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퍼스트 크리스마스 (10)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전에 논의한 내용 중 하나가 마족의 처리였다.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방윤섭의 권속화를 노리고 있는 게 확실하니,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 올 게 분명했다.
학교 밖에서 원격으로 방윤섭의 권속화를 노린다면 해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직접 마족이 참전할 경우였다.
―그자의 수를 계속 막았으니, 저쪽에선 게임 속에서 뒀던 것보다 더 과감하고 강한 수를 둘 거야. 마족이 직접 참전한다고 상정하고 작전을 수립하는 게 안전할 거야.
마족, 그것도 마신을 섬기는 고위 사제를 정면에서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마족이 정정당당하게 싸움을 걸 것 같지는 않았다.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방윤섭의 머릿속을 들여다봤을 테니 약점을 잡고 비열한 수를 쓸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대책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마족은 약점인 언령을 쓰는 플레이어가 상대해야 해.
―잘됐군. 조의신, 너는 언령을 쓸 수 있지 않나.
나는 플레이어의 궤적으로 제갈재걸의 힘을 빌려 언령을 사용할 수 있다.
언령 스킬을 써서 아바리티아의 사제를 붙잡기도 했다.
그러나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족은 의신이 형이 까마귀 가면을 쓰고 언령을 쓰는 걸 봐 버렸죠. 그 마족이 본 것들이 담긴 ‘눈’이 신단에 넘어갔으니까요.
은호는 나와 같은 의견인 것 같았다.
까마귀 가면이 은광고와 연관이 있는 건 여러 정황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만약 마족이 직접 참전한다면 언령 스킬에 대한 대비를 하고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빈틈을 노릴 여지가 생겼다.
―나는 그때 제갈재걸 선생님의 힘을 빌려서 아바리티아의 사제를 향해 글자를 새겼어.
언령이 발현되는 형태는 글과 말 두 가지.
제갈재걸의 언령은 주로 ‘글’로 발현되므로 나도 글자를 새기는 형태로 언령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마족은 이를 보았다.
―언령은 보통 글과 말, 둘 중 한쪽에 특화되어 발현돼. 내가 글을 쓰는 걸 봤으니 말 쪽은 경계가 덜할 거야.
내 말에 호랑이들이 내가 무엇을 노리는지 파악한 듯했다.
호랑이들과 깊은 연이 있는, 말을 사용하는 언령술사가 마침 은광고에 있었으니까.
은호가 내 의중을 파악하고 말했다.
―신인, 아니, 공청훤 님을 부르실 생각이군요.
―응.
사실 운을 떼긴 했지만 호랑이들이 반대할 가능성도 생각했다.
신인의 환생을 위험한 자리에 부르는 게 좀 그렇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되면 차선책을 짜낼 생각이었는데, 황지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신뢰할 수 있는 전력을 필요한 곳에 배치해야지.
―…….
―말릴 거라고 생각했나? 하하하하! 신인은 고작 마족 따위에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분이 아니시다. 인간이 된다고 한들 말이지.
황지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고 처웃는 건지 모르겠다.
처웃는 황지호에 이어 은호가 말을 거들었다.
―이런 자리에 신인 님을 빼다니 말도 안 되죠. 그분을 안전한 곳에 모신다면, 후일에 반드시 질책당하겠죠.
―그래, 학생을 지킬 기회를 빼앗았다고 혼이 날 거다.
―네, 그분이라면 그럴 겁니다.
적호까지 저렇게 덧붙일 정도면 의심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회의의 주제는 공청훤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배치할 것인가로 바뀌었다.
공청훤은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은광한빛보육원의 자선 행사를 도울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이대로라면 한이, 독고미로와 함께 보육원 아이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낼 듯했다.
―마족은 공청훤 선생님이 언령 스킬을 사용하는 플레이어라는 걸 알고 있을 거야. 선생님의 스케줄을 파악하고, 감시도 하겠지.
마족에게는 성가신 눈이 있고, 은광고 주변을 살피고 있다.
마족은 그 눈으로 공청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보육원으로 향하는지, 학교로 오는지 확인하고 움직일 거다.
―공청훤 선생님이 보육원에 들어간 걸 확인할 때까지 감시를 늦추지 않을 거야. 그 후에는 학교 주변을 지켜보겠지.
마족들이 그렇게 움직이고 판단한다면, 이를 역으로 노릴 수 있다.
