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83화 (579/925)

80. 행운아 (7)

랜덤으로 선정된 맵은 이계의 유형 중 하나, 캐슬이었다.

험준하게 솟은 산과 성채의 규모를 보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에 보이는 규모로 미루어 보았을 때 추정 희귀도는 SR+급 이상.

관객들이 동요하는 건 당연했다.

‘1학년 학생들끼리 공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겠지.’

이계 중 캐슬형은 초보 플레이어가 가장 기피하는 타입이다.

캐슬형 이계의 클리어 조건은 성의 함락 혹은 성주의 사망.

즉, 공성전을 치르거나 성으로 침입하여 보스 에너미를 토벌해야 했다.

캐슬형 이계 발생 빈도는 상당히 낮고 이계의 틈을 타고 밖으로 빠져 나오는 에너미의 수가 적지만, 공략이 까다로워 베테랑 플레이어 팀도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1학년 학생들이 강력한 진족과 경쟁하면서 공략할 만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1학년 1반 학생 중 전의를 상실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보물 수색조는 요새 침입 루트를 확보하고, 에너미 토벌조는 보물 수색조를 백업해.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

안다인의 지시에 1반 아이들이 세 개의 조로 나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1학년 1반 학생은 총 50명.

유상훈이 빠지는 바람에 보물 사냥에 참가한 학생들은 49명이다.

오십에 가까운 인원이 안다인의 한마디에 정연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존재가 있었다.

쉬이익!

용제건이 하늘로 부상한 후, 보란 듯이 1반 아이들의 머리 위를 날았다.

도보로 이동하는 1반 아이들은 산을 넘고 요새를 돌파해야 하지만 용제건은 아니다.

비행술로 이동할 수 있는 용제건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내가 운이 너무 좋았네. 먼저 갈…….”

용제건이 도발을 마치기 전에 서릿발 같은 미성이 울려 퍼졌다.

“사격 개시!”

탕, 탕탕탕! 파아앗! 쉬익!

안다인의 신호에 하늘이 각양각색의 이능파로 뒤덮였다.

투척 스킬을 가진 학생들이 던진 듯한 작살, 표창, 투척용 나이프 등등 이능파를 휘감은 무기들이 용제건을 노렸다.

그중에는 안다인이 쏜 총탄도 있었다.

파아아앗!

용제건이 급선회하며 공간술을 전개했으나 모든 공격을 막지는 못했다.

안다인의 총탄이 만든 풍압에 용제건의 머리카락이 잘려 몇 가닥 흩어졌다.

‘안다인이 속한 조의 정체를 알 것 같다.’

지금 상황을 보니 1반은 병력을 셋으로 나눈 것 같다.

첫째, 통찰계 스킬 보유자와 발이 빠른 이들로 구성된 보물 수색조.

둘째, 근접 전투에 강한 이들과 보조 스킬 유저가 포함된 에너미 토벌조.

마지막으로 안다인을 필두로 한 원거리 스킬 보유자 및 에이스들로 구성된 용제건 사냥조.

안다인이 선두에 서지 않은 건 직접 지휘해 용제건을 잡기 위해서였나 보다.

안다인이 용제건의 발을 잡는 사이, 보물 수색조가 성벽에 사다리를 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사다리를 올리는 것보다 벽을 타고 오르는 게 빠르지 않습니까?”

“도약해서 넘어가는 방법도 있어.”

“정문을 부수면 되지 않냐?”

“저는 날 수 있어요!”

목우람, 한이, 맹효돈, 사월세음의 말에 김유리가 복잡한 얼굴을 하다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음…… 우리 반은 캐슬형 이계 공략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캐슬형 이계 공략에 관한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용제건 걱정은 안 하는구나.’

나도 사실 용제건 걱정은 안 되긴 했다.

용제건 사냥조의 공세가 매섭긴 하지만,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다.

용제건은 성벽에 놓인 사다리를 발견하고 기특해하며 웃었다.

“그러면 나도 가 볼까.”

파아아!

용제건이 힘을 개방하자 머리카락이 시안색으로 물들었다.

공간술의 출력을 올려 용제건 사냥조의 공격을 완전히 봉쇄하고, 그사이에 성채로 향할 생각인 듯했다.

우웅…….

용제건이 만드는 공간이 견고해지고, 두꺼워졌다.

