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보물찾기 (1)
목우람의 스승은 숨을 거두기 전, 계속 제자 걱정을 했다.
[네가 삶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이능 바이올린 장인이자 플레이어였던 목우람의 스승은 보통 인간보다 훨씬 긴 삶을 살았다.
상위 존재 여럿이 그의 삶을 연장시키고자 긴 시간 힘을 보내고 이 세계에 붙잡아 뒀지만, 상위 존재의 힘으로도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목우람은 곧 자신이 혼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일한 가족이자 스승을 잃고, 삶의 의미도 찾지 못한 채로.
[그러나 언젠가 네게도 삶의 의미가 생길 거다. 나도 그녀의 연주를 듣는 순간, 이 길었던 삶에 무한한 감사를 품게 되었다.]
스승의 위로인지 격려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이어졌다.
목우람의 스승이 말한 ‘그녀’는 푸른 바이올리니스트 권제인.
그러나 스승의 기나긴 삶에서 권제인의 음악이 존재한 건 고작 20년 남짓이었다.
목우람은 과연 자신이 삶의 의미를 찾은 채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괴로워했다.
스승을 떠나보낸 후, 목우람은 절망 속에서 뮤즈를 찾아 헤맸다.
목우람은 뮤즈를 찾기 위해 음악과 예술의 상위 존재와 연이 깊은 도시들을 헤매고, 유명한 음악가들이 거쳐 간 도시와 시설을 방문했다.
목우람이 포기하기 직전, 그는 마침내 뮤즈를 만나게 되었다.
‘레나…….’
목우람은 보물찾기에 자신이 있었다.
이미 전 세계를 헤맨 결과 보물을 찾은 전적이 있으니까.
비록 목우람의 보물은 한반도, 그것도 같은 학교 같은 반에 존재했지만, 어쨌든 목우람이 보물을 찾아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물며 현재 1학년 0반이 보물찾기를 하는 무대는 고작 테마파크, 그것도 유원지의 일부인 인공섬 내부였다.
“좋은 상품을 찾게 되면 레나에게 선물해야겠습니다.”
목우람이 저도 모르게 포부를 입에 담았다.
그러자 목우람과 같은 6조에 배정된 조의신과 황호가 그를 돌아보았다.
“하하하! 자신이 넘쳐 보이는군. 보물찾기가 특기인가?”
“네, 저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목우람의 영감을 자극하는 원천.
그건 목우람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고 칭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아직 목우람은 권레나의 연주를 오래 듣다 보면 기절하곤 한다.
지나치게 밀려드는 영감과 감동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권레나의 연주는 권제인 같은 기교와 완성도는 없었다.
하지만 오로지 권레나의 음색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맑고 깨끗하며 정제된 슬픔이 묻어나는 감성에 늘 목우람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래 갖고선 레나를 위한 바이올린을 만들 수 없는데!’
목우람은 손이 무뎌지지 않도록 습작 겸 이능 바이올린을 만들곤 했지만, 늘 제 손으로 부수어 버렸다.
아직 목우람은 권레나의 소리를 전부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목우람은 자신이 차오르는 영감을 작품으로써 소화해 내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영감을 받아들일 수 있게 성장하는 일, 권레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선물하면 좋아할 것 등등을 찾아 헤매다가 호구를 잡히곤 했다.
하지만 목우람은 호구를 잡히는 상황을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모든 것은 성장의 일환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 때문에 마음을 쓰는 반 친구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오늘은 레나를 위해 보물을 찾아내자!’
목우람이 의욕에 찬 표정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때, 조의신이 그를 제지했다.
“잠깐, 기다려.”
목우람은 조의신의 말대로 즉각 발을 멈췄다.
조의신은 1학년 0반의 아이들 중 목우람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조의신은 목우람이 중국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해 한국으로 오도록 도와줬다.
무엇보다 권레나가 두 번째 시도를 했을 때, 목우람은 조의신이 그녀를 구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오싹한 기분과 슬픔이 동시에 차올랐다.
