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36화 (632/925)

84. 긴 꼬리 (15)

은광고 남문 앞.

붉은 사자 소속 플레이어들이 에너미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돈족의 권속이 날뛰던 초반에는 염방열이 직접 나서야 할 정도로 난전이 이어졌으나, 지금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각 문 앞에 배치된 이들이 돈족을 사냥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권속도 점차 힘을 잃었다.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에너미들은 전부 이계의 틈에 이끌려 나타난 것들뿐이었다.

“수비대로 전선을 유지하는 건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염방열에게 전황을 보고하던 간부가 말꼬리를 흐렸다.

붉은 사자의 팀원들은 가끔 초조하게 불투명한 결계를 응시하곤 했다.

저 너머에 염준열과 그를 노리는 흉수가 있다고 생각하면 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저 안에 용제건과 촉룡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능독이고 뭐고 결계를 깨겠다며 달려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염방열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염방열은 수비대의 지휘를 할 뿐, 돌입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기적 앞에서는 저 독도 힘을 못 쓰는군요. 냉기도, 독기도 꽤 옅어졌으니 언제든 진입 가능합니다.”

“결계가 얼음 덩어리가 되었을 때에는 놀랐어. 하지만 그 기적 덕에 일이 잘 풀릴 거 같은데. 이계 공략을 앞당겨도 되지 않을까?”

“얼른 저 성가신 이계를 공략해 버리고 준열이를 마중 가죠.”

간부들이 몸이 달았는지 염방열 주변에서 말을 얹었다.

저 안에 있는 아들, 염준열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홍염으로 들끓는 것 같았으나 염방열은 굳게 인내심을 발휘하였다.

‘아직 그 아이가 말한 신호가 오지 않았다.’

팀원들의 말대로 하늘이 열려 세 개의 빛이 쏟아진 후, 결계 주변의 독이 완화되고 냉기가 가셨다.

그러나 저 현상은 조의신이 예고한 신호와 달랐다.

조의신이 어디까지 앞을 내다봤는지 불명확하지만, 갑자기 상위 존재가 기적의 형태로 개입해 빛을 내리는 건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저건 그저 복잡한 상황에 의한 해프닝일 가능성이 컸다.

‘여기에서 우리가 돌입하여 변수를 더 늘리면, 계획이 잘못될 수도 있다.’

염방열은 출격 명령만을 기다리는 팀원들을 향해 엄격하게 말했다.

“기다린다. 아직이다.”

염방열의 뜻이 확고함을 알자 옆에서 바람을 넣던 간부를 포함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염준열의 안부를 누구보다 걱정하고 있을 아들 바보 염방열이 참고 있는데, 팀원들은 그 앞에서 억지를 부리거나 명령에 불복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수비대로서의 항전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마스터.”

바람결에 섞여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염방열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그 목소리에 집중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붉은 사자의 정보부 소속 팀원이었다.

정보부 소속 팀원은 모습을 감추고 염방열의 귀에 음성을 흘려 넣었다.

“무녀들은 사전에 고지한 대로 움직였습니다.”

염방열은 무덤덤한 얼굴로 학교 쪽을 응시하며 그 말을 들었다.

염방열의 반려는 용족의 후예이다.

그러므로 용족과 용왕신의 무녀는 염방열의 가족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용왕신의 무녀 중에서 염준열과 용제건 암살에 가담하고, 그들이 있는 은광고에 삿된 눈을 뿌리려 한 자들이 있었다.

염방열의 가족을 죽이려 한 자는 염방열의 적이다.

염방열은 그들 중 누가 가족이고, 누가 적인지 가려내기 위해 휘하의 정보부를 움직여 무녀들을 감시했다.

‘다섯 명 중 셋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한 쇼핑을, 둘은 남아서 기도를 올리겠다고 했지.’

최고참인 유황(硫黃)과 막내 홍(紅)은 기도를 올리겠다고 했다.

가장 강한 무녀 녹(綠)과 무녀 중 용왕신의 음성을 가장 자주 듣는다는 벽(碧), 용족과 인간들과 가장 친분이 두터운 자(紫), 이 셋은 쇼핑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붉은 사자의 정보부는 둘로 나뉘어 움직였다.

하나는 기도를 올리는 유황과 홍의 감시를, 다른 하나는 쇼핑에 나선 셋의 미행을 맡았다.

