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보물찾기 (4)
수능이 끝나고 소풍을 앞둔 시점.
남은 시간은 적었고, 사용할 수 있는 피스는 적었다.
하지만 사용 가능한 피스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즉, 둘 수 있는 수는 남은 셈이다.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와 확보한 피스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해.’
해외에서 암살 위협에 시달리다가 현무에게 보호된 목우람.
첫 실습 날에 벌어진 암살 계획.
영원의 호수와 까마귀 마왕을 보고 퇴각한 세 기사의 맹세.
세 기사의 맹세 본거지에서 죽어 버린 서돌의 쥐.
하나하나 되짚어 본 결과, 의문이 남았다.
그 의문과 위화감이 시작된 건 서돌이 보낸 메시지를 봤을 때부터였다.
[꾀돌이]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말뼈다귀 같은 자식들이 한 번에 제 쥐를 다 죽여 버렸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역병이라도 뿌려 두는 건데, 아쉽게 됐어요.
세 기사의 맹세가 보인 행적과 이 메시지를 비교하면 마음에 걸리는 점이 남았다.
‘뭔가 이상해. 어째서 그들은 그런 위험을 감수한 거지?’
목우람을 잡기 위해 은밀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 쥐를 제거했다.
이렇게만 봤을 때는 이상하지 않지만, 서돌의 쥐를 전부 죽여 버린 건 과도한 처사다.
죽이지 않고 포획하여 본거지 밖으로 쫓아내거나, 서돌과 직접 교섭하는 방법도 있었다.
아니면 쥐의 소재를 파악해 정보를 통제하는 방법도 있을 거다.
‘목우람을 죽이기 위해 대규모로 움직일 필요도 없으니 정보를 숨기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텐데. 실제로 저번 암살 계획에 동원된 건 선임 기사 두 명뿐이잖아.’
혹시 이번에는 도저히 서돌에게 숨기기 어려울 만큼 대규모로 움직일 계획이었기에 그런 선택을 한 걸까?
그렇다고 하면 앞뒤는 맞지만, 여전히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세 기사의 맹세가 보인 행보와 지금 행동은 어딘가 맞지 않다.
‘세 기사의 맹세는 목우람이 귀국한 이후에 신중하게 움직였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선임 기사를 한반도에 맞게 적응시키고 훈련해 암살 계획을 시행했어.’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영원의 호수와 까마귀 마왕이 눈에 보이자 그렇게 공들였던 계획을 바로 접고 철수했다.
그 이후에는 까마귀 마왕의 동향을 살피느라 목우람에게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까마귀 마왕이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파악한 이후다.
그렇게 신중하게 행동하던 이들이 서돌에게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과감하게 행동한 게 마음에 걸려. 또, 영국 소재의 팀이 한국에서 암살을 시행하는데, 한국의 강력한 진족과 척을 진다고?’
사고를 정리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이번 건에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그 뭔가를 알아내지 못하면 이번 건을 제대로 막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마 이 건에 관해 알고 있는 건…….’
서돌.
아마 서돌의 과거 행적과 이번 건이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서돌의 성격을 고려해 봤을 때, 그가 지금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과거사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떤 식으로 운을 떼서 물어볼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앞에 있던 황지호가 내 생각을 끊었다.
“생각이 정리된 것 같군.”
“대충. 너는?”
“이 몸도 정리가 끝나 간다.”
황지호가 홀로그램으로 테마파크 지도를 보여 주며 말했다.
황지호는 김유리가 제안한 동선에 맞춰 놀이기구 가동 준비를 마친 것 같다.
황지호는 지도를 끈 후, 식은 차를 갓 우려낸 차로 교체해 주었다.
아직 반도 안 마셨는데 어느 사이엔가 식어 버린 듯했다.
“그럼 조의신 네 이야기를 듣지. 무슨 생각을 했나.”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해 황지호에게 전달했다.
황지호는 서돌의 이름이 언급되자 미간을 좁혔으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군. 남의 땅에서 고등학생을 암살하려는 놈들이 제정신이겠냐마는.”
황지호는 팩트를 기반으로 한 매서운 말을 던졌다.
세 기사의 맹세가 암살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좀 그렇긴 했다.
“어째서 그들이 목우람을 암살하려는지는 나중에 캐면 돼. 문제는 그들이 서돌에게 보인 공격성이야.”
“서돌과 세 기사의 맹세라…….”
황지호는 서돌과 세 기사의 맹세를 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호족의 수장으로서 뭔가 떠올리려 한 것 같았지만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황지호가 뭔가를 알고 있었다면 진작에 말했겠지.’
황지호가 서돌을 딱히 기껍게 여기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 태만하기까지 했으니까.
내 생각대로 황지호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직접 그놈에게 물어보는 게 낫겠군.”
그나마 서돌의 연락처를 갖고 있다는 게 다행인 걸까.
황지호는 꺼림칙해하면서도 서돌에게 연락을 넣었다.
