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33화 (432/925)

64. 믿음과 시험 (12)

운명력, 무지기, 도시후의 광림.

이 단서를 캐기 위해선 도시후를 직접 만나는 게 제일이다.

전에 장남욱이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고등부는 10시부터 교내외 출입이 통제된다고 했으니, 서둘러 가면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동 루트를 머릿속에 짜 두었는데 변수가 몇 개 생기고 말았다.

그 변수 중 하나가 황지호였다.

“다친 곳은 없군. 에어 리무진을 대기시켜 뒀다. 아, 도보로 이동하는 게 빠른가?”

위험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관학교로 가는 것 정도야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 딱히 같이 갈 필요가 없는데.

조금 고민했지만, 황지호의 동행을 거절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같이 가기로 했다.

“……탈게.”

순순히 탄다고 한 게 마음에 든 건지 황지호가 눈을 휘며 웃었다.

다소 흐트러진 차림도 그렇고, 평소에 20대 모습을 한 황지호를 볼 기회가 없던 탓에 굉장히 낯설었다.

‘나이대별 분신에게 맡기는 역할이 각각 다른 것 같은데.’

황지호는 여러 나이대의 분신을 운용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황유호와 1학년 0반의 돌아이 황지호는 논외.

저 둘은 뻔뻔하게 아이들 사이에 섞여서 등교하는 중으로, 노친네가 나잇값을 못 한다는 증거였다.

10대의 황지호는 슬슬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아직 별다른 역할은 없다.

그러나 다른 나이대의 분신은 조금 달랐다.

‘30대, 60대 모습을 한 황지호는 아마 ‘대외용’일 거야. 대외 활동을 할 때는 보통 그 모습이었으니까.’

황명 그룹의 총수이자, 황명 재단의 이사장, 60대 모습의 황명호.

권제인 내한 공연 당시 호연관에 등장해 연주회를 듣고, 권제인을 상대한 30대 모습의 황지호.

중국에서 현무와 리웨이를 상대할 때에도 30대 모습이었다.

‘20대 모습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분신의 겉모습이 힘을 다룰 때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20대 버전이 60대나 초등학생의 분신보다는 다루기 쉽지 않을까?

어쩌면 저 20대 버전 분신은 보이지 않는 곳, 최전선에서 싸워 왔을지도 모르겠다.

방금 순식간에 이계를 공략한 것처럼.

‘……아니, 단순히 다른 원인 탓에 그럴 수도 있지.’

에어 리무진에 올라탄 후, 동승자가 내가 생각한 그 ‘단순한 원인’을 지적했다.

“0반 돌…… 황지호랑 닮은 거 같은데.”

이 자리엔 황지호 외에도 또 다른 변수가 있었다.

그게 바로 유상훈이었다.

지상으로 올라갈 때, 우리는 각자 진입한 루트를 통해 올라갔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 번이라도 눈에 익은 공간에서 싸우거나 몸을 숨기는 게 유리하지 않겠냐는 게 안다인의 제안이었다.

염준열이 좀 아쉬워하긴 했으나 결국 전원 안다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무사히 지하를 빠져나온 후, 내일 보자고 인사하는 내게 유상훈이 불쑥 말했다.

―너 기숙사 들어가는 거 보고 들어갈 건데.

유상훈은 마치 내게 일정이 남아 있는 걸 아는 것처럼 굴었다.

그럼 기숙사를 들렀다가 가는 게 좋을까?

곧바로 반응하지 않은 게 실책이었을까, 유상훈이 바로 내 생각을 간파했다.

―기숙사에 들어가는 척해도 안 속는다.

그 직후, 황지호까지 합류하게 되었다.

황지호는 유상훈에게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건지 관찰당하고 있는 걸 알아도 태연하게 굴었다.

‘유상훈이 지적한 대로 20대 모습은 10대의 황지호와 굉장히 가까워.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분위기로 숨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최근에 황지호는 키를 더 키우지 않았던가.

20대 모습으로 활개 치고 다니면 황지호의 정체가 쉽게 드러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냐?”

