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시험의 결과 (1)
면접 날이 되자 학교 전체가 신입생과 관련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오늘 오후 늦게 치러질 면접이 남아 있으나 거의 합격자가 확정된 상황이니 다들 후배들을 맞을 생각에 신났나 보다.
내가 알고 있는 내년 신입생들을 떠올리면 이런 반응은 당연하긴 했다.
‘이번 후배들 중에는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도 있고 은호도 있고 후예도 있으니까 다들 설렐 법하지.’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이 은광고에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다들 정정당당하게 은광고에 입학할 실력을 갖춘 이들이니 내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긴장하며 시험을 치를 아이들을 생각해 신경은 쓰고 있었는데, 내 속을 알아챈 황지호가 헛소리를 했다.
“입학시험의 결과가 궁금하나? 궁금하면 미리 말해 줄 수도 있다.”
그 아이들이 떨어질 리가 없는데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평상시처럼 무시하고 축제 연습이나 하려 할 때였다.
“연습에 열심이군, 조의신. 잘 안 되면 나한테 말하도록. 과외 선생을 붙여 주거나 이 몸이 직접 조언을 해 주겠다.”
누가 축제 준비를 하려고 과외 선생을 따로 구하는가.
어차피 내가 맡은 파트는 별로 어렵지 않아서 황지호에게 불필요한 부탁을 할 일은 없을 거다.
반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축제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유리야, 슬비랑 루이스한테 연락 돼? 축제 때는 올 수 있대?”
“아하하…… 연락은 되긴 하는데, 아무래도 오기 힘들 것 같아.”
권레나가 구슬비와 옹길동 이야기에 관해 묻자 김유리가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두 관종이 축제 같은 빅 이벤트를 놓칠 리가 없는데.
연락이 안 되는 바람에 관종들이 축제를 못 오는 한이 있더라도 연락이 되는 상황에서 못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조금 걱정이 되려 할 때였다.
“왜? 길동…… 루이스한테 무슨 일 있어?”
옹길동과 나름 친해진 민그린이 먼저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송대석이 잠시 울컥한 얼굴을 했지만, 다들 제 할 일에 바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김유리는 잠시 말할까 말까 망설인 듯했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루이스의 말로는 검은 숲에서 만난…… 어둠의 다크니스한 검객과 삼세판 승부 중이라 귀국하기 어렵대.”
대체 옹길동은 해외에서 뭘 하는 바람에 김유리에게 저런 부끄러운 대사를 읊게 하는 것인가!
한이는 자신이 ‘어둠의 다크니스’라는 단어를 제대로 읽어 낸 건지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는데, 독고미로가 친절하게 맞다고 설명해 줬다.
“그 새끼는 해외에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어둠의 다크니스…… 표현이 중복되는데요. 왜 굳이 그런 수식어를…….”
“삼세판 승부 중이라고 하니, 최소 두 번 승부를 하고 돌아올 것 같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순간 우리 반 아이들이 머릿속에 관종들이 뭘 하러 갔는지 떠올렸다.
지난번에 옹길동이 남긴 힌트로 그의 목적을 추측해 내지 않았던가.
황지호는 그들의 목적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등교하지 않는 반 아이들을 찾으러 간 거겠지. 결석 중인 셋 중 둘은 해외에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 삼세판 승부 상대는 아직 이 자리에 없는 등교자이거나 그 관계자일 가능성이 컸다.
옹길동은 그 승부 상대에 관한 묘사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0반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듯했다.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냥 등교하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도록 방치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반 아이들은 내 생각과 다른 듯했다.
“그런데 그 승부 이기면 걔가 등교하는 거야?”
“와, 그럼 그 어둠의…… 검객이 등교하면 앞으로 두 명 남는 거야!”
민그린의 질문에 차마 다크니스를 입에 담지 못한 권레나가 기뻐했다.
다른 아이들도 은근히 새로운 등교생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송대석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반 아이들도 거의 다 기대하고 있고, 함근형 선생님은 기뻐할 거고, 용제건도 재밌어하겠지…….’