마족들이 공청훤이 학교 밖에 있다고 여기면 방심하게 만들 수 있을 거다.
―그 눈을 속여서 공청훤 선생님을 학교 안으로 불러들이자.
보육원에 간 공청훤을 눈에 띄지 않게 학교 안으로 부를 방법은 여러 가지 있었다.
보육원 안에 이동 포털을 설치하거나, 땅을 파거나, 이동할 때 위장하거나, 아니면 적호의 적연을 이용하거나.
마족은 적호가 사용하는 적연을 꿰뚫어 보지 못하니, 적호의 힘을 빌리는 게 가장 확실할 거다.
―마족은 그 더러운 취미를 십분 발휘하여 재미를 봤죠. 이번에는 역으로 노릴 수 있겠군요.
공청훤과 함께 은광고 안으로 이동하기로 한 적호가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저는 미리 학교 안에서 맡기로 한 임무가 있습니다. 계속 같이 움직이기는 어렵습니다.
적호의 말대로였다.
적호가 공청훤을 불러들이는 역할까지는 맡더라도 그 이후는 공청훤이 혼자 움직여야 했다.
퍼스트 크리스마스 시나리오가 시작되어 난장판이 된 은광고에서 말이다.
―그분이 마족이 있는 곳에 가도록 유도할 방법은 있나?
―의신이 형은 그분을 필요한 장소에, 원하는 시각에 불러낼 방법을 아시는 것 같아요.
은호의 말에 호랑이들이 이쪽을 바라봤다.
그야 생각이 있긴 했다.
생각이라기보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공청훤 선생님은 예고 없이 나를 찾아내곤 하셨어.
본의 아니게 1학년 내내 유독 공청훤의 수업을 자주 빠졌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된 건지 공청훤은 나를 좀 신경 썼고, 툭 하면 수업 전에 찾아오곤 했다.
‘그 넓은 은광고에서, 내가 항상 같은 장소에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점심시간을 비롯한 쉬는 시간에 학교 지리에 익숙해질 겸 여러 장소를 돌아다닌다.
공청훤이 나를 찾아냈을 때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황지호처럼 멋대로 내 디바이스를 추적해 위치를 알아낸 것도 아닐 텐데 공청훤은 기가 막히게 나를 찾아냈다.
―아마 추적계 스킬을 갖고 있을 거야. 스킬이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든 공청훤 선생님은 학교에서 나를 찾아낼 능력이 있어.
나는 적호를 보며 말했다.
―공청훤 선생님을 학교로 모신 후에 저를 찾아 달라고 말씀해 주세요.
나는 주수혁이 방윤섭을 찾도록 안배했다.
주수혁이라면 도원우의 방송을 들은 후 중앙 구역에 합류할 거다.
그리고 내가 속한 0반은 공동 수업을 자주 한 1, 2반과 함께 방어를 맡게 될 가능성이 컸다.
‘플마고 때와 인원수, 상황이 다르니 디테일한 부분은 달라지겠지만. 우리 반이 1, 2반과 함께 움직일 거라는 건 변함없어.’
나는 중앙 구역에서 방윤섭과 마주하게 되도록 판을 짰다.
그렇게 나는 수를 완성했다.
‘인비디우스의 사제에 대항하기 위한 수가 모두 갖춰졌어.’
첫째, 방윤섭에게 가호를 내린 사족의 수장.
디바이스 코드로 연락하여 방윤섭에 관해 말하자 사족의 수장은 흔쾌히 직접 만나자고 했다.
사정을 들은 사족의 수장은 직접 비늘을 내주며 ‘그 등신 같은 놈을 부탁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등신 취급을 받긴 했지만 가호도 그렇고, 나름의 애정이 있어 보였다.
‘방윤섭의 권속화를 막은 것에 이어 직접 공격할 수단까지 확보했지.’
둘째, 마족에 대항할 수 있는 언령술사 공청훤의 존재.
공청훤은 단순히 강력한 이능만 갖춘 게 아니었다.
공청훤은 플마고에서도, 오늘도 은광고에는 없을 예정이었고 마족도 그렇게 파악하고 있으니 방심하게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공청훤은 위치를 몰라도 내가 있는 장소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자다.
전황은 가변적이니 이에 대응할 만한 이능을 가진 존재여야 했는데, 공청훤만 한 인재가 없었다.
