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틈 (2)
괴도 네온과 구슬비.
두 관종은 1학년 0반에 소속한 학생 중, 본인들을 제외한 등교 거부자를 등교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바로 난항에 부딪혔다.
“크윽…… 은광고 학생 개인 정보를 얻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이름을 알아내는 것조차 힘들 줄은 몰랐다!”
괴도 네온이 정보상을 수소문해 봐도 은광고의 학생 명부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가 애용하는 정보상을 통해 마족이 여는 비밀 경매의 장소, 인신매매단의 이동 루트 등은 알아낼 수 있었지만, 1학년 0반 등교 거부자의 명단은 얻을 수 없었다.
은광고 학생 명단은 딱히 수요가 많은 것도 아닌데 그에 비해 입수 난이도가 높은 탓이었다.
“은광고 학생들은 다 플레이어잖아. 플레이어 개인 정보 보호법 때문에 관리도 철저하게 되어 있고, 은광고에 외부인이 들어가기도 힘들고, 들어간다 해도 우수한 플레이어들이 넘쳐나고.”
“크으윽!”
구슬비의 냉철한 분석에 괴도 네온이 온몸으로 좌절을 표현했다.
구슬비는 괴도 네온만큼 대놓고 감정을 표현하진 않았지만, 구슬비 역시 좌절하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화려하게 재등장하기 전까지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고 싶었다!”
“여태까지 너무 눈에 띄었어…… 하, 내가 너무 멋지고 위대한 드루이디스였던 탓에 존재감을 완벽히 숨기지 못했어!”
이미 몇 번 발각된 탓에 그들의 존재는 어느 정도 인지된 상태였다.
예고편도 자주 반복되면 지겨워지지 않는가.
자꾸 모습을 드러내면 그들이 꿈꾸는 완벽하고 신선하며 눈에 띄는 등장을 하기 어려워질 게 뻔했다.
괴도 네온과 구슬비는 한참 괴로워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이번 작전은 꼭 성공시키자!”
“그래…… 우린 아직 진 게 아니야!”
두 관종은 다시 결의를 다지고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괴도 네온이 마련한 아지트 안 곳곳이 크고 작은 은광고 지도 홀로그램으로 가득 찼다.
중앙 구역 쪽 지도를 보며 한참을 궁리하던 구슬비가 말했다.
“학생 정보를 관리하는 곳은 은휘관이잖아. 거기 역대 0반들이 몇 번이나 쳐들어가려다가 실패했다던데.”
0반 학생들의 은휘관 침입 시도 사건은 한두 번 일어난 게 아니었다.
올해만 해도 2학년 0반이 제갈재걸에게 일을 시키는 황명호 이사장에게 보복하겠다며 소음 테러를 시도하려다 공청훤에게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다.
또 작년에는 지금은 졸업한 3학년 0반이 구교사 철거를 반대하는 황명호 이사장에게 앙심을 품고 쳐들어가려다가 선도부에 의해 격퇴당하기도 했다.
은휘관은 수많은 0반의 습격 시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는 철옹성이었다.
“안심해라. 우리가 노릴 곳은 은휘관이 아니다.”
괴도 네온이 구슬비를 안심시켜주며 말했다.
“우리가 노릴 곳은 1학년 구역에 있는 1학년 담당 교직원 전용 교무실이니까!”
“거기에도 학생 정보가 있어?”
“그렇다. 1학년 교사 중에 아날로그식 출석부를 사용하는 분이 계셨다. 조금 알아보니 모든 학급의 출석부가 아날로그 타입으로도 존재한다고 하더군.”
“은휘관보다 잠입하기 쉽겠다!”
둘은 희희낙락하여 습격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들은 제일 먼저 해당 교무실을 이용하는 교사진의 명단을 확인하였다.
명단을 본 구슬비의 안색이 흐려졌다.
“창천명궁…… 유희계 용족…… 잠입하기 까다롭겠네. 못한다는 건 아니지만, 아주 조금은 어려울 것 같다.”
“괴도로서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
“난 괴도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지금 우리는 출석부를 가지러 간다. 그게 바로 괴도가 할 법한 일 아닌가!”
괴도 네온이 펼치는 괴도 철학은 늘 허무맹랑했지만, 이번만큼은 몹시 논리적으로 들렸다.
