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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64화 (562/925)

78. 양자택일 (3)

오후, 축제 준비에 한창이던 1학년 1반 학생들에게 첩보가 도착했다.

첩보를 전한 자는 신문부 소속 문새론이었다.

“용제건 선생님이 귀국했대!”

문새론의 말에 유상훈을 제외한 1반 학생들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고개를 휙 돌렸다.

여기저기에서 날 선 목소리가 들렸다.

“어딜 갔다가 온 거래?”

“해외에 다녀왔다는데.”

“무단결근하면 잘리지 않아?”

“안타깝게도 연차 쓰고 가셨다 옴.”

1반 학생들은 예전부터 담임 김신록을 괴롭히고 귀찮게 하며 학생들의 약을 올리는 용제건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계획을 지휘한 안다인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반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기말고사 직전에 용제건 선생님께 도전장을 보낼 거야. 시험 준비와 병행하느라 힘들겠지만, 다들 담임 선생님을 위해서 열심히 해 줘.

1학년 1반 학생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이들은 기말고사 실기 시험을 준비할 겸, 용제건을 사냥할 겸 혹독한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나 도전장을 보내기 직전, 용제건이 은광고에서 사라졌다.

용제건은 갑작스럽게 용궁행을 결정했기에 1반 학생들이 미처 대비할 틈도 없었다.

1반 학생들은 허무한 마음으로 기말고사를 치러야 했다.

그 덕에 1반 학생들의 실기 시험 평균점이 크게 올랐으나 기뻐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용제건이 귀국했다.

“당장 도전장을 날리러 가자!”

“어디 계신대? 붉은 사자 팀 빌딩?”

“막 귀국했으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을까.”

“학생회장이 정문으로 등교하니까 유희계 용족도 그쪽으로 오겠지. 내일 아침 정문에서 건네주는 것도 괜찮을 거야.”

1학년 1반 학생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는 가운데, 그곳에 끼지 못하는 인물 두 명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뚱한 얼굴로 날카로운 기운을 발산하는 급우들 사이에 끼어 있는 유상훈이었다.

유상훈은 반 아이들을 말릴 생각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일에 가담할 마음도 없는 듯했다.

다른 한 명은 안다인이었다.

안다인은 시선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얼음을 세공한 듯한 냉랭한 얼굴이 그늘져 보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함부로 말을 걸지 못했다.

“반장, 왜?”

물론, 예외는 있었다.

유상훈이 안다인에게 툭 말을 던졌다.

“……때가 안 좋은 것 같아.”

안다인의 말에 교실이 술렁였다.

안다인은 자진해서 선봉을 맡고 가장 호전적으로 계획에 임했던 인물이었다.

1반 최강의 플레이어가 갑자기 주저하니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안다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잠시 기숙사에 들렀을 때, 김신록 선생님을 마주쳤어. 그런데 뭔가 좀…… 지금 정면 대결 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좋을 것 같아.”

안다인은 명확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김신록과 마주쳤을 때 뭔가를 느낀 모양인데,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안다인의 감을 무시할 수 없어 다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유상훈이 다시 물었다.

“그럼 안 할 거냐?”

“아니.”

안다인이 단호하게 답했다.

용제건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접은 건 아닌 듯했다.

안다인은 생각을 정리한 듯 제안하였다.

“학교 축제에 맞춰서 준비하는 게 어떨까. 대결을 하되, 축제의 이벤트 중 하나로 보이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우선…….”

안다인은 전자 칠판에 기획안을 정리해 발표하기 시작했다.

1반 아이들과 계속 자리를 지키던 문새론이 그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타도 용제건’이라는 슬로건 아래에 모인 학생들의 사기가 다시 올랐다.

용제건은 김신록을 위해 아이들이 움직이고, 이벤트를 준비하는 걸 알면 즐겁기만 할 텐데 학생들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

특히 용제건은 은광고가 자랑하는 천재, 안다인이 김신록을 따르는 걸 아주 기쁘게 여겼다.

