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34화 (630/925)

84. 긴 꼬리 (13)

중앙 구역, 학생회관.

갑작스럽게 결계를 덮친 냉기로 인해 학생들이 모두 학생회관 안으로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도원우가 내린 대피령이 각 입구에 빠르게 전달되었고, 추위 문제도 금방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제천대성이 냉기를 없애기 전, 염준열과 촉룡이 나서 학생회관을 냉기로부터 지켰다.

염준열은 학생회관 주변을 홍룡의 불꽃으로 감쌌고, 촉룡은 불꽃 주변의 공기 흐름을 안정시켜 열기가 학생회관으로 향하도록 유도했다.

염준열의 불꽃은 냉기가 사라질 때까지 한파와 에너미로부터 학생회관을 지켰다.

촉룡이 도왔어도 넓은 범위에 걸쳐 불꽃을 발동시킨 만큼 염준열의 이능파 소모가 극심했으나 염준열은 여유를 부렸다.

도원우가 염준열을 걱정하며 잠시 쉬라고 말해도 이렇게 답할 정도였다.

“이 자리에는 저를 대신해 싸울 분이 많아요. 원우 형도 있고, 외할머니도 계시잖아요. 제가 이능파를 다 쓰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믿어요.”

염준열은 그렇게 말하면서 추위 핑계를 대며 인형옷 차림의 제갈재걸 주변에 달라붙어 있는 2학년 0반 학생들을 흘끗 봤다.

도원우는 염준열이 이계 지배 과정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자신감의 원천에는 2학년 0반이 관련된 것 같기도 했다.

한편, 냉기가 가신 후에 학생회관에 반가운 인물들이 도착했다.

계속 행방이 묘연했던 안다인과 유상희였다.

“상희 언니랑 다인이가 왔어요!”

“유상희와 안다인? 두 사람이 같이 있었나! 둘은 무사한가?”

“네, 두 사람 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안다인이 1, 2번 출구 주변의 에너미를 혼자서 섬멸 중! 어, 방금 상희가 안다인을 노리던 에너미에게 기습을 가했어!”

“에너미를 잡으면서 이동했을 텐데…… 아직도 저 정도의 힘이 남아 있단 말이야?”

통찰계 스킬로 출구 주변을 살피던 학생들이 흥분하여 두 사람의 활약상을 중계했다.

유상희와 안다인은 냉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듯, 어디 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

두 사람은 염준열의 불꽃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며 학생회관 주변을 배회하던 에너미들을 순식간에 일소했다.

둘이 학생회관 안으로 들어올 때에 맞춰 지명수, 염준열을 비롯한 학생회 임원들은 곧바로 마중을 갔는데, 도원우는 그러지 않았다.

도원우는 사령부를 지키며 두 사람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왔나? 둘 다 무사해서 다행이군.”

도원우는 사무적으로 말하긴 했으나 유상희의 무사를 눈으로 확인하고 조용히 안도했다.

도원우는 이 사태가 발발한 후, 유상희의 안부를 계속 걱정하였다.

그러나 학생회관에 도착한 학생들의 명부를 몇 번이나 확인해도 유상희의 이름은 없었고, 학생회 소집을 위해 임원들의 위치를 수소문했으나 유상희의 소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리를 박차고 은광고를 헤집고 다니며 유상희를 찾아다니고 싶었다.

도원우는 TC 연구소 사건을 계기로 누군가가 유상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이번 사태를 틈타 유상희에게 또 무슨 짓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 생각만 하면 도원우의 냉철한 이성에 금이 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도원우는 학생회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나에게는 상희를 쫓을 자격이 없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을 저버리고 상희를 찾으러 간다면, 상희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다.’

도원우는 책상 아래에서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많은 상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지만, 도원우는 애써 그 모든 생각을 억눌렀다.

도원우는 유상희와 안다인, 두 사람에게 물었다.

“보고할 게 있다면 듣겠다. 바로 합류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겠지.”

딱딱하게 말하는 도원우를 보며 지명수가 고개를 조금 돌려 씁쓸해하는 표정을 감췄다.

