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48화 (546/925)

76. 은광고 입학 시험 (10)

황명호 대저택, 점심.

은광고 입학시험 중 필기시험이 치러지기 전.

은호의 후예들이 들떠 있는 얼굴로 식탁 쪽으로 왔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는 거라 그런지 둘은 시험을 앞둔 긴장감보다는 외출의 기대감이 더 큰 듯했다.

요리를 마친 황호가 상석에 앉자 은호의 후예들이 인사했다.

“작은 황호님! 잘 먹겠습니다!”

“와, 다 맛있어 보여요. 예전에는 그 모습으로 수비드 요리는 어렵다고 하셨는데…….”

“이 몸에게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꼭꼭 씹어 먹어라.”

황유호의 모습을 한 황호가 흐뭇해하며 음식을 권했다.

황호는 어린 모습을 할 때에는 음식을 진공 포장하고 물 순환기를 조작하기 어렵다며 마력으로 기계를 움직이곤 했는데, 이젠 익숙해진 건지 짧은 팔다리로도 능숙하게 수비드 요리를 했다.

황호는 초등학생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게 스테이크 나이프를 놀리며 말했다.

모습은 물론 말한 내용도 초등학생답지 않았다.

“오늘은 적호가 모습을 감추고 경호할 거다. VIP 대우를 받는 게 일반 학생들 눈에 띄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울 테니까.”

은호의 후예들이 호족의 보호하에 있다는 건 황호가 호족을 이끌고 습격받는 토족을 구한 시점에서 적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은호의 후예들이 학교생활을 할 때 호족이 대놓고 곁에서 경호를 하는 건 꺼려졌다.

기껏 학교생활을 즐겨 보라고 은광고에 데려다 놨는데, 방해하는 꼴이 되니까.

게다가 VIP가 경호를 거부하고 혼자 자유롭게 행동하다가 위험에 처하는 건 흔한 클리셰 아닌가.

경호를 거추장스러워할까 봐 은호의 후예들을 배려했는데, 아이들은 어른스럽게 말했다.

“저희는 상관없어요! 호족분들께서 편하게 움직이시는 방향으로 정해 주세요.”

“네,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기쁜걸요.”

“의신이 오빠한테 들었는데, 황호 님은 딱히 학교에서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급우들과 잘 지내시고 있잖아요.”

조의신이 그런 이야기를 했나?

조의신이 자진해서 황호의 이야기를 하고 다닐 것 같진 않았다.

은호의 후예들이 학교에서의 황호가 어떤지 궁금해 졸라서 들었을 게 분명했다.

경위가 어쨌든, 조의신이 황호가 급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라고 판단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급우를 만나서 정체를 숨길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너희들도 운이 좋으리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0반 분들은 다 사이가 좋다고 들었어요. 현재 2학년, 3학년 0반 분들은 단체 활동을 자주 하시던 걸요.”

“……그건 사실이지만, 아직 반 배정이 완료된 건 아니다.”

반 배정은 물론이고 입학시험도 치르지 않았는데 은호의 후예들은 합격과 0반 입성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은호의 후예들의 역량을 고려하면 합격은 당연한 거고, 반 배정이야 황호가 힘을 쓰면 얼마든지 그들을 0반으로 배정할 수 있었다.

‘조의신도, 나도 그렇게 0반에 들어갔었지.’

황호는 예전에 협박과 다름없는 말로 조의신을 0반에 배정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 일을 후회하는가, 아닌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황호는 망설임 없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할 것이다.

황호와 조의신이 같은 0반이었기에 경험하고, 구하고, 막았던 것들이 많았으니까.

그만큼 조의신이 수많은 위기와 마주쳤던 걸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솟았다.

즉, 황호는 후회는 하지 않아도 미안해하고 있었다.

‘은인에게 은혜를 갚기 쉽지 않군.’

황유호의 모습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탓이라서 그런 걸까.

겉으로 보기에는 다음 반찬을 뭘로 집어 먹을까 고민하는 것처럼밖에 보이지 않았다.

은호의 후예들은 순식간에 점심 식사를 마치고 떠들고 있었다.