그때도, 지금도 목우람은 권레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부반장은 자신이 적벽괴도라고 했지.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목우람은 자신을 멈춰 세운 조의신을 바라봤다.
반 티를 입고 디바이스를 켜는 조의신의 모습은 그저 어른스럽고 단정한 생김새의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지금의 조의신을 봤을 때에는 그를 거대한 범죄 게이트를 깨부수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한 ‘적벽괴도’라고 연상하기는 힘들었다.
조의신은 홀로그램을 띄워 두고 화면을 조작하고 있었는데 손끝이 시린 건지 손가락을 몇 번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보니 정말 평범한 고등학생 같았다.
옆에서 황호가 ‘추워 보이니 장갑을 사야겠군. 테마파크 마스코트가 들어간 벙어리장갑을 저기에서 팔고 있다.’라고 말을 걸었는데, 조의신에게 무시당했다.
“순서를 정해 돌자.”
“조의신…….”
약간의 불만을 담아 조의신을 보는 황호의 표정은 어쩐지 ‘ㅡ.ㅡ’라는 문구가 들어간 반 티셔츠와 아주 잘 어울렸다.
황호는 몹시 이상한 구석이 있었지만 조의신과 대화를 나눌 때에는 영락없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어 큰 의심을 사지 않았다.
괴짜들의 모임인 0반 소속이라는 점도 있긴 했지만.
“인공섬 다리랑 유람선 선착장부터 시작하려고 하는데…….”
조의신은 황호가 마스코트 제품 무인 판매 자판기를 가리키는 걸 무시하고 계속 설명했다.
인공섬을 꼼꼼히 도는 수색 루트는 마치 준비를 한 것처럼 자세하고 철저했는데, 평소에도 머리가 잘 돌아가고 준비성 좋은 부반장 조의신이 하는 말이니 별 의심이 들지 않았다.
목우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의신이 설명한 루트를 머리에 되새겼다.
벌써부터 어떤 보물을 찾을지 기대되었다.
“그럼 가자.”
조의신의 유도대로 셋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쪽지를 수색하며 이동해야 했기에 몇 걸음 거리를 둔 상태로 다들 감각을 세워 여기저기를 뒤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텅텅 빈 테마파크.
반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셋만 있으니 목우람은 다소 허전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권레나가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날이 춥고 바람이 차긴 하지만, 멀리 보이는 호숫길도 운치가 있다. 바람을 맞으며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즐겁겠지.’
호수를 낀 섬에 있는 테마파크답게 대부분의 놀이기구는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경치를 즐길 수 있게 배치가 되어 있었다.
목우람은 인공섬 테마파크를 둘러보며 보물찾기를 이어 갔다.
그때, 황호가 처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하! 어린이용 전망차 입구에 하나 숨겼군. 우리가 절대 타지 않을 만한 놀이기구에 숨겨 둘 줄 알았다.”
황호는 용제건이 숨긴 쪽지의 기운을 읽어 낸 것처럼 말했다.
조의신이 지정한 루트에서 다소 떨어진 어린이용 전망차 쪽에 있었는데, 귀신같이 용제건의 쪽지의 기척을 감지하고 이를 찾아낸 듯했다.
“오, 축하드립니다. 내용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내용이 긴 것 같군.”
시안색 쪽지를 펼친 순간, 황호의 표정이 굳었다.
별로 좋지 않은 내용이었나 보다.
[이걸 누가 찾아냈을지 알 것 같은데? 오늘 일이 잘 풀리길 바랄게. 참고로 이 쪽지는 아쉽게도 꽝이야!^^]
“용제건…….”
용제건은 황호가 저 쪽지를 찾아낼 걸 알고 있었던가?
쪽지를 구기는 황호를 보고 옆에서 조의신이 후련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뿌듯한 표정도 짓고 있었는데, 용제건이 황호를 놀려 먹은 걸 자랑스러워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조의신은 가끔 저런 얼굴을 하는데 목우람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음 쪽지를 찾자.”
