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37화 (633/925)

85. 기청제 (1)

플레이어 협회 위성 관리팀 산하 연구소.

경보가 울린 지 1시간이 지난 시점.

월궁계도와 연동된 위성 지도는 여전히 경고 메시지와 위험 지역 표시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계 발생 알람 빈도는 줄고, 그에 반해 승전보는 늘었기에 상황은 처음 경보가 울릴 때보다 나아졌다.

이계는 점점 공략되고 있다.

평소에 비해 다소 늦긴 했으나 언론 보도와 협회의 연락으로 이계 공략에 참가하는 팀이 늘어났다.

하지만 공략이 거듭될수록 플레이어들은 이능파를 소모하고, 지쳐 가니 영 속도가 나질 않았다.

‘그나마 은광고 주변에만 동결형 이계가 나타나서 다행이야. 다른 곳에서도 이능독이 퍼지고 있었다면 수습이 안 됐겠지.’

위성 관리팀의 팀장, 임지화가 전황판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임지화가 그 생각을 입으로 말하면 송대석이 ‘어디가 다행이라는 건데요! 저기에 그린이가 있다고요!’라고 하면서 난리를 치겠지만, 임지화 입장에선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서구를 통해 날아온 메시지를 확인하던 임지화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연구원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이계 공략에 참가한 팀 명단을 정리해서 줘.”

“네!”

곧 임지화의 눈앞에 홀로그램 하나가 떠올랐다.

연구원이 보낸 명단을 본 후, 임지화는 확신했다.

임지화는 협회의 직원으로서 주요 플레이어 팀의 교류, 적대 관계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명단에 오른 팀 간의 관계를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

‘승전보를 울리는 프로 플레이어 팀 대부분이 은광고 주변에서 이계를 공략하는 세 팀과 우호 관계에 놓인 곳이야.’

현재 은광고 근처에서 이계를 공략 중인 것으로 확인된 세 팀은 붉은 사자, 영원의 호수, 한강 싸이클링 팀.

각 프로 플레이어 팀의 규모와 인지도는 제각각이지만, 명단에 오른 팀들은 대부분 저 세 팀과 연이 있었다.

자주 협업을 하거나, 각 팀 마스터나 간부들 사이에 학연 등의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 왔다.

이 팀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저 세 팀과 관련이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위성 정보 수신 상태는 좋지 않고, 협회와 언론사 곳곳에 통신 장애가 발생했어. 그리고 지금은 크리스마스이브라 대기 인원이 적을 거야. 하지만…….’

이들은 마치 기다린 것처럼 척척 이계에 대응했다.

프로 플레이어 세 팀이 은광고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바로 대응한 것도 그랬다.

임지화는 혹시 저 세 팀 마스터가 미리 이 사태를 예견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품었다.

그러나 임지화는 동시에 속으로 반박했다.

‘그냥 우연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 붉은 사자는 염준열 군을 보러, 영원의 호수는 권제인이 명예 교사직에 있으니까, 한강 싸이클링 팀의 송만석 선배님은 그린이의 전시회를 보러 간 걸지도.’

임지화는 저 세 팀 마스터들이 은광고 축제 때에도 팀 멤버들과 단체로 움직였던 걸 상기했다.

이계 공략 상황을 보니 축제 때보다 더 많은 팀원들을 끌고 온 것 같았지만, 우연이라고 해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 그리고 저 팀 마스터들이 만약 알고 있었다면 학생들을 내버려 뒀을 리가 없어.’

만약 저들이 이 난리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은광고 학생들을 사전에 대피시켰을 거다.

특히 아들 바보 염방열이 척 봐도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은광고 안에 아들을 방치했을 리가 없었다.

임지화는 금방 의심을 접었다.

임지화처럼 나중에 위화감을 느낀 누군가가 있더라도, 각 팀 마스터들과 가까운 학생들이 저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의심을 지울 것이다.

이 모든 건 임지화처럼 의심을 품을 사람을 상대로 사고 과정과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조의신이 획책한 결과였으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운 좋게 빠른 대응이 가능한 건 우연이라 쳐도, 이런 위기가 닥친 건 우연이 아니겠지.’

