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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59화 (557/925)

77. 시험의 결과 (9)

용족의 본거지, 해저 용궁.

용궁에 오랜만에 손님이 방문하였으나 문은 굳게 닫힌 상태였다.

용궁의 한쪽 문은 청색으로, 다른 한쪽 문은 황색으로 빛났고 문고리에는 오색의 기운이 감돌았다.

용족의 수장 청룡, 용궁의 관리자 황룡 혹은 용왕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자는 이 문을 넘을 수 없다는 표식이었다.

“적호 씨, 용궁 초대권은 가져왔어?”

용궁 초대권은 본래 황호가 용제건의 보물찾기에 어울려 얻어 낸 1등 상품이지만, 지금은 양도받아 적호의 손에 있었다.

은광고의 한 학생이 용궁 초대권을 ‘중국집 무료 이용권 같다.’라고 표현하였으나 저렴해 보이는 이름과 달리 용왕신의 힘이 서린 이 아이템은 귀물이라고 꼽을 만큼 귀했다.

용궁 초대권이 없다면 문턱을 넘을 수 없으니 챙겨 오는 건 당연했다.

만일 아무런 허락 없이 이 문을 넘고자 하면 청룡과 황룡, 용왕신의 힘이 몸을 꿰뚫을 게 분명했다.

용제건의 질문에 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용왕신이 언제 당신에게 이런 귀물을 맡긴 겁니까?”

“내 친구를 데려가고 싶다고 하니까 몇 장 줬어.”

“용왕신이 당신을 정말 아끼는군요. 공연히 용왕신의 총아가 아닌가 봅니다.”

“언뜻 듣기에는 비꼬는 말인 것 같은데,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 같네.”

용제건은 당장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미소 지었다.

적호는 리플레이를 전후로 용제건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뀌었는데, 그게 느껴질 때마다 용제건은 유쾌해지는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리플레이의 내용을 생각하면 웃을 수 없었지만, 지금 용제건의 친우이자 적호의 아들은 살아 있지 않은가.

용제건은 적호의 바뀐 태도를 순수하게 즐기기로 했다.

“아들의 말대로 잘 웃는군요.”

“하하하! 신록이가 그런 말을 했어?”

적호는 상당히 순화하여 표현했지만 김신록이 뒤에서 울분에 차 투덜거렸을 걸 생각하며 용제건은 신나게 웃었다.

한참 웃은 뒤에야 용제건이 용궁의 정문 앞에 섰다.

“그러면 문을 열게.”

용제건은 문 위에 손을 올려 이능파를 흘렸다.

용족의 기운을 감지한 정문이 녹색, 벽색, 홍색, 유황색, 자색으로 빛나다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

정문이 열리자 황색의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마치 황금의 구름처럼 보였다.

머리 위에는 바다가 있고 바닥에는 구름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황색의 면사로 얼굴을 가린 이들을 이끌고 황룡이 등장했다.

황룡의 눈은 가려져 있었으나 그 눈길이 용족이 아닌 외부자, 적호에 꽂히는 건 알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바다를 너머 하늘로 승천할 기운을 품은 황룡의 시선을 받고도 적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열 명의 무녀 후보생들이었다.

‘저자들이 ‘탈락자’들인가.’

용왕신의 무녀는 총 다섯 명.

그러나 역대 무녀 계승식의 시험에 응한 후보자와 탈락자는 더 많다.

시험의 결과, 탈락한 자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

용족과 연을 끊고 속세로 돌아갈 것인지, 용궁에 남을 것인지.

용궁에 남은 이들은 신에 가까운 존재, 황룡을 도와 용궁을 지킨다.

지금 황룡의 뒤에 서 있는 이들은 용궁에 남기로 선택한 탈락자들이었다.

“황룡, 오랜만이야.”

용제건의 말에 황룡이 적호에게서 시선을 뗐다.

적호가 황룡의 시선을 받고도 위축되지 않은 걸 내심 감탄하는 눈치였으나, 정작 적호는 황룡을 그리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난 시험 때 본 이후로 처음이군. 잘 왔다, 용제건. 이자가 소문이 자자한 네 유일한 친우인가? 후예로 알고 있었는데…….”

황룡은 반갑게 용제건을 맞이한 후 물었다.

적호는 유희계 여의보주의 친우 이야기가 용궁까지 퍼져 있을 줄은 몰랐으나, 그만큼 둘의 우애가 깊다고 여겨 만족스러웠다.

용제건은 적호가 마치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아는 것처럼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웃음을 참았다.

“아니, 그 친우의 아버지야.”

“그런가? 다음에는 그 친우도 데려오게.”

