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보물찾기 (7)
서돌의 합류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재러드 리를 삼키려던 노란 장미는 쥐 떼에 파먹혀 너덜너덜해졌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노란 장미의 마법진도, 재러드 리를 맞이하기 위해 고른 부팡 드레스도 엉망이 되었다.
서돌이 부리는 구슬에 닿을 때마다 드레스 자락이 썩어 내렸고, 노란 장미의 기사는 드레스 전체가 썩기 전에 이를 잘라 냈다.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되자 잘린 드레스 틈 사이로 밑에 입은 방어구 아이템이 드러났다.
방어구 아이템을 본 서돌이 대놓고 빈정거렸다.
“좋은 방어구를 입고 있네. 그 촌스러운 드레스보다는 훨씬 나은데?”
노란 장미의 기사는 그 말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으나, 열이 오르는 걸 억눌러야 했다.
서돌은 서족의 수장이자 세계적인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느루의 수석 디자이너 아니던가.
그런 서돌에게 ‘방어구 아이템보다 촌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있다.’라는 말을 듣는 건 굴욕이었다.
일부러 속을 긁기 위해 저런 발언을 한다는 걸 알았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발에 걸린 척하는 게 나아. 이쪽이 냉정하게 나오면 다른 수로 내 화를 돋우려 할 거다.’
세 기사의 맹세의 최고위 기사, 그랜드 크로스는 셋.
책임과 의무를 3분의 1로 나누었다고 하나 노란 장미의 기사 또한 팀 마스터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노란 장미의 기사는 기민하게 판단을 마치고 도발에 넘어간 척, 자신의 화를 숨기지 않으며 노발대발했다.
“더러운 쥐새끼가 어딜……!”
“네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해?”
서돌은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세련된 피시마우스 라펠 재킷의 깃을 보란 듯이 잡아 보였다.
밑에 SSR급 방어구를 갖춰 입었다고 하나, 노란 장미의 기사는 그 위에 넝마가 된 드레스를 걸친 상태다.
상황을 모르는 누군가가 이 중에서 더러운 쥐새끼를 고른다면 노란 장미의 기사를 택할 게 분명했다.
노란 장미의 기사의 미간이 꿈틀거린 순간, 그 틈을 노려 서돌이 이능파를 운용했다.
퍼엉!
서돌이 부리는 쥐색의 구슬이 다시 터졌다.
폭파 직전 노란 장미의 기사가 몸을 날렸지만, 다시 드레스 자락을 잘라 내야 했다.
드레스를 잘라 낸 장미의 가시도 썩어 가는 걸 본 그녀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 상대할 자가 아니다. 더 철저히 대비했어야 했어!’
함정을 파 두거나, 지력을 끌어오는 걸 막거나, 미리 이능파를 소모시켜 두거나, 인질을 잡거나…….
방법이 여럿 떠올랐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세 기사의 맹세에 숨어든 서돌의 쥐를 박멸했을 때, 그들은 서돌의 힘을 얕봤다.
비록 그 당시 서돌이 한반도에서 원격으로 영국에 있는 쥐를 움직였다고는 하나 너무나도 쉽게 모든 쥐를 잡아냈으니까.
쥐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잡지 못한 채로 소멸되었다.
쥐를 잠복시킨 솜씨는 칭찬해 줄 만하지만, 쥐에게서 감지된 이능파의 양이나 허술한 행적 등을 바탕으로 그들은 서돌을 과소평가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곳은 한반도 땅이었고, 서돌은 노란 장미의 기사를 1대1로 상대하는 중이었다.
‘이것이 지력의 힘을 사용하는 12지의 수장인가, 정면 승부로는 이길 수 없다!’
언뜻 보기에는 노란 장미의 기사가 다소 열세여도 그럭저럭 버텨 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지금 그녀가 무사한 건 서돌이 손을 늦추고 있는 탓이었다.
서돌은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지만, 어딘가 여유가 있었다.
“너희들이 만들어진 목적, 그 ‘맹세’는 참 마음에 들었는데.”
