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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40화 (538/925)

76. 은광고 입학 시험 (2)

용제건의 말대로 제일 늦게 합류한 건 학생회 일로 바빴던 염준열이었다.

고된 학생회 일을 마치고 왔을 텐데, 염준열은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도 성실하고 착하며 총명한 염준열이었으나 은광고의 학생회장이 되더니 더 믿음직스러워진 것 같았다.

용제건으로부터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 올 이들에 관한 설명을 들은 건지 염준열은 차례차례 인사했다.

“용제건 선생님, 김신록 선생님, 안녕하세요. 의신이도 안녕.”

“학교 밖이니까 형이라고 불러야지.”

“네, 제건이 형.”

“…….”

김신록이 용제건의 뻔뻔한 작태를 보며 눈을 흘겼다.

용제건이 염준열보다 먼저 태어났으니 형이겠지만, 나이 차이가 천 단위다 보니 형으로 부르라는 게 어이없을 거다.

김신록은 한마디 하고 싶지만 염준열이 있어서 꾹 참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적인 자리라서 그런 걸까.

김신록은 염준열을 은광고의 학생 취급 하는 대신 동맹을 맺은 진족의 후예로 대하기로 한 것 같다.

하지만 두 용은 더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눈치였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제건이 형 친구시니까 김신록 선생님도 저한테는 형이나 다름없어요.”

“응, 둘이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

김신록이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자 사려 깊은 염준열은 두 번 권하지 않았다.

용제건은 뭐가 좋은지 계속 웃으며 둘이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티를 팍팍 냈지만.

그래도 용제건의 저런 태도는 염준열과 김신록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날은 쌀쌀한데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의 마음씨가 느껴져 훈훈한 기분이 들었다.

“아, 여기 저번에 의신이가 추천해서 같이 온 레스토랑이에요.”

“그래?”

“네, 학생 대표 총선거를 앞두고 인터뷰한 적이 있었어요. 인터뷰를 마친 후에 동하랑 의신이랑 셋이 왔어요.”

용제건이 예약한 해산물 코스 요리 레스토랑은 전에 한 번 방문한 곳이었다.

염준열이 좋아하는 해산물이 메인 요리로 나오고 취향에 맞춰서 세세한 맛 조절도 가능하고 가게 인테리어도 괜찮았다.

또 코스 요리 마지막에 나오는 디저트도 절품이었으니 단 것을 좋아하는 김신록도 만족할 거다.

과연 용제건다운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늘의 주요리는 통으로 구워 성게알을 곁들인 대갈치였다.

전채 요리를 먹자 1m 정도 되는 대갈치를 긴 접시에 들고 사환과 셰프가 같이 등장했다.

셰프가 옆에서 뼈를 제거해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용제건이 이를 거절했다.

“어? 제건이 형이 직접 하시게요?”

“응, 내가 발라 줄게.”

용제건은 셰프가 가져온 긴 나무젓가락을 놀려 능숙하게 갈치를 해체했다.

크기도 만만치 않고 살이 물러 갈치의 형태를 유지하며 뼈를 바르는 게 까다로울 텐데 용제건은 아주 깔끔하게 살만 남겼다.

“자, 먹자.”

“잘 먹겠습니다. 의신아, 많이 먹어.”

염준열은 아주 당연한 듯이 갈치살을 덜어 내 앞으로 내민 후에야 제 몫을 챙겼다.

생각해 보면 후배인 내가 먼저 선배를 챙겨야 하는데, 착한 염준열은 바로 나를 먼저 생각해 준 것 같았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뼈를 바르고 나한테 직접 덜어 준 음식인 덕인지 맛이 남달랐다.

하지만 이 중에 음식 맛을 즐기지 못하는 이가 한 명 있었다.

‘황지호가 한 요리 못지않게 맛있는데…… 김신록이 잘 못 먹네.’

김신록이 젓가락을 단정하게 움직이는 게 몇 번 보였으나 앞접시에 놓인 음식량이 잘 줄지 않았다.

용제건과 내가 있던 아침 식사 때에는 저러지 않았으니 원인은 염준열일 거다.

