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05화 (601/925)

82. 퍼스트 크리스마스 (16)

학생회관 1번 출구 방면.

1학년 학생들과 소수의 2, 3학년 학생들이 인원 점검을 했다.

본래 1번 출구 쪽의 총책임자는 곽경구였으나 현재는 임시로 주수혁이 맡게 되었다.

곽경구는 지금 휴식을 취할 겸, 방윤섭과 최영희 두 사람을 지켜볼 겸 학생회관에 들어간 상태였다.

두 사람은 마족에게 시달려 크게 소모한 상태여서 휴식이 필요했고, 또 마족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누군가는 경호 겸 감시역을 맡을 필요가 있었다.

그 역할을 담당한 게 곽경구다.

처음에는 두 사람과 면식이 있고, 강력한 무력을 지닌 주수혁이 그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곽경구가 이를 반대했다.

―만일의 경우, 수혁이라면 단독으로 상황을 정리하거나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수혁이 너는 나와 같은 회복계 이능이 없어. 그리고…….

곽경구는 말하기 조금 망설여지는 듯 말을 잠시 아끼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하는 기색이었으나, 지금 필요한 말이라 생각해 말한 것 같았다.

―조의신의 빵셔틀은 너를 보고 흥분해 힘을 폭주시켰다. 마족의 수작인지 뭔지 몰라도 일단은 거리를 두는 게 좋겠다.

그 말에 주수혁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주수혁은 방윤섭이 마족에 의해 힘을 주체하지 못할 때, 그가 지었던 표정이나 말을 떠올렸다.

그 표정과 말에서는 짙은 질투의 감정이 묻어났다.

‘의신이와 그 진족이 대화할 때, 그자는 자신이 질투의 마신을 섬긴다고 했었지.’

질투는 주수혁이 살면서 자주 마주쳤던 감정이었다.

주수혁은 자신이 축복받은 환경에서 자라났고, 같은 나잇대의 학생 중 최고로 꼽힐 만한 재능을 타고 났고, 그 재능을 살려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주수혁은 주변에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단순한 부러움, 동경, 친애 같은 감정만큼이나 어두운 감정도 적지 않았다.

주수혁이 겸손하게 행동해도 그 감정은 집요하고 질척하게 그의 주변을 침식했다.

그 감정이 바로 그들을 습격한 마족이 섬긴 상위 존재가 상징하는 감정, 질투였다.

‘내가 어떻게 해야 했던 걸까.’

주수혁은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말했던 교리에 관해 생각했다.

‘빛나는 것은 혼탁하게 물들이고, 바닥에 있는 것은 수렁에 처박는다.’

그 말에 주수혁에게 질투를 품었던 이들이 변해 가는 과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햇살 같은 분위기의 친구가 언제부터인가 혼탁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봤다.

같은 곳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주수혁을 수렁 속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그 질투의 마신이 퍼뜨리는 교리처럼.

‘윤섭아…….’

방윤섭이 주수혁 자신 때문에 그런 꼴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주수혁은 착잡한 마음을 숨기며 전황을 확인했다.

그때, 주수혁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야, 너도 좀 쉬어라.”

말을 건 인물은 맹효돈이었다.

맹효돈의 말을 들으니 딱딱하게 굳었던 얼굴이 절로 퍼졌다.

주수혁은 평소처럼 웃으며 답했다.

“난 괜찮아. 아직 이능파랑 체력에 여유가 있어.”

“저보다 일찍 도착해 싸우고 계셨는데 아직 여유가 있다니, 굉장하시군요.”

목우람이 순수한 마음으로 칭찬했지만, 주수혁은 순간 몸을 굳히며 긴장했다.

또 자신이 주변에서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발언을 한 게 아닌가, 하고.

다행히 학생회관 안에서 교대하러 나온 학생들이 등장해 대화가 끊겼다.

“여기 계셨군요. 교대하러 왔어요!”

“이제 괜찮냐?”

“네! 그린아, 레나랑 들어가서 쉬실래요?”

“응…… 우람아, 저기, 상담할 게 있는데…….”

