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65화 (563/925)

78. 양자택일 (4)

방윤섭은 자는 중에도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찝찝했던 감각이 점점 커져 거대한 공포가 되어 방윤섭을 짓눌렀다.

방윤섭은 덜덜 떨며 자신을 보는 무언가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방윤섭을 비웃듯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 모르는 척할 수 있을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뇌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사고와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방윤섭은 온 힘을 다해 그 소리를 모르는 척했다.

탁거산이 방윤섭을 혹독히 굴리는 동안 단련된 이능파가 그의 귀를 가려 주듯 멋대로 움직였다.

“윤섭아, 지각하겠다!”

“허억!”

방윤섭이 어머니의 일갈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니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방윤섭의 어머니가 아들을 한 번 깨우러 들어왔으나, 깊이 잠든 걸 보고 좀 더 재우기 위해 시간을 더 준 듯했다.

잠에서 일어나기 직전, 아주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겪은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시험도 잘 봤으니까 맛있는 거 먹여야지.”

식탁 앞에 앉자 팽이버섯과 함께 졸인 불고기가 담긴 그릇이 방윤섭 앞에 척척 놓였다.

방윤섭의 아버지는 불고기가 담긴 반찬 그릇을 아쉬워하는 눈으로 보다가 계란말이가 담긴 그릇을 밀어줬다.

방윤섭은 눈앞에 몰린 반찬 그릇을 멍청한 얼굴로 봤다.

방윤섭을 은광고로 보내겠다며 사교육으로 빡빡하게 굴릴 때에는 귀신이나 도깨비 같았는데, 지금은 너무나 다정했다.

‘……그렇게 안 굴렸으면 나는 은광고에 못 왔겠지.’

내버려 둬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있지만, 아닌 아이도 있다.

방윤섭은 후자에 속했고 그의 부모는 자신들의 아들에 관해 잘 알았다.

그래서 방윤섭이 이능을 각성하고 은광고에 관심을 보이자 무섭게 몰아쳐 그의 공부를 도왔다.

은광고 입학 준비가 워낙 힘들었고, 학교에서는 방윤섭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많았다.

방윤섭의 스트레스가 극한에 쌓인 결과, 그는 부모에게 짜증을 내고 화풀이도 많이 하는 등 한심하게 굴었다.

지금도 한심하게 구는 중이었다.

“버섯 안 먹어.”

“그럼 고기만 골라 먹어.”

그렇게 말하며 방윤섭의 어머니는 주걱으로 고기를 더 퍼 줬고, 아버지는 버섯을 골라 먹었다.

부모님이 다정하게 대하는 걸 보니 이상하게 기분이 더 나빠졌다.

차라리 시험 준비를 할 때처럼 냉정하게 굴면 화라도 내겠는데, 이래서야 방윤섭만 한심해질 따름이었다.

사실 방윤섭의 부모는 예전부터 다정했는데 혼자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애가 시험 보느라 힘들었나 보네. 일찍 잤는데 정신을 못 차리는 거 봐.”

“학교 못 간다고 노영미 담임 선생님께 전화할까? 시험도 끝났고 내일 축제니까 수업을 제대로 안 할 것 같은데.”

방윤섭의 아버지는 이능을 타고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플레이어였으나 이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방윤섭의 부모님은 플레이어로서는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설령 안다 해도 도움을 줄 길이 없었다.

방윤섭은 아침에 느꼈던 위화감을 잊기 위해 애쓰며 밥을 먹었다.

내일은 축제였고, 은광고 사람들은 축제 준비에 바빴지만 방윤섭은 지금 축제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그때 그 눈깔 때문에 내가 이상해진 게 아닌가?’

방윤섭은 어느 날, 난생처음 보는 문양을 새긴 로브를 쓴 자와 만났다.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물고 멍하니 있을 때, 그자는 힘을 주겠다면서 말을 걸었다.

방윤섭은 그자를 사이비 종교 단체 구성원으로 취급하고 꺼지라고 말했으나, 그자는 꺼지지 않았다.

―내가 섬기는 분의 권속을 심어 주마. 이 권속은 아직 씨앗에 불과하나 네가 품은 감정을 먹으며 싹이 트고, 네게 힘을 줄 거다.