염준열이나 용제건이 김신록이 단답으로 응해도 이상하지 않을 화제를 던진 덕에 분위기는 언뜻 보기엔 나쁘지 않았으나, 김신록이 불편해하는 건 아마 저 용들도 눈치챘을 거다.

“신록아, 배불러?”

“……어.”

“별로 못 먹었네. 디저트라도 더 주문해야겠다. 오늘 디저트는 홍시 샤베트래.”

김신록이 뭐라고 답하기 전에 용제건이 홀로그램 메뉴판을 호출했다.

샤베트 위에 곶감과 꿀이 고명으로 올라가 있었는데, 김신록이 순간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보였다.

김신록은 정말 곶감을 좋아하는 건지 홍시 샤베트가 나오자 바로 숟가락을 쥐었다.

용제건은 처음부터 곶감이 들어간 디저트가 나오는 레스토랑을 고른 걸까?

그러면서도 염준열의 취향까지 고려한 게 참 철저하고 재치 있었다.

하지만 용제건은 곧 김신록의 속이 얹힐 법한 화제를 꺼내 들었다.

“준열아, 이번에 우리 학교에 후예들이 입학하는 거 알아?”

“네?”

“……!”

김신록이 순간 디저트 스푼을 떨어뜨릴 뻔했다.

용제건은 그 반응을 보고 아주 즐거워했고, 김신록은 디저트 스푼을 용제건의 이마에 던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염준열은 후예가 입학한다는 말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정말인가요? 올해 신입생 중에 후예가 있어요?”

“응.”

“그런데 후예들이라고 하는 걸 보니 한 명이 아닌 것 같은데…….”

“맞아, 한 명이 아니야.”

“너……!”

김신록이 뭐라 말은 못 하고 입을 뻐끔뻐끔거렸다.

용제건이 함부로 은호의 후예에 관해 발설하는 것처럼 보이니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용제건은 실컷 김신록의 반응을 즐기다 말했다.

“걱정하지 마. 허락은 받았어. 준열이가 순찰 도는 중에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으니 미리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더니 승낙했어.”

아침에 황지호와 대화를 나누더니 그런 이야기를 했나?

하긴, 시험이 코앞이고 염준열이 후예들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이야기해 두는 게 나을 거다.

“혹시 의신이도 후예들이 입학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 아이들은 의신이와 친해.”

“그렇구나…… 의신이는 좋은 선배가 될 거야.”

염준열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인간이고, 은서호와 은이호는 후예인데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염준열의 편견 없는 태도에 새삼스럽게 감동받았을 때, 문득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은서호와 은이호 둘은 그렇다 쳐도, 은호는 어떻게 설명할 거지?’

후예들이 은호를 마주치면 바로 진족인 걸 알아볼 텐데.

게다가 용제건도 은호가 입학하리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용제건은 틈만 나면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니 은호와 마주칠 가능성이 크다.

‘은호라면 대책을 세워 놨겠지.’

천성헌 시절이었을 때의 행적과 은호로 깨어나 상황을 대처하는 모습을 고려하면 이미 수를 생각해 뒀을 게 분명했다.

“여태까지 후예분들과 교류가 별로 없었는데, 우리 학교에 후예들이 여러 명 있어서 기뻐요.”

“새로 들어올 후예들은 여태까지 홈스쿨링을 통해 공부했대.”

“아, 그럼 학교를 다니는 건 처음인가요?”

“응, 학교에 적응하도록 잘 도와줘.”

“맡겨 주세요. 의신이랑 같이 좋은 선배가 될게요.”

이미 염준열은 좋은 선배인데, 저기에서 더 훌륭해질 생각인가……!

염준열의 향상심에는 늘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염준열은 용제건과 김신록을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니까 선배로서 할 일은 별로 없겠지만요.”

염준열이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있는 은광고의 두 교사를 칭찬했다.

저 올곧고 예의 바른 모습에 용제건이 흐뭇해하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비슷할 것 같았다.

“……아닙니다, 염준열 군이 모범적인 상급생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지익회 학생들도 학생회장 칭찬을 자주 하더군요.”