덜 추하고,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던 지명수는 도원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눈에 보였다.

도원우의 질문에 유상희와 안다인은 마치 말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차분히 보고했다.

두 사람의 보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안다인은 담임 김신록을 찾기 위해 1학년 건물을 헤매던 중, 유상희와 만났다.

유상희는 유상훈을 만날 겸, 1학년 후배와 인사를 나눌 겸 1학년 건물에 방문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마침 눈을 막는 기적을 발휘한 용제건, 김신록과 합류하여 함께 에너미를 토벌하였다.

그러다가 무장한 교직원과 합류하게 되었고, 그 교직원 중 하나가 두 사람을 학생회관까지 바래다주었다고 한다.

‘엄밀히 따지면 저 보고에 거짓말은 하나도 없어.’

보고를 하는 안다인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유상희와 안다인을 바래다준 적호를 비롯한 호족들은 호적상 신분이 있었고, 그들의 직업은 대부분 은광고의 교직원이었다.

호족들 중에 김신록처럼 교사를 하는 인물은 없었으나 황명 재단의 직원으로서 은광고에 적을 두고 있었다.

또, 유상희는 처음부터 호족과 함께 행동하긴 했으나, 시간이 맞으면 1학년 건물에서 조의신과 유상훈을 찾아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들을 종합하면 두 사람의 보고에 거짓은 없어진다.

‘결국 시간이 맞지 않아 주지 못한 것 같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유상희가 부가 설명을 하는 사이, 안다인은 사물함에 둔 책 한 권을 떠올렸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붉은 리본으로 장식된 포장지로 덮인 책은, 주수혁이 관심 있어 하던 책이었다.

그 책은 딱히 금전적으로 가치가 큰 희귀서는 아니었다.

신판이 나오면서 주인공의 대사 일부가 바뀌게 된 책이었는데, 주수혁은 구판 버전의 대사를 읽고 싶어 하는 듯했다.

안다인은 우연히 중고 서점에서 구판본을 찾게 되어 주수혁에게 선물할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선물하기 어렵겠지.’

중고 서점에서 구입한 책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고, 은광고는 지금 크나큰 위기를 맞이한 상태다.

선물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줄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런지 온갖 핑계와 변명이 자꾸 떠올랐다.

그사이에도 학생회 임원들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도원우는 막 도착한 두 사람을 위해 현재 중앙 구역 상황에 관해 브리핑했다.

“그래, 이곳은 원우가 지휘하는 중이구나.”

도원우가 말을 마치자 유상희가 그를 곧게 바라봤다.

시선을 받은 도원우가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도원우는 유상희가 무슨 의도로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여태까지 잘 지휘한 점에 관해 칭찬을 하는 건지, 아니면 현 학생회장인 염준열의 자리를 차지한 걸 두고 한마디 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별생각 없이 말한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때, 여태까지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염준열이 눈치 있게 끼어들었다.

“원래는 학생회장인 제 역할인데, 늦게 합류한 데다가 아직 원우 형만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요. 원우 형께는 죄송하지만, 형이 적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 준열이도 이참에 원우가 하는 걸 보고 배우는 게 좋겠다. 원우는 이계 공략 지휘 경험이 많아서 인원 배치를 잘해.”

염준열은 보통 용족이나 붉은 사자와 함께 행동하므로 지휘 경험이 적었다.

염준열이 지명수의 말에 공감하며 도원우의 칭찬을 계속하였다.

유상희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걸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상희 언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유상희의 시선이 학생회 임원들을 거쳐 가다가 마지막으로 도원우에게 멈췄다.

도원우는 임원들과 대화를 하는 중에도 보고를 듣고, 보고서를 확인하고,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유상희는 그 모습을 몇 초 정도 응시하고 있었다.

안다인은 결국 유상희의 속을 읽어 내지 못한 채 학생회실을 나오게 되었다.

“반 아이들을 보고 올게요. 저를 찾고 있다고 들어서요.”

“그래, 고생했어. 인원 배치를 다시 하는 대로 공지할게.”

지명수의 배웅을 받으며 안다인이 밖으로 나왔다.

