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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11화 (607/925)

83. 학교 밖 (5)

염준열이 이능파를 불어넣을수록 홍룡의 크기도, 발산하는 빛의 밝기도 점점 강해졌다.

문양을 따라 흐르던 2학년 0반 학생들의 이능파는 어느덧 허공으로 떠올라 홍룡 쪽으로 흘러갔다.

상황을 파악한 학생들이 홍룡 쪽을 바라봤다.

“뭐야, 저건……!”

“이능파 링크의 중심이 바뀌고 있어!”

처음 2학년 0반이 이능파 링크를 시도한 건, 스승의 날을 맞아 제갈재걸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대부분 특별한 선물은 금전적 가치를 따지면 비싸지기 마련이었고, 청렴한 제갈재걸은 그런 선물을 일절 받으려 하지 않았다.

또 제갈재걸의 구질구질한 첫 제자, 홍규빈이 나름 특별하면서도 금전적 가치가 적은 선물은 대부분 준 적이 있었기에 2학년 0반이 택할 만한 선물 후보는 더욱 적었다.

제갈재걸이 받아 줄 만한 선물.

그리고 수많은 제자들 중 누구도 그에게 주지 않았을 법한 선물.

그 결과 그들은 ‘가든’을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능파 링크의 과정은 험난했다.

파장을 맞추는 데에 성공하더라도, 여럿의 이능파를 하나로 모으는 건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 고안해 낸 게 지금 이들이 서 있는 ‘문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문양을 따라 흐르던 이능파는 염준열을 향해 곧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뭐야, 우리가 보낸 이능파가 염준열 쪽으로 가고 있어!”

“홍룡이 더 커졌잖아.”

바닥에 새긴 문양은 2학년 0반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암호용 문자로, 이들이 직접 고안한 표음문자였다.

이능파를 링크시키는 게 잘되지 않자 집중력을 올리기 위한 매개로 이것저것 시험해 보다가 써 본 게 그들의 암호였다.

대놓고 한글을 쓰면 제갈재걸에게 스승의 날에 줄 선물이라는 게 들통날까 봐 암호를 쓰기로 한 거다.

이들은 네 방향에 각각 제갈재걸 넉 자를 나눠서 쓴 후, 각자 서 있는 위치에 자신의 이름을 써 집중력을 올리고 이능파가 흘러갈 통로를 만들어 힘이 모이기 쉽게 했다.

그런데 홍룡의 존재가 그들이 고안한 문양보다 더 강력하고, 간단히 이들의 이능파를 결속시키고 있었다.

“금찬, 어쩌지?”

“지금 우리가 날린 이능파가 얼만데 여기에서 중단할 수 없어.”

금찬솔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판단하지는 못했지만, 금찬솔은 이능파 링크의 중심역을 염준열에게 맡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현재 금찬솔은 협회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고 하나 여전히 스승의 날 선물용으로 지배한 가든을 보유 중이다.

게다가 마신이 힘을 보낸 후, 마족에게 지배권 싸움에서 한 번 밀렸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금찬솔은 반 아이들을 향해 외쳤다.

“저쪽은 마신까지 왔다면서. 지금 이계를 지배 못 하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 야, 일단 염준열한테 이능파 보내!”

2학년 0반 학생들이 금찬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염준열 쪽으로 이능파가 흘러가자 출력을 낮췄던 2학년 0반 학생들이 그 말을 듣고 다시 이능파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2학년 0반 학생끼리 이능파를 링크시켰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렬한 빛이 미궁을 밝혔다.

파아아아앗!

“으윽……!”

염준열이 집중하기 위해 감았던 눈을 뜨자 세로로 동공이 열려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것 같은 이능파로 눈이 이글거리고, 온몸에 열기가 피어올랐다.

홍룡의 본체가 머금은 불꽃으로 학생들을 태우기 전에 높이 날아오르자 마치 미궁 속에서 태양이 뜬 것처럼 밝아졌다.

“준열아!”

촉룡이 염준열 쪽으로 달려갔다.

촉룡은 이능파의 거센 흐름 속을 뚫고 다가가 염준열을 살폈다.

염준열은 갑자기 늘어난 이능파의 총량을 다루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지만,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염준열은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이능의 주도권을 잡고 이능파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 일련의 과정을 목도한 촉룡이 감탄했다.

“준열이는 역시 천재구나! 가르친 적은 없지만 이능 삼키기도 곧잘 할 것 같아!”

불, 물, 전기, 바람, 땅 같은 자연계의 이능에는 ‘이능 삼키기’라는 게 존재한다.

동일한 자연계 이능을 가진 경우, 이능파에 간섭하여 상대가 발동한 능력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이능 삼키기 실패 시 이능파가 역류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여 용족은 염준열에게 그런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염준열에게 그런 위험한 훈련을 시킨 스승이 있었다.