“현재 무녀들의 모습이 확인되고 있지 않습니다.”

팀원의 보고를 듣는 동안, 염방열은 표정 변화 하나 없었으나 속은 그렇지 않았다.

무녀들을 향한 불신이 불꽃이 되어 일렁이는 것 같았다.

보고가 계속되었다.

“기도를 올리는 신단을 확인했으나, 두터운 결계 탓에 그 너머가 보이지 않습니다. 쇼핑 중인 셋은 갑자기 흩어지더니, 미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하게 자취를 감췄습니다.”

보고대로라면 현재 용왕신의 무녀 다섯 명 모두 붉은 사자의 시야 밖에 있는 셈이다.

신단 너머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쇼핑 중 사라진 이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용왕신의 무녀들은 용의 기척에 민감하기에 그녀들의 뒤를 캐는 건 붉은 사자가 전담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이는 실수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감시와 미행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왕신의 무녀들은 염방열과 오랜 기간 가족으로 지내 왔다.

그러니 붉은 사자의 손속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배신을 꾀할 때부터 우리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파악해 온 건가. 그들의 배신이 이토록 뿌리 깊었을 줄이야.’

정보부 소속 팀원들의 이능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그들의 눈을 벗어나려면 오랜 시간 그 이능을 파악하고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염방열은 정보부 소속 팀원을 책하기 전에 그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였다.

하지만 아직 길이 닫힌 건 아니었다.

염방열은 그동안 용왕신의 무녀들이 연관되었던 사건을 모두 타파하고, 그의 가족을 지켜 주었던 은인을 떠올렸다.

‘무녀의 건도, 은인의 힘을 빌리게 될지도 모르겠군.’

염방열은 아들을 구한 은인을 생각하며 곧게 앞을 바라보았다.

지금 무녀의 건을 두고 다시 수를 두기에는, 너무나도 큰 위기가 눈앞에 있었다.

그러니 염방열은 조의신이 말했던 신호가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    *    *

천익산, 3학년 0반 선배놈들의 은신처 앞.

화살에 꿰뚫린 우족들이 포박되어 있는 가운데, 인형 옷을 입은 황명 재단 직원 세 명이 나타났다.

저 인형 옷은 은호가 직접 만든 아이템이다.

그러니 나야 저 인형 옷을 입은 자들이 호족이라는 걸 알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날뛰었다.

“정체를 밝혀랏!”

“야, 또 그 진족일 수도 있어! 전투 준비!”

파파팟! 휘잉!

저들은 멀리서 보면 그냥 나무밖에 없는 숲, 가까이에서 봐도 낙엽 더미로밖에 보이지 않는 은신처로 곧장 왔으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좌표를 알거나 강한 담임 임연화를 넘어서는 탐지 능력과 짐승 같은 감이 없는 한 여기에 오는 건 불가능할 거다.

참고로 우족을 넘기기 위해 좌표를 알린 건 함근형 선생님이었다.

“내가 부른 분들이다. 아까 전서구 아이템을 쓰는 걸 봤을 텐데.”

“그건 그렇긴 한데, 저기 있는 인형 옷들이 그 부른 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욧! 저 쓸데없이 잘 만든 인형 옷은 투시도 안 되는 거 같은데!”

“학생부장 쌤이 부른 사람을, 중간에 진족이 쓱싹하고 여기에 쳐들어왔음 어쩔 겁니까!”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일단 저 인형 옷을 공격한 뒤에 신분을 확인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신분을 확인하고 공격하면 늦는다고 주장했다.

“하하, 경계하는 건 좋은데 아직 적이라고 확정된 건 아니니까 다치게 하면 안 돼.”

성시완의 말만 들으면, 다치게만 안 하면 공격해도 상관없다는 것 같다.

성시완은 3학년 0반 선배놈들의 과격한 행동을 말릴 생각인 것 같았으나, 인형 옷의 신분을 확인하자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는 듯했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건 나쁜 게 아니야. 적이 은호의 인형 옷으로 기척을 감춘 호족 셋을 찾아내고, 습격한 뒤에 함근형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을 가능성은 적지만.’

흑막이 내 모든 계획을 읽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흑막이 진정 내 계획을 읽었다면 현재 이 자리에는 생존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3학년 0반은, 함근형 선생님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폭주할 기세였다.

