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행운아 (1)
현실이라면 바로 구조 활동을 시작했겠지만, 이곳은 옛 한국 지부장이 광림으로 구현한 공간이다.
나는 먼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기로 했다.
정황상 신호를 어기고 달린 트럭이 정차해 있던 중형 SUV를 옆에서 박은 것 같았다.
‘충돌한 곳을 지나친 지점에 스키드 마크가 생겼어. 설마 충돌할 때까지 감속하지 않은 건가?’
차량 결함 탓인지, 부주의했던 건지 원인은 알 수 없었으나 트럭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지면을 살핀 이후에 확인한 건 차종이었다.
제동이 걸리지 않은 탓에 차체는 크게 망가져 있었다.
알아보긴 힘들지만 플마고의 최종장이 업데이트된 때를 기준으로 했을 때, 출시된 지 10년이 넘게 지난 차종인 것 같다.
상황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다.
‘‘계’새끼가 교통사고를 당한 때인가 .’
내가 차량과 지면에 남은 흔적을 확인하는 사이 성시완이 차량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차문을 뜯어내려던 성시완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기억이라고 한 걸 잊었나? 조의신을 부르기 잘한 것 같군.]
옛 한국 지부장의 냉정한 태도에 성시완이 진정했다.
성시완이 창틀이 구부러진 탓에 반 정도만 보이는 유리창을 통해 차 안을 살피다 눈을 부릅떴다.
“……안에 이담이가 있어요.”
예상대로 이건 계이담이 겪은 교통사고의 현장 같다.
뒷좌석에 앉은 계이담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성시완이 혼란스러워했다.
“이담이 같은 플레이어가 왜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거지? 교복을 입은 걸 보니 중학생 시절인가? 아니, 이담이가 막 입학했을 때보다 체격이 큰데…….”
계이담은 지금과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피투성이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수도권 소재의 과학고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고등학생이 맞을 거다.
성시완이 아는 계이담은 과학고가 아닌 은광고에 진학했으니 이상할 법했다.
“자동차나 주변 시설도 구형인 것 같아요. 혹시 이담이가 사고의 목격자인가요? 아, 명찰을 보니 이름도 달라요!”
성시완이 그럴 듯한 가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옛 한국 지부장이 곧바로 부정했다.
[아니, 지금 그 안에 있는 건 네가 계이담이라고 부르는 자다.]
“네?”
성시완은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였으나 그 이상 옛 한국 지부장이 답하지 않았다.
결국 성시완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한편, 현장에 있던 이들이 사고를 목격하자 기민하게 대응했다.
신고를 하는 행인,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우는 운전자, 가게에 비치된 소화기를 들고 나오는 상인 등등 시민 정신이 돋보이는 광경이었다.
구급차와 소방차도 금방 도착했다.
하지만 차문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손상된 탓에 유압 스프레더를 동원해도 쉽게 열리지 않았다.
“구조가 늦어! 이 주변에는 플레이어가 한 명도 없나?”
플레이어의 신체 능력, 이능을 사용하면 구조는 금방 끝났겠지만, 이 세계에는 이능이 없다.
계이담의 머릿속을 어느 정도 읽어 낸 옛 한국 지부장은 뭔가 알아챈 것 같았다.
[…….]
옛 한국 지부장의 AI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자리에 올 때 이 상황은 각오했다.
성시완과 옛 한국 지부장은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아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이들이니 내 이력이 드러나도 괜찮을 거다.
‘어떻게,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는 조금 고민되지만.’
그때, 마침내 계이담이 들것에 실려 이동했다.
코뼈, 턱뼈 등이 금 가고 부서졌는지 얼굴이 부은 상태지만 의식이 있었다.
계이담은 대답하지 못했지만, 구조대원이 뭔가 말을 할 때마다 눈을 깜빡였다.
몸을 가눌 수 없어도 반응할 정도로 기력이 남은 걸 보니 사고 경위를 전부 기억하고 있을 거다.
“……다행이다.”
계이담이 구급차로 이송되는 걸 보며 성시완이 안도했다.
계이담은 이능이 없는 세계 기준으로 상당히 빠르게 구조되었고 부상당한 정도가 심했지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건 계이담 하나였다.
[이 이후로 기억이 끊기는군. 다음 기억은…… 그래, 병원이다. 입원한 상태군.]
