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76화 (572/925)

79. 은광고 축제 (10)

‘사관학교 생도들이 이렇게 응원해 주다니.’

독고미로의 팬이라서 이렇게 열렬히 응원해 주는 걸까?

하지만 가장 열심히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내는 인물이 장남욱인 걸 보면 그건 아닐 거다.

장남욱이 독고미로에 관해 언급한 횟수를 생각하면 딱히 팬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조금 낯이 익은 빡빡이들이 보였다.

‘홍천까지 도시후를 잡으러 온 생도들이다.’

그 생도들은 장남욱 못지않게 리액션을 하며 우리 반을 응원하고 있었다.

설마 그때 도시후 건으로 아직도 고마워하는 걸까?

실제로 찾아내서 붙잡아 둔 건 함근형 선생님이지만, 어쨌든 우리 반이긴 했다.

과분한 응원을 받는 기분이 들어 민망해졌다.

물론, 장남욱 옆에서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부는 도시후는 예외다.

저놈이 친 사고 때문에 장남욱이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축제 기간 내내 우리 반을 응원해도 모자르다.

“안녕하세요! 1학년 0반입니다!”

독고미로가 활기차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등장할 때보다 더 큰 소리가 들렸다.

사관학교 생도들이 띄운 분위기에 함께 들떠 호응한 관객이 늘어난 덕이다.

곡이 시작되자 사전에 노래를 알고 있었던 듯, 쩌렁쩌렁한 떼창이 시작되었다.

놀란 얼굴을 하던 독고미로가 활짝 웃다가 고정되어 있던 스탠드에서 마이크를 빼 들었다.

‘리허설에서는 서서 부르기로 하지 않았나?’

상인관의 분위기를 고려해 그렇게 정했는데, 지금 멈춰 서서 노래만 하는 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독고미로도 그렇게 생각한 건지 간주가 흐를 때, 우리 쪽을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무대 위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독고미로가 관객석에 마이크를 내밀 때마다 최소 몇백 명은 될 것 같은 사람들이 동시에 부르는 노랫소리가 섞여 전율이 일었다.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는 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비록 트라이앵글 연주자지만, 그 거대한 노랫소리의 반주에 내가 치는 소리가 깔려 있다는 게 보람찼다.

위축되어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었다.

어느샌가 이 무대를 멋지게 완성하고 싶다는 의욕이 가득했다.

곡이 거듭될수록 떼창 소리가 더 커지자 독고미로는 그에 지지 않게 성량을 올리고 계획에 없었던 포인트 안무도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부를 곡은 제게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곡이에요. 은광고 축제에서 반 친구들과 같이 부를 수 있게 돼서 정말 기뻐요!”

순식간에 준비한 세 곡 중 두 곡의 연주가 끝났다.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는 독고미로가 은광고 정문 버스킹에서 부른 미션 곡이었다.

그 당시에는 없었던 옹길동과 구슬비가 사전에 녹음해서 보낸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시작으로 곡이 시작되었다.

각종 전통 악기가 뒤섞인 덕에 원곡보다 밝고 시원한 느낌으로 노래를 이어 나가던 중, 2절 하이라이트 부분에 이르자 반주가 잠시 뚝 끊겼다.

그리고 다시 권레나의 바이올린과 목우람의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었다.

하이라이트 파트는 버스킹 그대로를 재현한 거다.

‘그대로라기보다는 더 발전한 것 같은데.’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하는 독고미로와 바이올린 켜는 솜씨가 한결 발전한 권레나.

그리고 권레나와의 합주가 늘면서 기절 빈도가 줄어든 목우람.

그때보다 성장해서 그런지 무대의 완성도는 더 올라갔다.

버스킹 영상을 마르고 닳도록 반복 재생했을 독고미로의 팬들은 그걸 잘 아는지 울먹거렸다.

독고미로의 홈마 정해온이 카메라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걸 금찬솔이 달래는 게 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

독고미로가 덧붙인 고음의 애드리브와 함께 마지막 곡이 끝나자 등장할 때보다 더 큰 환호가 들렸다.

산발적으로 앙코르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섞여 있었지만, 앞으로의 예정도 있으니 우리 반은 여기까지다.

독고미로는 앙코르 대신 우리 반 아이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은광고 발표회에는 멋진 무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즐겨 주세요!”

우리 반 뒤의 무대는 연극부의 작품이었다.

2학년 0반 소속 연가람이 주연으로 등장하니 선배놈들이 분위기를 띄워 줄 거다.

