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09화 (507/925)

73. 보물찾기 (2)

‘세 기사의 맹세’에 의한 암살 저지를 위해 테마파크에 온 재러드 리.

현재 그는 단독 행동 중이었다.

세계 10대 플레이어 팀을 상대로 한 암살 저지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상황에 홀로 움직인다는 건 상식 외의 행동이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이번 건에 이 이상의 인원을 할애하긴 어려워. 아직 영국에 파견된 간부들이 귀환하지 못했고, 제인이는 회담 중이고, 팀 마스터가 자리를 비운 영원의 호수 팀 빌딩 경비도 단단히 해야 하고, 이계 대비 인력도 남겨야 하고…….’

여러 이벤트가 동시에 발생하며 영원의 호수 팀 인력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재러드 리는 고심 끝에 자신이 혼자 움직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처음 권제인은 재러드 리의 단독 행동을 만류했으나 그의 설득에 이기지 못했다.

설득의 주 내용은 이러했다.

‘1학년 0반에는 창천명궁, 용왕신의 총아가 있다.’

현재 1학년 0반의 담임과 부담임은 모두 우수한 교사다.

담임인 창천명궁 함근형이야 말해 봤자 입만 아플 정도로 우수한 플레이어였고, 한 명은 진족이었다.

유희용 용제건의 경우, 권제인의 학창 시절 그녀가 수강한 과목의 담당 교사이기도 했다.

권제인은 용제건에게 개인적인 연락처를 넘겨줄 만큼 그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족의 수장도 있지.’

호족의 수장이 1학년 0반에 있다.

영원의 호수 팀원 중 이 사실을 아는 건 권제인과 재러드 리 둘뿐.

황호의 행보를 살펴보면 자신의 정체를 딱히 숨기려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호족의 수장이 고1 학생으로 위장 중이라고 알아채는 이들은 의외로 적었기에, 권제인과 재러드 리는 이를 비밀로 묻어 두기로 했다.

이렇게 1학년 0반에는 현재 강자들이 산재하고, 이들은 소풍에도 동행할 예정이었다.

재러드 리가 이 사실을 바탕으로 설득하자 권제인이 겨우 그의 단독 행동을 승인했다.

그 결과, 현재 재러드 리는 기척을 숨기고 테마파크에 잠입해 있는 중이었다.

물론 상대가 상대인 만큼 재러드 리의 잠입을 완전히 숨기는 건 불가능했다.

“……후후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거리를 뒀는데도 용제건이 재러드 리의 존재를 알아챘다.

때는 점심시간, 용제건은 1학년 0반 아이들 사이에 섞여 도시락을 먹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용제건이 재러드 리가 숨어 있는 환풍구를 휙 돌아봤다.

‘뭐지? 미스터 용은 계속 모르는 척해 주려는 게 아니었나!’

재러드 리가 긴장한 순간.

용제건이 자랑하듯이 롤 샌드위치를 들어 보이다가 한 입 먹고 환하게 웃었다.

대체 저 용이 왜 저러는 건지 알 수 없어 재러드 리가 혼란스러워했다.

그때, 불안한 표정을 한 권레나가 용제건에게 말을 걸었다.

“……용제건 선생님? 저 롤 샌드위치에 문제가 있나요?”

그 말에 재러드 리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이 거리에서 잘 보이진 않지만 롤 샌드위치의 내용물은 블루베리인 것 같았다.

또 이 타이밍에 권레나가 용제건에게 말을 걸었다는 건 분명…….

‘지금 미스터 용이 먹고 있는 건 레나 양이 만든 롤 샌드위치인가!’

재러드 리는 갑작스레 허기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며칠을 굶어도 묵묵히 임무를 수행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저 멀리 조카처럼 여기는 권레나가 만든 수제 음식이 있고, 용제건이 그걸 먹으며 밉살스러운 말을 한마디 덧붙이니 몸과 정신이 흔들렸다.

“아냐, 아주 맛있어. 밥도 못 먹고 일하는 사람이 나를 부러워할 거야.”

“네? ……아, 칭찬이군요. 감사합니다.”

용제건은 재러드 리를 약 올리려는 마음 반, 권레나를 칭찬하는 마음 반 섞어서 한 소리였겠지만, 권레나가 기뻐했다.

권레나의 기쁨이 재러드 리의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재러드 리의 잘못된 믿음과 실수로 권레나가 얼마나 긴 세월을 고통받았던가.

권레나가 웃는 걸 보니 재러드 리의 허기와 슬픔이 크게 가라앉았다.

‘레나 양이 소풍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제인이는 회담을 잘하고 있을까. 기자들에게 얽히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아직 ‘세 기사의 맹세’가 움직이는 기색이 없는 가운데, 1학년 0반의 점심 식사가 끝났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재러드 리는 크게 당황했다.

