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62화 (460/925)

67. 틈 (4)

그 여학생은 주수혁의 많은 팬 중 하나였는데, 주수혁과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소속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플마고 속 주수혁 팬덤 사이에서 귀한 취급을 받았다.

그녀는 별세계의 존재나 다름없는 주수혁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많이 알고 있었으니까.

플마고 속 주수혁의 팬덤 내에서 그녀의 위상은 높은 편이었고, 주수혁 앞에선 스스로를 잘 포장할 줄 알았다.

그래서 주수혁은 그녀를 ‘좋은 동창’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달리 보였다.

‘자질도, 성품도 바닥이었는데.’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은 은광고 내에서 바닥을 기었으나, 나름 주수혁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는지 플마고 속 은광고에선 낙제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들었다.

한국 최고의 명문고에서 낙제를 면하고 버티는 건 그거대로 굉장한 일이지만, 좋게 볼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여학생은 강자한테는 약하고, 약자한테는 강한 전형적인 저열한 성품의 소유자였으니까.

그 증거로 주수혁이 대놓고 좋아하는 안다인에게는 싫은 눈초리조차 보내지 못했다.

그녀는 안다인이 무서워 뻗대지 못하는 사실을 주수혁의 인간관계를 용인하고 사생활을 존중하는 척 가장하는 데에 이용했다.

그래서 주수혁은 자신에게 열성 팬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소 방심했다.

‘방윤섭이 죽고 주수혁이 한창 힘들어할 때 그런 짓을 벌이다니.’

하지만 낮은 능력치를 타고난 강약약강 캐릭터 대부분이 그렇듯, 결국 강자 구슬비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실체가 드러나고 벌을 받는다.

구슬비를 약자로 상정한 그 여학생은 학교 밖으로 구슬비를 꾀어내었다.

은광고 내부에는 그 여학생 같은 악성 팬이 없었기에 구슬비를 1대 다수로 압박하기 힘들었던 탓이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구슬비가 오합지졸에 당할 위인이 아닌데.’

악성 팬들을 모아 온 그 여학생은 구슬비에게 몇 마디 험한 말을 하고 멱살을 잡으려다 구슬비가 부른 새 떼들의 배설물을 정통으로 뒤집어쓴다.

관종 구슬비는 승리 장면을 연출한답시고 웅장한 음악과 조명을 깔았는데, 그 탓에 이목을 끌어 주수혁의 눈에 띄고 말았다.

딱히 구슬비가 주수혁에게 저 여학생의 실체를 알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일은 점점 커졌다.

주수혁은 구슬비 사건을 계기로 여학생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고 그 여학생이 가입한 악성 팬 커뮤니티가 그간 벌인 짓을 파악하게 되었다.

‘강약약강의 실태가 드러났지. 악성 팬 커뮤니티 중심에서 주수혁 주변의 약자를 욕했던 걸 들켰으니까.’

악성 팬 커뮤니티 회원들이 주수혁에게 울며불며 용서해 달라고 빌었지만, 주수혁은 선처를 원하면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라며 더 화냈다.

주수혁은 악성 팬 커뮤니티를 폐쇄하고 피해자들을 찾아 하나하나 사과하고 당사자가 원하면 법적 대응을 도왔다.

이후 그 여학생은 주수혁과 인연이 끊기고 다시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 여학생이 악성 팬 커뮤니티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다 파악할 순 없지만, 구슬비 건의 중심에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당연한 결말이라 생각한다.

‘이 세계에는 주수혁의 악성 팬 커뮤니티가 만들어지지 않았지.’

주수혁의 악성 개인 팬이 집결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 이 세계에선 벌어지지 않았다.

통칭 악개 팬 광화문 현피 사건.

주수혁과 안다인의 악개 팬들이 광화문에 모여 현피를 뜬 사건으로, 플마고 내에선 10월에 벌어졌어야 할 일이었다.

그 사건은 이 세계에선 발발하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두 사람이 나온 기사를 체크하고, 기사를 퍼 간 플레이어 관련 커뮤니티를 체크했으니까.