로브를 쓴 자는 괴상한 구체를 내밀었다.

자주색의 촛농에 검은 잉크를 흘려 구형으로 굳힌 듯한 묘한 구슬이었다.

잘 보니 그것은 안구였다.

기겁한 방윤섭이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이상하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침 그 녀석이 남긴 안구가 두 개라서 말이지. 하나는 씨앗의 양분으로 삼기로 했어. 아주 강력한 권속이 태어날 거야.

자주색의 안구는 아바리티아의 사제가 남긴 것이었다.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이를 가공해 권속을 빙의시킬 매개체에게 심을 씨앗을 만들었다.

그 씨앗이 방윤섭에게 심어지려 하고 있었다.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안구로 만든 씨앗을 방윤섭의 심장 쪽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능파로 밀어 넣은 구슬은 방윤섭의 심장 쪽을 향하다 튕겨 나가기를 반복했다.

―심장에 심어 넣는 게 효과가 좋은데, 안 되네. 정신력은 처참할 수준으로 낮은데, 뭐가 더 있나?

결국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방윤섭의 오른손에 씨앗을 심어 넣었다.

방윤섭은 불길한 색의 구체가 제 오른손 안으로 빨려드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성장이 더뎌지겠지만, 대신 그 오른손의 출력이 더 강력해지겠지.

씨앗을 심은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만족하며 물러갔다.

방윤섭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혼자 있었다.

오른손에는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고 기억이 흐려져 있어 방윤섭은 제가 백일몽이라도 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을 경계로 방윤섭은 달라졌다.

알바를 한답시고 방윤섭을 추적하던 목우람을 떨쳐 낼 정도로 그는 강해졌다.

‘그래서 사이비 도인 할배가 말하던 그놈의 기연을 얻어 강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힘을 얻은 동시에 제 감정 중 가장 추한 부분, ‘질투’를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의 중심에서 웃고 있는 주수혁을 보면 화가 치솟고 오른손이 들끓는 것처럼 힘이 요동쳤다.

‘난 강해졌어! 주수혁 그 새끼를 이길 정도로 강해지면 분명…….’

주수혁에 이어 최영희가 생각났다.

방윤섭이 사 온 쿠키를 먹으며 희미하게 웃던 얼굴이 어른거렸다.

동시에 최영희가 주수혁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도 떠올랐다.

주수혁이 중학교 시절 참가했던 청소년 스포츠 대회 참가 사진을 뒤져 보면 최영희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주수혁 옆에 있는 최영희는 며칠 전 마주친 최영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고, 행복해 보였다.

―······너, 이상한 사람하고 엮이지 않았어?

방윤섭을 붙잡고 그렇게 묻는 최영희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다.

방윤섭이 강해진 걸 이상하게 여기는 모습에 주수혁과 비교하는 것 같아서 크게 짜증이 났다.

뒤늦게 자신이 뭔가 오해했다는 걸 알아챘지만, 이제 와서 사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 최영희에게 사과하려 해 봤자 얼굴을 보면 갑자기 차오르는 질투와 분노에 삼켜져 막말을 할 게 뻔했다.

방윤섭은 어느 사이엔가 숟가락을 움직이는 걸 멈췄다.

그 광경을 그의 부모님이 걱정스럽게, 또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순조로워, 12월 24일에는 완성되겠네.”

어둠 속에서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웃고 있었다.

그 손에는 자주색의 안구가 들려 있었다.

방윤섭에게 심은 안구와 쌍이 되는 다른 한쪽이었다.

안구에서 피어오르는 자주빛의 이능파가 인디비우스의 사제의 이능파와 섞여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방윤섭의 감정을 먹고 태어날 준비를 하는 권속의 힘이 강해졌다는 증거였다.

‘정신력이 약해 보이는 놈을 골랐는데 저항이 심해서 걱정했지. 그래도 이 정도면 되겠어.’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방윤섭의 정신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의 무의식을 파고들었다.

그가 벌이는 짓은 꿈이 끝나고 잠에서 깨기 직전의 무의식 속에 공포를 심어 정신을 흔들고 질투심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었다.

꿈을 파헤치는 게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몽마가 아닌 이상 이는 위험이 컸다.