“응, 신록이가 시간이 나면. 일단 서로 소개부터 할까?”

용제건에 의해 적호와 용제건은 인사를 마친 후, 용궁 안으로 들어섰다.

용궁의 문을 넘는 순간 적호의 품 안에 있던 용궁 초대권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몇 발자국 더 나아가니 다시 가라앉았다.

“신격이 또 오른 거 같은데. 승천하고 싶어?”

“마음으로는 그렇다. 이 땅에는 네가 있고, 청룡이 있지 않느냐. 나까지 이 땅에 있을 필요는 없다.”

“황룡은 땅 위가 아니라 바다 아래에 있잖아.”

“그 말장난은 여전하군, 용제건. 나는 용궁을 지키는 임무가 없다면 진즉 용왕신의 곁으로 가고 싶었다.”

듣자 하니 황룡은 상위 존재로서 승천하고 싶은 듯했다.

이미 황룡의 자격과 힘은 충분했으나 용궁을 지키기 위해 이 땅 위에 머물고 있을 뿐.

그러나 그 신격을 숨길 수 없어 제천대성이나 현무처럼 눈을 가려야 하는 상황인 모양이었다.

해수진주가 장식된 복도를 거닐며 둘을 안내하던 황룡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황룡이 용제건의 가늘게 뜬 실눈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내 승천이 더 뒤로 미루어지겠군.”

“…….”

용제건은 말없이 싱글싱글 웃고 있었지만, 묘하게 말이 없었다.

황룡은 이 짧은 사이에 용제건이 감추고 있던 무언가를 꿰뚫어 본 듯했다.

“용제건, 신격이 올랐구나. 그래서 그리 눈을 가늘게 뜨면서 힘을 억누르고 있는 게야.”

“나는 몇천 년 전부터 이러고 다녔는데?”

“그때부터 네 신격이 그리 오를 거라 짐작하고 있던 게지. 용이 품은 여의보주의 일화는 인간 세계에 널리 퍼진 데다 점점 유명해지고 있으니 네가 신이 되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적호는 그 말에 놀란 마음을 감춰야 했다.

용제건은 오랫동안 실눈을 뜨고 다녔다.

저 유희계 용은 인간 사이에 섞여 노는 걸 좋아하다 보니 시안색의 눈을 보일 듯 말 듯 하게 뜨고 다니는 걸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저런 눈을 하고 다니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용제건은 자신의 신격을 숨기고 다닌 것이다.

‘과연 용왕신이 용궁을 맡길 만하군.’

적호는 황룡이 용제건을 다루는 솜씨에 감탄했다.

유희계 용제건, 후예 팔불출 청룡, 집에 안 붙어 있고 싸돌아다니는 방랑용 등을 보다 황룡을 보니 용족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잘 생각해 보니 호족 중에도 태만하여 즐거움을 좇거나 후예를 몹시 아끼거나 어디든 가겠다며 가호를 받은 호랑이가 있긴 했지만.

한편, 황룡은 용제건이 상위 존재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몹시 기껍게 여기는 듯했다.

“네가 상위 존재가 된다면 내 승천은 미뤄져도 상관없다. 용왕신께서는 너를 몹시 아끼시니 곁으로 돌아간다면 기뻐하실 거다.”

“용왕신께서 나한테 자유를 줬다는 걸 알잖아. 그리고 용왕신은 황룡도 아끼고 있어.”

“알고말고. 그 은혜를 잊은 적은 없다. 그리고 용왕신께서 그랬듯이 나도 네 선택을 존중할 거다.”

황룡은 용제건을 동생처럼 여기는 듯 부드럽게 다독이고, 품에서 금실로 치장된 눈가리개를 꺼내 용제건에게 내밀었다.

황룡이 착용 중인 것과 비슷한 디자인이었지만, 용제건의 눈가리개는 황룡 것과 달리 마감이 옥색의 실로 되어 있었다.

마치 용제건을 위해 준비한 것 같았다.

“네 위상은 매우 높다. 몇 번 더 여의보주로서 기적을 발휘하면 더 이상 눈을 그리 뜨는 것만으로는 신격을 감추지 못할 테니, 이것을 받도록.”

“미리 준비해 둔 거야? 황룡은 준비성이 좋네. 내가 상위 존재가 되길 기다린 것 같아.”

“네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용족 모두의 것을 준비해 뒀다. 네 다음으로 신에 가까운 존재는 청룡이지.”

용제건은 황룡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는 건지, 눈가리개를 받아들였다.

적호는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기 어려웠다.