‘포털 사이트 약관에 어긋난 글과 댓글은 곧바로 신고하고, 필요하면 댓글을 여러 개 달아 여론이 형성되기 전에 묻어 버리니 뭉치질 못했지.’

내가 기억하는 플마고 속 주수혁의 악개들 개인 하나하나에는 그리 대단한 힘이 없었다.

불씨가 모여 커다란 불이 된 거라 사전에 소화 작업을 하면 이들이 뭉쳐서 거대한 화력을 내보일 일이 없었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안다인 팬덤 쪽에 정화 작업을 열심히 하는 팬이 있던 덕이었다.

……안다인 팬 하니까 차원과 세계를 뛰어넘은 전직 악플러, 은광고 지익회장이 떠올라 기분이 더러워졌다.

타이틀 히어로와 타이틀 히로인이 지나치게 완벽하고 잘난 탓에 별 쓰레기 같은 팬이 달라붙는 것 같다.

‘명찰에 ‘최영희’라고 쓰여 있잖아. ……잠깐, 최영희라고?’

플마고 속 주수혁의 동창이자 악개, 방윤섭의 실연 상대의 이름은 최영희였다.

저 이름을 보니 머리가 아파졌다.

‘영희’는 20세기 중반에 탄생한 이들 사이에선 흔한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시대의 10대 중에 저런 이름을 가진 이는 드물었고, 은광고 1학년 중에서 저 이름을 가진 건 단 한 명이었다.

나는 1학기가 얼마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 적호를 통해 입수한 서류에서 그 이름을 본 적이 있었다.

‘특별 전형 부정 입학자다……!’

은광고 특별 전형 최종 합격자는 넷.

맹효돈을 제외한 셋은 최편득이 서류 조작으로 합격시킨 부정 입학자였다.

그 셋 중 둘은 최편득에게 뒷돈을 찔러 넣었지만, 한 명은 달랐다.

지금은 퇴학당한 부정 입학자보다 못한 학생을 하나 합격시켜 놔야 의심을 덜 산다는 이유로 발생한 선의의 피해자였다.

본래는 입학 자격이 없지만, 선의의 피해자인 점을 감안해 은광고에서 기회를 줬다.

그 기회를 살려 최영희는 은광고에 잔류했다.

……그런데 본인은 몰랐다지만 부정 입학자였던 주제에 구슬비한테 그런 소리를 한 건가!

‘방윤섭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날이 오다니!’

방윤섭은 등신이지만 자기 힘으로 은광고에 합격했고 지금은 무려 탁거산의 제자다.

플마고 시절 최영희와 마찬가지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구석이 있었지만 적어도 뒤에서 남몰래 수작을 벌이진 않았다.

현재 최영희는 악성 팬 커뮤니티 소속도 아니고 구슬비에게 뭐라 하지도 않았고, 은광고 상위 50% 안에 들어가 은광고 학생으로 인정받긴 했다.

그래도 플마고 시절 행적으로 봤을 땐 방윤섭이 압도적으로 아까웠다.

어쩌다가 내 빵셔틀이 저런 인간을 좋아하게 되어 마음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다가 플마고 같은 국민망겜을 좋아하게 된 내가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윤섭아, 그럼 먼저 들어갈게. 의신이랑 얘기하고 와.”

방윤섭이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니 주수혁이 물러나기로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방윤섭이 봤을 때 열받을 상대는 그놈을 빵셔틀로 삼은 나다.

그런데 방윤섭은 내 존재를 무시하고 주수혁과 최영희를 향해 씩씩거리고 있었다.

‘최영희가 주수혁 팬이라는 걸 알았나?’

둘은 같은 중학교 출신이니 누군가 중학교 시절의 두 사람에 관해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방윤섭이 직접 알아봤을 가능성도 있지만, 저놈이 그런 꾀를 발휘할 머리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자신을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최영희에게도 꺼지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보니 방윤섭의 연애 관련 눈치 지수는 0인 게 분명했다.