김신록이 어딘가 벽이 느껴지는 태도로 덕담을 한 번 건넨 이후로는 말없이 디저트 그릇을 비웠다.

용제건이 추가로 주문한 디저트가 나왔을 때, 화제가 바뀌었다.

“입학 실기 시험 날에 날이 맑았으면 좋겠네.”

“일기 예보를 보니 맑을 예정이래요. 무녀님들도 날이 맑을 거라고 했고요.”

염준열은 용왕신의 무녀에게 날씨에 관해 질문한 건가?

매일 아침마다 보내는 염준열의 기상 예보에는 무녀가 한 예측도 포함되어 있었나 보다.

무녀라는 말에 김신록은 번쩍 고개를 들며 동요했는데, 용제건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우아하게 샤베트를 떠먹으며 염준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매번 무녀님들을 귀찮게 하는 건 아니에요. 평소에는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예보를 참고해요. 중요한 날에는 만일을 대비해서 묻지만요. 그런 날에는 일기 예보를 전할 때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염준열은 멋쩍어하며 내 쪽을 봤다.

염준열은 불의 용을 다루니 날씨를 신경 쓰는 건 당연한 건데, 무녀에게 날씨를 확인하는 이유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나!

염준열의 신중한 태도와 섬세한 배려에 재차 감격하였다.

“준열아, 뭐라고 하려고 물은 게 아니야. 날씨는 네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조심해야지.”

용제건은 도자기로 된 받침에 디저트 스푼을 올려 두며 자연스레 되물었다.

“준열아, 작년 실기 시험 때에도 무녀에게 날씨를 확인했어?”

지금까지의 대화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염준열은 매일같이 날씨를 꼼꼼하게 체크한다.

또, 중요한 날에는 무녀에게 날씨를 묻는다.

작년에 염준열은 학생회장은 아니었으나 학생회 소속이었으니 그날 은광고에서 안내역을 맡았을 거다.

장시간 실외에 대기해야 하니 염준열이 무녀에게 사전에 날씨를 확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설마 용제건은 저 질문을 하기 위해 저녁 식사 자리에 염준열을 부른 걸까?’

김신록이 염준열을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려고 부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아니, 유희계 용답게 일거양득을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

정보를 확인해서 공유할 겸, 본인의 유희를 즐길 겸 말이다.

염준열은 주저 없이 곧바로 답했다.

“네, 그때 날씨를 확인했어요. 무녀님께서 비가 온다고 해서 실내를 돌아다니며 안내역을 맡았는데, 그날 날이 맑았죠.”

용왕신의 무녀는 그날 염준열에게 비가 온다고 고했나 보다.

그날은 내가 이 세계에 온 날이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입학 실기 시험을 치르던 날, 은광구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그날 외부 순찰조에 들어가 있었다면 13조 아이들을 빨리 도우러 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미안해, 의신아.”

“아니에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도우러 갈게. 아, 그 무슨 일 자체가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용제건은 염준열의 말이 끝나는 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무녀의 날씨 예측이 빗나갔네. 뭐, 백 년에 한 번씩 빗나가기도 하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지.”

“무녀님께서도 굉장히 미안해하셨어요.”

“하하하,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아, 그때 날씨를 누구한테 물었어? 최고참인 유황(硫黃)이나 가장 강력한 녹(綠)의 무녀는 실수하지 않을 것 같은데…….”

용제건의 떠보는 말에 염준열이 잠시 고민했다.

어쩌면 그동안 염준열은 그날 있던 일에 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음…… 다른 분들이 질책하실까 봐 말하지 않았는데, 제건이 형이 뭐라 하실 리가 없으니 알려 드릴게요.”

염준열의 깊은 배려심이 그날 무녀가 잘못된 날씨를 가르쳐 줬다는 사실을 덮고 있었나 보다.

용제건은 그걸 꿰뚫어 보고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이끌어 낸 거고.

염준열은 사심 없이 말했다.

“제게 그날 날씨를 알려 주신 분은 홍(紅)의 무녀님이에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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