아들의 유일한 친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 저도 모르게 두 용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청룡은 진족으로서 인간 세계에 머물기를 택해 신격을 포기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용제건과 달리 청룡의 의지는 확고하오.”

적호의 말에 황룡은 의미심장한 말로 답했다.

그 말만 들으면 마치 용제건은 상위 존재가 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그렇게 들리는 게 아니라 용제건은 그리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면 용왕신께 안부를 전해 다오. 나는 손님을 대접할 연회를 준비하며 밖에서 기다리마.”

황룡이 용궁 깊은 곳으로의 안내를 마치고 자리를 비우자 적호는 다짜고짜 용제건에게 물었다.

“용제건, 상위 존재가 될 생각이십니까?”

“고민 중이야.”

적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땅에는 용제건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넘쳤고, 그는 용생을 있는 힘껏 만끽하고 있지 않은가.

그 모든 걸 저버리고 용제건이 상위 존재가 될 여지를 남기는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용제건은 눈가리개를 손에 쥐며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진족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많았으니까, 상위 존재가 되면 다를지도 모르잖아.”

용제건은 악몽 속에서 황호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하하하하······.

―······용제건?

―나와 당신은 역사와 신화에 이름을 새긴 존재인데, 그런 존재들이 그 아이에게 살고 싶은 이유 하나 주지 못한 게 우스워서 웃었어.

그때 표현했듯이, 신화에 이름을 남긴 진족의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친우를 잃었을 때에도, 그 이전에도 용제건이 무력감을 느낀 적은 많았다.

용제건이 신이 되어 가호를 내리고 여러 형태로 현세에 간섭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용제건…….”

적호가 부르는 말에 응하는 대신 용제건은 실눈을 크게 뜨고 오색 채운이 피어오르는 용궁 저편을 향해 걸었다.

용제건은 지금 적호보다 용왕신과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용궁은 상위 존재가 머무는 공간과 이어지는 곳.

이곳에 용제건이 오면 용왕신은 즉각 모습을 드러낼 게 분명했다.

“계승식보다 조금 이르지만 만나러 왔어요.”

용제건이 용왕신을 불렀다.

그러나 오색 채운에 둘러싸인 후, 아무리 기다려도 용왕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시간, 세 시간…… 열 시간이 지나 황룡이 그들을 부르기 위해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용왕신은 끝까지 용제건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    *    *

황지호로부터 용궁에서 일어난 일을 들으니 무녀 후보생이 겪은 일이 떠올랐다.

무녀 후보생은 용왕신의 부재를 알아채 흉사에 휘말렸다.

“둘은 예정보다 오래 용궁에 체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더군.”

“지금 둘이 용궁에 오래 머물면 안 돼. 일단 돌아오게 해.”

“용왕신이 부름에 응하지 않는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는데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원인 파악이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 대비만 하면 된다.

용제건과 적호를 더 이상 위험에 노출되게 할 필요는 없다.

“내가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어?”

“잘 마무리했다. 황룡에게 들키지 않게 움직이느라 수고한 모양이다.”

“그러면 목표는 달성했어. 용궁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년 초하룻날까지는 무사할 거야.”

황지호는 여전히 마음에 뭔가 남은 것 같아 보였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분신을 통해 바로 복귀하라고 전하겠다.”

용제건이 갑작스러운 용궁 방문 이유를 잘 둘러댄 것 같으니 의심은 그리 사지 않을 거다.

오히려 용제건이 지상의 즐거움을 접어 두고 오래 용궁에 머물면 이상하게 보일 가능성이 컸다.

황지호와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아이들이 등교했다.

“권제인 선배님이 간식 보내 주셨어. 같이 먹자! 영원의 호수 팀 셰프가 만들어 준 거래.”

권레나가 영원의 호수 팀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들어 올렸다.

양손 가득 쇼핑백이 들려 있었는데, 다 블루베리가 들어간 케이크와 머핀, 타르트가 꽉 차 있었다.

권제인이 반 아이들의 몫까지 전부 보내 준 듯했다.

‘요새 권제인은 재러드 리 건으로 바빠서 권레나를 챙기기 어려울 텐데.’

세 기사의 맹세 건을 두고 영원의 호수는 일촉즉발 상태였다.

세 기사의 맹세가 공공연하게 영원의 호수 팀 서브 마스터를 습격하고 납치를 시도했으니 곱게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놓고 전쟁을 치르지는 않아도 조용히 끝나지는 않겠지.’

하지만 시험 기간을 맞이한 조카이자 제자를 내버려 둘 수 없을 거다.

권레나도 권제인의 마음을 아는지 채찍술이 그럭저럭 늘어 시험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을 격려하다 보니 어느덧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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