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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78화 (574/925)

80. 행운아 (2)

이날은 내가 이등병이 되어 ‘계’새끼가 있는 자대에 배치된 날이었다.

성시완이 군인인 나와 지금의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키가 큰 것 같긴 한데, 의신이잖아! 어? 의신이도 그 플마고라는 게임을 했어?”

“네.”

“그럼, 의신이도…….”

이 세계에서 ‘계’새끼의 이름은 계이담이 아니었으나 나는 조의신 그대로였다.

성시완은 반신반의하다가 군인인 내 이름을 확인하곤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 보여 줘서 유감이다.]

옛 한국 지부장이 말을 걸었다.

나도 좋은 선배 성시완이 악플러의 쓰레기 같은 인생을 봐야 한다는 게 유감이다.

기왕 보여 줄 거면 플마고를 플레이하는 걸 더 자세히 보여 주는 게 좋지 않나?

계이담이 쌍욕을 하면서 게임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성시완은 플마고의 내용을 잘 보지 못했다.

게다가 계이담의 정신력이 하찮은 바람에 시간을 당겨야 해서 중요한 시나리오를 플레이하는 순간도 스킵해야 했다.

어차피 저 ‘계’새끼는 내가 작성한 공략을 보면서 대충 플레이하고 있어서 내 기준으로는 새로운 정보가 없긴 하다.

‘유일하게 나보다 나은 부분이 있다면 안다인의 육성 속도야.’

모든 프리 퀘스트의 전투에 안다인을 출격시키고, 안다인 관련 아이템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입수하는 등 아주 꼴값을 떨었다.

그 덕에 모든 캐릭터를 육성하는 나에 비해 안다인의 육성 속도 하나만큼은 빨랐다.

‘계이담이 안다인의 히든 퀘스트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런 짓은 필요 없을 텐데.’

기껏 말할 기회를 줘도 기억을 못 해 이 지경까지 와 시간을 낭비하게 한 계이담을 생각하니 불쾌해졌다.

머릿속을 들여다봤다면 계이담이 무슨 기억을 찾고 있는지 알 텐데 옛 한국 지부장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내 손주가 저자의 이런 면모를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한테는 미안하게 됐군.]

“상관없어요.”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보여 주는 것 자체는 아무렇지 않았다.

“저자나, 저자가 했던 짓은 저에게 더 이상 아무 영향도 못 끼치니까요.”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것을 까 내린 악플러 행위를 생각하면 여전히 줘패고 싶었지만 말이다.

군생활은 고되었지만 초반에는 평온했다.

계이담이 처음부터 나를 갈군 건 아니었다.

애초에 ‘계’새끼는 타인에게 그리 관심을 갖는 타입이 아니다.

그 계기가 지금 드러나고 있었다.

“저 망겜 폐인 새끼가 체스 신동이라고? 가족이 교통사고당했다는 그놈 맞아?”

으레 하는 호구조사에서 내 이력이 드러나고, 그걸 뒤에서 가십거리로 삼아 떠들던 중에 있던 일이다.

계이담은 체스 기사와 연관된 기사를 그렇게 읽었는데도 내 이름이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한 모양이다.

기사 속 사진에 등장한 나는 어렸고, 보호 안경을 쓴 데다 분위기도 좀 신경질적이니 저 때의 군인 모습과 매치가 잘 안 되었을 거다.

“조의신 기억 못 하냐? 현역 때보다 좀 순해지고 버르장머리가 생기긴 했지.”

“그런 일도 있었는데 한국 최고의 명문대 재학 중이라는데. 거기는 체스 잘했다고 갈 수 있는 데 아니잖아.”

“뭐 하고 사나 궁금했는데 잘 살고 있었네. 공부 머리도 있었구만.”

“애가 번듯하게 잘 자랐어.”

……선임들이 뒤에서 저런 얘기를 했나?

새삼 민망해하고 있을 때, 어색한 이목구비를 한 계 상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부터 계 상병의 지랄이 시작되었다.

“작작 좀 해라. 불쌍한 놈을 갈구고 그러냐.”

처음엔 최 병장이나 ‘계’새끼의 선임들이 수습을 해 줬지만, 그들이 전역하여 계 병장이 최고참이 되니 말릴 사람이 없었다.

불필요한 업무와 쌍욕을 짊어지는 나날이 이어졌다.

후임병의 실수가 전부 내 책임이 되는 건 기본이었다.

잘해도 혼자 잘하면 다냐고 까이고, 적당히 하면 빠졌다고 까였다.