“…….”

“영희야, 가자.”

“……그래.”

주수혁과 함께 자리를 뜨는 도중에도 최영희는 방윤섭을 몇 번이나 돌아봤다.

방윤섭은 나란히 사라지는 둘을 쳐다도 안 보고 있어서 그걸 몰랐다.

‘쟤는 주수혁보다 방윤섭을 더 신경 쓰는 거 같은데. 방윤섭이 화를 내고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 세계는 많이 변했으니, 최영희가 만난 사람, 겪은 경험도 크게 변했다.

그러니 최영희의 감정과 생각도 플마고에 비해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직 판단할 근거가 적은 데다 사람 마음은 모르는 일이니 단정 짓긴 힘들지만.

“……빵 사 오게 시킬 거냐? 목록 내놓고 너도 주수혁 쪽으로 꺼져.”

방윤섭은 둘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서 짙은 패배감과 질투심이 묻어났다.

방윤섭은 주수혁, 맹효돈 같은 노력하는 천재 옆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다.

그러던 중에 마음에 둔 상대가 생겼는데, 그 상대가 주수혁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간 억눌러 온 열등감과 질투심이 폭발할 법했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다스리고 극복하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가에 따라 등신이냐, 사람이냐가 갈릴 텐데…… 방윤섭은 등신이었다.

“빵보다 쿠키가 좋을 것 같은데.”

“컥!”

쿠키란 말에 사레가 들린 방윤섭이 한참을 쿨럭거렸다.

기관지 상태가 정말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왜 평소에 담배를 피우겠다고 수선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방윤섭은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 질렀다.

“너! 너……! 아, 진짜! 알고 그런 거냐!”

“뭘?”

“……아오!”

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방윤섭이 이렇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데 멋대로 개입할 순 없었다.

쿠키란 단어 하나에 저리 발작을 하는데 여기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해 봐야 역효과만 날 거다.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네.’

할 일 중에 방윤섭 감시가 하나 더 늘었다.

일단 개입할 여지는 적지만, 말은 해 두기로 했다.

“최영희는 너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던데.”

“……네가 무슨 상관인데.”

“상관은 없는데, 일단 말은 해 두려고.”

“꺼져!”

마침 오후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 돼서 꺼지기로 했다.

꺼지기 전에 내 빵셔틀에게, 아니, 쿠키셔틀에게 미션을 전달했다.

“내일까지 MITRON에서 최영희한테 배달해. 쿠키 종류는 네가 더 잘 알 것 같으니까 맡길게.”

“야!”

뒤에서 ‘조의신, 개새끼야!’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나는 수업이나 들으러 가기로 했다.

방윤섭이 내 욕을 하루 종일 하긴 했지만, 늘 있는 일이라 은광고 학생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또 흡연하다가 걸려서 빵 배달을 하나보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게 평화롭게 오후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 활동을 가려고 할 때였다.

“조의신, 지금 나와 함께 가지.”

황지호가 불쑥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

신문부실로 함께 가자는 건가 싶어서 중앙 구역으로 계속 걸었는데 황지호가 앞을 가로막았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왜 그래?”

“오늘은 부 활동을 쉬도록. 시간을 아끼는 게 좋겠지.”

드디어 문새론이 등교해서 염준열의 스승에 관해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항인가?

일단 들어 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멈추니 황지호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 부부가 허락했다. 너도 가고 싶어 할 것 같군.”

‘부부’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태까지 황지호가 언급한 부부는 단 하나.

웅족에게 후예를 잃었다는 어느 호족 부부였다.

만우절 당시 백호군, 황지호, 적호의 활약으로 웅족들을 생포했는데, 그중에는 그 부부의 복수 대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부부는 호족의 가든 안에서 복수를 거듭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부부의 복수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하필 그 웅족이 흑막과 관련된 단서를 쥐고 있어 접촉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호족의 가든으로 안내하마.”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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