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52화 (550/925)

77. 시험의 결과 (2)

용제건이 상공에서 은광고를 내려다봤다.

칼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거세게 흔들리고, 춥다며 짜증 섞인 비명을 지르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일을 대비해 공간술을 전개해 둔 덕에 용제건에게는 바람 한 점 닿지 않았다.

강력한 공간술과 비행술을 동시에, 그것도 장시간 전개하는 데에도 용제건의 이능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용제건은 실눈을 가늘게 떠 은광고의 결계를 응시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어. 지금 은광고의 결계를 무너뜨리려면 12지의 수장이라 해도 몇 시간은 걸리겠지.’

작년 일을 고려해 호족 측에서 은광고의 주변 결계를 강화해 둔 상태였다.

적이 침입한다면 면접이 끝난 후에나 가능할 거다.

용제건은 그렇게 확신했으나 공중에서 은광고를 한 바퀴 더 돈 후에야 안심하고 순찰을 끝냈다.

안심한 용제건은 그대로 비행하며 교무실로 향하기로 했다.

‘이제 슬슬 출발해 볼까.’

한창 은호와 그 후예들이 면접을 치를 시간이라 살짝, 아니, 대놓고 엿보고 싶었으나 참기로 했다.

은호는 아무렇지 않게 5천 살 연하인 조의신을 상대로 ‘의신이 형’이라고 태연하게 불러 댔는데, 면접도 얼마나 뻔뻔하게 할지 신경 쓰였다.

‘나중에 녹화본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 호족들이 전 수장의 고등학교 면접 영상을 나한테 넘길 리가 없겠지. 직접 보러 가는 수밖에 없나.’

잠깐만 보러 가도 되지 않을까?

합격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필기, 실기와 달리 면접 때에는 수험생과 면접관 모두 덜 민감하고 여유가 있다.

면접관이 수험생의 정신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일부러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돌발 사태를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니 은광고 교사인 용제건이 눈치 없게 면접을 구경하러 간다고 해도 별문제가 되진 않는다.

용제건의 기행이 하루 이틀 이어진 게 아니니 학생 면접 좀 구경했다고 이상하게 여기진 않을 거다.

용제건을 그리 기껍게 여기지 않는 은호가 불쾌해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그거대로 재미있을 것 같다.

용제건의 마음이 은호의 면접을 보러 가는 쪽으로 기울었을 때였다.

“거기에서 뭐 해?”

지상을 내려다보니 개잎갈나무 사이에 김신록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시간을 정해 주기적으로 김신록을 귀찮게 군 탓에 용제건의 위치도 쉽게 발각된 듯했다.

찌푸린 얼굴을 한 김신록을 보며 용제건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김신록은 용제건 쪽에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건 걸지도 모른다.

‘반말을 사용하는 걸 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나 보네.’

학교에서 용제건이 말 붙이는 걸 싫어하는 김신록이 굳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는 뻔했다.

그냥 친우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는 절대 아닐 것이다.

‘은호 씨랑 후예들 때문이겠지.’

과연 몇 천 년을 함께한 친우답게 용제건의 생각을 읽은 것 같았다.

김신록은 바로 은호의 면접에 관해 말했다.

“……그분의 면접을 보러 가는 건 아니겠지?”

김신록이 용제건을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김신록의 말대로 방금까지 은호의 면접을 구경하러 갈 생각이었지만 용제건은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은호의 면접 구경보다 갈 듯 말 듯 굴면서 김신록을 약 올리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역시 신록이가 나를 잘 아는구나.”

“그럴 줄 알고 막으러 온 거다.”

“하하하, 신록이가 말리면 참을까. 어쩌지? 그래도 은호 씨랑 그 후예가 어떻게 면접 볼지 궁금한데.”

“뭘 참고 말고야. 가지 말라고.”

“어떻게 할까.”

김신록은 용제건이 생각을 고쳐먹을 기색이 보이지 않자 이런저런 말을 걸며 시간을 끌어 붙잡아 둘 생각인 듯했다.