“회복 아이템을 쓰고 통원 치료를 받는 게 아니라 입원했다고요?”
[회복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고 하는 게 옳겠군.]
“네?”
이 세계에 있어서 이능과 아이템의 존재는 상식이다.
그게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모습을 보니 이해가 쉽지 않은 듯했다.
‘옛 한국 지부장은 묘하게 이해가 빠른 것 같은데.’
곧 옛 한국 지부장에 의해 공간이 바뀌었다.
다음 장소는 종합병원의 1인실이었다.
널찍한 1인실에 꽃 바구니, 음료 세트, 편지 등 환자를 걱정하는 이들이 보낸 선물이 가득했다.
계이담이 얼굴과 몸 여기저기에 석고 붕대를 착용한 채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이곳에는 계이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말씀하세요.”
계이담의 말에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계이담의 먼 친척으로 추정되는 노인이 차분하게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계이담의 부모와 사고를 낸 가해자가 사망한 것.
자동차 제조사 측에서 차량 결함을 인정하여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것.
‘설마 저 교통사고는 그 이후에 발생한 일인가.’
숨이 턱 막히면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도 차량 결함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겪었다.
계이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가족이 휘말린 연쇄 추돌에는 생존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제조사가 차량 결함을 이렇게 쉽게 인정하는 건 드문 일이다. 얼마 전에 체스 신동 가족이 비슷한 사고를 당해 여론이 좋지 않아서 꼬리를 내린 것 같구나.”
우리 가족과 계이담은 원인과 결과가 비슷하지만, 발생한 장소와 시간은 다른 사건에 휘말린 듯했다.
하지만 계이담은 자동차 제조사의 이익을 위해 용서를 강요받는 일은 겪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의 사고 이후로도 그 자동차 제조사에서 출시한 차량이 낸 교통 사고가 연달아 발생한 건 알고 있었다.
사고가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그중 유력자 집안이 엮였다는 걸 들은 기억이 있다.
그게 계이담의 집안이었나 보다.
‘1인실을 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친척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변호사를 셋이나 데리고 온 걸 보니 확실해.’
노인이 대동한 이들은 라펠에 양팔저울이 그려진 무궁화 금 배지, 변호사 배지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번 사고 처리와 상속 과정을 도울 예정인 듯했다.
‘내가 기억하는 ‘계’새끼는 그렇게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
전역한 이후, ‘계’새끼와 귀찮게 엮였던 일을 생각했다.
아마 그 즈음에는 상속받은 재산을 거의 날려 먹고 저 유력자 집안에게 손절당한 게 아닐까?
아무리 불행한 사건을 겪어도 사람들은 오래 동정해 주지 않으니까.
게다가 계이담을 문병 온 이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운이 좋았구나.”
“천운이 따랐어.”
“행운아네.”
사고에 휘말렸지만 사지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사고 후에 자동차 제조사의 집요한 괴롭힘, 언론의 장난에 놀아나는 상황도 겪지 않았다.
유력한 친척의 도움을 받아 막대한 재산을 합법적인 절차를 걸쳐 상속받았다.
계이담을 순수하게 걱정하는 친척과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다들 계이담을 행운아라고 여겼다.
그러나 운이 좋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계이담은 입을 꾹 다물었다.
계이담은 문병 온 이들을 다소 무례하게 대할 때에도 있었으나 아무도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계이담을 걱정할 뿐이었다.
[행운아라.]
옛 한국 지부장은 냉소적으로 한 마디 뱉고 기억을 빠르게 흘렸다.
시간이 꽤 흐른 건지 석고 붕대를 전부 푼 계이담이 홀로 병실에 있었다.
계이담은 사고 이후에 발간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읽는 기사는 전부 교통 사고와 관련된 것들뿐이었다.
‘거의 우리 가족 이야기네.’
계이담 부모가 겪은 사고도 언급되어 있지만, 천재 체스 기사 가족이 겪은 사고 이후로 또 발생한 유사한 사고 정도로 한두 줄만 언급되어 있었다.
한국의 통계상 매일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은 대략 열 명.
이들 모두가 주목을 받지는 않는다.
통계적으로 따지면 계이담의 부모는 매일 죽는 열 명 중 두 명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금방 잊히고, 묻혔다.
“……내가 운이 좋다고?”