바로 적벽괴도의 모습을 한 조의신이었다.

염준열은 조의신으로부터 이능 삼키기를 배웠지만, 촉룡은 이를 알지 못했다.

‘내 것이 아닌 이능파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아. 할 수 있어!’

염준열은 이능파가 자신 쪽으로 밀려올 때 당황하긴 했으나 곧 적벽괴도와 한 훈련에서 익힌 이능 삼키기를 떠올렸다.

스승의 불꽃을 다루는 것보다 2학년 0반 학생들과 마진승이 파장을 맞춰 보낸 이능파를 하나로 모아 다루는 게 훨씬 쉬었다.

염준열은 걱정 반, 뿌듯함 반을 섞어 자신을 보는 촉룡을 향해 밝게 말했다.

“……전 괜찮아요. 제가 이계 지배를 해 볼게요!”

홍룡이 하늘을 넓게 빙글 돌자 하늘이 붉게 물드는 것처럼 보였다.

염준열은 자신에게 밀려드는 강력한 이능파로 미궁을 삼키려 했다.

마신의 힘을 업은 마족의 저항이 거셌으나, 제갈재걸이 버티고 있어 염준열을 직접 공격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미궁은 천천히 염준열의 색으로 물들어 갔다.

느리지만 이계 지배의 주도권은 점차 염준열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한편, 촉룡은 염준열에게 혹시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이능파의 파장을 계속 지켜보았다.

‘이상해, 방금까지는 이능파가 섞일 것 같지 않았는데…….’

홍룡 중심으로 모이는 이능파를 보니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금찬솔이 중심에 있을 때는 파장을 맞춰도 링크가 되기는커녕 이능파가 역류해서 촉룡이 큰일을 당할 뻔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심에 염준열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 이능파를 실으면 하나가 될 것 같았다.

‘해 보자. 만약 안 된다 해도 준열이가 다치는 건 아니니까!’

성공하면 촉룡의 힘이 더해져 이계 지배도 빠르게 끝날 것이다.

촉룡은 손을 뻗어 염준열을 향해 이능파를 흘렸다.

종화산의 붉은 용, 촉룡이 뿜은 적색의 이능파가 염준열을 향해 흘러갔다.

“외할머니?”

염준열이 촉룡의 이능파를 느끼고 그쪽을 보았을 때였다.

콰아아아아!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강렬한 이능파가 홍룡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미궁을 덮쳤다.

문양에 서 있던 학생들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전, 제갈재걸의 힘이 그들을 감쌌다.

제갈재걸의 ‘보호’라는 글자 아래, 전원 미궁이 변해 가는 모습을 보았다.

불길하게 일그러져 있던 미궁의 벽은 홍룡의 비늘과 불꽃처럼 변해 있었다.

파아아…….

그 순간, 자연스럽게 이능파 링크가 종료되었다.

다들 얼떨떨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준열이네 외할머니가 합세했더니 갑자기 엄청난 힘이 휘몰아쳐서…….”

의문이 많았지만,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미궁 속에 염준열의 기운이 가득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계 지배는 성공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성공이다!”

염준열의 가든이 된 미궁에 따스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벽에는 2학년 0반 학생들, 마진승의 이능파 색이 마블링된 것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색 중에는 촉룡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    *    *

거주 구역, 비상구 주변.

비상구를 확인하려다 이계의 틈이 발생하자 지익회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공략에 임했다.

현재 수비대는 지익회장 계이담의 주도로 학생들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지익회가 방어선 구축에 사용하는 건 이계 금속으로 만든 진지용 아이템이었다.

지시받은 장소에 카드를 실체화하던 학생들이 의문을 가졌다.

“이런 아이템 카드들이 지익회실에 있었나……?”

“겨울에 모의 전투 훈련을 할 예정이었대.”

“그랬나?”

“나도 전해 들었어. 졸업하기 전에 3학년 선배님들이 1, 2학년들한테 깜짝 선물로 준비했나 봐.”

마침 지익회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기 전에 훈련용으로 구입한 아이템 카드를 대량 보유 중이어서 물자 관리에 여유가 많았다.

박승현의 설명을 듣고도 김현구는 아직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깜짝 선물로 훈련이라고?”

“응, 저번에 시완이 형이 뭐 물어보지 않았어?”

“어, 그러고 보니…….”

성시완의 이름이 나오자 김현구가 납득한 것 같았다.

졸업을 목전에 둔 성시완이 최근 후배들의 훈련 상황에 관해 관심이 많아 보였다.

성시완은 지익회 소속 후배들의 주력 공격 스킬과 종합 능력치 레벨 등을 물어봤다.

상대의 스킬이나 레벨을 묻는 건 무례한 질문이 될 수 있었는데, 그의 후배들은 모두 성시완을 믿었기에 숨김없이 알려 줬다.