황지호가 메시지를 보내자 서돌은 금방 답장을 보냈다.
[거슬리는 쥐] 황호, 무슨 일로 연락을 했어요? 안 바쁘나 보네요.
메시지를 확인한 황지호는 당장이라도 디바이스를 꺼 버리고 싶어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몸은 매우 바쁘거늘. 이런 쥐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데에 시간과 심력을 소모해야 하다니.”
황지호가 바쁜 건 사실이지만, 분신으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동시에 다니는 걸 보면 딱히…….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나도 심력을 소모하기 싫어서 차나 마시기로 했다.
황지호가 서돌에게 세 기사의 맹세와 예전에 엮인 일이 있냐고 직접적으로 묻자 서돌은 잘 떠올리지 못했다.
몇 번에 걸친 질문과 답변 끝에 서돌이 무언가를 떠올렸다.
[거슬리는 쥐] 아, 그러고 보니 그놈들과 옛날에 엮인 일이 있긴 한데요.
그 엮였다는 일은 서돌에게는 아주 하찮은 일이라서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잊었다기보다는 정말 사소한 사건이라 고려하지도 않았나 보다.
서돌은 말하면 말할수록 관심이 식는지 어느새 답변도 반말로 하고 있었다.
[거슬리는 쥐] 자칭 기사 놈들이 제인이랑 친한 인간을 귀찮게 굴길래 부탁을 받고 쫓아낸 적이 있는데.
권제인의 부탁을 받고 서돌이 세 기사의 맹세와 싸운 것인가.
세 기사의 맹세가 서돌에게 원한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 그들이 과감한 행보를 보인 건 순전히 그때의 일 영향인 건가?
“그 친한 인간에 관해 묻는 게 좋겠군.”
황지호가 묻자 서돌은 조금 시간 차를 두다 답했다.
대화 내용이 재미없어서 점점 의욕이 식는 것 같았다.
[거슬리는 쥐] 재러드 리.
영원의 호수 팀의 서브 마스터, 재러드 리.
그는 한때 세 기사의 맹세 소속이었다.
탈퇴 과정이 어땠는지 알려지진 않았으나, 지금 서돌의 말에 의하면 그리 순탄치는 않았나 보다.
하지만 서돌의 개입도 있었고, 영원의 호수가 세계 10대 플레이어 팀으로 성장하며 세 기사의 맹세는 재러드 리에게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필요한 정보는 캐낸 거 같군. 이만 이 불쾌한 메시지창을 끄겠다.”
황지호가 홀로그램을 끄기 직전, 서돌이 추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거슬리는 쥐] 아! 혹시 재러드가 목우람의 암살 건에 관계있어요?
갑자기 서돌이 존댓말을 쓰며 길게 답장을 하자 황지호의 표정이 굳었다.
찝찝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메시지를 중단시킬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 같았다.
서돌은 영원의 호수 팀 빌딩에 갔다가 뭔가를 들은 모양이었다.
[거슬리는 쥐] 영원의 호수 팀 빌딩에 놀러 갔다가 들었어요. 그들은 목우람을 경호하려던데요.
[거슬리는 쥐] 그런데 그 말뼈다귀 같은 자칭 기사 놈들이 수작을 부려서 재러드 리가 혼자 소풍 때 경호를 맡게 된 것 같거든요.
서돌은 설명을 짧게 덧붙였다.
서돌은 영원의 호수 팀의 전력을 분산시킨 주범이 세 기사의 맹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권제인이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일정을 파악하여 그 시기에 영국으로 주요 간부들을 파견하도록 유도한 것 같다는 게 서돌의 주장이었다.
주장의 근거는 오로지 자신의 쥐를 몰살한 세 기사의 맹세에 대한 반감에 근거한, 증거 없는 의심뿐이었으나 앞뒤가 맞았다.
서돌의 말과 현재 상황을 종합하면 세 기사의 맹세가 보인 행동들이 이해가 갔다.
‘설마, 이번 건으로 그들은 재러드 리와 목우람을 동시에 처리할 생각인가!’
세 기사의 맹세는 남의 소풍에서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건가.
분노와 의문이 치솟았으나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현재 어떤 국면을 맞이했는지, 내 손에 어떤 피스가 있는지 전부 파악했으니까.
* * *
성을 뒤덮은 황금빛 결계 안에는 더 이상 찬바람이 닿지 않았다.
황지호가 펼친 결계 안, 테이밍된 에너미는 힘을 잃고 무너지고 있었다.
테이밍 스킬 유저 외의 다른 세 기사의 맹세 팀원들도 이능파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아 당혹스러워하는 듯했다.
‘황지호에게 전령이 잘 닿은 모양이네.’
현재 내가 플레이어의 궤적을 통해 모습을 빌린 인물은 전무영.
무명의 운명 카드로 재현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사월세음.
세 기사의 맹세가 경계하는 까마귀.