계이담이 신문을 구겼다.
“어디가, 어떻게 운이 좋다는 건데!”
계이담이 난폭하게 선반에 쌓인 선물들과 꽃을 바닥에 내던졌다.
계이담이 날뛰는 바람에 수액 주사 바늘이 뽑히고, 피부가 긁혀 피가 여기저기 튀었다.
“이담아…….”
성시완이 그 모습을 보며 말을 걸었지만, 기억 속의 계이담이 그 목소리를 들을 리가 없었다.
대신 음료가 들어 있던 유리병이 깨진 탓에 소리가 병실 밖까지 들려 간호사가 뛰어 들어왔다.
기억은 그 뒤로 빠르게 흘렀다.
계이담은 학교를 자퇴하고 방에 틀어박혔다.
그저 틀어박혀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꼴을 본 성시완이 한탄했다.
“이담아, 왜 모르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쓰는 거야…….”
계이담은 허구한 날 인터넷에 악플을 써 댔다.
주로 교통사고에 관련한 기사에 달았다.
‘죽지는 않았으니까 운이 좋았네.’
‘혼자 불행한 척 구네.’
계이담은 법으로는 처벌하기는 어렵지만, 보면 불쾌해지는 내용을 잔뜩 썼다.
그 댓글의 대부분은 계이담이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들이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악플만 쓰는 계이담을 걱정한 친척이 억지로 그에게 검정고시와 수능을 치르게 해 대학은 갔다.
현역이라고 부를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공부에 뜻이 없던 탓에 비인기 학과를 추가 합격으로 겨우 들어갔다.
그러나 계이담은 적응하지 못했고, 이 시점에 사고 전 사귄 친구들은 하나 둘씩 연락이 끊겼다.
그러던 어느 날, 계이담은 어느 게임 광고를 보게 되었다.
“모바일RPG 광고 포스터? 저기 있는 건 수혁이랑 다인이잖아……!”
포스터를 본 성시완이 경악했다.
정류장 가득 도배된 포스터 속에서 주수혁과 안다인이 등을 맞대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모바일RPG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교’의 광고였다.
‘저 악플러는 게임 런칭 전부터 폐인이었네.’
플마고 오픈 직전에는 한반도 전체가 플마고 광고로 뒤덮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TV를 켤 때마다 광고 방송이 나오고, 각종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포스터가 보이고, 인터넷을 할 때마다 배너가 있고 영상에도 광고가 삽입되어 있었다.
타이틀 히어로와 히로인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광고 영상이 잘 뽑히긴 했지만, 자주 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질려 하는데 계이담은 달랐다.
계이담은 넋을 잃고 화면을 응시했다.
플마고 오픈 전까지는 그랬다.
“미친?”
이름 없는 튜토리얼에서 순식간에 죽은 계이담이 욕을 뱉었다.
욕을 하는 상황은 계속 되었다.
“안다인 펫한테 무슨 짓이야, 개새끼들아! 아니, 개만도 못한 새끼들아!”
“또, 또 죽이려고?”
“아, 이 미친 최편득 새끼 잘릴 때까지 게임 접는다!”
“안다인 새 의상 나왔네. 이건 뽑아야지.”
“아오! 퀘스트 보상 개 구리네!”
교통사고 기사 단골 악플러 계이담은 플마고 전문 악플러로 전직했다.
‘계’새끼는 플마고가 얼마나 망겜인지 구구절절하게 까며 누군가가 플마고의 장점을 언급하면 게거품을 물고 키보드 배틀에 임했다.
그 광경을 충격과 혼란에 빠진 성시완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공간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정신이 흐트러지기 시작했군. 넘어가야겠다.]
“이담이 상태가 안 좋나요?”
[길게 끌면 정신이 붕괴되겠지.]
“……!”
온갖 추한 꼴을 봐도 성시완은 계이담이 걱정되나 보다.
옛 한국 지부장은 기억을 크게 건너뛰었다.
장면은 크게 바뀌어 있었다.
[이 세계에는 징병제가 존재하는군. 지금 네 후배는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네?”
[후배가 아니라 후배‘들’이라고 해야겠지.]
계이담의 계급장은 세 줄.
즉, 계 상병 시절이었다.
계이담의 시선 너머에 이등병이 되어 자대에 배치된 내가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