“…….”

말없이 얼차려를 하는 나를 보고 성시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움켜쥔 주먹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징병제가 없는 세계의 고등학생 성시완이 갈굼 문화를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미안해.”

“선배님이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저 때 있던 일은 선배님 탓이 아니니까요.”

“내가 의신이한테 이담이를 소개했잖아. 저번에 대련했을 때, 이담이를 알아본 거지? 그 이후에 둘 사이에 뭐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데도 난 …….”

내가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성시완은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성시완은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 일에 휘말렸을 뿐인데 몹시 괴로워했다.

그사이에 장면이 바뀌었다.

‘계’새끼는 민간인, 대졸자가 되었다.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학점과 경력이 개판이 나 있었는데 졸업 자격 요건을 갖춘 게 신기할 정도다.

‘계’새끼는 대학 졸업을 한 후에도 구직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플마고와 악플 달기, 주식 투자에 빠져 있었다.

‘취직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걸 깨닫고 현실 도피로 주식을 시작한 건가.’

낭비하지 않고 살면 죽을 때까지 지금 있는 재산으로 먹고살 수 있을 텐데.

꼴에 돈은 벌면서 살고 싶었나 보다.

계이담은 주식 투자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투자자, 속칭 네임드와 연을 맺고 조언을 들었다.

네임드는 냉철한 분석과 신들린 듯한 예측으로 주식 투자 커뮤니티에 글을 하나 올릴 때마다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았다.

그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네임드는 선착순 한 명에게 비법을 전수해 주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계이담이 운 좋게 처음으로 메시지를 날린 모양이다.

‘그런데 이 주식 커뮤니티에 입문한 과정이 좀 마음에 걸리는데.’

플마고 관련 이벤트 글인 줄 알고 클릭했더니 주식 커뮤니티였고, 그걸 계기로 주식을 시작했다.

낚시성 광고글은 넘쳐 나지만, 인지도는 높아도 망겜으로 인식된 플마고를 가지고 누가 저런 낚시를 하겠는가.

계이담은 어쨌든 네임드의 조언을 듣고 초반에 돈을 벌긴 했다.

그러나 네임드의 조언이 점점 복잡해지는 바람에 계이담이 전부 이행하는 데에 실패해 손해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까진 계이담이 크게 망하진 않았다.

그때, 낙하산 제안이 왔다.

“취직이요?”

“천 사장이 자리가 하나 났다고 하더라.”

백수로 살던 계이담은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계’새끼가 내가 취직하기로 예정된 자리에 낙하산으로 꽂혔을 때구나.’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채용 비리가 발각되어 잘리고 원래 그 자리가 내 것이었던 탓에 나까지 엮였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전역 후에 저렇게 연이 이어져 귀찮았다.

‘계’새끼는 그냥 일자리를 소개받았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 무지고 나발이고 사회의 룰을 어긴 건 변함이 없었다.

‘계’새끼는 잘린 이후, 취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주식 투자나 해 댔다.

대체 뭔 심리인지 초단타기법, 스켈핑, 인버스 투자 등등 주식 알못이 해선 안 될 짓을 골라서 과감하게 돈을 뿌렸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계이담이 보유한 현금을 다 날리자 자신의 주식 입문을 도운 네임드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네임드가 한국 굴지의 대기업을 언급하며 안정적인 투자로 시드 머니를 불리는 것을 추천했다.

계이담은 네임드를 믿고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돈을 박았다.

‘저 기업은…….’

언급된 대기업은 천성헌의 집안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천성헌의 암약으로 곧 무너질 곳이었다.

계이담이 쥔 주식은 물리다 못해 땅에 처박힌 휴지 조각 신세가 되었다.

계이담의 멘탈이 터져 있을 때, 네임드가 직접 만나서 대처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냉큼 나온 계이담은 의외의 인물을 마주했다.

그 인물은 바로 천성헌이었다.

“의신이 형을 괴롭히고, 형한테 가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요? 그렇게 살면 하늘이 무섭지 않아요?”

설마 했는데, 계이담을 파산으로 내몬 그 주식 커뮤니티의 네임드는 천성헌 시절의 은호였다.

안개가 낀 것처럼 천성헌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물었다.

“왜 얼굴이 흐릿하죠?”

[기억 속에 없기 때문이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나 보군.]

천성헌의 얼굴이 흐리게 보인 탓은 그 때문이었나 보다.

천성헌은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기백이 남다르긴 했다.

‘성헌이가 저놈도 손봤구나. 저 시기에는 많이 바빴을 텐데.’

