 듯했다.

*    *    *

도시후는 어릴 적 유괴된 순간을 꿈으로 꾸고 있었다.

수영 교실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평소대로 자신을 마중 온 차에 올라탔을 때였다.

도시후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차는 평소 타던 차였는데, 운전기사나 경호원들의 얼굴이 전부 바뀌어 있었으니까.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들 어딘가 달랐다.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도시후의 물음에 잠깐 놀란 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횡설수설 변명을 했다.

운전기사는 감기에 걸려 대리로 다른 사람이 왔고, 경호원들은 경조사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는 영 시원치 않은 변명이었다.

‘여기에서 바로 내렸으면 뭔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어린 도시후는 의심보다는 자리를 비운 이들의 걱정을 먼저 했다.

감기에 걸린 운전기사에게 보낼 병문안 선물을 고르고 안부 인사를 하려고 디바이스를 켠 순간.

도시후는 까무룩 기절했다.

도시후가 한눈을 팔자 이들이 곧바로 공격을 가했던 것이다.

도시후가 눈을 뜨자 낯선 풍경이 보였다.

‘난 납치된 거구나……!’

도시후는 곧바로 자신의 처지를 파악했다.

도시후는 숨을 죽이고 계속 기절한 척하기로 했다.

납치시 가장 우선할 것은 자신의 생존, 그다음이 구조 요청이었다.

도시후는 교육받은 대로, 납치범에게 들키지 않게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애썼다.

실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수조였다.

수조 안에는 쇳덩이와 쇠사슬에 묶인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저게 뭐지……?’

도시후는 그것을 똑바로 보려 했지만, 곧 눈을 꼭 감았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던 탓이다.

―현 상황을 보고하라. ‘이것’의 제어는 어떻게 되고 있지?

―바닷속이나 강 속에 묶어 두면 안전합니다. 하지만 인공 수조에 넣어도 상륙하면 귀신같이 눈치채고 날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라는 건 아마 수조 속에 든 무언가를 칭하는 말인 듯했다.

도시후는 곰곰이 저들의 말과 본 것을 바탕으로 생각했다.

‘수조에 든 무언가는 얌전해. 그렇다면 지금은 강이나 바다 위인 거구나!’

도시후는 비록 뱃멀미가 심한 편이나 선박왕의 아들로서 배에 관한 공부를 했다.

도시후는 지금 자신이 배 안에 있고, 또 이 배에는 강이나 바다와 바로 이어지는 수조를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도시후는 배의 장식물 따위를 보며 필사적으로 배의 모델을 유추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머리를 너무 굴린 탓일까, 아니면 상대가 기민한 탓일까.

도시후가 정신을 차렸다는 걸 상대에게 들키고 말았다.

―눈을 떴군. 즉각 실행하라.

누군가가 도시후의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손목을 거칠게 낚아채 통증이 느껴졌지만, 도시후는 꾹 참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안 돼!’

가장 먼저 처리당하는 인질은 납치범의 얼굴을 기억한 인질이다.

도시후는 그 말을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있으려 애썼다.

―현명하군. 멋대로 눈을 뜨면 그 눈을 멀게 할 생각이었는데.

도시후의 행동은 정답이었나 보다.

도시후는 당장 붙잡힌 왼팔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심리적인 공포와 싸우는 게 더 힘들었다.

상대는 도시후를 다치게 하는 데에 주저가 없어 보였으니까.

‘그래도 바로 죽이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야!’

겁에 질려 있었지만, 그 생각이 도시후를 버티게 했다.

―다 되었나?

―네, 협회의 광림 봉인술을 지웠습니다.

왼쪽 손목이 타는 것처럼 아팠는데, 광림 봉인술을 억지로 지운 듯했다.

당장이라도 손목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도시후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무사히 가족에게 돌려보내 주마.

시키는 대로 하면?

도시후는 귀를 기울였다.

안전교육을 받을 당시 가능하면 납치범이 시키는 대로 응하라고 배웠다.

부모에게 전화를 걸거나, 도와달라고 말하거나, 납치범이 요구한 돈을 옮기거나 하는 행위가 그러했다.

그러나 상대가 요구한 건 예상치도 못한 것들이었다.

―너는 지금 광림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광림 봉인술을 지웠다고 했다.

그 봉인술을 지운 건 자신을 아프게 해서 겁을 줄 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시후는 납치범의 목적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납치범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그 광림으로 네 앞에 있는 존재를 봉인하라.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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