구슬비는 다소 분했지만 지금 자신이 괴도 일당이 되었다는 것에 수긍하기로 했다.
관종 괴도 2인조는 교사 명단과 시간표, 동선 등을 분석하는 데에 애썼다.
구슬비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평범한 교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선생님이 계실 땐 안 돼.”
“누구 말하는 거지?”
“1학년 1반 담임, 김신록 선생님. 감이 좋아 보여.”
괴도 네온은 그 말에 납득하진 않았지만, 파트너의 의견을 존중해 김신록도 주의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함근형, 용제건, 김신록 이 셋이 없을 시간대를 노려 출석부를 훔치기로 했다.
“함근형 선생님은 선도부 일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워. 홍천에 갈 때도 많은 것 같고.”
“방과 후에는 거의 확실하게 자리를 뜨는 것 같군. 용제건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학생회장의 귀가에 맞춰 퇴근하는군.”
“문제는 김신록 선생님이네. 늘 남아서 늦게까지 일하신다는데? 지익회 고문이긴 한데, 지익회 쪽에 잘 안 간대.”
구슬비의 말대로 김신록은 지익회실에 잘 가지 않았다.
자신이 가면 괜히 학생 자치 기구 운영에 방해될지도 모른다는 판단 탓에 그런 듯했다.
“김신록 선생님이 퇴근할 시각을 노리면 너무 늦군. 야간 경비 시스템이 작동하면 잠입 난이도가 크게 오른다.”
“아, 저분들 일찍 출근해서 아침에 잠입하기도 그런데. 용제건 선생님은 퇴근하기 전까진 교내에 귀신처럼 돌아다녀서 방과 후를 노리는 게 좋고…….”
“가끔 일 때문에 일찍 퇴근한다고 하니 그때를 노리도록 하지.”
그들이 골머리를 앓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지익회장 계이담이 조의신과 대련한 결과 양호실에 입원했는데, 고문인 김신록이 방과 후에 바로 병문안을 갈 예정인 듯했으니까.
관종들은 그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교무실 주변 산책로에 대기했다.
김신록이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용제건이 불쑥 나타났다.
“김신록 선생님, 일찍 퇴근하네. 어디 가?”
“……이담이 병문안 갑니다.”
“그래? 어젯밤에도 가지 않았어?”
용제건이 꼬치꼬치 캐묻는 말에 김신록이 웃는 얼굴로 답했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는 관종들은 어쩐지 김신록이 힘겹게 웃는 얼굴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직 입원 중이니까요. 이담이가 걱정되네요.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김신록이 부드럽게 말하며 용제건을 떨쳐 내려 했지만, 용제건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용제건은 김신록을 따라 양호실로 갈 생각인 듯했다.
김신록은 몇 걸음 떼다가 멈춰 서서 말했다.
“곧 학생회 활동이 끝날 시각인데요.”
“응, 그렇네.”
“……준열이가 하교할 시간 아닌가요? 같이 하교하시는 걸로 아는데요.”
“아, 그걸 걱정한 거야? 고마워. 그런데 걱정 안 해도 돼.”
용제건의 웃음이 짙어졌다.
“오늘 준열이는 바로 귀가 안 하고 의신이랑 저녁 먹으러 갈 예정이야. 같이 갈까 했는데, 동석을 거절하더라.”
“……그렇군요. 심심해서 따라오시나 보군요.”
김신록은 용제건을 질린 얼굴로 잠깐 보다가 고개를 돌려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용제건은 김신록 뒤를 열심히 따라다니며 뭐라 말을 걸긴 했는데, 점점 멀어져서 두 관종들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름지기 괴도란 틈을 잘 노려야 하는 법.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또 그놈의 괴도 소리. 빅 벤에 예고장까지 날려 놓고 실패한 주제에…….”
“궁극적으로 그건 실패가 아니다. 그 위대한 천재의 그림은 있어야 할 자리로 향했으니까.”
괴도 네온이 한 설명에 의하면 최근 홍경복 화백이 ‘이무기의 귀천’ 수색에 손을 늦추고 있다고 한다.
괴도 네온은 아마 홍경복 화백이 ‘이무기의 귀천’을 확보했기에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고 판단했다.
