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시험의 결과 (5)
1학년 0반은 곧바로 2학기 기말고사 대비에 들어갔다.
한이처럼 일반 에너미학 스터디 파티에 따로 들어간 아이도 있었지만, 공부 시간이 겹칠 때에는 기본적으로 모여서 같이 공부하게 될 것 같다.
“그럼 스터디에 참가하는 애들 수가 총 11명이지? 장소 잡기 어렵겠네.”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자습실에선 이야기하면서 공부 못 하는데…….”
등교하는 학생들이 늘어난 건 좋지만, 문제가 같이 발생했다.
예전에는 김유리 집에서 공부를 했는데, 이제는 사정이 좀 바뀌었다.
김유리의 아버지는 입원 중이었고 어머니는 병간호를 하시느라 집을 자주 비웠으나, 이제 건강을 회복하여 퇴원하셨다고 한다.
김유리가 반 친구들을 소개하고 싶다고 하니 하루 정도는 들러도 괜찮을 것 같지만, 혈기 왕성한 고등학생 플레이어들을 요양 중인 분들 곁에 두기는 좀 그랬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 뒀다.
“지익회관 내 스터디 룸, 시뮬레이터실이랑 스터디 카페 예약해 뒀어. 지익회관 쪽은 기숙사생만 이용 가능한데, 카페는 언제든 쓸 수 있어. 스터디 룸 호수랑 비밀번호 알려 줄게.”
“의신이가 예약해 줘서 다행이다! 예약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있었어, 미안.”
김유리는 자기가 반장인데 깜빡하고 있었다며 사과했다.
김유리가 얼마나 바쁘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는지 잘 알기에 괜찮다고 했다.
한편 스터디 카페 이야기를 들은 목우람이 진지하게 고민했다.
“부반장은 준비성이 좋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스터디 카페 사용료를 지불하기 위해 잠시 일일 아르바이트를 다녀오겠습니다.”
“반 아이들끼리 하는 스터디는 학급 활동으로 분류되니까 우리 반에 할당된 예산을 쓰면 돼.”
우리 반 학급 예산은 넉넉하게 남아 있으니 호구 목우람이 시험 기간 중 노동을 할 필요는 없다.
기본적으로 예산 관리는 김유리가 했는데, 능력자 반장이 얼마나 관리를 잘해 줬는지 축제 준비를 호화롭게 하고도 남아돌았다.
기본적으로 학급 예산이 많이 배정되어 있어 다 쓰기도 힘들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올해 은광고 학급 예산은 추가로 더 배정되었다고 들었는데. 혹시 황지호가 뒤에서 힘을 쓴 건 아닐까?’
학교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돈 많은 노친네라면 충분히 그럴 법했다.
황지호는 제가 내키면 얼마든지 돈을 더 뿌릴 호랑이였다.
어쨌든 우리 반 아이들 숫자가 늘어난 덕에 다 같이 공부할 장소 확보가 은근히 어려울 것 같아서 사전에 예약했는데, 잘한 것 같다.
지익회관 내 스터디 룸과 시뮬레이터실, 학교 주변 스터디 카페는 이 기간에는 늘 예약으로 꽉 찬다.
방과 후, 반 아이들과 같이 방문한 스터디 카페.
오늘도 스터디 카페에 공부하러 온 은광고 학생이 많은지, 카페 곳곳에 우리 학교 교복이 보였다.
“와, 사람 많다. 시설도 좋고…… 여기 예약 잡기 어렵지 않았어?”
“일찍 예약해서 괜찮아.”
이 스터디 카페는 염준열과 천동하를 만날 때 자주 방문하던 곳이라 나름 단골이어서 성수기, 비수기 시즌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래서 적절한 시기에 예약을 잡는 데에 성공했다.
넓은 스터디 룸 안에는 간단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캡슐 커피 머신과 미니 오븐, 휴식용 카우치, 인원수 별로 구비된 담요 등 밤을 지새워도 될 정도로 이것저것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잠을 줄이면서까지 공부하는 건 최대한 지양해야겠지만.
그렇게까지 안 하면 성적이 위험한 아이들이 있어서 걱정이 된다.
아이들이 시험 기간에도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공부를 도와야겠다.
“그럼 일단 공통 과목 모의시험부터 치를까?”
