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긴 꼬리 (6)
‘저 선배놈들이 여기는 대체 왜 온 거야?’
3학년 0반 일당이 여기에 있다는 건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플마고 속에서 3학년 0반은 맛이 가긴 했지만 매우 얌전하게 지내는 편이었으니까.
예상은 못 했지만, 막상 저 선배놈들이 있는 걸 보니 3학년 0반이 여기에 온 이유는 짐작이 갔다.
플마고와 현시점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이 천익산이니까.
‘천익산이 플마고 때처럼 죽지 않고, 호족의 신수인 우리 착하고 귀여운 천사 올무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지력이 잘 유지되니 산령이 나타났지.’
산령에게는 나와 같은 스킬이 있었다.
그게 바로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이었다.
그리고 3학년 0반 선배놈들은 우주의 기운 운운하면서 천익산을 헤집어 놓고 다녔다.
우기환 일당은 산령이 그 스킬을 사용하는 광경을 목격한 게 아닐까?
초상 우주의 강력한 힘을 느꼈다면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우주의 기운을 손에 넣네 마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해 온 일들의 영향을 받아 3학년 0반 선배놈들도 변하게 된 거다.
‘원래 여기에 없었을 사람들이 나 때문에 이 위험한 장소에 오게 된 건가!’
이미 지익회 사람들도 휘말렸는데, 휘말리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말았다.
저 선배놈들은 머리가 이상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장소에서 변을 당해도 괜찮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왜 나는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이렇게 튀어나올 걸 사전에 생각하지 못한 걸까.
조금만 생각하면 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는데.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플마고에 등장하지 않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등교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듣는 바람에 방심하고 말았다.
성시완도 우기환 일당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한 건지 당황스러워했다.
“기환아! 여긴 어떻게 왔어? 3학년 0반은 크리스마스 자선 이벤트에 참가 안 할 거라고 했잖아.”
“모두에게는 비밀로 특훈을 하고 있었다. 특훈의 비밀이 누설되면 담임은 이길 수 없다!”
비밀이 누설되든 말든 저 선배놈들이 강한 담임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애초에 강한 담임 임연화를 상대로는 그런 정보전이 의미가 없었다.
임연화는 저 맛이 간 선배놈들을 상대로 얼마든지 정보를 수집할 능력이 있었지만, 마치 깜짝 선물과 이벤트를 기대하는 아이처럼 일부러 모르는 상태로 선배놈들의 도전을 기다렸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천익산에서 훈련한 거야. 날도 추운데.”
“강한 담임과의 다음 대결은 이 천익산에서 벌일 예정이니 이곳에서 훈련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강한 담임을 쓰러뜨릴 함정을 깔아 놔야 하니까!”
“스승의 날에도 천익산에서 싸우지 않았어? 뭐였더라, 리벤지 매치로 페인트볼 게임을 하지 않았나?”
“강한 담임의 요청으로 그동안 했던 대결을 복기 중이다. 이번에는 그 페인트볼 게임 차례다.”
그 성대한 항복 후기가 올라왔던 스승의 날에 벌어진 3학년 0반의 대결 말하는 건가.
그 당시 3학년 0반은 승리의 순간을 찍겠다고 천익산 곳곳에 기록 기기를 설치했으나 굴욕과 패배의 장면만이 남게 되었고, 이는 전부 공개되어 전교생이 그걸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대결을 또 할 생각인 걸까?
3학년 0반 선배놈들과 임연화의 대결은 지나치게 길고 많아 축제 기간 때에도 다 복기하지 못하고 오늘까지 끌고 왔나 보다.
그 생각에 미치니 숨이 턱턱 막히던 기분이 다소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달라진 점은 단순히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이 자리에 왔다는 것만이 아니야.’
플마고에서는 임연화와 3학년 0반 선배놈들의 대결 장면이 등장하지 않았다.
학생들과 교사가 사건 사고에 휘말려 추모가 이어지는 와중,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학교생활 속에서 저 선배놈들이 눈치 없게 담임한테 싸우자고 들이대진 않았을 거다.