예상대로 연가람과 연극부가 기죽지 않게 응원을 할 생각인지 2학년 0반에서 카드 섹션을 준비하는 게 보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장남욱이 있는 사관학교 생도들 쪽에 손을 흔들고 무대를 내려갔다.

백스테이지에 도착하자 드디어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아, 끝났다.”

“우리 진짜 잘하지 않았어?”

“미로는 연습 때보다 더 잘 부른 것 같아!”

독고미로를 중심으로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가운데 나는 크게 안도하고 있었다.

‘실수하지 않았다!’

트라이앵글은 치기 쉬운 대신 소리가 맑고 잘 울려서 실수하면 티가 크게 난다.

그걸 의식해서 박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연구와 노력, 연습을 거듭했는데 그 성과가 느껴졌다.

물론, 이번 무대가 이만큼 반응이 좋았던 건 독고미로와 사관학교 생도들 덕이 크지만.

‘그런데 문새론과 남궁규연이 아는 사이였나?’

무대를 내려가며 인사할 때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장남욱 주변에서 문새론과 남궁규연이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문새론은 정보통답게 발이 넓고, 낯가림 없이 말을 잘하는 타입이니 사관학교에 지인이 하나 있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니다.

그래도 남궁규연은 홍규빈의 동생이자 남궁 그룹의 관계자 아닌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얘들아, 고생 많았어. 푹 쉬고 내일 보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우람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말씀드릴게요!”

반 아이들과 상인관에서 발표회를 관람하는 것을 끝으로 은광고 축제 첫날을 마무리 지었다.

별일은 없었지만 현악부 발표회가 끝나자 목우람이 눈을 뜨고 기절했다.

기절했다기보다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잠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 같았다.

현악부의 발표회 순서는 마지막.

첫 번째만큼이나 긴장되는 마지막 공연을 담당했다.

‘하필 시작하기 직전 상인관에 권제인이 입장했지.’

우리 반 라이브 공연 때에는 모습을 숨겼지만, 명예 교사 권제인은 현악부 공연에는 얼굴을 드러냈다.

권제인은 현악부 연습에도 몇 번 도움을 준 적이 있으니 직접 나타나 격려해야 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관객들은 푸른 바이올리니스트를 보고 웅성거리고, 현악부는 대선배의 예상하지 못한 등장에 크게 동요했다.

그 결과 연주 중에 큰 실수가 발생해 한 번 연주를 중단했다가 다시 재개하게 되었다.

그때 침착하게 1학년 부원을 다독이고 연주를 이끈 게 권레나였다.

권레나의 솔로 파트가 없어서 크게 티는 안 났는데, 목우람의 말로는 이러했다.

―레나가 연주를 이끄는 게 느껴집니다.

목우람이 권레나를 뮤즈로 받들어 모시지만, 거짓말을 할 성격은 아니다.

권레나는 동요한 부원들 사이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며 연주를 이끈 모양이다.

그 모습에 크게 감동한 목우람은 발표회가 끝나고도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기절은 안 했으나 목우람은 여전히 갈 길이 먼 것 같다.

평소라면 나도 목우람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옆에 있었겠지만, 오늘은 일정이 있었다.

딩동.

그때, 디바이스에 첨부 파일과 함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상훈] (영상)

[유상훈] ㅋㅋㅋ

발신자는 유상훈인데, 긴 채팅을 보고 순간 잘못 안 건가 의심했다.

[장남욱] 무슨 영상이야? 확인해 볼게.

[장남욱] 아, 축제 때 의신이가 나온 공연을 촬영한 거구나! 응원하느라 바빠서 찍지 못했는데 잘됐다. 저장할게, 고맙다.

[장남욱] 아…… 의신이가 있는 장면만 놓고 보니까 느낌이 다르구나.

장남욱은 좋게 돌려 말했지만, 영상을 확인해 보니 왜 유상훈이 처음에 저렇게 박장대소를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영상 속의 나는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기계 처럼 손을 놀려 트라이앵글을 쳤다.

[유상훈] 영상회보다 더 심함ㅋㅋㅋ

유상훈이 축제 때문에 많이 설렜나?

유난히 말이 많았다.

영상회 때에도, 라이브 공연 때에도 나는 실수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노래에 맞춰서 악기를 연주하는 게 힘들다고 판단하여 반 아이들에게 맞추기로 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곡은 황지호가 든 매구채가 세 번 움직이고 1초 뒤에 치기, 그 다음은 한이가 힐 다운 주법을 시작하기 직전에, 또 사월세음이 제8현을 뜯는 것과 동시에 치기 등등.