“…….”
노란 장미의 기사가 동요를 감추려고 이능파를 가다듬다가 서돌의 공격을 피하는 게 늦어졌다.
빠르게 쏘아진 쥐색의 구체가 드레스의 리본에 직격했다.
사아아…….
리본 부분을 중심으로 드레스가 썩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잘라 내는 것만으로는 부패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노란 장미의 기사가 급히 드레스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노란 장미가 새겨진 얇은 갑옷이 온전히 드러났다.
‘우리의 맹세에 관해 캔 건가.’
서족의 수장은 영원의 호수와 연관이 있다.
보나 마나 재러드 리의 과거사에 관해 캐느라 쥐를 잠복시킨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들의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서돌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누군지 몰라? 나도 ‘그것’에는 치를 떨어. 너희들이 내 쥐를 죽이지 않았다면 나도 협력했을지도 몰라.”
“하, 네놈이 영원의 호수와 커넥션이 있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영원의 호수? 내가 가호를 내린 건 제인이뿐이야.”
그 권제인이 영원의 호수를 이끄는 팀 마스터가 아닌가.
노란 장미의 기사는 서돌이 말장난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돌은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제인이는 아름답고 멋진 서사를 가진 인간이지. 가호를 내리고, 지켜볼 가치가 있어.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
여차하면 권제인은 도와도 영원의 호수는 돕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노란 장미의 기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서돌이 이런 생각을 품은 줄 알았다면 좀 더 신중하게 줄을 탔을 거다.
그러나 이미 서돌의 쥐는 전부 소멸되었고, 그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노란 장미의 기사가 협상할 만한 거리를 몇 개 떠올렸다.
서돌이 ‘그것’에게 적의를 품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어쩌면 이 자리를 모면할 타개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이제 와서 너희들과 손을 잡을 일은 없으니까 머리 굴리지 마.”
서돌의 단호한 말에 노란 장미의 기사가 품었던 희망은 단숨에 산산조각 났다.
서돌은 한 걸음씩 노란 장미의 기사와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물론, 내 쥐를 없앤 것도 화가 나. 너를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야. 난 지혜가 부족한 것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거든.”
서돌은 어느새인가 훌쩍 다가왔다.
모처럼 노란 장미의 기사의 공격 범위 안에 서돌이 들어왔는데, 그가 뿜는 박력에 좀처럼 공격하기 어려웠다.
서돌은 노란 장미의 기사를 내려보며 말했다.
“고양이를 죽이기 위해 모인 주제에, 쥐까지 적으로 돌려?”
세 기사의 맹세.
스스로를 기사로 칭한 세 플레이어가 팀을 만든 계기는 하나.
고양이, 어느 묘족(猫族)의 절멸을 위해서였다.
모든 묘족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거나 죽이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기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뜻을 이루자며 맹세했다.
노란 장미의 기사는 ‘고양이’라는 단어를 듣자 증오를 숨기지 못했다.
그때였다.
파앗! 촤아아악!
호수의 물이 일시에 솟아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생성된 수십, 수백 개의 물기둥이 서돌을 향해 날아갔다.
서돌이 이능파를 끌어올려 물기둥을 방어한 순간, 노란 장미의 기사가 호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콰콰!
노란 장미의 기사가 호숫물의 수면에 닿는 순간, 다시 물기둥이 차올랐다.
물기둥은 노란 장미의 기사의 그림자도 삼켜 버렸다.
“……그랜드 크로스가 둘이나 왔었다니.”
한발 떨어져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재러드 리가 황망한 어조로 말했다.
겨우 이능파를 추스르고 자리에 일어선 재러드 리가 심각한 눈으로 아직도 소용돌이치는 물기둥을 응시했다.
곧 서돌의 힘에 의해 물기둥은 소멸했다.
하지만 물기둥이 가라앉을 때에는 이미 노란 장미의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저게 누군지 알아?”
“저 힘을 쓴 건 그랜드 크로스입니다. ‘물그림자의 기사’가 개입한 것 같습니다.”