용제건은 허공에 거대한 방어벽을 세우고 비행술을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용제건이 비행을 재개하기 전, 안다인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포격 준비는?”

“이능파 대포 설치 끝났어!”

안다인의 뒤에 그녀의 상반신만 한 구경의 거포가 놓여 있었다.

이능파 대포는 이계 공략 중 미궁의 벽, 캐슬의 입구 등을 부술 때 사용한다.

아이템의 희귀도가 낮아도 화력이 좋다는 장점이 있으나 설치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연비가 나쁘며 조준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적이 없는 상황에서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부술 때나 사용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안다인은 보통이 아니지.’

이능파 대포 설치가 완료되었다는 말에 안다인이 사격을 중지하고 훌쩍 뛰어 포신 뒤로 물러났다.

“발사!”

콰아아앙!

안다인의 신호가 떨어지자 굉음 소리와 함께 지축이 뒤흔들렸다.

폭발이 가라앉자 하늘에서 시안색 이능파 입자가 부스스 하고 쏟아졌다.

쩌저적…….

안다인이 직접 이능파로 강화하여 쏜 포탄이 용제건의 공간술을 박살 냈다.

산산조각 난 잔해를 보며 용제건이 황홀하게 웃었다.

그에 반해 안다인은 냉정하게 다음 포격을 가했다.

콰콰쾅! 쾅! 콰쾅!

안다인의 포격과 1반 아이들의 지원 사격으로 인해 용제건의 움직임이 봉쇄되었다.

용제건은 포탄을 피하고, 빗겨 나가도록 공간을 조작하는 게 고작이었다.

안다인이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이능파 대포는 연사력과 발사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그런데도 안다인의 포격은 용제건을 쉴 새 없이 위협하고 있었다.

‘지원 사격으로 용제건을 유도하고, 그 지점을 노려 포격을 가하고 있는 건가.’

용제건 사냥조의 연계 플레이에 관객석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팀워크만으로 용제건을 이만큼 몰아붙인 게 아닌 것 같은데.

이 점은 유상훈에게 확인해 보기로 했다.

“얼마나 연구하고 왔어?”

“좀 많이.”

유상훈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고?

1반 아이들은 용제건을 엄청나게 연구하고 분석한 듯하다.

유상훈이 짧게 설명을 덧붙인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았다.

1반 아이들은 학생 신분으로 입수 가능한 교내 기록 기기의 영상 중, 용제건의 스킬 사용 장면을 초 단위로 분석해 왔다고 한다.

공간술의 출력 정도, 발동을 위해 필요한 시간, 지속력.

비행술을 사용할 때 방향을 잡기 전의 버릇, 가속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등등.

“하하하하! 1반 학생들이 이렇게 우수하고 성실할 줄이야. 담임은 제자 복이 많군.”

“…….”

황지호가 설명을 듣다가 참지 못하고 처웃었다.

놀란 얼굴로 유상훈의 설명을 듣던 김신록이 입을 뻐끔거렸다.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모르겠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시군.”

“……저희 때에도 비슷했습니다.”

“그야 그랬겠지.”

성국언과 전무영이 목소리를 낮춰 대화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김신록은 예전부터 제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용제건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저 두 사람은 내가 듣고 있다는 걸 알 텐데.

일부러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듣든 말든 신경을 안 쓰는 것뿐일까.

지금은 답이 안 나오니 가끔 유상훈이 해 주는 해설을 들으며 보물 사냥을 계속 관람했다.

“반장이 다 해서 나는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여기 있는 거야?”

“담임 옆에 한 명은 남아야 한다고 하길래 지원했다.”

왜 김신록 옆에 한 명을 남긴 걸까.

보디가드가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1반 아이들과 용제건을 걱정한 김신록이 보물 사냥을 중단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서일까?

여차하면 김신록을 말릴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유상훈의 스킬과 광림을 생각하면 적역이긴 하다.

‘정말 철저하게 준비했구나.’

용제건을 쓰러뜨리기 위해서긴 하지만, 지금 안다인이 싸우는 걸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게임 속에서는 이렇게 안다인이 많은 아이들을 이끌고, 지휘하며 싸울 일이 없었지.’

플마고 속 1학년 1반 안다인은 고립되어 있었다.

최편득과 그녀를 질투하는 부정 입학자들이 얼마나 안다인을 견제했던가.