이를 모르는 채 학생들은 의견 교환에 몰두했다.

회의를 마치고, 학생들이 각자 준비에 전념하고 있을 때를 노려 문새론이 안다인에게 다가갔다.

‘용쌤 타도 계획 정보는 들었으니까 이제 다른 걸 확인해야지.’

주수혁과 안다인이 미묘하게 엇갈리기 시작했다는 건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김유리가 오해를 풀기 위해 움직였으나 연애 면에 지나치게 둔감한 안다인을 어찌할 수 없던 모양이었다.

주수혁과 안다인은 만날 때마다 책 이야기를 주야장천 하니 문새론은 책을 미끼로 던졌다.

“저번에 말한 책, 도서관에 들어왔음요.”

주수혁이 희귀서를 화제로 삼았는데, 안다인이 읽어 본 적이 없는 책이라 제대로 말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보통 썸을 타는 사이라면 어느 한쪽이 먼저 책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하거나, 빌려줄 수 있냐고 묻거나, 혹은 책을 보러 오라고 집으로 초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수혁과 안다인은 그런 고급 스킬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대화가 어색해지고 말이 끊긴 걸 서로 아쉬워했을 뿐이었다.

문새론은 안다인이 그 희귀서에 관해 언뜻 언급했던 것을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교장 쌤이 희귀서 수집가라서 다행이다. 다음에 증축된 도서관 취재할 때 교장 쌤 이야기도 써야지.’

잘 풀려 봐야 독서회나 하겠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이야기할 계기가 생기는 게 어디인가.

문새론은 푸근한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안다인은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옅은 슬픔이 묻어나는 얼굴에 문새론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 봐야겠다. 알려 줘서 고마워, 새론아.”

“……오랜만? 기말고사 기간 때 도서관 안 갔어?”

안다인의 대답에 문새론은 경악했다.

‘목격담이 안 올라오길래 혹시나 했더니!’

주수혁과 안다인이 도서관에 우연처럼 마주쳐 함께 시험공부를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기말고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랜만이란 건 기말고사 기간 내내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안다인의 대답에 문새론의 예상이 사실이 되었다.

“응, 이번에는 도서관에 가는 대신 학생회관에서 공부했어.”

“헐…….”

저도 모르게 탄식한 문새론이 입을 틀어막았다.

문새론은 먹지도 않은 고구마가 목에 차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문새론은 주수혁과 안다인의 커플 성사를 지지하는 자로서, 이번 축제 때 둘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    *    *

은광고 축제를 하루 앞둔 아침.

기말고사가 끝난 지 얼마 안 됐고, 어제 호랑이 저택에서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오늘도 등교는 해야 했다.

축제가 내일이니 안 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내 파트는 마무리되었으니까 오늘은 다른 애들을 도와야겠다.’

그런데 다들 나보다 잘하는데 내가 도울 일이 있을까?

축제 준비에서 오히려 반 아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 바람에 미안할 따름이었다.

고민하고 있을 때, 눈앞이 환해졌다.

“의신아, 안녕.”

인사해 온 건 주수혁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주변이 어둑어둑했는데, 타이틀 히어로가 걷기 시작하니 햇살이 드는 것 같았다.

주수혁은 자연스럽게 말을 걸며 1학년 건물을 향해 같이 걸었다.

“축제 준비는 잘돼? 1학년 0반은 뭘 하는지 못 들었어.”

“비밀로 진행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어떤 걸 할지 기대된다. 꼭 보러 갈게.”

대화의 주제는 축제였다.

주수혁네 1학년 2반은 베이커리 카페를 준비한다고 한다.

내 빵셔틀 방윤섭이 있는 반이라서 그런지, 다들 자연스럽게 빵 맛집을 잘 알고 자주 먹게 되어 의견이 금방 정해졌다고 한다.

방윤섭의 영향력이 그 정도라니!

기왕 부려 먹는 거 맛있는 빵을 사 오게 시킨 보람이 있었다.

“윤섭이는 축제 준비에 참가하지 않아서 아쉽긴 한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

“어떤 도움?”

