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97화 (495/925)

71. 수능 한파 (4)

소풍 장소 후보인 아쿠아리움으로 향하는 다인승 에어 택시 안.

아침 일찍 일어난 게 피곤했는지 조는 아이들도 많아서 나는 디바이스 메시지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서돌은 바로 몇 초전, 목우람의 외출이 길다며 내게 디바이스 메시지를 보냈다.

‘서돌이 목우람의 외출 여부를 어떻게 안 거지?’

서돌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목우람은 보통 교내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외출을 그리 길게 하지 않아서 오늘 오랜만에 나온 거긴 하다.

아마 목우람이 이렇게 길게 외출한 건 황명 그룹 소유의 전용기에서 열린 내 생일 파티 이후 처음이 아닐까?

문제는 어떻게 지금 서돌이 그걸 알고 있냐는 거다.

‘황지호가 눈치챈 것 같지는 않은데.’

아침잠이 없는 노친네는 깨어 있었다.

서돌이 지켜보고 있는 걸 알았다면 기분이 매우 나빠져 있을 텐데, 딱히 그런 기색이 없었다.

[꾀돌이] 저만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서돌은 자신 외에 누가 지켜보고 있는지 언급하지 않았지만, 굳이 디바이스로 목우람의 이름을 말한 걸 보면 누군지는 불 보듯 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누군가가 속한 집단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세 기사의 맹세……!’

첫 실습이 있던 날, 그들은 목우람을 노렸다.

하지만 그 장소에 영원의 호수 팀원들과 시델렌티움의 인장이 있었다.

그들은 까마귀 마왕 시델렌티움의 개입을 꺼려해 목우람 암살 계획을 한 번 접었다.

‘하지만 영원의 호수 팀원들이 항상 목우람의 곁에 있을 수는 없고, 시델렌티움이 목우람을 위해 개입하지도 않겠지.’

현재 까마귀 마왕은 ‘부와 생명의 무게’를 연구하느라 바쁘기도 할 거고, 목우람을 구할 이유가 없다.

엄밀히 따지면 나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목우람은 플레이어블 캐릭터도 아니고, 툭 하면 금방 은행 잔고를 털려 오는 호구다.

하지만 부반장으로서 우리 반 아이를 노리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서돌의 메시지가 계속되었다.

[꾀돌이] 제가 영국에 갔을 때, 세 기사의 맹세 본거지에 쥐를 몇십 마리 심어 놨거든요.

[꾀돌이]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말뼈다귀 같은 자식들이 한 번에 제 쥐를 다 죽여 버렸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역병이라도 뿌려 두는 건데, 아쉽게 됐어요.

서돌은 짧게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들리는 내용은 무시무시했다.

말은 저렇게 간단해도 본질을 들여다보면 저 과정은 진족의 수장과 세계 10대 플레이어 팀 간의 항쟁이니까.

서족의 수장이 ‘세 기사의 맹세’에 직접 제 권속을 들여보냈고, 플레이어 팀은 이에 대항해 권속을 모두 색출해 죽였다.

서돌은 역병을 뿌리지 못한 걸 후회할 정도로 열이 오른 상태다.

그렇다면 서돌이 목우람을 감시하는 이유는 아마도…….

‘복수할 생각이구나.’

현재 ‘세 기사의 맹세’가 표적으로 삼은 건 목우람이다.

그리고 그들이 단숨에 서돌의 권속을 제거했다는 건 정보를 차단하고 움직이겠다는 전조일 가능성이 크다.

서돌도 그렇게 판단했기에 목우람을 감시하는 중일 거다.

[꾀돌이] 어떻게 할래요?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말에 바로 답하기 어려웠다.

상대는 세계 10대 플레이어 팀의 일각이다.

서돌은 내게 협력해 줄 것 같지만, 아마 그는 목우람의 보호보다 ‘세 기사의 맹세’의 궤멸을 우선시할 거다.

알고 있는 정보는 적고 사용할 수 있는 피스가 적다.