학생회실을 막 나왔을 때, 안으로 들어오던 문새론과 딱 마주쳤다.

문새론은 안다인을 발견한 순간, 안타까움을 참지 못하고 탄식했다.

“아, 아깝다. 2반 반장 나갔는데!”

“수혁이가?”

“어! 아, 진짜…….”

문새론은 이마를 짚으며 고통스러워했다.

문새론이 말을 아껴서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안다인은 주수혁이 학생회관 방어를 위해 밖으로 나갔겠거니 하고 추측했다.

주수혁을 만나지 못한 건 몹시 아쉬웠지만, 방어를 전담한 것을 보니 그가 무사한 것 같아 안심되었다.

안다인은 문새론과 인사를 한 후, 1학년 1반 아이들이 모여서 쉬고 있다는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 문을 열자 반 아이들이 그녀를 맞이했다.

“어, 다인이 왔다!”

“어디 다친 데 없어? 김신록 선생님은?”

“다녀왔어, 얘들아. 김신록 선생님은 무사해.”

김신록이 무사하다는 말에 1반 아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안다인이 무사하고, 김신록이 무사하니 1반 아이들은 더 이상 걱정할 게 없었다.

부반장인 유상훈은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는데, 만약 그도 이 소식을 들었다면 티는 안 내더라도 조용히 기뻐할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는 안다인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김신록 선생님…….’

김신록의 정체, 그를 노리는 웅족.

그걸 생각하니 슬픔과 분노로 눈앞이 붉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안다인은 그 감정에 휩쓸리는 대신, 힘을 키우기로 했다.

“얘들아, 할 말이 있어.”

1반 아이들에게 안다인이 알게 된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제안하고 싶은 게 있었다.

1반 아이들은 안다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    *

파스스!

태양 원반이 조각조각 나 흩어지자 아피스의 화신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한 말을 모두 들었으니 아피스의 화신은 자신이 완전한 열세에 놓였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피스의 화신은 마지막 힘을 짜내 구름다리의 손잡이를 넘으려 했다.

협곡 아래로 몸을 날릴 생각인 거다.

물론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보군요. 죽음으로 도망가게 할 생각은 없어요.”

쐐애애액!

아피스의 화신이 떨어지기 전에 함근형 선생님의 화살이 그의 몸통을 꿰뚫었다.

더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통과 구름다리 바닥을 같이 꿰어 버렸다.

아피스의 화신이 바닥에서 버둥거렸으나 몇 차례 화살이 더 박히니 꿈틀거리지도 못했다.

‘화살을 본 순간부터 도주를 시도했다면 일이 귀찮아질 뻔했는데.’

구름다리로 불러낸 것은 함근형 선생님의 시야를 확보할 겸 아피스의 화신의 퇴로를 제한하기 위함이었다.

천익산은 호족의 영산(靈山)답게 고도에 비해 길이 복잡하고 여러 힘이 뒤얽혀 있다.

그러니 일방통행인 구름다리로 불러낸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구름다리를 끊어 버려 협곡 사이에 밀어 넣을 수도 있고.’

천익산의 흰 바위와 검은 바위 협곡 사이에 놓인 구름다리에는 괴담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이 구름다리를 헤매는 망자가 존재한다는 것.

하지만 괴담의 대부분은 현실의 현상이 와전되어 전해진 결과물이다.

이곳도 그러했다.

협곡 사이에는 거대한 이능파 기류, 아마 지맥으로 추측되는 힘이 흐른다.

그리고 그 힘의 왜곡으로 발생하는 신기루가 그 망자의 정체였다.

‘저 협곡 사이에 떨어지면 지맥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하니 멀쩡할 수 없겠지.’

거대한 힘의 영향으로 이능파를 운용하는 것도 힘들 테니 낙하 데미지도 그대로 입게 될 거다.

그렇게 우족들을 잘 처리했는데, 문제점이 하나 남았다.

3학년 0반 부반장이 어느 사이엔가 연주를 멈추고 아주 불만스러워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 담임은 어딨어?”

귀찮은 설명을 하게 생겼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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