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00화 (596/925)

82. 퍼스트 크리스마스 (11)

임시 본부로 사용 중인 학생회관 중앙, 학생회실.

방송부가 설치한 유선 방송 설비와 통찰계 스킬을 가진 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가 쌓여 있는 가운데, 도원우가 보고를 받고 있었다.

“1번 출구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보고해.”

“2, 3번 출구보다 에너미가 두 배 이상 발생 중, 중심에서 강력한 이능파를 탐지했습니다. 권속을 거느린 진족이 접근한 걸로 추정됩니다!”

통찰계 스킬을 사용한 학생의 보고에 이어 증언이 이어졌다.

이능파를 소모하는 바람에 1번 출구 쪽에서 이탈한 학생들이 진족을 목격했다고 한다.

현재 학생회실에 남은 이들은 통찰계 스킬 사용자들과 지시를 내리는 도원우와 보좌하는 지명수뿐.

지원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도원우와 지명수 외의 학생들이 사색이 되었다.

학생들의 이능파가 동요로 흐트러지자 도원우가 차분하게 말했다.

“1번 출구에는 방금 1학년이 합류했다. 너희들도 잘 아는 주수혁, 조의신에 탁거산 선생님의 제자인 맹효돈이 있어. 그리고 그쪽 지휘는 경구가 맡고 있다. 문제없을 거다.”

도원우의 말에 불안이 가라앉았다.

학생들이 다시 제 할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도원우는 목소리를 낮춰 지명수와 대화했다.

“2학년은 아직 멀었나? 준열이는?”

“이미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적과 마주쳤나 봐. 소식이 없어. 통찰계 스킬로 2학년 쪽을 보고 있는 애 말로는 한 명도 안 보인대.”

“2학년은 가세하지 못한다고 봐야겠군.”

도원우는 학생회실에 있는 학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1번 출구 쪽 상황을 염려했다.

이상 현상이 발생 중인 은광고에서 갑자기 나타난 권속을 이끄는 진족.

이는 사태의 원흉일 가능성이 컸고, 학생들의 힘만으로는 저지하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도원우는 마음의 준비를 다지며 말했다.

“10분 내로 해결이 안 되면 내가 간다.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네가 지휘를 맡고, 1번 출구를 폐쇄한 후 대피해.”

“……대피라니, 어디로?”

지명수는 반쯤 비꼬듯 물었다.

도원우가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면 전멸이나 다름없는데, 대피가 무슨 소용이겠냐는 뜻의 물음이었다.

그러나 도원우는 진지하게 받아쳤다.

“거주 구역 쪽. 지익회는 지익회관에서 농성 중이니까.”

“진족이 추적해 오면 의미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막고 있겠다.”

“같이 싸우러 갈게.”

“안 돼. 각지에서 받은 보고를 전부 확인했던 사람 한 명은 남아야 해.”

지명수는 대신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딱히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주수혁이나 조의신, 곽경구로도 상대가 안 되는 진족이라면, 도원우보다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지명수는 진족의 발목도 못 잡을 테니까.

지명수가 가 봤자 의미 없는 희생만 늘어날 것이다.

지명수가 참담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벽을 바라봤다.

도원우처럼 무표정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1번 출구 상황 종료됐습니다!”

1번 출구에서 승전보가 들렸다.

지명수는 발밑이 아득하게 꺼지다가 겨우 다시 땅에 발을 붙인 기분이었다.

그에 반해 도원우는 처음과 다름없는 담담한 태도로 보고를 들었다.

공청훤의 합류로 1번 출구에 출몰한 진족과 에너미가 제압되었다는 말에 도원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령이 약점이라…….”

“만일을 대비해 공청훤 선생님은 체력과 이능파를 아끼는 게 좋겠네.”

“그래, 경구에게 전달해 두겠다.”

여전히 은광고의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학생회실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을 때, 문새론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신문부 소속 문새론은 통찰계 이능 보유자로서 이 자리에 합류한 상태다.

문새론은 통찰계 이능을 보유한 것뿐만 아니라 추적계 스킬 중 파생 스킬인 ‘집중 취재’를 사용해 특정 대상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인재였다.