1학년 0반 아이들이 갑자기 조를 맺어 따로 행동하기 시작했으니까.

‘이런…… 따로 움직이잖아! 우람 군은 누구와 함께 움직이는 거지?’

목우람과 같은 조가 된 건 조의신과 황호.

라인업을 확인한 재러드 리는 안심했다.

하나는 호족의 수장이고 다른 하나는 무명의 초신성 아닌가.

둘 다 믿을 만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용제건의 지시로 저 셋은 인공섬에 나가게 되어 적에게 노출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실내가 나았을 텐데. 밖이라니!’

재러드 리는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놀이기구가 운행하는 중이긴 하나 테마파크 부지는 텅텅 비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인공섬 저편 호숫길 쪽에는 산책하는 이 하나도 없었다.

‘침착하자. 우리가 확보한 세 기사의 맹세 팀원들의 프로필을 다시 되짚어 보는 거다.’

영원의 호수가 가진 정보력.

세 기사의 맹세 출신인 재러드 리의 인맥.

이들을 활용해 세 기사의 맹세 팀원들의 주요 프로필은 확보한 상태다.

세 기사의 맹세는 세 명의 팀 마스터 체제로 운영되는데, 이 셋은 최고위 기사 혹은 그랜드 크로스(Grand Cross)라고 불리었다.

재러드 리는 현재 팀 마스터인 최고위 기사 셋의 정보는 그다지 얻지 못했다.

파악 중인 건 재러드 리가 세 기사의 맹세에 소속했던 시절 직접 만나고 겪었을 때의 정보뿐.

그래도 영원의 호수 팀원들의 활약으로 간부급인 선임 기사들의 정보는 어느 정도 쥐고 있었다.

재러드 리는 암살에 유효한, 그것도 탁 트인 공간에서 쓰일 법한 선임 기사들의 이능을 추려 냈다.

‘이번 건에는 선임 기사들이 움직였겠지. 그렇다면 지금 그들이 향한 곳은 아마…….’

재러드 리가 인공섬 중앙에 위치한 메르헨풍의 성을 올려다보려는 순간.

“보고 싶었어, 재러드.”

재러드 리의 귀에 감미로운 음성이 들렸다.

그 목소리에 재러드 리의 사고가 일순 멎었다.

이번 건에 대비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곳에 오리라 예측하지 못한 존재였다.

“그랜드 크로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재러드 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세 기사의 맹세의 창립자인 그랜드 크로스 중 하나, ‘노란 장미의 기사’.

아직 어렸던 재러드 리를 세 기사의 맹세에 스카웃한 이였다.

‘어째서 그랜드 크로스가 여기에? 설마…….’

목우람 하나 때문에 그랜드 크로스가 움직이는 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세 기사의 맹세가 노리고 있는 타깃이 목우람 하나가 아니라면 어떨까.

만약 또 다른 타깃이 재러드 리라면 그랜드 크로스가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재러드 리가 세 기사의 맹세가 보인 기묘한 행적의 답을 찾은 직후.

독한 장미 향수 냄새가 나는 손이 재러드 리의 입을 틀어막았다.

재러드 리는 이능파를 끌어올려 저항해 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바닥을 보니 장미 모양의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설치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을 텐데…… 내가 여기에 올 걸 예상하고 기다린 건가!’

재러드 리의 이능파를 삼킨 노란 장미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플레이어 고유의 이능파는 본래 섞이지 않는 법.

이 장미 모양 마법진은 상대의 이능파를 제 것으로 만들진 못해도, 이능파를 일시적으로 마법진 안에 묶어 둘 수는 있었다.

재러드 리는 마치 장미에 삼켜져 가는 것처럼 점점 무력해졌다.

“재러드, 내 예상대로 혼자 움직여 줘서 고마워. 여전히 넌 책임감 넘치고, 다정하구나.”

그 음성에 아득해지려던 재러드 리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란 장미의 기사는 오랜만에 만난 재러드 리와 승리에 눈이 멀어 그 사소한 잡음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어디선가 아주 작은 발소리가 섞여 들리고 있었다.

*    *    *

비명 소리를 들은 목우람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비명 소리가 들린 곳으로 가 보기로 했다.

물론, 사전에 일행에게 그 사실을 고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잠시 저쪽에 가 보겠습니다!”

목우람은 괜히 호구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다.

비명이 들렸을 때부터 목우람은 보물을 찾는 것보다 비명을 지른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비명 소리는 어쩐지 우리 반 아이들이 낸 것 같았다. 가 봐야 해!’

목우람은 놀라운 속도로 인공섬 중앙에 위치한 성을 향해 뛰어들었다.

테마파크의 상징, 메르헨풍 성안.

공사 중 팻말이 붙어 있긴 했으나 안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으니 지나칠 수 없었다.