유상훈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여기에 올라탄 건가.

탑승한 직후에 좌표를 전송한 탓에 진작에 이 에어 리무진은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데.

광림을 해제하고 까마귀 가면을 벗으며 답했다.

“군사관학교. 장남욱한테 메시지 보냈는데 아직 답변이 없어.”

“거긴 왜?”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장남욱하고 연락이 안 되면 도시후한테…….”

딩동.

그때, 디바이스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장남욱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장남욱] 의신아.

[장남욱] 혹시 알고 연락한 거야?

장남욱은 그답지 않게 안부를 묻는 인사도 없이 짧은 메시지로 답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돌려 묻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나] 도시후한테 무슨 일 있어?

이 메시지를 보내자 곧바로 읽음 처리 되었으나 바로 답변이 오지 않았다.

길게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는 중인가 보다.

그사이 내 양옆에 앉아 내가 켜 둔 홀로그램을 들여다보고 있던 20대의 황지호와 유상훈이 대화하기 시작했다.

‘20대 모습의 황지호, 유상훈 저 둘은 초면일 텐데…….’

물론, 10대의 황지호와 유상훈은 서로 면식은 있지만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그런데 저 둘은 은근히 말이 잘 통해 보였다.

“도시후와 엮인 일이었나.”

“도시후랑 아는 사이세요?”

“예전에 엮인 적이 있다. 직접 도시후와 만난 건 아니지만, 장남욱과는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지.”

“……장남욱하고요?”

장남욱의 이름이 나오자 유상훈이 휙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속이 훤히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상훈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너희들끼리 무슨 작당질을 한 거냐고 묻고 싶나 보다.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황지호가 입을 열었다.

“지금 만나러 가면 너도 알아 두는 게 좋겠군. 어차피 그 자리에 가게 되면 결국 알게 될 것 같은데.”

유상훈의 지금 행동력을 고려하면 알아낼 것 같긴 했다.

직접 전하는 게 오해도 없겠지만, 유상훈을 위험한 일에 휘말리게 하는 것 같아서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말해도 괜찮겠지? 너와 조의신, 장남욱 셋은 절친한 친구가 아닌가.”

“오늘 일하고 관계가 있나요?”

“아마 관계가 없는 건 아닐 거다. 조의신이 지금 도시후를 만나러 가고 있으니까.”

관계가 있긴 한데, 말을 그렇게 하면 어떡하나.

황지호가 저런 말을 한 이상 유상훈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장남욱과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려고 할 거다.

“그럼 들을래요. 장남욱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유상훈은 그렇게 말하곤 곧바로 단체 메시지방에 메시지를 툭 던졌다.

[유상훈] 네 얘기 들을 예정.

……지나치게 짧게 말한 거 아닌가?

이 타이밍에 저 메시지를 읽고 장남욱이 무슨 생각을 할지 벌써부터 걱정되었다.

유상훈이 보낸 메시지는 바로 읽음 처리 됐지만 긴 메시지를 작성 중인 장남욱이 바로 답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유상훈은 뒤늦게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지 추가로 메시지를 더 입력했다.

[유상훈] 나도 가는 중.

추가로 덧붙인 말은 더더욱 혼란을 부추기는 말이었다.

유상훈은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한 건지 홀로그램 창을 끄고 20대의 모습을 한 황지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사관학교 교류전 개회식을 기억하고 있나? 이건 그때 있던 사건이다.”

“아…… 그때 뭔 일이 있었구나. 그럴 줄 알았다.”

유상훈이 내 쪽을 흘겨보다 다시 노친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노친네는 그 상황이 유쾌한 건지 한 번 처웃었다.

“하하하!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나 보군.”

저렇게 처웃으면 1학년 0반 돌아이의 모습과 겹쳐져서 금방 정체가 들통날 텐데.