‘문새론의 발언이 끝나면 교내에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추적시켜야겠군.’

도원우가 그렇게 생각하며 발언을 허락했다.

그러자 문새론이 조금 머뭇거렸다.

그 태도를 본 도원우가 문새론을 가까이 불렀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곤란한 내용이면 서면으로 해도 좋다. 아니면 목소리를 낮추고 말해.”

“아, 감사함다!”

앞에서 말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는지 문새론이 도원우에게 소곤거렸다.

“제 광림은 ‘엿듣는 천이통(天耳通)’이라고 해서 지정한 구역에서 들리는 말을 모을 수 있는데요.”

문새론은 교내에서 유명한 정보통으로 활약 중인 학생이었다.

워낙 발이 넓고 머리 회전이 빠른 학생이었기에 입수하기 어려운 정보를 지녀도 납득할 만했다.

하지만 문새론의 진정한 정보의 원천은 광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과연 사람들 앞에서 밝히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정문 쪽에서 좀 이상한 말을 들었음요.”

“어떤 말을 들었지?”

“둘 다 모르는 목소리였는데, 정문 시계탑을 보면서 대화하던 내용이…….”

문새론이 전한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얼마 정도 지났지?

―두 시간.

―그럼 12분 정도 지났나. 아, 저 시계탑을 봐.

둘의 대화는 뭔가 기묘했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 12분이 지났다니, 말이 안 됐다.

‘결계에 이상이 발생하고 두 시간 정도가 지났지.’

통신이 끊겨 오프라인 모드가 된 디바이스의 시계도 두 시간이 흐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상태였다.

도원우는 문새론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시계탑이 12분을 가리키고 있어.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저 시계탑은 지력으로 움직이나.

―지금 이 학교 안에서 정확한 시각을 가리키는 유일한 시계인 것 같군.

마치 수수께끼와 같은 말이었지만, 플레이어로서 수많은 이계를 공략해 온 도원우는 금방 답을 추려 내었다.

SSR급 이상의 가든에서는 시간 왜곡과 공간 압축 같은 현상이 빈번하다.

상식, 물리 법칙, 조리, 이치, 논리, 원리가 통하지 않는 상황도 많았다.

마치 이계의 안처럼 변한 학교와 결계.

문새론이 전한 수수께끼 같은 말.

이를 종합하여 도원우는 결론을 도출했다.

‘체감상 두 시간, 120분이 지난 시점에서 12분이 흘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계 내부와 외부는 시간의 흐름이 열 배 차이 나는 건가?’

도원우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으나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상황은 도원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도원우는 교내에 방송을 하며 하루 이상 농성 가능한 이들은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그 하루는 어디까지나 외부에서 지원이 오고, 사태가 수습되고, 구조에 필요한 시각을 종합해 정한 시각이었다.

‘학교 안에서 하루를 버텨도, 외부에서는 세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문새론과 가까이에서 대화를 듣던 지명수도 도원우와 비슷한 결론에 이른 듯, 점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    *    *

2학년 일행은 자신의 눈과 감각을 의심했다.

2학년 구역에서 중앙 구역으로 향하는 길이었던 이들은 어느 사이엔가 이계 속에 있었다.

눈으로 보고, 스킬을 사용해 확인해 봐도 이곳은 이계였다.

방금 그들이 있던 곳과 비슷한 풍경이긴 하지만, 학교처럼 보이는 배경은 망가진 디바이스로 투영한 홀로그램처럼 어딘가 흐릿하고 기분 나빴다.

“……우린 방금 학교에 있었는데. 그렇지?”

“야, 다른 반 애들이 안 보이는데?”

“미궁형 이계네. 한 절반 정도 없어진 걸 보니 둘로 나뉜 거 같은데?”

휘익!

2학년 0반 학생들이 있는 쪽으로 염준열이 착륙했다.

공간이 또 뒤틀린다면 혼자 비행하다가 고립될 위험이 있으니, 염준열은 눈에 보이는 학생들과 합류하는 길을 택했다.

“위에서 보니까 어떰?”