두다 만 체스판 앞에 와서 눈을 감고 다음 수를 두는 기분이었다.

“조의신, 무슨 메시지를 봤기에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지?”

내 옆 좌석에 앉아 있던 황지호가 나를 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끼지 못할 만큼 집중하고 있었나 보다.

황지호는 불만스럽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에 내 메시지는 잘도 무시하더니, 그렇게 신경 쓸 정도라면 매우 중요한 내용인가 보군.”

모든 메시지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비록 황지호가 보냈을지라도 대답할 수 있는 메시지는 나도 확인 즉시 바로 답변을 보낸다.

메시지 운운하다 보니 어떤 생각이 들었다.

‘서돌이 황지호한테도 메시지를 보냈을 것 같은데. 지켜보고 있다면 지금 황지호도 여기에 있는 걸 알 테니까.’

서돌의 메시지를 확인하기 전, 황지호가 잠든 아이들을 보다가 흘끗 디바이스를 쳐다보지 않았나?

아마 그때 디바이스 메시지 착신 알람이 들렸을 것 같다.

“방금 전에 꾀돌이…… 서돌 디자이너한테 메시지가 오지 않았어?”

“나한테 말인가? 그러고 보니 온 것 같기도 하군. 요새 쓸데없는 메시지를 자주 보내서 무시하고 있다. 급한 일이라면 통화를 시도하겠지.”

황지호는 자신도 안 읽고 씹기, 읽고 씹기를 하면서 나한테 메시지 확인 안 한다고 뭐라 한 건가?

할 말이 많았지만, 번거롭기에 그냥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노친네에게 메시지 확인을 독촉했다.

“확인해 봐.”

“알았다.”

디바이스 화면을 켜 메시지를 열어보던 황지호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했다.”

파앗!

황지호가 허공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방음 결계를 전개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이 반 아이들에게 새어 나가면 곤란하다는 걸 잘 아나 보다.

“조의신, 설마 직접적인 이득이 없다고 해서 이 몸이 급우를 저버리고 너를 돕지 않으리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황지호가 도와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생각했지만,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긴 했다.

은광고 주변에서 일이 터지는 중이라면 모를까, 아니면 호족이 여유가 많다면 모를까.

호족은 지금 거대한 적과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그걸 잘 알고 있는 주제에 만난 지 몇 달 안 된 인간을 위해 세계 10대 플레이어 팀과 싸워 달라고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이 몸은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도울 예정이니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황지호는 딱 잘라 말했다.

생각을 더 하기 전에 황지호가 화제를 바꿔 버렸다.

“세 기사의 맹세 소속 팀원이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는군. 내가 느끼지 못할 만큼 멀리에 있나.”

아마 용제건이 여기에 있었다면 즉각 알아차렸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용제건은 처음에 사전 답사도 같이 가겠다고 했으나, 변덕을 부린 건지 전날에 약속을 취소했다.

‘같이 못 가는 걸 아쉬워했던 걸 보면 갑자기 잡힌 약속이 생긴 것 같던데…….’

그들은 우리가 은광고의 플레이어라는 점을 감안해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듯하다.

상대가 우리를 얕보지 않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표적이 고등학생이라 얕본 적이 방심한 틈을 타 일망타진한다는 계획을 세우는 건 불가능할 거다.

“상대는 우리 반이 소풍을 갈 예정이고, 지금은 답사를 위해 나왔다는 걸 알 거다. 이동하는 내내 계획에 대해 아이들이 이야기했으니 분명 들었겠지.”

“그럴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내가 암살자이고 결계가 쳐진 학교에 틀어박힌 기숙사생을 죽이려 한다면, 이번 소풍을 놓치지 않을 거다.

목우람이 다음에 장기 외출을 언제 할지 모르니 더 그랬다.

‘암살에도 준비가 필요할 테니, 사전 답사가 아닌 소풍 당일을 노리겠지.’