예상대로 공청훤은 내가 있는 곳을 찾아내 인비디우스의 사제를 붙잡았다.
“권속의 수가 많군요. 전부 당신의 권속은 아닌 것 같지만요.”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굴욕과 분노에 찬 눈으로 공청훤을 노려봤다.
공청훤은 평온한 얼굴로 그 시선을 마주했다.
마족이 아무리 분개해 봤자 공청훤의 마음을 흐트러뜨릴 수 없었다.
타다닥!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움직이지 못하자 주수혁이 놓아준 것인지, 방윤섭이 최영희를 향해 달려갔다.
방윤섭은 최영희의 포박을 풀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방윤섭의 힘으로 마족의 힘을 어찌할 수 없는 듯했다.
[저 아이를 놓아주세요.]
방윤섭이 온 힘을 다해도 풀리지 않던 힘이 공청훤의 한마디에 풀렸다.
풀려난 최영희가 자리에 쓰러지기 전에 방윤섭이 받아 들곤 교복 소매로 그녀의 이마를 닦아 줬다.
“야! 괜찮아? 피 나잖아!”
방윤섭은 에너미의 권속화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겪었는데도 눈에 최영희만 보이나 보다.
최영희의 구속구가 풀리자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순간 움찔했다.
인질을 잃고, 언령 앞에 노출되니 더 이상 인비디우스의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지 않은 듯 손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여차하면 스티그마타의 힘을 폭주시킬 거다!’
이 움직임은 나만 읽은 게 아니었다.
“그 로브는 언령을 거부하는 힘을 품고 있군요. 제 음성이 귀에 닿으니 저항할 수는 없겠지만, 로브 밑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나 봐요.”
공청훤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몸에 글자가 새겨지는 걸 막기 위해 로브에 가공을 했나 보다.
최악의 경우에는 내가 직접 제갈재걸의 힘을 빌려 싸워야 했을 텐데,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고전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다시 힘을 쓰기 전에 몸을 망가뜨려 놔야겠네요. 그 발로 학생의 보물을 걷어찼죠?”
공청훤이 인비디우스의 사제의 발을 가리켰다.
공청훤의 성대에, 발을 향해 뻗은 손끝에 이능파가 모였다.
힘을 모아 강력한 언령을 사용하려는 거다.
[그 발로는 더 이상 걷지 못합니다.]
우득, 드드득!
무언가가 부수어지는 소리가 수차례 들렸다.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로브로 가려져 있었기에 형체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저 발을 잘라 내고 재생시키지 않는 한 다시는 걷는 데에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언령이 잘 듣는군요.”
공청훤은 마족과 그 권속들이 꼼짝을 못 하는 걸 보며 말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은광고 학생들이 수근거렸다.
“언령은 이능파로 저항할 수 있지 않아? 저 진족 엄청 강했는데 왜 저래?”
“공청훤 선생님이 강하긴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저 진족은 언령에 약한 건가? 언령에 약한 진족이 있었어?”
“디바이스에 녹화해 놨는데 나중에 분석해 봐야겠네.”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인질을 잃고, 발이 박살 날 때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눈을 했다.
마족이 언령에 약하다는 것은 그들이 가장 굴욕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약점이다.
마족들이 오랜 시간 언령술사를 사냥하며 숨겨 온 비밀은 이 사건 이후로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마족과 그 권속이 공청훤에게 제압당하자 1번 출구 쪽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레나야, 고마워…… 우리 때문에…….”
“아니야, 너희들이 안 다쳤잖아!”
“레나…….”
상황이 진정되자 우리 반 아이들이 이능 바이올린의 파편을 모았다.
그러나 가장 큰 파편이 손톱만 할 정도로 완파된 상태였다.
자꾸 바이올린 얘기를 하면 권레나가 속상해할까 봐 사과도 많이 하지 못했다.
권레나는 웃으며 계속 화제를 바꾸려 했고, 아이들도 모르는 척 결국 맞춰 줬다.
“저 진족은 언령에 약한가 봐. ……제갈재걸 선생님이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부장 선생님들께서는 해외 출장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함근형 선생님 보고 싶다.”
현재 부장직에 있는 교사들은 출장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 반이 아닌 다른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편, 내 옆에서 같이 현을 주워 모으던 유상훈과 맹효돈이 나를 흘끗 보다 한마디 했다.
“수상하다.”
“수상해.”
나는 두 사람이 한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