결국 나도 어둠의 다크니스한 검객이 등교하도록, 속으로 옹길동과 구슬비를 응원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응원하는 건 정해져 있긴 하지만, 나름의 각오를 굳힌 결정이었다.
만약 검객이 등교하게 되면 관종들과 함께 등교할 텐데, 그 일당들이 학교에 나오면 정말 우리 반은 0반 같은 0반이 되어 버리지 않을까?
원래 우리 반은 0반이긴 했지만 우리 반은 그동안 등교를 안 했을 뿐이지 착하고 얌전하지 않았던가.
착잡한 마음이었으나 어쨌든 점심시간을 모두 소모해 축제 연습을 하고 해산할 무렵.
사월세음이 디바이스를 확인하다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어쩌면 다음 해의 1학년 0반에 제가 아는 애가 올지도 몰라요. 지금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하네요!”
사월세음의 말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사월세음은 사월 일족과 학교 사람들 외에 교류가 거의 없지 않나?
혹시 사월세음에게 가호를 내린 계족과 관계가 있거나, 사월 일족 중에 누가 입학하는 걸까.
‘사월 일족 중에 올해 입학할 아이는 없을 텐데…….’
사월 일족에는 사월세음 또래가 없었다.
그나마 나이가 가까운 게 그의 삼촌인 사월세민이었으니 한 살 차이 일족은 없을 거다.
쉽게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때였다.
“아는 애? 어떤 애인지 물어봐도 돼?”
“제가 등교하는 첫날에 만난 아이예요! 안내역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쪽에서 알아보고 인사했어요.”
사월세음의 첫 등교일은 만우절.
만우절에는 웅족이 학교 입구 주변까지 쇄도하여 은서호가 탄 택시를 사고로 위장해 전복시키려 했다.
웅족은 처리했으나 택시 기사가 기절하는 바람에 택시를 멈춰 세웠어야 했는데, 그걸 세운 게 사월세음이었다.
“등교 첫날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아마 그날 은광고 견학을 온 게 아닐까요? 아, 그땐 동생 없이 혼자 왔던데 오늘은 같이 왔더라고요. 동생이랑 같이 은광고에 입학할 예정인가 봐요.”
“동생이랑 같이? 쌍둥이야?”
“아뇨, 쌍둥이는 아닌데 10개월 터울 동갑인 동생이래요. 여동생이었는데, 머리 스타일도 비슷하고 아주 많이 닮아서 일란성 쌍둥이라고 착각할 뻔했지만요.”
사월세음은 후배가 생길 거라는 생각에 들뜬 건지 이런저런 말을 해 줬다.
사월세음은 어제나 그저께에 은서호와 은이호랑 마주쳐서 순식간에 친해진 모양이었다.
사월세음은 두 후예와 디바이스 코드도 교환했다고 한다.
나는 그걸 듣고 묘하게 안심했다.
‘사월세음이 호족들과 친하게 지냈으면 했는데, 잘됐다.’
비록 사정상 밝히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그날 직접적으로 은서호를 구해 호족의 은인이 된 건 사월세음이다.
나만 은인 소리를 듣고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보던 황지호가 관자놀이를 누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조의신, 또 쓸데없는 생각을…….”
“네? 의신이가 하는 생각이 쓸데없을 리가 없잖아요.”
“……정말 조의신을 잘 따르게 됐군.”
사월세음은 속사정도 모르고 황지호의 말을 받아쳤다.
내 생각보다 황지호의 말이 더 쓸데없는 건 맞았기에 나는 사월세음에게 맞장구를 치기 위해 고개를 즉각 끄덕였다.
황지호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사월세음이 밝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제가 0반인 걸 알고 있더라고요! 0반 티가 많이 나는 걸까요? 그 아이들이 0반에 가고 싶다면서 조언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0반 티가 나는 건 딱히 좋은 표현이 아니지 않나?
은서호와 은이호는 황지호에게 들어서 사월세음이 0반인 걸 알고 있었을 거다.