철저하게 전략을 세워 임한 덕에 이런 무대가 완성된 건데.

내 수고는 조금도 모를 유상훈은 웃기만 했다.

장남욱은 무대 전체를 칭찬하는 방식으로 돌려 표현하긴 했지만, 유상훈 말이 틀렸다고 하지는 않았다.

장남욱은 표현은 안 해도 똑같은 생각인 듯했다.

일단 공연 보러 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메시지창을 꺼 버렸다.

“축제 중에 불러내서 미안. 오늘 공연 잘 봤어.”

디바이스 화면을 끄는 것과 동시에 약속 상대가 말을 걸었다.

내게 말을 건 인물은 성시완이었다.

“수혁이 사촌 동생 찾은 게 너라고 들었어. 별일 없었어? 많이 지쳤으면 나중으로 미룰까?”

“아뇨, 시간이 없으니 오늘 보죠. 주수리 실종 건이 지익회에도 전달됐나요?”

비록 내일도 축제지만, 앞으로 준비할 게 많으니 그냥 오늘 보기로 했다.

그런데 주수리 건이 많이 퍼진 걸까?

무사히 사건이 종결되었다고는 하지만 주오 그룹의 VIP, 그것도 중학생이 축제 중 실종된 게 널리 알려지면 좋을 일이 없다.

“지익회에도 협력해 달라고 연락이 왔었어. 혹시 이쪽에 올 수도 있으니 인상착의는 들어 뒀는데, 아마 다들 자세한 내용은 모를 거야.”

0반 졸업생을 잡느라 대대적으로 수색에 참가는 못 했지만, 지익회에도 연락이 간 건 사실인가 보다.

성시완이 덧붙인 설명을 들으니 아마 지익회 쪽에서 이야기가 퍼질 것 같지는 않았다.

현 지익회장은 몰라도 성시완은 신뢰할 만했으니 믿고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성시완을 믿지 못했다면 혼자 오지 않았겠지.’

성시완을 믿었기에 이 늦은 밤, 중요한 시기에 시간을 내서 혼자 왔다.

‘계’새끼가 정보를 쥐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는 없으니, 성시완이 없었다면 만약을 대비하고 왔을 거다.

“…….”

선도부 회관 앞.

복잡한 표정을 한 계이담이 나와 성시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시완은 이동하는 동안 나와 계이담 사이에 서서 축제 얘기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하지만 계이담의 정신은 어딘가에 팔려 있는 듯 대답을 못 하거나 핀트가 어긋난 소리를 해 댔다.

[둘을 데리고 왔군.]

구형 이계 시뮬레이터가 구현한 보스 룸.

저번에 봤을 때와 변함 없는 모습을 한 옛 한국 지부장이 서 있었다.

[너는 내게 기억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나?]

“……압니다.”

플레이어의 정신은 이능파로 보호된다.

인체의 생존을 위해 뇌와 심장이 뼈, 근육, 피부 아래에 숨겨져 있듯, 이능을 움직이는 플레이어의 정신은 이능파로 감싸져 있다.

옛 한국 지부장의 이능은 그 이능파의 틈을 파고들어 기억을 헤집는 것이다.

하지만 ‘계’새끼가 자진해서 기억을 확인해 달라고 한 이상, 그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능파를 억눌러야 할 것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스스로 자신의 속을 봐 달라며 배를 가르는 꼴이다.

[각오는 된 것 같군.]

옛 한국 지부장이 손을 뻗어 계이담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계이담은 순간 움찔했지만 그 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손이 닿은 이후 계이담이 제 이능파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계이담의 이마에서 땀이 철철 흐르고 안색이 파리해졌다.

생존 본능, 방어 본능을 억눌러야 하니 신체 기능이 저하되고 있나 보다.

“이담아!”

성시완의 목소리에 계이담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때, 옛 한국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똑똑히 보도록. 이자가 가진 가장 강렬한 기억이다.]

그 말과 동시에 옛 한국 지부장의 광림이 주변을 잠식했다.

예전에 내가 그 광림을 겪었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옛 한국 지부장이 눈앞에 보이고 내 정신이 흐트러지는 듯한 감각이 없다는 점이었다.

‘‘계’새끼가 안 보여.’

옛 한국 지부장과 성시완은 옆에 있는데, 계이담은 사라져 있었다.

“여기는 대체……!”

도로 위, 매캐한 연기 뒤로 추돌한 자동차들이 보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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