“공간이 뒤틀려 있어. 홀로그램 같은 막으로 엉성하게 가린 덕에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저거 만지면 큰일 나겠네. 야, 길 따라 움직여라!”

“아, 그냥 미궁이면 부수고 나가면 되는데.”

미궁의 벽은 부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었다.

공간 왜곡을 야기하는 벽은 부술 수도 없고, 만지면 위험한 타입이었다.

부술 수 없는 타입의 벽은 만지는 순간 디버프를 받곤 한다.

“자, 정리를 해 보면, 저 미친 구형 이계 시뮬레이터는 공간을 이계처럼 만든다는 거지?”

“응.”

“그때 방송국에선 어떻게 해결했더라?”

“이계 시뮬레이터를 껐지.”

“그냥 이계 공략하면 안 됨?”

“시뮬레이터를 찾아서 꺼도 되지 않냐? 미궁이라서 귀찮긴 한데. 공략도 좀.”

“좋아. 그럼 다수결로 결정하자!”

금찬솔의 제안대로 다수결을 하며 서로 의견을 피력하는 사이, 염준열은 계속 주변을 경계했다.

하필 2학년이 이동하는 구역에 구형 이계 시뮬레이터를 설치하고, 그들이 도착하자 이를 가동시켜 이계 같은 공간을 만든 게 마음에 걸렸다.

‘찬솔이들은 함정을 경계하면서 이동했지…… 정말로 이건 함정일지도 몰라.’

홍룡이 불꽃이 어린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홍룡과 감각이 공유된 상태인 염준열은 그 눈이 비추는 미궁 곳곳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학교처럼 보이는 공간은 왜곡되어 있었지만, 홍룡의 밝은 눈으로 살피니 숨어 있는 것들이 보였다.

“……거기, 누구시죠?”

염준열은 불꽃을 부를 준비를 하며 물었다.

염준열의 말에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2학년 0반도 순식간에 입을 다물고 무기를 꺼냈다.

저벅, 저벅.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공간 저편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인 건 우산이었다.

용제건의 공간에 가려 눈이 내리지 않는데도 누군가는 큰 우산을 들고 있었다.

“…….”

상대는 누구냐고 묻는 염준열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염준열은 우산을 들지 않은 쪽의 손을 보았다.

그 손에는 언뜻 보기엔 낡아 보이는 검이 들려 있었다.

너비가 꽤 되는 그 검은 소용돌이 같은 무늬가 있는 것 외에는 별 특징이 없었다.

검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이능파를 느낀 염준열이 경계를 굳혔을 때였다.

“야! 저거 UR급 무기야! 미친, 그람(Gram)이라고?”

통찰계 스킬을 가진 정해온이 외쳤다.

그람이라면 염준열이 용족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단어 중 하나였다.

고대 노르드어로 붙여진 이름으로, 그 뜻은 ‘분노’.

오딘이 현세에 남긴 명검으로, 용살자 시구르드가 손에 넣어 사악한 드래곤 파프니르를 쓰러뜨린 무기다.

즉, 용살의 신화를 가진 무기였다.

‘나를 노리고 준비한 함정이었구나!’

염준열이 불꽃으로 벽을 만들고 물러나려 했지만, 상대가 더 빨랐다.

쉬익!

투박한 검이 단칼에 불꽃을 가르고 염준열과의 거리를 좁혔다.

염준열이 급하게 뒤로 물러났지만, 그람을 든 누군가의 움직임은 거침없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용살의 신화가 있는 보물을 상대로는 이길 수 없어! 홍룡을 타고 이대로 도망쳐야 하나? 그러면 여기에 있는 애들은…….’

염준열이 고민하는 사이에도 그람의 칼날이 그를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염준열은 반사적으로 불꽃의 벽을 부르려 했다.

그래 봤자 몇 초도 벌지 못할 게 분명했으나 이대로 당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염준열이 홍룡을 불러 불꽃의 벽을 만들고자 한 순간.

파스스스!

눈앞을 불꽃의 벽이 아닌, 풀의 벽이 가로막았다.

순식간에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줄기가 그람을 휘어 감고 있었다.

“허억, 허억…….”

염준열의 시선 저편, 막 뛰어온 듯한 마진승이 보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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