또 괴도 네온의 말로는 그가 주목하는 어느 천재의 얼굴이 몹시 밝아졌다고 한다.
“……그 천재라는 건 1학년 0반 민그린 말하는 거지?”
“그렇다!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위대한 천재 화백이지.”
괴도 네온이 존경과 동경을 품는 게 느껴지자 구슬비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왜 복잡한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는 게 짜증 났다.
갑자기 괴도 짓을 할 의욕이 사라지려 할 때였다.
“자, 이 외투를 걸치도록! 네 몫의 괴도 복장을 준비했다!”
괴도 네온이 트렁크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흰 비단 위에 눈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하얀 비즈가 학 모양으로 수놓아진 얇은 겉옷과 학의 얼굴을 본뜬 가면이 들어 있었다.
소매가 넓은 탓에 마치 멀리서 보면 학이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일 듯한 화려한 의상이었다.
구슬비는 너무나도 멋지고 아름다운 선물에 감격했다.
‘세상에…… 이렇게나 멋질 수가!’
방금까지 느꼈던 이유 모를 서운함이 눈 녹은 듯이 사라졌다.
구슬비가 기뻐하며 옷을 걸치자 괴도 네온이 뿌듯해하며 이를 지켜봤다.
구슬비는 갑자기 민망한 기분이 들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이 옷 입으면 튀는 거 아니야? 몰래 들어가야 하잖아.”
“그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소 타협하여 예고장을 보내는 건 참았지만…….”
괴도 네온은 예고장을 보내지 못하는 게 아쉬운지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고 단호하게 외쳤다.
“그렇다고 해도 괴도 행위를 소홀히 할 수 없지. 괴도에게는 어울리는 의상이 있는 법이다. 내 파트너의 얼굴을 땔감으로 가리고, 거적때기를 입힐 수는 없어!”
구슬비는 내 파트너라는 말에 조금 설렐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정신을 차렸다.
만약 괴도 네온이 자신이 만든 드루이드의 의상을 까지 않았다면 괴도 네온에게 찬동할 뻔했다.
“오늘의 의상 콘셉트는 군계일학(群鷄一鶴)…… 아니, 군계이학(群鷄二鶴)이다! 시련을 극복해 은광고 군중 사이에서 빛나는 두 마리의 학이 되는 거다!”
괴도 네온도 학을 수놓은 겉옷을 입고 그렇게 말했다.
억누를 수 없는 관종의 본능 탓에 결국 둘은 몹시 눈에 띄는 의상을 입고 교무실로 쳐들어갔다.
괴도 네온의 문 따기 기술로 교무실에 소리 없이 잠입하는 건 성공했지만, 저 학 의상을 입고 눈에 안 띄는 건 불가능했다.
“……얘들아, 뭐 하니?”
교무실에서 근무하던 교사가 기척 없이 나타난 학 두 마리를 보고 기겁했다.
출석부를 품에 안은 두 관종이 움찔거렸다.
“제길, 들켰군!”
“기껏 몰래 잠입했는데!”
“아니, 너희들이 한 건 잠입이 아니라 습격…….”
“퇴각한다!”
두 관종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동안 1학년 0반을 관찰하며 함근형과 황지호의 눈을 피하느라 둘의 도주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상태였다.
교사들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두 괴도의 도둑질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한참 멍하니 있던 교사들이 뒤늦게 움직였다.
“……0반 학생부터 살펴보죠.”
“2, 3학년부터 확인해 보겠습니다. 걔들은 요새 단체 활동을 많이 해서 금방 확인될 것 같아요.”
교사들이 제갈재걸과 임연화에게 2, 3학년 0반의 근황을 묻는 사이, 교사가 텅 빈 출석부 보관함을 보며 말했다.
“출석부는 김신록 선생님이 애용하셨는데, 새로 인쇄해야겠네요.”
“김신록 선생님 몫만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요? 다들 디바이스로 출결 관리를 하잖아요.”
“그래도 전 학년분을 다 준비해야 할걸요?”
이들 중 가장 연차가 있는 교사가 비품 신청서를 작성하며 말했다.
“황명호 이사장님이 직접 지시한 사항이라 어기기 좀 그래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