함근형 선생님의 얼굴이 더 험악해지기 전, 인형 옷을 입은 호족들이 먼저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 학생들과는 아는 사이입니다.”

“뭐, 얼굴을 보여 주면 알겠죠.”

저 호족들이 3학년 0반 선배놈들과 아는 사이라고?

호족 세 명은 차례대로 인형 탈을 벗었다.

인형 탈 너머로 호족들의 얼굴이 드러나자, 정말로 면식이 있는 학생들이 있었는지 여기저기에서 ‘아’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성시완과 ‘계’새끼를 비롯한 지익회 사람들은 저들을 아는 듯했다.

“당신들은 예전에 그…… 안녕하세요.”

“네, 오랜만입니다. 성시완 학생.”

성시완과 인사를 나누는 호족들을 본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눈을 부릅떴다.

저걸 보니 저놈들하고도 구면인 것 같았다.

“어, 저번에 우리를 쫓아낸 그 황명 재단 직원 아니야! 아니, 가짜일 수도 있어.”

“그래! 진족들이 황명 재단 직원 얼굴 가면 같은 걸 쓸 수도 있잖아!”

“그런데 인형 옷은 왜 입은 거임? 아, 크리스마스 이벤트 때문인가.”

황명 재단이 3학년 0반 선배놈들을 쫓아낼 만한 일이 있었나?

그럴 만한 일이 워낙 많아서 어느 사건 때문에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지익회 사람들이 저 호족들을 황명 재단 직원으로 아는 걸 보니 아마 천익산에서 친 사고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후보가 많다.

하여튼 3학년 0반 선배놈들 말투를 보면 적을 경계해서가 아니라, 사심 때문에 저들을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우기환 학생, 저희가 의심스러우면 그때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당시 1학년 2반 소속 방윤섭 학생이 천익산에서 흡연을 하다가 연기 감지 시스템에 의해 적발되었습니다. 발각된 장소가 3학년 0반 학생들이 천익산에 몰래 만든 아지트였는데…….”

방윤섭의 천익산 흡연 사건 때문이었나!

그때 일로 3학년 0반과 저 호족들이 안면을 트게 되었나 보다.

돈족에 의해 천익산의 지맥이 파헤쳐졌다는 사실이 드러난 지 얼마 안 된 시점, 방윤섭은 겁도 없이 천익산에서 흡연을 하다가 걸렸다.

경보를 듣고 소화 아이템을 든 황명 재단 직원, 호족들이 출동해서 방윤섭을 혼쭐냈다.

그리고 하필 아지트 근처에서 흡연한 방윤섭 때문에 천익산의 아지트가 발각된 3학년 0반도 미쳐 날뛰었다.

‘……그 아지트가 발각되었는데도, 호족의 눈을 피해 잘도 이런 은신처를 만들었네.’

아마 호족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낙엽 뒤에 숨겨진 텐트를 보고 어처구니없어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저 인형 옷을 입은 이들이 그때 출동한 황명 재단 직원이라는 게 확실해져서 공격할 이유가 사라졌다.

하지만 3학년 0반은 여전히 툴툴거렸다.

대표로 우기환이 말했다.

“학생들이 싸우고 있는데 뭐 하고 있었습니까?”

“…….”

3학년 0반 선배들은 이상한 사람들이고 황명 재단 직원들에게 앙심을 품은 상태였지만, 저 말은 지당한 의문이었다.

청산유수로 답변하던 호족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현재 천동하의 광림으로 찾아낸, 은광고 곳곳에서 의식을 벌이는 진족들과 혈투 중이다.

호족들에게는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밝힐 권한이 없었기에, 함근형 선생님이 대신 답변했다.

“은광고 여기저기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나를 비롯해 교직원 중에 이 사태를 파악한 이들은 싸우는 중이다.”

“흠…….”

우기환은 함근형 선생님의 설명에 납득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것 같았다.

어쨌든 여기 있는 학생들은 교직원이 놀고만 있지 않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호족들이 우족들을 끌고 가고, 다들 지익회관으로 향하려 할 때.

틈을 노려 함근형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여기는 맡길게요, 선생님.”

“……따로 행동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네. 용제건 선생님이 발현한 기적이 눈을 막고는 있지만, 눈이 그친 건 아니에요.”

나는 아직 천익산에 남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제가 눈을 그치게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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