“제인이에 비해서는 별로인데, 저걸로 팀 마스터까지 해 먹고 있어?”
그 별로인 힘에 노란 장미의 기사를 놓쳤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재러드 리가 다 잡은 먹잇감을 놓친 것치곤 지나치게 평온해 보이는 서돌을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물그림자의 기사는 물을 다루는 스킬을 씁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힘은 물을 활용한 공격 스킬이 아닙니다.”
“그래? 뭐, 상관없긴 한데.”
서돌은 관심 없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껏 서돌의 질문에 답변해 줬더니 저런 답변을 들은 재러드 리는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늘 있던 일이라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그보다 노란 장미의 기사를 쫓으려 하지 않는 게 이상한데…….’
서돌은 마음만 먹으면 호수 위를 달려 노란 장미의 기사를 쫓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이 자리에 남아 재러드 리와 한가롭게 대화하는 게 뭔가 이상했다.
“아, 혹시 내가 저걸 안 쫓아가는 게 이상해서 그래? 걱정 마. 일단 쥐는 몇 마리 붙여 뒀거든. 추적이 없으면 의심할까 봐.”
쥐를 몇 마리 따라붙게 했다 해도 무언가가 이상했다.
아무리 서돌의 쥐가 유능하다고 해도 서돌의 본체만큼은 아니다.
직접 쫓는 게 효율적일 텐데, 어째서인지 알 수 없었다.
재러드 리의 의심이 점점 깊어졌다.
“궁금해요?”
존댓말에 재러드 리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돌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지만, 아주 귀찮고 불길한 무언가를 꾸미는 게 분명했다.
재러드 리는 즉시 의심을 멈추고 더 중요한 사안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목우람 학생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무슨 일을 당한 게 아닐까 걱정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번 일은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를…….”
“누가 보내 준대요?”
재러드 리의 탈출 시도는 곧바로 저지되었다.
노란 장미의 기사는 보내 줬으면서 왜 자신은 안 되는가!
재러드 리는 기겁하여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능파를 소모한 그가 서돌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재러드 리가 움직이는 족족 서돌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나를 이쪽으로 보낸 사람이 부탁했으니까 안 돼요.”
“서돌, 어떻게 반말 안 써!”
당황한 나머지 재러드 리가 이상한 한국어를 사용해 물었다.
이상하다 못해 다소 무례하게 들리는 말인데도 서돌은 꼬박꼬박 존댓말로 응했다.
그 존댓말을 들으니 재러드 리는 더 미칠 것 같았다.
“왜 반말을 안 쓰냐고 물은 거예요? 그야 내 맘이죠.”
서돌은 몹시 기분이 좋은지 계속 존댓말로 말했다.
“노란 장미의 기사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고, 확보해서 데려와 달라고 부탁받았거든요. 마침 세 기사인지 말뼈다귀인지 모를 놈들을 엿 먹이고 싶었으니 잘됐죠.”
“……그게 누구죠? 제인이인가요?”
되묻긴 했지만, 재러드 리는 당연히 서돌에게 저 부탁을 한 게 권제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자 서돌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인이는 아니에요.”
“네? 그럼 누가…….”
재러드 리를 보호해 달라고 한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저 서돌에게 어떻게 부탁했단 말인가!
서돌은 재러드 리의 의문을 해결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대신 서돌은 들뜬 목소리로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해 댔다.
“간만에 역병이 창궐하는 꼴도 볼 수 있을 것 같고, 오늘 일이 정말 무사히 잘 끝났어요. 멋진 활약을 남겼고, 더 큰 업적을 남길 예정이니 그 아이에게 점수를 딸 수 있을 것 같아요.”
외국인 재러드 리는 ‘역병이 창궐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뒤에 언급한 말은 제대로 이해했다.
‘그 아이’가 재러드 리를 도와달라 부탁한 게 분명했다.
서돌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곧 느루에 새 앰배서더가 생길지도 몰라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