지금은 얌전해졌다고 하나 꿈의 영역을 장악했던 상위 존재, 악몽 인섬니움의 비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인섬니움만 아니었어도 일이 수월해졌을 텐데. 하다못해 씨앗을 심장에 심을 수 있었으면…….’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그의 심장을 지키던 정신력의 결정체를 떠올렸다.

그것은 무의식 속에서도 가끔 씨앗을 방해하고는 했다.

그 결정체는 뱀 비늘 같은 모양이었다.

*    *    *

1학년 구역과 연결되는 천익산 산책로.

학생들은 축제 준비로 바쁘고 날이 추워서 통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스는 따뜻한 게 없네.”

성시완이 자판기에서 뽑은 캔 커피를 내밀었다.

성시완은 예전에는 커피를 권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레 주스부터 권했는데, 내 음료 취향을 기억해서 그런 듯했다.

“다음 주가 크리스마스이브니까 시간이 얼마 없어서. 친구랑 얘기하는 중인데 방해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성시완은 거듭 사과했다.

올 한 해 내가 성시완에게 신세를 진 걸 생각하면 미안해할 일도 아닌데.

“본론부터 말하면, 나는 할아버지의 시험을 통과했어. 이제 이담이 차례야.”

성시완은 그 정신 공격을 이겨 냈구나.

예상보다 빠르게 시험을 통과하다니, 과연 그 지부장의 손주이자 성국언의 사촌 동생다웠다.

성시완이 이 정도면 계이담은 졸업할 때쯤은 되어야 겨우 시험을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타인을 욕하고 괴롭히며 살아온 인간이 강한 정신력을 지녔을 리가 없다.

“이담이는 나와 다른 시험을 받았는데……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선배님과 다른 시험이요?”

“응, 이담이가 할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했거든.”

성시완은 그때 있던 일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계이담은 옛 한국 지부장에게 자신의 기억을 분석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방법을 찾은 모양이네.’

계이담이 히든 퀘스트 운운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입을 다물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정신 공격계 이능이었다.

한 번 겪은 일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생각해 낼 수 없을 뿐.

그렇기에 사람은 가끔 잊고 있었던 일을 특정한 계기, 단서를 얻으면 기억해 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세계에는 그 머릿속에 새겨진 기억을 읽는 이능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플레이어의 정신을 공격해 기억을 읽는 건 어려워. 하지만 읽히는 쪽에서 이능파를 제어해 주면 기억을 읽기 쉽겠지.’

이능파를 억누른 상태로 상대에게 자신을 드러내면 기억을 읽기 쉬워진다.

옛 한국 지부장 정도로 고도의 이능 앞에 완전한 무방비한 상태로 자신을 드러내면, 자신조차 잊었던 기억을 읽어 줄 거다.

그만큼 정신에 손상을 입을 리스크가 커지지만, 중요한 정보를 잊고 있다면 해 볼 만했다.

“할아버지가 기억을 읽는 대신 조건을 두 개 걸었어. 아, 참고로 이담이가 말 안 하려고 해서 내가 직접 따로 할아버지한테 물어본 거야.”

옛 한국 지부장이 기억을 분석해 주는 대신 건 조건은 두 개였다.

하나는 물리적으로 1대1 대련을 할 것.

다른 하나는 나와 성시완이 동행할 것.

‘……가기 싫다.’

내가 왜 그 ‘계’새끼를 위해서 가야 하나?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안다인의 히든 퀘스트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가느냐, 가지 않느냐 선택은 둘 중 하나였지만 안 간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었다.

나는 캔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 이를 악물었다가 답했다.

“갈게요.”

“다행이다……!”

성시완은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속이 터졌지만 그래도 성시완이 기뻐하고, 어쩌면 이번 일로 안다인을 도울 수 있으니 다행이라 여기기로 했다.

성시완과 헤어진 후 우리 반 교실로 향하는 길.

디바이스 메시지로 연락을 한 인물이 둘 있었다.

하나는 내 제자이자 선배인 염준열.

다른 하나는 문새론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려 할 때였다.

“의신아, 캐스터네츠랑 트라이앵글 중 하나 골라!”

우리 반 교실이 열리자 양자택일 선택지가 주어졌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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