“응? 시험부터 쳐?”
“저번 스터디 그룹 때 없었던 애들이 많았지…… 음, 일단 쪽지 시험 앱으로 대략적인 성적을 보고 조를 나눠서 공부할 계획이야.”
김유리의 말에 저번에 스터디 파티에 없었던 독고미로가 당혹스러워했다.
갑자기 시험부터 본다고 하면 좀 그렇긴 할 거다.
그래도 각오를 굳힌 듯, 이번 스터디의 파티장 김유리 말에 따랐다.
각자 스터디 룸 중앙에 위치한 넓은 회의용 탁자에 앉고 설정을 마치자 파티션이 설치되었다.
가능성은 적지만, 반 아이들이 모두 등교했을 경우를 상정해 빌린 방이라 자리는 넉넉했다.
쪽지 시험 앱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은 긴장한 기색이었다.
특히 성적이 위험한 몇몇 아이들은 비장함까지 엿보였다.
삐삐삣!
잠시 후, 쪽지 시험 종료를 알리는 알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애플리케이션의 답안지 입력란이 꺼졌다.
맹효돈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권레나는 작게 ‘아……!’ 하고 탄식했다.
두 사람은 어째 위험할 것 같았다.
맹효돈은 그냥 뭐가 뭔지 모르는 것 같았고 권레나는 시간이 많이 부족한 듯했다.
“그러면 결과를 발표할게. 은광고 기준, 시험 앱이 예측한 쪽지 시험 평균은 65점이야!”
보통 쪽지 시험 앱에서 은광고 평균을 예측하면 70점 이상이 나오는데, 65점이면 다소 어려웠나 보다.
잘 생각해 보니 집중해서 지시문을 읽지 않으면 답안 선택을 실수할 법한 문제가 몇 개 있긴 했다.
그래도 5점이면 겨우 한 문제 정도만 차이 나지 않나?
하지만 그 한 문제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결과를 보니 내가 기억하는 우리 반 평균에 비해 좀 내려가 있었다.
모의 쪽지 시험의 결과는 이러했다.
[조의신 - 100점]
[송대석 - 95점]
[김유리 - 93점]
[목우람 - 90점]
[한이 - 84점]
[민그린 - 80점]
[사월세음 - 71점]
[독고미로 - 66점]
[황지호 - 40점]
[이레나 - 38점]
[맹효돈 - 22점]
결과를 확인한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평소보다 난이도가 높은 시험을 친 탓에 점수가 내려간 것도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낙제생도 나오게 생겼다.
“한 문제 차이로 낙제…….”
한 번 낙제를 경험해 추가 시험까지 치른 권레나가 고개를 떨구었다.
권레나는 현악부, 우리 반 축제 준비로 바빴는데 그 영향이 성적에 반영된 듯했다.
한 문제고 뭐고 그냥 대놓고 낙제인 맹효돈은 눈이 이미 죽어 있었다.
사월세음은 성적이 좀 떨어졌으나 축제 준비를 열심히 한 것에 비해 중간은 갔다며 만족해 했고, 독고미로는 유급을 면할 수준이면 상관없어하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예비 낙제생을 제외하고 가장 신경 쓰이는 아이는 한이였다.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한이는 평소에 반에서 2, 3등을 했는데…….’
여태까지 친 시험 결과를 생각하면 나와 엇비슷했는데, 이번엔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태호권 소모임 축제 준비로 공부를 못 한 걸까?
어쩐지 그건 아닐 것 같았다.
한이의 난조는 축제 준비 전부터 이어진 거니까.
‘독고미로와 대련한 이후로 단것도 많이 먹고 성적도 떨어진 것 같아. 일반 에너미학 수업 중에 치른 쪽지 시험 결과도 예전에 비해 좋지 않아.’
결과를 확인한 한이는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생각이 많아 보였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자 상위권에 속한 아이들은 말을 아꼈는데, 우리 반의 송눈새는 그렇지 않았다.
송대석은 마음속 깊이 한탄한 어조로 말했다.
“아, 뭐야. 다 맞은 줄 알았는데 하나 틀렸네. 뭐가 틀린 거지?”
100점을 놓친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지금 좌절에 빠진 아이들이 일어날 때까지는 기다려 줬으면 한다.