임지화는 명단에 눈을 떼고 다른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일어나는 이계 발생, 통신 장애 등등을 비롯한 모든 상황이 우연일 것 같지 않았다.

이계가 다발적으로 발생하면 전파 교란 현상이 발생해 통신 장애가 발생할 수 있긴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았다.

‘아마 그 누군가가 노리는 건 바로 은광고일 거야.’

결계에 문제가 발생한 은광고와 그 주변을 꽉 채운 이능독을 생각하면 그러했다.

하지만 임지화는 여전히 뭔가 마음에 걸렸다.

‘이 정도로 일을 쳐 놓고 고작 고등학교 하나를 노린다고?’

물론 은광고는 보통 학교가 아니다.

최고의 명문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교인 데다 그 배후에는 진족도 있다.

구성원 하나하나를 따지면 노릴 가치가 있으나 크게 보면 결국 고등학교에 불과했다.

임지화의 고민이 깊어졌을 때였다.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송대석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은광고의 이상을 알아채고 바로 학교로 향하려던 송대석은 한강 싸이클링 팀이 주변에 있다는 걸 깨닫자 얌전히 자리로 돌아갔다.

학교에 가서 싸우는 것은 송대석의 할아버지가 있는 그 팀에게 맡기고, 송대석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 듯했다.

송대석은 자리에 앉은 후부터 그가 개발한 모든 프로그램을 동원해 은광고를 살폈다.

“은광고 주변의 대류 현상과 흐름을 시뮬레이터로 분석했는데, 뭔가 이상해요.”

송대석은 3차원 그래프로 결과값을 표시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송대석은 듣는 사람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복잡한 수치를 들먹이며 두서없이 설명했지만, 임지화를 포함한 연구원들은 그럭저럭 알아들었다.

‘예측값과 관측값 사이에 오차가 크다는 말이구나.’

송대석의 말을 아주 쉽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은광고를 관통하는 대기의 흐름이 일반적인 상황과 크게 다르다.

마치 은광고 안에서만 바람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한다.

한 연구원이 송대석의 말에 납득하면서도 반박했다.

“은광고의 결계에 문제가 발생해서 생긴 오차가 아닐까?”

“은광고의 결계에 문제가 있다는 가정하에 변수를 조정해서 넣은 결과인데요. 봐요, 이 그래프의 z축을 보면…….”

송대석은 다시 혼잣말하는 것 같은 설명을 했다.

이번에는 질문을 받아서 하는 답변이므로 나름 신경 써서 말한 것 같긴 했으나, 슬슬 못 알아듣는 연구원이 하나둘씩 나왔다.

임지화는 송대석이 말을 마친 지 몇 초 뒤에서야 그의 말을 이해했다.

“대석이가 계산한 대로라면 은광고 내부의 시간이 10배 정도 느리게 흐르겠구나.”

“네, 그거예요! SSR급 이상의 이계에서 관측되는 시공간 왜곡 현상이랑 지금 저기 상황이랑 딱 맞아요.”

답답해하던 송대석이 임지화의 말에 반색하며 맞장구를 쳤다.

송대석은 말이 통해서 잠깐 좋아했으나 곧 안색이 어두워졌다.

송대석의 시선 끝에 연구실 벽면에 걸린 아날로그 시계가 있었다.

시계는 민그린과의 통화가 끊긴 이후 1시간이 넘게 흐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만약 대석이 말대로라면 은광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10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끼고 있을 거야……!’

결계 정상화와 구조를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었으나, 지금 협회에서 쓸 수 있는 패는 거의 없었다.

임지화는 해외에 출장 간 강한 동생 임연화를 소환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쯤 강한 동생 임연화도 소식을 들었을 테니 임지화가 부르고 말고는 큰 의미가 없겠지만.

“SSR급 이계의 시공간 왜곡 현상은 이계를 공략할 때마다 옅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 안의 플로어 에너미나 보스에 해당하는, 힘의 근원을 없애면 될 거예요!”

“그 힘의 근원으로 추정되는 걸 관측했어?”

“아직 불명확한데…… 지표면에서 꽤 멀리 떨어진 하늘 쪽에 구름이 좀…….”