안다인은 고독하게 싸웠다.

처음으로 사귄 친구, 김유리는 은광고 첫해에 떠났다.

흑막과 대항하며 새로 사귄 친구와 동료는 전부 흑막의 손에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주수혁도 안다인보다 먼저 떠났다.

혼자 남아 싸우다가 최후를 맞이한 안다인이 자꾸 떠올랐다.

‘이 정도의 지휘력을 살릴 기회가 없었다니.’

안다인이 같은 뜻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신에 가까운 여의보주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걸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용제건의 가늘게 뜬 눈에 감탄이 어려 있었다.

“공부를 많이 했구나.”

“용제건 선생님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소원을 이루어준 여의보주의 용이에요. 사전 준비 없이 이기는 건 불가능하겠죠.”

안다인의 대답은 마치 미리 준비하면 이길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용제건을 이대로 이 자리에 붙잡아 둔다면, 보물 사냥의 승리자는 1학년 1반이 될 것이다.

“아깝네.”

1반 아이들의 사격으로 인해 터진 공간의 잔해 속, 용제건이 눈을 크게 떴다.

“며칠 더 일찍 도전했다면, 나를 이겼을 텐데.”

쿠구구구…….

용제건의 동공이 세로로 열렸다.

동시에 공중에 산개되어 있던 시안색의 이능파 입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안다인이 다급히 외쳤다.

“전원 후퇴, 다들 물러나!”

용제건이 지상을 향해 급강하했다.

용제건이 손가락을 튀길 때마다 1학년 1반 학생들이 쥔 무기 아이템에 시안색 이능파 입자가 모여들었다.

안다인이 경악한 얼굴로 대포에서 손을 떼고 전신총화(全身銃化) 스킬을 발동시켰다.

“이능파로 무기를 지켜! 늦었으면 무기를 버리고 도망쳐!”

파앗! 파아아아!

탕! 탕! 탕!

용제건의 이능파에 삼켜진 무기 아이템이 시안색 공간 덩어리로 변했다.

무기를 놓지 못한 학생들은 손이 공간에 묶이고 말았다.

안다인의 전신에서 뻗어 나간 총탄이 용제건의 이능파 작용을 방해했으나 이미 학생 다섯이 당한 이후였다.

“다음은 다인이 차례야.”

지상에 착륙한 용제건이 안다인을 향해 돌진했다.

안다인은 곧바로 전신총화 스킬을 해제하고 이능파 대포의 포구를 용제건 쪽으로 돌렸다.

초근접 거리에서, 그것도 돌진 중에 이능파 대포에 직격당하면 부상을 면치 못할 텐데 용제건은 피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김신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만!”

당장이라도 바리케이드를 넘어 보물 사냥을 중단시킬 기세였지만, 유상훈이 앞을 가로막았다.

대체 언제 실체화한 건지 유상훈의 손엔 거대한 방패가 들려 있었다.

유상훈이 사용하는 무기이자 방어구, 듀얼링 실드였다.

“상훈아……!”

“반 애들하고 약속해서요.”

유상훈이 김신록을 막은 찰나, 승부가 났다.

툭.

“이번에는 내가 운이 좋았나 보다.”

이능파 대포에서 포탄이 발사되기 전, 용제건의 손이 포구에 닿았다.

용제건은 포신을 전부 공간술로 메꿔 버렸다.

이능파 대포의 기능이 정지된 걸 확인한 용제건이 이륙했다.

용제건이 안다인을 내려다보며 얄궂게 말했다.

“김신록 선생님이 정말 좋은 제자를 뒀구나.”

용제건 사냥조 중 3분의 1의 무기와 최고 화력을 자랑하던 이능파 대포가 봉인되었다.

더 이상 용제건을 잡아 두는 건 불가능했다.

마음이 꺾일 법도 했지만, 안다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무기를 잃은 사람은 보물 수색조에, 나머지는 에너미 토벌조에 합류해. 이동하자!”

안다인의 말에 용제건의 뒷모습을 보며 망연자실해 있던 아이들이 기운을 냈다.

1반 아이들에게 처음 같은 기세는 없었지만 보물 사냥은 다시 진행되었다.

“안다인 학생도 나와 같은 부탁을 받을 것 같군.”

성국언은 안다인을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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