민그린이 뭐라고 하기 전에 노친네가 처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여전히 눈치가 없군. 심정은 이해한다.”
40점을 맞은 노친네는 가장 여유가 넘쳤다.
황지호의 전 과목 40점은 이미 하나의 콘셉트이자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은 상태다.
은광고인들은 황지호의 성적을 보고 ‘일부러 저러는구나.’ 하고 다 알아챘을 거다.
황지호가 택한 수업의 교사진들은 그냥 저놈이 시험을 친 대로 점수를 주고 있다.
노친네는 40점 콘셉트 유지를 위해 공정하게 점수를 주는 교사를 택한 듯했다.
‘어차피 황지호가 낙제를 하든, 낮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황지호가 신화계 호족이라는 건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황명 그룹 관계자라는 건 개나 소나 아는 사실 아닌가.
이젠 대놓고 언론에 얼굴을 내미니 노친네가 무슨 미친 짓을 하든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다들 방해하지 않을 거다.
한편 시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김유리가 두 개의 조를 나눴다.
“자, 그럼 기본 두 조로 나눠서 공부하자. 건의 사항이 있으면 바꿔 줄게! 1조 조장은 내가 하고, 2조 조장은 의신이한테 맡길 거야.”
비록 송대석이 두 번째로 성적이 좋지만 객원 연구원 일로 바쁜 점, 스터디에 자주 나올 수 없다는 점, 민그린을 지나치게 편애한다는 점, 눈새인 점 등을 고려해 반장인 김유리가 1조 조장을 맡은 것 같았다.
조를 보니 권레나와 맹효돈을 각각 케어하는 조로 나뉜 듯했다.
1조
조장 - 김유리
조원 - 목우람, 민그린, 송대석, 이레나
2조
조장 - 조의신
조원 - 독고미로, 맹효돈, 사월세음, 한이, 황지호
조 배정을 보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 과목이 비슷비슷한 아이들끼리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듣는 과목이 겹치는 아이들이 최대한 같은 조에 들어가게 하면서도 상성과 성적을 고려했구나.’
권레나와 목우람, 민그린과 송대석의 경우 찢어 두면 한쪽이 반발할 가능성이 컸는데 붙여 두다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또, 맹효돈이 수강 중인 수학 과목의 경우, 가르칠 여유가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같은 조에 잘 배정된 것 같다.
‘맹효돈은 탁 도인과 1대1 필살기 연구로 평소보다 더 공부를 못 했다고 했지.’
방윤섭이 탈주하는 바람에 강도도 심해지고, 파생 스킬을 얻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지점에 달해 꽤 혹독한 훈련을 받은 듯했다.
그 와중에도 22점을 받은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부반장, 나 이 중에서 알고 맞춘 문제 세 개밖에 없다.”
맹효돈은 빠르게 이실직고했다.
짱돌 맹효돈 선생께서는 22점 중에 반은 찍어서 맞춘 듯했다.
당분간 맹효돈 케어에 집중해야겠다.
다들 조를 나눠 공부를 하던 중, 사월세음이 말했다.
“루이스랑 슬비는 괜찮을까요? 공부는 안 하고 삼세판 승부에 바쁘신 것 같던데…….”
“아, 그…… 얘기를 들었는데…… 괜찮을 것 같아.”
김유리는 관종 두 사람에게도 스터디 그룹에 관한 소식을 전하느라 연락했나 보다.
그런데 괜찮다고?
두 관종의 성격을 생각하면 시험이 있든 말든 일단 승부에 몰입할 게 뻔한데.
김유리는 그들이 있다는 서양, 머나먼 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자기 새까만 옷을 입은 무림인들이 몰려와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을 습격했대.”
“응? 무림인?”
김유리가 어둠의 다크니스를 말할 때 목소리가 조금 떨린 것 같기도 했다.
민그린은 어둠의 다크니스보다는 무림인이 신경 쓰인 듯했으나 김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무림인이라는 건 관종들이 사용한 표현인가 보다.
그런데 무림인들의 습격이라니 괜찮은 걸까?
김유리는 해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습격자들이 그 검객을 붙잡아 기말고사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대……. 얼떨결에 루이스랑 슬비도 같이 공부하게 됐나 봐.”
그 무림인은 좋은 교육자들이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