나는 이 두 사람의 능력과 까마귀 가면을 이용해 이번 건을 해결하고자 했다.
지금 상황을 보니 내 생각대로 수가 놓인 것 같다.
‘저들을 성으로 유인하는 게 제일 까다로웠지.’
서돌이 가로챈 보고서에 의하면 그들은 높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상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인식하지 못한, 공중에서만 보이는 까마귀 마왕 시델렌티움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사전에 설비 점검 등을 이유로 테마파크의 성을 비워 그들이 그곳에서 진을 치도록 유도했다.
용제건에게 보물찾기 이벤트를 열도록 의뢰하여 목우람을 자연스럽게 유인하는 것도 그랬다.
세 기사의 맹세, 목우람 양측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선 함정을 남기지 않고 성을 완전하게 비워야 했기에 다소 위험한 작전이었다.
‘목우람이 밖으로 나간다는 선택을 하면 거기에 맞춰서 새로 수를 둘 생각이었는데.’
예상대로 목우람이 위험한 선택을 하며 위층을 향했지만.
머스킷에 목우람의 다리가 분쇄될 뻔했을 때는 간담이 서늘했다.
나는 줄곧 전무영의 광림, ‘그림자 없는 시간’을 사용하며 그 옆을 따라 갔는데, 하마터면 아직 모습을 숨겨야 하는 것을 잊고 사월세음의 바람술을 쓸 뻔했다.
‘그런데 전령으로 보낸 말을 의심하지 않고 바로 들어주다니…… 전령 스킬에서 사월세음의 힘을 읽었던 걸까.’
목우람을 옥상으로 이끌기 위해 사월세음의 전령 스킬을 사용했다.
경애하는 왕의 목소리, 명령을 다수에게 강제하고 유도하는 사월세음의 광림, ‘왕이 가라사대’와 달리 전령 스킬은 말 그대로 1대1로 말만 전하는 이능이다.
목우람이 의심하느라 곧바로 움직이지 않으면 까마귀 가면의 모습으로 습격자들의 주의를 끌 생각이었는데, 목우람은 곧장 의심 없이 위로 계속 달렸다.
“까마귀 마왕이 어째서 우리를 방해하는 거냐! 언제부터 개입하고 있던 거지?”
습격자들이 나에게 물었다.
현재 저들은 황지호가 펼친 정교한 결계 탓에 힘을 제대로 쓸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황지호는 증원된 습격자들이 모두 성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이후 계속 결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력을 끌어서 작성한 결계라고 했나? 평소보다 더 강력한 결계인 거 같네.’
호족의 수장이 한반도에 땅에서 지력을 끌어 마련한 결계다.
결계 안 대상자의 힘을 제한하는 결계를 유지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탓에 현재 황지호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세계 10대 플레이어 팀이 황지호의 존재를 눈치채는 걸 원치 않았기에 오히려 잘된 것 같다.
덕분에 황지호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긴 했으나 이런 결계 안이라면 안심하고 활개 쳐도 될 것 같았다.
어쨌든 이 정도로 단단한 결계 안, 이능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저항하거나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저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하나다.
나는 그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물었다.
“시간을 벌 생각인가 보네. 지원을 기다리고 있어?”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완전히 궁지에 몰린 건 아니라고 생각하나 보다.
믿는 구석이 남아 있는 거다.
난 그 희망을 박살 내 주기로 했다.
“그랜드 크로스는 오지 않아.”
* * *
노란 장미에 사로잡힌 재러드 리의 정신이 멀어졌다.
점멸하는 시야와 코를 찌르는 독한 장미향에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노란 장미의 기사는 재러드 리의 저항을 보고 짙게 웃었다.
그녀는 재러드 리의 정신을 뒤흔들기 위해 어떤 정보를 흘렸다.
“재러드, 네 형제가 늘었어. ‘물그림자의 기사’가 새로운 성취를 보였거든.”
기사가 받는 최고의 훈장을 칭하는 그랜드 크로스.
세 기사의 맹세 팀원 중 그 칭호를 받은 건 팀 마스터 셋.
노란 장미의 기사와 동격인 최고위 기사들이었다.
그 최고위 기사 중 하나인 물그림자의 기사가 언급되자 재러드 리의 눈이 흐려졌다.
“내…… 형제……?”
“응, 다들 재러드를 보고 싶어 해.”
재러드 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 전, 작은 발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노란 장미의 기사도 그 발소리의 존재를 파악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설마…….’
재러드 리가 바닥을 메운 밝은색의 블럭과 노란 장미 마법진을 응시한 순간.
콰쾅! 콰콰콰콰!
바닥을 뚫고 진회색의 덩어리들이 뭉글뭉글 퍼져 나갔다.
재러드 리가 처음 들은 작은 발소리는 지면 아래에서 이동하는 저 덩어리들이 낸 소리인 듯했다.
덩어리는 쥐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