주수혁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축제 준비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도움을 받았단 말인가.

주수혁은 장난치는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시장 조사를 할 겸, 우리 반 간식을 조달할 겸 새론이가 준 빵집 리스트를 돌아다녔는데, 윤섭이랑 같은 반이라고 하니까 덤을 많이 챙겨 주셨어.”

단골 빵 셔틀의 반 친구를 알아보고 빵집에서 챙겨 줬구나!

그냥 반듯한 주수혁이 마음에 들어서 덤을 챙겨 줬을 가능성이 있지만, 어쨌든 방윤섭의 힘도 있는 게 분명하다.

‘주수혁이 일부러 방윤섭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이거 아닐까?’

축제 준비에 참가하고 말고는 각자의 자유에 맡기지만, 협조성이 떨어지는 인물은 배척당하기 쉽다.

2반 아이들은 주수혁을 중심으로 뭉쳐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데, 방윤섭 혼자 불참하면 눈에 띌 수도 있다.

하지만 주수혁이 이런 식으로 방윤섭 덕에 덤을 받았다, 맛집 리스트를 사전에 확보했다는 말을 꺼내면 방윤섭이 배척당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타이틀 히어로 주수혁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가 느껴져 감동했다.

아까 인사할 때 앞이 환해진 건 주수혁이 빛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어쨌든 방윤섭도 축제를 즐기는 게 좋을 텐데.’

누가 즐기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니 나서기도 애매했다.

“의신아, 혹시 저번에 만난 철이 형 기억나?”

주수혁이 그렇게 부르는 건 전속 비서 겸 경호원, 김철이다.

플마고 기준으로 따졌을 때, 김철은 완전한 아군이었다.

4대 그룹 암투 시나리오에서 주수혁을 도와 움직이고, 마지막까지 주인공 일행의 조력자로 활약한다.

이 세계에서는 키모폴레이아 건 때를 비롯해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문제는 그 김철이 벽사의 춤을 춘 학생의 정체…… 백호군에 관해 캐는 중이라는 거지.’

황지호의 말에 의하면, 주오 그룹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다고 한다.

주오 그룹은 행사에 부르고 싶다는 명목으로 은광고와 사관학교의 스포츠 교류전 개막식에서 벽사의 춤을 춘 학생을 조사했다.

황지호가 조사한 결과, 그 조사의 주체는 김철이었다고 한다.

행사 관계자도 아닌, 주수혁의 비서가 움직인 게 묘했다.

그 점을 고려하면 주수혁이 왜 김철에 관해 말한 건지 짐작이 갔다.

“철이 형도 이번 축제 때 놀러 온대.”

김철의 성격상 놀러 온다는 건 말도 안 됐다.

김철은 은광고 축제에 백호군을 찾으러 오는 걸지도 모른다.

대체 왜 백호군을 찾으려 드는지 의문이었다.

게임 내에서 행적을 고려해 봐도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키모폴레이아호 사건 이후로 계속 기운이 없었는데, 요즘은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야. 축제 때 잘 놀고 가셨으면 좋겠어.”

주수혁이 덧붙인 말에 감이 잡힐 듯 말 듯 했다.

키모폴레이아호 사건과 스포츠 교류전 개막식.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몇 개 있었으니까.

생각을 이으려고 했지만, 주수혁의 이어진 말에 바로 중단되었다.

“아, 맞다. 수겸이 형도 오신다고 했어.”

그 주수겸이 온다고?

은광고 전체는 금연 구역인데 그 골초가 알고 오는 걸까?

순식간에 못마땅한 기분이 되어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쓸 때였다.

1학년 건물 앞,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신아, 수혁아, 안녕. 기숙사에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등교했다길래 에어 보드를 타고 앞질러 왔어.”

말을 건 인물은 성시완이었다.

기숙사에서 만나려 했다는 걸 보니 성시완은 내게 볼일이 있는 듯했다.

성시완은 갑자기 찾아온 걸 미안해하면서도 말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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