“황호 님께 부탁하면 바로 0반에 넣어 주시겠죠? 하지만 그건 안 돼요! 최후의 수단으로 쓸래요.”

“맞아요, 의신이 형은 저희가 직접 입학시험을 치르길 바라는 눈치였어요. 면접관 눈에 잘 들어서 0반에 들어갈게요.”

은이호와 은서호는 면접을 대비해 이것저것 준비했다며 의욕에 차 보였다.

황호의 힘을 빌리지 않겠다는 은호의 후예들이 대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잘 생각해 보니까, 호족의 경호원을 여러 명 데리고 눈에 띄어서 특이하게 굴면 0반에 들어가기 쉬울 것 같은데…….”

“……나도 지금부터 눈에 띄어야 할까.”

은서호와 은이호에 이어 은재호도 부러움에 찬 눈으로 그런 소리를 하자 황호가 화제를 바꿨다.

“적호가 준비 중이다. 일정이 바뀌면 서운해할 테니 그냥 다녀오도록.”

“네!”

황호와 은재호의 배웅을 받으며 은호의 후예들은 은광고로 향했다.

미로 정원을 지나 황금 담장 앞 정문을 넘자 눈앞에 붉은 안개가 일렁이다가 사라졌다.

적호가 합류했다는 신호였다.

은서호와 은이호는 적연이 보였다가 사라진 방향에 작게 손을 흔들고 바깥으로 발을 내디뎠다.

“얼마 만에 외출하는 거더라?”

“저번에 의신이 오빠 부모님께 헌화하러 갈 때 이후로 처음이야!”

비록 적호가 곁에 있고, 그걸 알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단둘이서 외출한 기분이 들었다.

둘은 바깥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걸었다.

당장이라도 달려서 은광고에 가고 싶기도 했지만, 가는 길까지의 풍경도 즐기고 싶었다.

“은광고다!”

은이호가 결계가 쳐진 정문과 새하얀 시계탑을 발견하고 탄성을 뱉었다.

첫째 은서호는 호족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은광고 앞까지 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지금과 달리 은광고의 정경을 보고 감상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은서호는 은광고를 처음 본 은이호만큼이나 감격했다.

“여기가 이렇게 멋있었구나……!”

은광구, 은광고.

전부 은호에게서 이름을 따온 장소였다.

그 후손인 은호의 후예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 한 바퀴 돌아볼래?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

“오래 걸릴 거 같은데. 학교 안 구경도 하고 싶고…… 아, 우리 그럼 서문 쪽으로 가 보자! MITRON 구경할래!”

“그래!”

남매가 사이좋게 서문을 향했다.

갑작스러운 이동 경로 변경에 적연으로 몸을 감춘 적호가 당황했으나 흐뭇해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애초에 이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적호가 온 것이다.

적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둘의 안전을 지킬 생각이었다.

“아, 진짜 뭐 같네. 하필 사람이 이렇게 많은 날에 왔담. 미리 말을 해 주든가……!”

높은 곳에서 은광고를 보고 싶다는 은서호와 은이호가 천익산의 산자락을 탔을 때, 누군가와 마주쳤다.

혼자 구시렁거리는 중인 건 더벅머리를 한 여성이었다.

강력한 이능을 지닌 건지 짜증을 낼 때마다 작게 스파크가 일었다.

여성을 보던 은서호와 은이호가 가만히 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성은 진족이었으니까.

여성도 둘의 존재를 눈치채고 이쪽을 봤다.

은서호와 은이호가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더벅머리 여성을 바라봤다.

‘밖에서 정체불명의 진족을 마주치면 도망치라고 했는데…….’

‘적호 님이 아무 반응이 없는 걸 보니까 괜찮은 게 아닐까?’

은서호와 은이호는 상대가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둘은 인사부터 하기로 했다.

적호가 둘을 제지하는 기색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뒤에 덧붙인 말은 인사는 아니었지만 예의 바르게 머리를 숙인 덕에 대충 구색은 갖춘 인사는 되었다.

하지만 둘과 마주친 여성은 못 볼 걸 본 얼굴을 했다.