설령 그랬더라도 임연화가 대결을 정중히 거절했겠지만.
어쨌든, 3학년 0반 선배놈들은 강자를 향한 거듭된 도전과 처절한 훈련으로 강해졌다.
저 선배놈들은 평범과 동떨어진 학교생활을 보냈으나 그만큼 강자와의 대결에 익숙했다.
콰콰쾅! 퍼엉! 콰아앙! 콰쾅!
성시완과 우기환이 대화하는 사이에도 그들이 준비한 함정 카드가 실체화되어 폭파가 계속되었다.
우리를 습격하려던 진족은 좀처럼 이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폭발 때문에 계속 후퇴하는 중이었다.
산발적인 폭파가 이어지는 중, 우기환의 손짓을 따라가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 뒤로 숨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나무가 늘어서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고차원적인 은폐 이능이 전개되어 있었다.
지익회 사람들이 그 이능을 감지하고 감탄을 터뜨릴 정도였다.
‘임연화의 눈을 속이기 위해 준비한 장소인가 보네.’
이들은 임연화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비겁하게 천익산에 미리 이런 장치를 해 둔 듯하다.
방금 우리를 공격하려던 진족에게 사용한 폭발물도 상당한 수준의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피해를 가하는 것은 물론, 이능파를 교란시키고 소리와 시야를 어지럽혀 도주와 공격을 동시에 가하는 고단수의 지뢰였다.
이 정도의 아이템을 고등학생이 담임에게 쓴다는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3학년 0반 놈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건가?’
나무 뒤 은신처에는 낙엽이 덮인 중형급 텐트가 있었다.
3학년 0반은 폭발물, 은신처 외에도 철저한 준비를 해 놨던 듯했다.
텐트 안은 장기전을 대비한 건지 전투 식량과 물이 배치되어 있었고,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직접 작성한 천익산 지도가 인쇄되어 벽에 붙어 있었다.
지도에는 배치한 은신처, 지뢰, 함정 등등의 위치와 선배놈들이 임연화 타도를 위해 세운 계획과 작전들이 빼곡하게 메모되어 있었다.
그걸 본 성시완이 할 말을 잃고 어색하게 웃었고, ‘계’새끼는 한숨을 내쉬려다 부들거리며 참았다.
천익산은 거주 구역에 걸쳐 있어서 지익회 소관이기도 하니, 이런 지도를 보면 어지러울 거다.
우기환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목소리 내도 된다. 소리가 얼마나 차단되는지는 사전에 확인한 상태다. 단, 음압 데시벨 기준 100이하의 소리를 내도록.”
음압 데시벨 기준 100은 지하철이 내는 소리 정도 아닌가.
그 정도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을 정도면 대체 어느 정도로 방비한 건지 모르겠다.
강한 담임 임연화는 오감이 극도로 발달했으므로 그녀의 귀를 속이려면 이 정도로 준비해야 하긴 하겠지만.
성시완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저쪽에 있는 진족은 몇 명이지?”
“우리가 발견한 건 여덟 명이다.”
여덟 명의 진족이라는 말에 분위기가 경직되었다.
3학년 0반 학생들과 지익회 열 명 정도를 합하면 서른이 넘어가긴 하지만, 정면으로 맞붙으면 필패할 것이다.
이때, 3학년 0반 부반장, 국악부 소속 선배놈이 말했다.
“일곱이야. 한 명이 없어졌어.”
“처음부터 일곱이었을 가능성은?”
“한 명이 없어진 건 확실해. 가장 세 보여서 집중적으로 지켜봤대.”
국악부 선배 놈이 3학년 0반 학생 중 통찰계 스킬 유저로 추정되는 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장 세 보이는 진족이 사라졌다는 말에 바로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긴 꼬리의 수장이 자리를 비웠구나. 대나무 숲은 맡기고, 따로 임무를 수행하러 이동했나 보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릿속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긴 꼬리의 수장이 부재중이라면 승산은 커진다.