조의신은 차분하게 말하긴 했지만, 황호가 당한 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이후로도 황호는 몇 번 더 쪽지를 찾아냈는데, 다 용제건의 장난기 어린 ‘꽝’ 쪽지였다.
[이것도 찾아냈어? 찾아낼 줄 알았어. 역시 대단하네. 그런데 꽝이야!^^]
[여기에 있는 쪽지를 찾아내려면 일행과 좀 떨어져야 했을 텐데. 그러면 안 되지. 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이 쪽지가 있는 곳, 전망이 좋지? 진정한 보물은 동료와의 추억이 담긴 경치가 아닐까? 아, 그런데 이건 혼자 봤겠네.ㅎㅎ^^]
다양한 버전의 꽝 쪽지를 보고 황호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황호는 언젠가 진짜 보물 쪽지를 찾아내 주겠다며 철저하게 수색을 했지만 영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한편, 조의신과 목우람은 진짜 보물 쪽지를 몇 번 찾았다.
“1등 상품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경품에 당첨되었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용제건은 붉은 사자와 용족들을 중심으로 한 공식 굿즈를 상품으로 걸었다.
용제건이 자신만만해한 1등짜리 상품은 아닌 것 같지만, 붉은 사자에서도 쓴다는 플레이어용 아이템 카드들은 상당히 괜찮았다.
목우람은 권레나에게 줄 선물을 확보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보물 쪽지를 소중히 보관했다.
조의신은 플레이어용 아이템 카드가 아닌 것들을 많이 찾아냈다.
“부반장, 이번엔 어떤 보물을 찾았습니까?”
“……염준열 선배님 포토 카드.”
“또요? 같은 상품을 자주 찾아내시는군요.”
“같은 상품이 아니야. 아까 찾은 건 올해 봄에 찍은 포토 카드고, 지금 찾은 건 작년에 찍은 거니까.”
“……네? 어디가 다른 겁니까?”
목우람은 솔직히 조의신이 찾아냈다는 상품들의 차이점을 잘 느끼지 못했다.
결국 염준열의 포토 카드라는 뜻 아닌가?
이해하지 못하는 목우람을 위해 조의신이 설명을 덧붙였다.
“비유하자면, 일주일 전에 연주한 곡과 한 달 전에 연주한 곡의 차이야.”
“……아! 그렇군요!”
목우람은 곧바로 이해했다.
권레나의 연주는 늘 들을 때마다 새로웠다.
같은 연주라도 완벽히 똑같이 연주할 수는 없다.
그때그때의 감성과 기분에 따라 음이 미묘하게 달라지기도 하고, 장인 목우람은 그 절묘한 차이점을 잘 집어내기도 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전부 다른 보물이군요!”
조의신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이후로도 목우람과 조의신이 소소한 상품을 찾아내고, 황호가 용제건에게 당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럴싸한 상품을 찾지 못하자 황호가 의견을 제시했다.
“조금 거리를 두고 더 넓게 찾아보지.”
“많이 떨어지면 안 됩니다. 선생님들이 저희의 안전을 걱정하실 테니까요.”
“보이는 위치, 목소리가 닿는 위치에서 움직이는 게 좋겠어.”
황호와 조의신의 제안을 절충해 이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수색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목우람이 조의신이 지정한 위치를 향해 걸어 나갔을 때, 어쩐지 조의신이 웃은 것 같기도 했다.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데.’
‘앞으로도 수상해 줘>▽<’라는 문구가 잘 어울리는 웃음이었다.
조의신은 그 티셔츠가 마음에 들어 보였는데, 그 문구대로 컨셉을 유지하려는지도 모른다.
목우람이 수색에 열중한 상태로 한 걸음, 한 걸음 일행과 멀어져 갔을 때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 목우람이 저도 모르게 그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소리가 분명해졌다.
목우람의 귀에 비명 소리가 들렸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