설득이 먹히지 않으니 시간 끌기로 발목을 붙잡는다.

김신록은 자신의 전략이 마음에 든 건지 뿌듯함 반, 용제건에 대한 역정 반이 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속이 훤히 보여서 용제건은 더 싱글싱글 웃었다.

용제건은 김신록과 어울려 주며 자연스럽게 교무실로 향했다.

“계속 공간술 쓰면서 날아다녔어?”

“응.”

“……지금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둘의 주변에만 바람이 멎은 걸 알아챈 김신록이 주변을 보았다.

엷은 시안색의 공간이 바람을 막고 있었다.

피잉…….

순간, 김신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호족들이 지닌 스킬, ‘안광’이 발동된 듯했다.

김신록은 ‘안광’으로 용제건과 공간술의 흔적을 살피다 생각에 잠겼다.

김신록이 ‘저 용이 은광고 안에서 저 정도로 힘을 쓸 수 있던가. 아직 교원 계약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여태까지 용이 힘을 숨기고 있었나?’라고 생각하는 게 용제건의 눈에 훤히 보였다.

김신록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건 간단했지만, 용제건은 그냥 실컷 고민하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고민과 추론의 과정을 지켜보는 게 꽤 재밌으니까 직접 물어볼 때까지 방치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질문을 못 던지게 화제를 바꿀 거지만.’

용제건은 김신록이 질문을 던질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신록아, 나 지금부터 적호 씨랑 용궁에 갈 거야.”

“뭐……?”

용제건이 한 말이 지나치게 효과가 큰 탓인지 김신록은 일순 사고가 텅 빈 듯했다.

김신록은 용제건이 시험 끝난 후 용궁으로 향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바로, 그것도 적호와 함께 가는 줄은 전혀 알지 못했을 거다.

김신록은 말을 조금 더듬으며 말했다.

“적, 적호 님은 지금 그 아이들의 경호를…….”

“그 아이들의 면접 순번은 앞쪽이잖아. 저택으로 바래다준 후에 바로 출발할 거야.”

“……나는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김신록의 목소리가 기어가는 것처럼 들렸다.

적호에게 용궁에 간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게 조금 충격이었나 보다.

적호가 김신록에게 임무나 행선지를 전부 고하는 건 아니지만, 용궁 방문은 하루 이틀 걸리는 일도 아닌데 아무 말 없이 아들을 두고 떠난다는 건 조금 정이 없긴 했다.

“적호 씨가 가기로 결정된 건 오늘 오전이야. 아마 너한테 말할 시간이 없었을걸. 신록이는 학교 업무로 바빴고, 적호 씨는 경호 일이 있었으니까.”

“……애초에 적호 님께서 내게 임무와 행선지에 관해 고할 의무는 없어.”

“그래그래. 아, 나랑 적호 씨가 한반도를 떠나면 신록이가 심심하겠다. 같이 갈래? 내가 용왕신께 부탁하면 들어줄걸.”

같이 용궁에 가자는 말에 김신록이 잠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뜬금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뭐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김신록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걸 보며 용제건은 아주 신나 했다.

김신록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못 가.”

그 답변이 나올 줄 알았다.

김신록은 교직원이니 갑작스럽게 며칠 자리를 비우는 건 어렵다.

책임감이 강한 김신록이니 담임을 맡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갑자기 용궁행을 결정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김신록이 ‘싫다’나 ‘안 가’라고 말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용제건은 만족했다.

용제건은 친우와 작별 인사를 마친 후, 조의신에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    *    *

면접이 모두 종료되어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귀가한 후.

나는 황명호 대저택으로 향했다.

회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은광고 수험이 끝나면 그동안 고생한 은호의 후예들과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또, 오늘 만나기로 한 건 후예만이 아니었다.

“후예들과 저녁을 한 후에는 은호의 별채에 들를 예정이라고 했나?”

“어.”

고생한 건 후예만이 아니라 은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직 같이 만날 수 없는 상태라 따로 보기로 했다.