목우람은 과감하게 팻말을 지나쳐 성안으로 들어갔다.

‘……멋지다. 레나도 함께 봤으면 좋았을 텐데.’

성안에 펼쳐진 광경에 목우람이 감탄했다.

성 1층은 기념품 판매점이었는데, 말 그대로 동화 속 세계를 구현해 두었다.

소재는 다소 저렴해 보이지만 동화책 속 한 장면에 등장할 법한 가구들.

촛대 모양으로 만든 은은한 조명과 다양한 빛깔과 형태의 사탕과 초콜릿.

그리고 유리 케이스 너머로 장식된 각종 기념품들.

이 공간은 환상 같은 추억을 기념품으로 간직하라며 지갑을 열도록 유혹하고 있었다.

‘전부 다 사고 싶지만, 이번 소풍 때 쓸 수 있는 예산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지금은 누가 비명을 지른 건지 찾아야 해!’

비명 소리의 근원은 허무하게 찾았다.

놀이기구에 탄 기록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기념품을 만들어 주는 기념품점이었다.

손바닥만 한 유령의 집 미니어처 안, 1학년 0반이 그 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미니 홀로그램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비명 소리는 사월세음과 권레나가 냈던 소리를 녹음했다가 틀어 준 것이었다.

‘……낚였지만, 이걸 놓칠 뻔했다. 꼭 사 가야지.’

목우람이 유령의 집 미니어처를 결제하고 제작되길 기다리는 사이, 그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생각의 중심은 권레나였다.

‘아까 비명을 많이 지르셨는데, 지치시지는 않았을까. 여기에서 간식을 더 사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목우람이 무인 판매점을 돌아보고 있을 때,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튀었다.

‘왜 이 좋은 곳이 출입 금지 중일까. 아까 공사 중이라고 했는데…… 위층이 공사 중인 건가?’

성 내부를 둘러보고 싶어 했던 아이들도 있었으니 나중에 1층만 같이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목우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 조의신과 황지호와 합류하려 했을 때다.

덜컹.

쾅.

위이잉.

목우람이 밖으로 나가기 전, 성과 외부를 잇는 문과 창문이 일제히 닫히기 시작했다.

목우람은 혹시 공사를 위해 갑자기 문이 닫힌 게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아닌 듯했다.

“혹시 당신은 그때…… 저에게 팀 합류를 권하셨던…….”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두 남자가 내려왔다.

둘 중 한 명은 목우람이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당신이 그 이능 바이올린 장인의 제자입니까?

목우람이 뮤즈의 소재를 파악하고 한국으로 향하던 중, 어떤 이와 마주쳤다.

전 세계적으로 호구를 잡히며 여행 중이었기에 목우람은 금전적으로 크게 궁지에 몰려 있었는데, 상대는 숙식을 제공하며 아주 정중하게 대했다.

알고 보니 그자는 목우람이 이능 바이올린 장인의 제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목우람에게 정중히 제안했다.

―저희 팀에 들어와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으면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안 됩니다.

비록 숙식을 제공해 준 감사한 상대였지만, 목우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한반도에 볼일이 있습니다.

그 제안을 거절한 다음 날.

목우람은 누군가에게 쫓기기 시작하며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추격자가 점점 늘어나 더 이상 목우람의 힘으로 견딜 수 없을 때, 검은 옷자락이 눈을 가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중국이었고, 눈앞에는 조의신과 황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안하지.”

그리고 그때 제안을 한 그자가 다시금 제안했다.

그자는 그때와 달리 정중한 말투도 쓰지 않았다.

“우리 팀에 들어오겠나?”

목우람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거절합니다.”

그때는 뮤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에 바로 제안을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제가 사람을 해치는 팀에 들어가면, 그분을 위한 악기를 만들 자격이 없어질 거예요.”

목우람의 말에 남자가 미묘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실리콘으로 된 가면을 써서 표정이 다소 어색했는데, 그 어색한 표정으로도 어처구니없어하는 심정이 전해졌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 제대로 이해하고 하는 소리인가?”

“물론입니다. 자칫하다간 제가 죽겠죠.”

고립무원의 상태인 목우람이 냉정하게 말했다.

남자 둘이 잠시 서로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렇군. 그러면 안됐지만 죽어 다오.”

그 목소리에 동정이 조금 어린 듯했다.

목우람은 저항하기 위해 기념품이 담긴 봉투를 내려 두고 대신 무기 아이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지만, 쉽게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파아아앗!

목우람의 손에 전투용 도끼가 쥐어졌다.

목우람이 몸통만 한 도끼를 쥐고 남자들을 응시한 순간.

휘이이……!

목우람의 시선 끝.

바람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그림자가 일렁였다.

상대의 실루엣은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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