사전 답사를 하는 우리들을 지켜보는 건 우리가 어느 코스로 이동하고, 어떤 일정을 짤지 파악하기 위해서일 거다.

사전 답사를 하던 중에 노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적다.

‘세 기사의 맹세’는 아직 우리가 그들의 감시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으니까.

그 점을 이용해 태연하게 사전답사를 마치고, 소풍 때 대항하면 적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문제는 소풍 장소다.

황지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마침 소풍 예정지로 제안하고 싶었던 장소가 있었는데, 잘됐군.”

현재 대화의 흐름.

암살 위기에 처한 목우람.

‘세 기사의 맹세’를 상대할 만한 곳.

소풍 장소로 삼아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

이 점을 고려해 봤을 때, 황지호가 제안할 만한 곳은 한 군데 정도 떠올랐다.

“무사히 매매를 마쳤나 보네.”

“하하하! 역시 바로 알아차리는군. 아직 리모델링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시설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

황지호가 디바이스 지도를 켜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지도는 석촌호수 주변의 인공섬을 비추고 있었다.

“황명 테마파크가 될 예정인 유원지로 유인하는 게 좋겠군.”

*    *    *

은광고 연구동 구역, 광림연구4관 은영관 앞.

은광고는 현재 수능을 맞아 휴교 중이라 매우 한산했다.

비행 스킬을 사용해 텅텅 빈 교내를 산책하던 용제건이 은영관 정문 앞에 착지했다.

은영관은 출입 허가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장소로, 근속 년 수가 긴 용제건이 아직 한 번도 발을 디디지 못한 장소였다.

친우인 김신록은 이곳에서 업무를 보기에 한 번 들여보내 달라고 요청해 봤지만, ‘이 건물은 적호 님이 관리하는 곳이라 안 된다.’라며 거절당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위이잉……!

용제건이 로비 앞에 서자 은영관의 자동문이 열렸다.

용제건에게 출입 허가가 떨어진 거다.

용제건은 저도 모르게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은영관의 로비 안 곳곳에 놓인 붉은 색의 장식품을 감상하며 용제건은 한발 한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용제건의 약속 상대는 적호였다.

그가 먼저 인사하는 걸 보니 용제건은 더더욱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적호는 늘 용제건을 탐탁지 않아 하는 마음, 불안함, 감사함이 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아들이 나쁜 친구와 어울린다는 불만.

용제건이 자신의 유희를 위해 무슨 짓을 벌이다가 아들을 말려들게 할지 모른다는 불안함.

그럼에도 자신이 부재하는 사이 아들의 하나뿐인 친구로서 곁에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

적호는 용제건과 마주치면 많은 감정이 뒤섞여 어찌할 줄을 모르다 말을 섞지 않고 외면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용제건을 이 장소로 불러낸 것뿐만 아니라 똑바로 용제건을 응시하고 있었다.

“적호 씨, 안녕. 은영관은 처음 구경해 보는데 괜찮네. 왜 불렀어?”

용제건이 인사를 하니 적호는 어쩐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용제건은 놀라우면서도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자신이 모르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적호는 그답지 않게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 그동안 제가 당신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용제건은 눈을 크게 뜨고 적호를 빤히 들여다봤다.

혹시 김신록이 역용술로 얼굴을 숨기고 적호인 척 자신을 놀리는 걸까 고민했다.

하지만 김신록이 적호를 걸고 장난을 칠 리가 없는데, 뭔가 이상했다.

‘웅녀와 한 거래가 발각되었을 가능성도 고려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적호가 용제건의 무엇을 오해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해가 아닐 가능성이 컸다.

용제건이 제 즐거운 일에 몰두하면서 사는 유희계 용인 건 사실이니까.

용제건이 적호에게 뭐라고 말할지 망설이는 사이 적호가 또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적호는 사과한 데에 이어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다.

“허심탄회하게 당신과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 아들에게서 당신이 단맛을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달지 않은 술과 안주를 준비했는데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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