송대석은 은광고를 덮은 구름을 의심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송대석의 말에 따르면 은광고 안에는 지금 거대한 결계 같은 게 또 생겼을 가능성이 있는데, 내부 상황을 모르니 변숫값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송대석이 발견한 그 거대한 결계는 용제건이 발현한 기적이었으나, 외부에서 이것을 여의보주의 힘이라고 판단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때, 외근 예정이었으나 임지화가 긴급 소집한 연구원이 연구소 안으로 돌아왔다.

“박 팀장 정신 나갔나 봐요!”

연구원은 들어오자마자 씩씩거리며 말했다.

박 팀장이라는 단어를 듣자 연구원들이 대놓고 싫어하는 얼굴을 했다.

막 들어온 연구원의 말이 계속되었다.

“이 난리가 났는데 협회 안에 외부인을 들여왔어요.”

“외부인?”

임지화가 되물으며 한숨이 나오는 걸 꾹 참았다.

연구원의 표현을 들으니 박 팀장이 들여온 외부인은 긴급 피난을 했다거나, 이번 사태와 관련이 있거나, 일 관계로 협회에 방문한 이는 아닌 것 같았다.

연구원의 말에 의하면 박 팀장은 밖에서 발생한 이계 핑계를 대고 그 외부인을 들인 듯했다.

“협회 건물이 긴급 피난소로 지정되어 있긴 한데, 이 주변에 다른 피난소도 많잖아요. 아직 그쪽에도 자리가 많을 텐데 여기까지 온 게 참…….”

“대체 누구길래 그래? 혹시 어디 높으신 분이야?”

“그건 아닐걸요.”

연구원이 딱 잘라 단정 짓고 말했다.

“그 외부인, 박 팀장 여친이래요. 잠깐 봤는데, 그 인간 혼을 빼놓을 만큼 예쁘긴 하더라고요.”

*    *    *

천익산.

은광고 내부 기준으로 사건이 터진 후 시간이 10시간 정도 흘렀는데, 날이 아직 밝아 있었다.

비록 하늘에 가득한 구름과 빽빽하게 심어진 나무 탓에 주변이 어둡긴 했지만, 해가 진 밤보다는 훨씬 환했다.

‘평소 같았으면 해가 지고도 남을 시간이 지나갔는데…….’

태양은 결계 밖에 있으니 날이 밝은 건 당연한데, 위화감이 상당했다.

아직 주변이 밝으니 내 모습이 눈에 띄지 않도록 신중하게 앞으로 이동했다.

‘아직 천익산 어딘가에는 긴 꼬리의 수장이 있어. 내 예상대로라면 지금 마주치지는 않겠지만, 만일을 대비해 조심하자. 교내를 배회하던 에너미가 이쪽으로 올 가능성도 있고.’

지익회와 3학년 0반 선배놈들과 함께 지익회관으로 이동한 후.

나는 함근형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조용히 빠져나오는 데에 성공했다.

혼자 남은 나는 시델렌티움과 약속한 대로 까마귀 가면을 쓰고 목표한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다.

‘눈을 뿌린 지 10시간이나 지났어. 플마고 때와 달리 냉기가 학교를 덮치지도 않았으니, 눈을 유지하려면 더 힘을 썼겠지.’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아 우왕좌왕하고 있겠지만, 여전히 용제건의 기적 밖에서 눈을 뿌려 대는 걸 보니 그들은 흑막을 믿고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눈을 뿌리는 이들의 힘이 약해지기를 기다렸다.

용제건의 기적이, 결계 주변에서 싸우는 진족들과 플레이어들이, 결계 안에서 싸우는 이들이 그들의 힘을 소모하게 했다.

모든 이들의 활약 덕에 내가 수를 둘 힘도 아낄 수 있었다.

몇 차례 내가 힘을 쓸 뻔한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도움을 주는 이들이 나타나 위기를 넘겼다.

‘눈을 멈추게 한 뒤에는 그 은빛의 영웅에게 부탁받은 일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사이, 나는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목표한 장소에 도달했다.

눈앞에 천단수(天壇樹)가 보였다.

돌아가기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3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