사실 천성헌이 낙하산 건에 관해서 눈치를 챈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자리를 차지한 ‘계’새끼에게 손을 댄 건 눈치채지 못했다.

당혹스럽긴 했지만 착한 후배가 마음을 쓰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최 사장님 아드님…… 아니, 최 병장님이라고 해야 그쪽이 알아들을 거라고 했죠. 그분이 전해 달라고 했어요. ‘그러게 작작 좀 하지 그랬냐.’라고. 의신이 형 팬은 저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전역 후 군대 이야기를 가끔 묻길래 적당히 얼버무렸는데, 다른 루트를 통해 정보를 입수했나 보다.

가끔 PX나 황금마차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주던 최 병장이 떠올랐다.

천성헌이 최 병장이 내 팬이었던 것처럼 말했으나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기에 긴가민가했다.

“그냥 조금 가지고 놀면서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낙하산 건은 선을 넘으셨더라고요.”

“나, 난 그놈이 들어가야 할 자리인 걸 몰랐다고! 애초에 내가 낙하산인지도 몰랐어!”

“그쪽의 무지가 무슨 상관인가요? 복무 중에 있던 일도,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그 자리에 앉았던 것도 전부 사실이잖아요.”

계이담이 자기가 무슨 일을 당한 건지 드디어 깨닫게 된 것 같다.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얼굴을 하고 외쳤다.

“넌 대체 누구야……!”

“저요? 의신이 형 친한 동생이에요.”

“조의신 때문에 나를 이렇게 내몰았다고?”

“전부 그쪽이 선택한 대로죠. 그쪽이 가진 것을 다 빼앗고 싶었는데, 가진 게 얼마 없는 바람에 잘 안 됐어요. 아쉽네요.”

천성헌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계’새끼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없다.

그나마 의리로 뒤를 봐주던 먼 친척도 채용 비리가 터진 이후에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남은 거라곤 불규칙한 생활과 무지한 선택으로 망가진 신체와 경력.

그리고 겨우 연명이 가능할 정도의 재산 정도.

천성헌은 ‘너무 내몰면 또 그쪽 친척이 자비를 베풀지도 모르니 적당히 해야겠죠.’라고 덧붙인 후 말했다.

“옛날에 쓴 댓글을 보니까 제일 싫어하는 말이 그건 것 같던데, 지금 그쪽에게 아주 잘 어울리겠네요.”

천성헌은 주식 투자 커뮤니티로 연락을 주고받다 알게 된 아이디가 남긴 댓글들을 전부 열람했나 보다.

내 후배가 그 댓글로 눈이 더럽혀진 게 아닌가 걱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천성헌이 한마디 남겼다.

“운이 좋았네요. 당신은 행운아예요.”

천성헌의 말에 계이담이 아무도 없는 공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운이 좋았다는 의미는 뉴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천성헌이 손을 본 이들은 파산하여 빚쟁이가 되거나 감옥에 가거나 실종되었다.

계이담은 모든 부동산을 처분하고 외진 곳의 작은 원룸으로 이사해야 했지만, 그럭저럭 살아갔다.

맛집을 순회하며 즐기던 식사는 편의점 도시락이 되고 곧 라면으로 변했다.

“아오! 또 윗집 새끼들 지랄이네!”

층간소음에 시달리며 고무 망치를 휘두르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처음엔 멍청하게 망치를 휘두르다 벽이 패이는 바람에 고무 망치를 쓰기 시작했다.

씩씩거리다가 다시 구형 스마트폰으로 악플이나 달러 가는 모습은 보기 흉했다.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저 꼴을 보면서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성시완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하찮은 정신력에 또 문제가 생긴 건지 공간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제 저자가 찾던 정보를 봐야겠군.]

기억의 흐름을 움직인 옛 한국 지부장에 의해 장면이 바뀌었다.

계이담이 쥔 스마트폰 화면에 ‘안다인의 히든 퀘스트를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떠 있었다.

“뭐야, 왜 공략이 없어.”

계이담은 확인 버튼을 누르는 대신 내 블로그를 뒤지기 시작했다.

검색 키워드를 바꿔 몇 차례 더 검색했으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정말로 내가 플레이하지 않은 퀘스트인가.’

계이담이 혀를 차고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확인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어둡게 변하다 누군가가 등장했다.

퀘스트 개시 화면에 나온 이들은 내가 아는 호족들이었다.

호족들을 알아보고 아연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저분들이 나온 거지?’

화면에 나온 건 가면을 쓴 호족 부부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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