그러나 황지호는 신경도 안 쓰고 가끔 처웃기도 하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그사이 장남욱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장남욱] 방금 시후가 쓰러졌어. 상황이 수습된 지 얼마 안 돼서 좀 당황스러워. 규연이가 없었으면 큰일 났을지도 몰라. 지금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시후는 쓰러지기 직전에 광림을 발동했는데, 내 눈으로 봤을 땐 마치 시후가 물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여서

[장남욱] 응? 상훈아?

[장남욱] 그게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장남욱은 긴 메시지를 입력하다가 유상훈의 메시지를 보고 결국 중간에 끊었나 보다.

유감스럽게도 유상훈은 이미 디바이스 메시지창을 꺼 버린 상태였다.

[나] 도시후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줘.

[장남욱] 아…… 그래…….

장남욱은 유상훈에게 답변을 듣는 걸 빠르게 포기했다.

그 대신 처음 보낸 메시지보다 좀 더 질서정연하게 이야기를 정리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해 줬다.

갑자기 발동한 도시후의 광림.

장남욱의 눈에 보인 깊고 어둡고, 무거운 무언가.

도시후의 숨통을 조이는 무형의 물줄기.

그리고 그 상황을 막은 남궁규연의 힘.

[장남욱] 규연이가 땅에 삽을 꽂으니까 흙벽이 솟아올라서 시후를 감쌌어. 그러자 시후가 숨을 제대로 쉬더라.

토극수(土克水).

음양오행설 중, 상극관계에 놓인 오행 중 땅의 기운이 물을 막는다는 말이 있다.

물의 기운이 도시후를 덮치자 남궁규연이 흙의 기운을 이용해 이를 저지한 것이다.

도시후의 안전을 확보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뭔가 마음에 걸렸다.

‘남궁규연이 땅의 힘을 다룬다고? 플마고에선 제대로 나오지도 않은 인물이 이런 힘을…….’

이 세계에서 지력이 가진 힘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게다가 남궁규연은 그 남궁 그룹의 일원이기도 했으니까.

남궁 그룹이 지력 터미널 개발과 엮인 건을 생각하면 더 마음에 걸렸다.

‘홍규빈은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이름을 버려야 했는데, 남궁규연은 달랐어.’

홍규빈과 남궁규연의 나이 차가 있으니, 그사이 교육 방침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홍규빈처럼 유능한 아들을 호적에서 파낼 정도로 완고하게 굴었는데, 그렇게 쉽게 가치관을 바꿀 것 같진 않았다.

‘……지금은 도시후에 관해 생각하자.’

도시후를 보러 간다는 말에 장남욱이 크게 환영했다.

도시후 암살 미수 사건에 가담한 간호 장교가 있던 군사관학교 병원에 그를 맡기는 것보단, 내가 그를 살펴보는 게 더 믿음직스러운 듯했다.

“도착했군.”

약속 장소는 군사관학교 인근에 있는 호텔이었다.

이동 중에 대화를 마친 유상훈과 황지호는 한결 친해진 건지 가끔 한마디씩 말을 나누곤 했다.

나보다 저 둘이 더 말을 많이 나누는 것 같다.

황지호가 예약한 스위트 룸에서 장남욱과 도시후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장남욱은 언제 온대?”

“방금 외박계 받았다고 하니까, 곧 올걸.”

“기다리는 동안 한 잔씩 들지. 룸서비스도 원하는 걸 시켜라.”

황지호가 그렇게 말하며 객실 미니바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얼음을 담아 내밀었다.

황지호는 자연스럽게 유상훈의 몫도 내주었는데, 유상훈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황지호가 자신의 몫의 음료를 준비하려 할 때였다.

“……!”

황지호가 손을 멈추고 문가로 날 듯이 뛰어갔다.

문가를 보는 황지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그래?”

“……온다. 다들 물러나도록.”

그 말에 반사적으로 나와 유상훈이 객실로 몸을 숨겼다.

객실에 숨어서 밖을 살펴보고 있자니,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나타난 건 프론트에 맡긴 카드키로 문을 연 장남욱이었다.

문제는 그 뒤에 서 있는 존재였다.

“네가 왜 여기 와 있지?”

장남욱의 뒤, 도시후를 안아 든 제천대성이 서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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