좋은 징조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도망칠 때에는 성에가 거의 녹아 있었어. 밖에서 누군가가 수를 쓴 거야. 그렇다면 내가 직접 대나무 숲에 가서 손을 쓸 필요도 없어.’
결계를 얼려 버리던 흑막의 수가 저지되었다면, 내가 둘 수 있는 수는 늘어난다.
나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던 성시완이 선별한 지익회 멤버.
강한 자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3학년 0반 선배놈들.
이 정도면 과감하게 수를 둬도 될 것 같았다.
‘나쁘지는 않아. 위험하긴 하겠지만.’
특히 3학년 0반 선배놈들을 잘 배치하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 이곳에 있는 긴 꼬리의 진족들은 숫자가 일곱이나 되지만, 한 명 한 명 따지면 임연화보다 약하다.
그리고 우리 쪽에는 강력한 이점이 있었다.
천익산의 지리에 훤했고, 사전에 함정도 깔아 뒀으며 도망치고 숨을 길도 준비했다.
게다가 저들은 임연화와 달리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어떤 이능을 사용하는지, 어떻게 잔재주를 부리려 드는지 전혀 모른다.
“숫자가 거슬리지만 우리의 전략에 당하는 걸 보니 담임보다 약하군.”
“그건 그래. 강한 담임이라면 우리가 나무 위에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즉각 나무의 뿌리부터 뽑아서 뒤흔들었을 테니까.”
“그래서 나무 위로 이동하려던 작전을 취소하고, 다른 방안을 모색하던 중에 결계에 이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저 진족들을 발견한 거다.”
우기환이 한 말의 내용을 들어 보니 저들은 천익산에서 그놈의 비밀 훈련을 하던 중에 사건에 휘말리고, 진족을 발견하게 된 것 같았다.
3학년 0반 선배놈들은 갑자기 나타난 진족을 계속 감시한 듯했다.
“저들이 진족인 건 어떻게 알았어?”
“대화를 좀 엿들어 봤더니 진족이 어쩌고 하기에. 웬 진족인지 몰라도 감히 우리의 신성한 전장을 침범한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결계 문제가 해결되면 뒤를 추적해 협회에 넘길 예정이었다.”
3학년 0반 선배놈들은 저 진족들이 훈련 중에 천익산에 침입한 게 몹시,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 결과 그들이 준비한 살벌한 함정들을 아낌없이 사용하게 되었나 보다.
그런데 강한 담임 임연화는 이걸 다 뚫고 3학년 0반을 제압했단 말인가?
이걸로도 부족하다는 우기환의 말을 들으니 새삼 그 강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 강한 담임에게 단련된 3학년 0반 선배도 믿어 보기로 했다.
‘여기에 있는 수를 모두 사용해서 다음 수를 두자.’
성시완과 우기환의 대화가 진행되는 도중, 제안을 하나 하기로 했다.
나는 벽면에 게시된 천익산 지도 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흰 바위 협곡과 검은 바위 협곡 사이에 놓인 구름다리였다.
꽤 긴 구름다리는 학생들이 담력 테스트나 도약 스킬 훈련에 가끔 이용하곤 했다.
학교 건물에서 너무 멀어서 보통 시뮬레이션 룸을 사용하긴 하지만.
“이쪽으로 유도해 줄 수 있나요?”
“……여기로 간다고? 도원우가 있는 학교 쪽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우기환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수석인 도원우의 힘을 믿고 있는 건가.
성시완도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시완 입장에서는 성에가 사라지고 있으니 굳이 그 원인을 캐러 대나무 숲에 가거나, 진족을 직접 상대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마 이대로 진족의 눈을 속이고 지익회 쪽이나 중앙 구역에 합류하는 게 당연할 거다.
나는 우기환의 시큰둥한 반응을 뒤집기 위해서 그가 몹시 신경 쓰고 있는 단어를 집어넣어서 한마디 덧붙였다.
“담임 선생님이 계세요.”
담임이라는 말에 3학년 0반 선배놈들의 눈이 번뜩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