사월세음은 겉보기에는 선량한 모범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이걸 두고 누가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다들 그냥 넘어가는 눈치였다.
“플레이리스트 건으로 0반이 언론에 조금 노출됐잖아. 그걸로 알아봤을지도 몰라.”
“우리 반은 인원수가 적으니 금방 얼굴을 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훈훈하게 점심시간을 마치고 안내역을 맡은 아이들은 다시 정해진 구역으로 이동했다.
필기, 실기보다 면접을 치르는 이들의 수가 적어서 시험장 수가 줄어든 덕에 오늘 순찰은 여유가 있었다.
면접이 시작된 사이, 잠깐 쉬는 시간이 생겨 음료수를 사 마시기로 했다.
내 몫으로는 오렌지 주스를 사고, 김유리의 몫의 카페모카를 건네줄 때였다.
“의신아, 혹시 어제 천동하 선배님 동생이랑 같이 있었어?”
디바이스를 보던 김유리가 말했다.
대충 옆에서 보이는 화면을 보니 은광고 종합 게시판을 확인하던 중인 듯했다.
‘슬슬 소문이 돌 때가 됐지.’
은광고에 들어 올 신입생을 기대하는 건 우리 반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학교 전체가 들떠 있는 상황이니 다들 신입생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학생은 천동하의 동생 천은하, 즉 은호다.
그 신입생 중에 2학년 전교 1등이자 선도부장, 재벌가 자제인 데다 이명을 받은 유명 플레이어의 동생이 포함되어 있으면 누구나 주목할 게 분명했다.
김유리가 보여 준 게시판 글은 이러했다.
[안중지계 동생 본 썰 푼다.]
‘안중지계(眼中之界)’는 천동하의 이명.
그렇다면 안중지계의 동생은 은호를 가리키는 말일 거다.
짧은 제목이지만 조회수가 굉장했다.
비록 내용은 몹시 짧았지만.
[강철의 쐐기랑 무명의 초신성이랑 같이 있던 거 봤음. 별로 닮지는 않았는데 둘이 개친함.]
사진 한 장 없는 목격담이었으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제목이 끈 어그로에 비해 내용이 빈약해서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듯했다.
다들 댓글로 내용을 더 풀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기대하고 왔는데 겨우 두 줄임?;;;]
[뭐야, 썰 더 풀어 줘요.ㅠㅠ]
[좋은 건 같이 보자, 좀.]
[나도 전 학생회장이랑 같이 있는 거 봄ㅇㅇ. 잘생겼더라. 동하랑 다른 잘생김임.]
[↑그래서 대체 어떻게 생겼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거 같음.]
[천동하한테 동생 없다고 들었는데 뭐임?]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된 댓글입니다.)]
[↑왜 여기 삭제된 댓글이 여러 개야? 사진이라도 올라왔어?]
[↑아…… 나 삭제되기 전 댓글 봤음, 말하면 안 될 거 같음.]
[↑힌트 좀 ㅠ]
[↑TC…… 천씨…… 읍읍…….]
삭제된 댓글의 흔적을 보고 스크롤을 멈췄다.
어두운 소문이 있는 TC 그룹과 천씨 그리고 숨겨진 사생아였던 천은하.
이들을 두고 소문이 퍼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소문의 확산 속도가 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이거는 막을 수 없어.’
이 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은호가 손가락질받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
천성헌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혹시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후배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는 무능한 선배였다.
나는 씁쓸한 마음을 접고 김유리에게 대답했다.
“점심시간에 시험장 근처에 있다가 우연히 만났어.”
“그렇구나, 천동하 선배님 동생이 무사히 합격했으면 좋겠다. 아, 커피 잘 마실게.”
김유리는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서로 조용히 음료수를 마시고 있을 때, 내 디바이스에 메시지 착신 알람이 도착했다.
김유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를 확인하니 우울한 기분이 날아가고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용제건] 순찰이 끝나서 용궁으로 가는 중이야. ^^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