단란하게 대화를 나누는 1학년 0반 아이들을 두고 주수혁이 조용히 물러났다.

인원 점검을 하는 척, 주수혁은 최대한 말을 섞지 않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윤섭이랑 영희가 좀 안정되면 경구 형한테 여기를 맡기고 원우 형 쪽으로 갈까?’

주수혁에게는 천리안 스킬이 있어 전황 파악에 유리하다.

하지만 도원우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주수혁을 사령부가 아닌 전선 쪽으로 보냈다.

가뜩이나 도원우가 사령부에 붙들려 있느라 그의 전투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데, 주수혁까지 붙잡아 둘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 내가 활약하면, 또…….’

주수혁은 에너미나 진족이 아니라 아군이 두려웠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입에 담는다면 그를 향한 시기가 더욱 짙어질 게 뻔해 티를 낼 수도 없었다.

주수혁이 딜레마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야.”

이번에 말을 건 상대는 1학년 1반 부반장, 유상훈이었다.

유상훈은 아까부터 누군가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혹시 조의신 못 봤냐?”

“의신이는 공청훤 선생님이랑 학생회관 안에 들어가지 않았어?”

유상훈이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공청훤 선생님은 있는데, 조의신은 없었다.”

“선생님한테는 여쭤봤어?”

“……말을 돌리더라.”

공청훤을 말로 이길 수 있는 이는 몇 명 없었다.

화술, 언령 스킬.

이중적인 의미로 공청훤의 말은 강력했다.

공청훤은 말주변이 없는 유상훈이 말로 어찌할 수 없는 상대였다.

주수혁은 어색하게 웃다가 제안했다.

“내가 의신이를 찾아볼까?”

“오, 그럼 고맙고.”

마침 다른 생각을 하고 싶었고, 조의신도 걱정되어 천리안을 발동해 보기로 했다.

파아아……!

주수혁의 크게 뜬 눈에 청량한 이능파가 감돌며 눈에 수많은 정보가 쏟아졌다.

주수혁은 천리안으로 1번 출구 주변을 살피고, 그 후에는 학생회관 로비를 수색했다.

그러나 주수혁이 로비를 시작해 학생회관 전체를 훑었지만, 조의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    *    *

번민의 곰이 제안을 한 사이, 그의 치하에 있는 웅족과 권속이 적호의 대답을 기다리듯 공세를 멈췄다.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웅족과 권속들은 번민의 곰과 같은 생각인 듯했다.

적호는 번민의 곰이 가리킨 선장 끝에 있는 김신록을 바라봤다.

김신록은 적호의 눈길이 닿자 허둥지둥 고개를 숙였다.

적호의 어린 아들은 표정을 감출 자신이 없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자 적호의 입이 절로 열렸다.

“무슨 착각을 하고 지랄을 하는 건지 내가 알 바가 아니지만, 뭔 헛소리냐.”

적호가 착각과 지랄을 하는 중인 번민의 곰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매섭게 겨누어 보며 말했다.

분노로 인해 그의 주변에 붉은 번개가 몇 번이나 번쩍였으나, 호랑이 창애가 번개를 삼키고 적호의 다리를 부술 듯이 파고들었다.

파지직! 우득…….

점점 적호의 다리가 본래 형체를 잃었지만, 적호는 고통보다는 노여움을 더 크게 느꼈다.

1년 전, 자신의 아들도 웅족의 손속에 다리를 잃었을 때 이런 고통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적호는 끓어오르는 격노를 삭이며 외쳤다.

“나는 웅족이 아니라 내 사랑을 믿고 움직인 거다. 그 사랑과 믿음이 나를 저버렸는데, 되찾다니? 내게 남은 건 아들과 친우들뿐이다!”

번민의 곰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선장을 내렸다.

잠시 고민에 빠졌던 번민의 곰이 되물었다.

“웅녀가 너를 저버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럴 리가. 아니, 만약 적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설마…….”

번민의 곰은 무언가를 추리하듯 중얼거렸다.