“훈련하려고 물어본 거였나? 덕분에 지금 인원 배치하는 게 엄청 쉬워지긴 했다.”

“나는 나중에 시완이 형한테 전투 스킬 상담받으려고 했는데…….”

“받는 게 좋을걸. 지익회장이 최근에 무기 바꾼 게 시완이 형 조언 덕이라면서.”

“아…… 이담이 형 갑자기 무기를 바꾸셨지.”

김현구와 박승현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계 입구 주변에서 수비대를 맡고 있는 계이담을 봤다.

계이담은 은광고에 입학한 후 계속 사용하던 이능 총 대신 이능 망치를 들고 있었다.

계이담은 세로로 세우면 제 키와 비슷할 것 같은 크기의 거대한 해머로 무기를 바꿨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간 계이담이 보인 처참한 수준의 사격 실력을 떠올리곤 납득했다.

계이담은 광림 ‘밤정적의 안개’와 뛰어난 신체 능력이 없었다면, 그 엉망인 총 솜씨 탓에 진작에 이계 공략 중에 크게 다치거나 0반들의 장난질에 당했을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2년 쓴 총보다 2주도 안 된 망치 실력이 더 좋은 것 같네.”

“그건 그래.”

“저거 휘두를 근력이 있는데 왜 그동안 총을 쓴 거지?”

그거야, 안다인이 이능 총을 다루니까.

계이담은 차마 그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계이담은 박승현과 김현구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공략 안 끝났다.”

“헐. 들렸나?”

“앗, 죄송합니다!”

1학년 학생 둘이 허둥지둥 물러나는 걸 보고 계이담이 인상을 구겼다.

계이담은 이계의 틈을 바라봤다.

이계가 발생하기 무섭게 성시완은 공격대를 편성해 그 안으로 향했다.

계이담도 공격대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성시완은 아직 그가 바꾼 무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과 지익회장은 밖에서 지휘를 맡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그 말에 납득했지만 서운하고 초조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계이담은 애써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시완이 형이라면 이 정도 이계는 금방 공략할 거다. 플마고에서는 시완이 형이 있었을 텐데, 왜 지익회가 전멸한 거지?’

계이담도, 성시완도 플마고에서 지익회 전멸의 원인은 이 비상구 주변의 이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 지익회가 전멸하게 된 계기는 오지 않은 셈이다.

“……에너미다!”

김현구의 목소리가 들리자 계이담이 해머를 들고 주위를 경계했다.

흰 털에 뒤덮인 에너미들이 발을 질질 끌며 이계의 틈을 비집고 나왔다.

넷 중 셋은 계이담 쪽으로, 남은 하나는 김현구와 박승현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이 움직이는 속도를 가늠해 계이담이 에너미를 토벌하려고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쉬이익!

“뭐, 뭐야. 아까보다 더 빨라!”

“뭐 해! 도망쳐!”

박승현과 김현구의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에너미의 희귀도는 똑같았는데, 능력치가 다른 것 같았다.

뭐가 어쨌든, 지금 할 수 있는 건 망치를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계이담이 에너미의 머리를 향해 망치를 날리고 있는 사이, 에너미가 박승현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승현아!”

콰앙!

김현구가 박승현을 잡아당겨 머리가 으스러지는 걸 면했다.

박승현이 서 있던 자리에는 진지 구축용 이계 금속이 찌그러져 있었다.

그걸 본 박승현이 겁에 질린 목소리를 냈다.

“파괴력도 아까보다 올랐어…….”

에너미는 멈추지 않고 다시 팔을 휘두르려 했다.

계이담은 그사이 에너미 한 마리를 쓰러뜨렸지만, 저 둘을 도우러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전원 교전 중이었다.

계이담이 두 사람에게 도망치라고 지시하려 할 때였다.

탕탕! 탕!

우어어어…….

쿠웅!

총성과 함께 에너미가 쓰러졌다.

이능 총의 탄환이 정확하게 에너미의 급소를 꿰뚫고 있었다.

꽤 멀리서 쏜 건지, 저격을 한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에서, 에너미를 한 방에 보낼 만한 화력의 총을 이 정도로 다룰 수 있는 건 몇 명 없어……!’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당연히 안다인이었다.

안다인의 모습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타난 건 까마귀 인형 탈을 쓴 누군가였다.

설마 저 안에 안다인이 있는 걸까?

그렇게 계이담이 생각했을 때였다.

“…….”

그 누군가가 까마귀 인형 탈을 벗어서 휙 집어 던졌다.

그 인형 탈 아래에서 나온 인물을 보고 계이담이 숨을 헉 하고 들이켰다.

매우 불쾌해하는 표정의 조의신이 계이담을 노려보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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