“후예가 이런 데에 왜…… 아니, 난 아무것도 안 물을래. 난 간다!”

“네? 저기, 누구신데요!”

더벅머리 여성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은서호와 은이호의 눈과 힘으로는 도저히 쫓을 수 없는 속도였다.

적호는 여성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별문제 없을 거라고 판단한 둘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은광고 주변에 있었으니까, 우리 학교 관계자가 아닐까?”

“호족분은 아닌 것 같은데…….”

시간을 허비한 탓에 MITRON 안에 들르지는 못했으나 유리창을 통해 진열된 겨울 디저트를 구경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은서호와 은이호가 교문을 통과했을 때였다.

“……!”

“어?”

둘은 또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마주했다.

이번에는 방금 마주친 더벅머리 여성과 달리 아는 상대였다.

그의 정체는 현재 은광고 학생회장, 용족의 후예 염준열이었다.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지만, 염준열이 매체에 자주 등장하다 보니 둘은 일방적으로 그를 알았다.

염준열은 놀란 듯하나 바로 곧게 뻗은 눈매를 보기 좋게 휘며 웃었다.

“안녕, 너희가 그 애들이구나. 제건이 형한테 이야기 들었어.”

“안녕하세요!”

서로를 알아본 후예들이 통성명을 했다.

만난 건 처음이었으나 후예를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서로 아주 반가워했다.

염준열은 은서호와 은이호의 우애 깊은 모습과 밝은 태도에 호감을 가졌다.

은서호와 은이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교 얘기가 궁금해서 의신이 형한테 이것저것 물었는데, 학생회장은 아주 좋은 분이라고 하셨어요. 성실하고 유능하시다고요.”

“의신이가? 그렇구나……!”

조의신의 화제를 꺼내자 염준열이 몹시 기뻐했다.

은서호와 은이호는 조의신에게 칭찬받을 때마다 기쁜 마음이 들었기에 호감을 품은 염준열에게도 그 이야기를 꺼냈는데, 효과는 굉장했다.

후예들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서호랑 이호라고 했지?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네!”

“그럼 다음에 봐요, 준열이 형!”

염준열과 헤어져 시험장으로 향하는 사이, 그들은 인간이 아닌 이들을 몇 번 더 마주쳤다.

하나는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용제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상에서 용제건을 못마땅하게 보는 김신록이었다.

김신록은 둘을 발견하자 언제 못마땅한 얼굴을 했냐는 듯 다정한 말로 응원했지만, 용제건이 착륙하자 다시 마뜩잖은 얼굴을 했다.

“은광고라서 그런지 사람이 아닌 분이 많다, 그렇지?”

“응, 우리는 별로 특이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아. 어떡하지?”

“후예라고 대놓고 밝혀도 눈에 안 띌 것 같아…….”

은서호와 은이호의 걱정은 더욱 커졌다.

시험장 앞에 도달했을 때, 킬킬거리면서 이상한 책자를 뿌려 대는 3학년 0반 일당을 만났기 때문이다.

강력한 이능을 사용해 서로 쫓고 쫓기는 자치 기구 학생들과 0반 학생을 보니 그들은 불안해졌다.

특히 우기환의 광기 어린 모습을 보니 저걸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 어떡해! 우리 0반 못 들어갈지도 몰라!”

“이거 팁 모음집이라는데? 이걸 참고하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곳에 기록된 우기환 일당의 기행들과 이력들을 보며 둘은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필기시험이 시작되기 전과 필기시험이 끝난 후의 막간을 이용해 ‘신입생을 위한 은광고 팁 모음집’을 몇 번이나 읽은 둘은 결론을 내었다.

“우리가 우주의 기운을 찾자!”

“우리 힘만으로는 역부족일지도 모르니까 0반 선배인 의신이 오빠의 힘을 빌리자!”

둘이 결심하는 모습을 본 적호가 소리 없이 한숨을 지었다.

이미 은서호와 은이호는 훌륭한 0반 꿈나무였지만, 둘은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후예의 우주의 기운을 찾는 모험이 시작되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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