물론, 적호는 실성한 곰의 헛소리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었기에 그 말을 끊어 버렸다.

대신 적호는 지금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관해 물었다.

“저 역겨운 눈에는 풍백과 우사의 힘이 깃들어 있다. 내 친우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들은 어디에 있나!”

“풍백과 우사의 힘을 확인하면 전의를 상실할 줄 알았는데, 흐음…… 아직 아들이 살아 있어서 그런가?”

적호가 웅녀를 미끼로 한 말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애먼 것에 관심을 두자 번민의 곰이 혀를 찼다.

적어도 적호가 고민하는 척이라도 하길 바랐는데, 뜻대로 되지를 않았다.

예상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자 한숨이 나왔다.

번민의 곰은 일단 생각을 멈추고 적호를 다시 한번 꼬드기기 위해 운을 떼 보았다.

“네가 옳은 선택을 했다면 알 길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협상의 여지는 없…….”

“곰 새끼가 협상 같은 소릴 하는 걸 보니 완전히 정신이 나갔나 보군.”

그러나 번민의 곰이 한 시도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적호의 화만 돋우는 바람에 대화가 되지를 않았다.

뭐라 말을 해 보려 해도 적호의 입심을 이길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줄창 쏟아지는 쌍욕에 번민의 곰은 적호와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적호는 실컷 번민의 곰을 도발했지만, 그 몸은 호랑이 창애에 묶여 있고 그의 아들은 웅족 앞에 무방비하게 놓여 있었다.

번민의 곰은 적호를 업신여기듯이 바라봤다.

한때 웅족 최고의 기재와 짝을 지었던, 호족에서 손꼽히는 전사가 이렇게 주제를 모르고 욕설을 퍼붓는 게 우습게 보였다.

‘웅녀도 참 보는 눈이 없군. 이렇게 어리석은 자를 택하다니…….’

눈을 가늘게 뜬 번민의 곰이 고뇌를 끝마쳤다.

번민의 곰은 적호의 숨통을 끊기 위해 선장에 이능파를 모으기 시작했다.

번민의 곰은 마지막으로 선심을 쓰듯, 아니, 조롱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친우의 소식이 궁금한 것 같으니 알려 주도록 하지.”

적호는 풍백과 우사가 삿된 눈을 뿌리는 것을 알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들의 소식만으로는 적호의 마지막 길에 회한을 남길 수는 없을 것이다.

번민의 곰은 적호가 마지막 순간까지 번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 번민의 곰은 다른 이름을 더 대기로 했다.

“운사는 곧 네 곁으로 따라갈 거다. 거기에서 아들을 소개하면 되겠군.”

번민의 곰이 신호하자 멈춰 있던 웅족과 권속들이 일제히 이능파를 끌어올렸다.

번민의 곰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선장에서 구정물색의 이능파가 피어올라 호랑이 창애에 묶인 적호를 겨누었다.

번민의 곰이 히죽 웃으며 적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그 얼굴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다시 번민하고 말았다.

“……왜 웃고 있지?”

“참, 곰들의 입은 먹이 앞에서 한없이 가벼워지는군.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어리석었기에 교활한 계책을 세우고 배신을 하고도 한반도를 차지하지 못한 거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적호가 마치 승기를 잡은 것처럼 말했다.

번민의 곰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왜 적호는 저리도 여유가 넘쳐 보이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아아아…….

어디선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빛의 입자가 실린 바람에는 이능파가 실려 있었다.

“같은 수 좋아하는군. 너희 같은 어리석고 간악한 자들을 상대로 그 아이가 같은 수를 두겠느냐!”

콰아아아아!

적호가 일갈을 마치자 눈을 뜨고 있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 앞에 웅족들의 이능파가 흔들리고, 권속들의 몸이 비틀거리다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쏟아지는 광풍 사이로 하얀 범이 날아들었다.

“천신이시여.”

나직한 음성은 바람 소리 사이에서도 널리 울려 퍼졌다.

그 말이 시작되자, 대검을 든 백호의 이마에 영롱한 빛이 흘렀다.

“부디 허락을.”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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