은광고 입학시험이 끝나면 후예들과 만나라며 엄포를 놓던 적호는 용제건과 용궁으로 향했으니, 지금 은호를 강제할 이는 없었다.

‘용제건의 동행인으로 적호를 추천한 건 은호라고 했지…… 어쩌면 노린 게 아닐까?’

용제건의 메시지 내용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말하는 투가 내용과 달리 너무 가벼워 내가 잘못 읽었나 싶었다.

용제건의 메시지만 보면 마치 일 끝나서 술 한잔 하러 가는 중이라고 쓴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용제건은 호족의 동행자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용제건] 용궁에는 적호 씨도 같이 갈 거야.

황지호가 보물찾기 1등 상품으로 얻어 낸 용궁 초대권은 적호에게 양도된 모양이다.

호족에게는 용궁 초대권 외에도 용새(龍璽)의 허락이 남아 있긴 한데, 이번엔 적호 한 명만 보낼 듯했다.

그 메시지에 이어서 용제건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용제건] 나랑 적호 씨가 없는 사이 신록이를 잘 챙겨 줘.

[용제건] 다녀올게. ^^

김신록은 타이틀 히로인 안다인과 1학년 1반 아이들이 잘 챙겨 주고 있는데 굳이 나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황지호 저 노친네도 김신록을 몹시 아끼고 있고…….

물론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부탁한 사항이니 잘 지켜보긴 할 거다.

“…….”

평소 같았으면 이동 중에 노친네가 이런저런 불필요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텐데 오늘은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적호가 자리를 비워서?

아니면 은호와 후예들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아서?

그런데 어쩐지 그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에어 셔틀에서 내리기 전, 황지호가 조용히 말했다.

“조의신, 너도 그 아이들의 교육을 도와줬으면 좋겠군.”

은호의 후예들의 교육 말하는 건가?

그 아이들은 무사히 은광고에 합격해서 최고의 교육을 받을 텐데.

갑자기 그런 소리를 꺼내는 이유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면접에서 무슨 일 있었어?”

황지호가 머리 아파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지호는 영상을 하나 보여 줬다.

영상에는 은서호와 은이호의 면접 과정이 찍혀 있었다.

면접은 2인 1조로 진행되는데, 둘은 같은 조에 편성된 듯했다.

“이건 내가 손을 대지 않았다. 둘이 작성한 자기소개서에 같은 특기가 적혀 있기에 면접관들이 확인차 같은 조에 배정한 거다.”

황지호가 첨언했다.

둘이 같은 면접 조에 배정된 건 공정한 과정의 결과인 듯했다.

화면 속에서 은서호와 은이호가 맑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저렇게 착하고 바른 아이들에게 내가 교육을 두고 뭐라 할 필요가 있을까?

후예들이 0반 입성을 위해 다소 엉뚱한 발언을 한 모양인데, 아직 애들이니까 좋게 봐줬으면 좋겠다.

영상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면접관이었다.

―……특기란에 쓰여 있는 거 말이다. 설명 좀 해 주겠니?

그러자 은서호와 은이호가 서로를 바라보다가 면접관을 보았다.

둘이 같은 특기를 적어서 누가 먼저 설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나 보다.

―아무나 답변해도 괜찮다. 알기 쉽게 설명만 해 다오.

면접관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둘의 성적이 몹시 좋은가 보다.

만약 하위 50명에 해당되었다면 우물쭈물한 시점에서 즉각 압박 면접 모드로 들어갔을 테니까.

사실 공부와 관련된 사항이 아닌 특기에 관한 질문을 던진 시점에서 둘의 합격은 확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럼 직접 시연해 보겠습니다!

면접관이 시연해도 상관없다고 답하자 둘이 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아, 잠깐 준비물을…… 어?

그때,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다.

영상 너머로 주변의 공기가 울렁였다.

면접관들이 당혹스러워하며 이능파를 전개하려 할 때였다.

콰콰쾅!

다음 순간, 폭음과 함께 화면이 크게 흔들렸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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