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기청제 (3)
위이이이잉!
플레이어 협회 위성 관리팀 산하 연구소.
갑자기 귀가 아플 정도로 맹렬한 사이렌이 울렸다.
현재 협회 안과 밖은 통신 장애를 겪고 있었으나, 협회 내 통신이나 경보는 문제없이 작동하는 중이었다.
연구원들은 하던 대화를 멈추고 급히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이계 발생 경고]
붉은 홀로그램에 떠오른 글씨는 협회 내에 이계가 발생했음을 알려 주었다.
플레이어 협회 건물은 이계 발생 빈도가 가장 적은 지역을 골라 세웠기에 흔히 겪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연구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전대미문의 사태에 이어 협회 건물 내부에 갑자기 이계가 발생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협회 건물 안에 이계가 생긴 거야? 말도 안 돼…… 협회가 생긴 이후 최초 같은데!”
“전조가 없었잖아, 그런데 이계라고?”
플레이어SAT-K가 감지하는 이계의 전조 현상은 SR급 이상의 이계다.
보통 갑작스레 주변에 이계가 나타났다면 낮은 희귀도의 이계일 거라 단정 지을 수 있었다.
낮은 희귀도의 이계는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르지만, 쉽게 공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올해 일어난 사건들로 뒤집혔다.
위성에 감지되지 않는 SR급 이상의 이계는 몇 차례 등장하였다.
연구원들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침착해. 월궁계도는 협회 건물 주변에서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어. ‘전조 없는 이계’가 아닐 거야. 이계의 희귀도를 확인해!”
임지화가 침착한 목소리로 당황한 연구원들을 진정시켰다.
임지화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연구원들이 이계의 희귀도를 확인해 보았다.
이계의 희귀도는 N급.
맥이 빠질 정도로 매우 낮은 희귀도의 이계였다.
“……N급 이계? 이 정도면 플레이어가 아니라도 무장을 철저히 하면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잖아.”
“그냥 여기에 있는 사람 아무나 가도 혼자 깨고 오겠네.”
“아, 뭐야! 사이렌 때문에 괜히 겁먹었잖아!”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이계가 공략되기 전이라 여전히 붉은 화면이 곳곳에서 떠오르고, 사이렌 소리가 울렸으나 아무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임지화의 지시로 연구원을 두 명 파견했을 때였다.
삐이잇!
사이렌 사이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외부인이 연구실로 접근하고 있다는 알람이었다.
“저건 또 뭐야?”
“에너미는 아닌 것 같은데……. 사람이죠?”
그 누군가는 연구실에 접근 가능한 보안 레벨을 충족한 듯, 문에 가로막히는 일 없이 성큼성큼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연구소에 출근하기로 한 인원은 전부 도착한 상태였다.
위성 연구소의 소속을 따지면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 이계 공략 지원실 위성 관리팀이다.
즉, 연구원이 아니면서도 연구소에 접근 권한이 있는 인물은 이계 공략 지원실장,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장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장님이랑 지부장님은 한국에 없어.’
임지화가 접근 알림을 끈 후, 연구원에게 지시했다.
“접근 중인 무언가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록기기 영상 띄워 봐.”
“네!”
연구원이 패널을 조작하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홀로그램에 등장한 인물을 보고, 고개를 처박고 무언가를 하는 중인 송대석을 제외한 모든 연구원들이 인상을 구겼다.
화면 속의 인물은 홍보 2팀의 박 팀장이었다.
“……박 팀장인데요?”
“뭐야, 저 사람이 왜 여기 와. 설마 그 N급 이계를 핑계로 위성 연구를 털러 오는 거야?”
“그럴 법하네. 저번에도 보안 점검과 협회 홍보를 핑계로 들어오려고 했잖아.”
“어떻게 접근 권한을 얻은 거지?”
연구소 코앞에 온 박 팀장이 히죽거리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임지화가 징그러운 것을 보는 듯한 얼굴로 화면을 쳐다봤다.
“팀장급 인사는 협회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구역에 임시 접근 권한을 얻어. 보안 절차를 밟다가 협회 건물이 적이나 이계에 먹힐 수도 있으니까.”
낮은 희귀도라곤 하지만 이계는 이계다.
방치하면 이계의 틈이 벌어지니, 지금 협회는 비상사태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현재 임지화도, 박 팀장도 보안 절차에 구애받지 않도록 임시 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래서 박 팀장이 홀로 연구소에 쳐들어올 수 있는 거다.
‘박 팀장이 마치 노린 것처럼 이쪽으로 오는 게 좀 마음에 걸리네. 저런 짓을 해도 이상하진 않지만.’
박 팀장은 야심가다.
그래서 홍규빈과 임지화를 견제하고 두 사람이 확보한 고급 정보, 비밀을 캐고 공을 가로채기 위해 안달이 나 있다.
현재 위성 연구소에서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 몇 개를 추진하는 중이다.
토족의 협력으로 진행 중인 월궁계도와 협회 위성 연동 계획과 송대석의 합류로 가속이 붙은 어떤 프로젝트까지.
본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법한 박 팀장 같은 인간에게 알려져서 좋을 것이라곤 없었다.
이계와 에너미, 적으로부터 협회를 보호하기 위해 부여받은 임시 권한을, 라이벌 견제용으로 사용하려는 것 자체가 그러했다.
‘협회 안팎이 난리가 났는데, 그 틈을 노려 연구소의 비밀을 캐러 온다고? 미친 거 아니야?’
임지화는 분노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평소 같았으면 보안 절차에 가로막혔을 박 팀장을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내버려 두면 박 팀장은 이 안까지 들어올 거다.
프로젝트와 관련된 단서를 얻을지도 모르고, 연구에 몰두 중인 송대석에게 눈독을 들여 귀찮은 짓을 벌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연구소 안쪽에서 월궁계도를 다루고 있는 토족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임지화는 박 팀장을 연구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로 결심했다.
“잠시 여기는 맡길게. 내가 저놈 여기에 못 들어오게 할 거니까.”
임지화가 눈을 부릅뜨고 전투 모드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연구원들이 온 힘을 다해 응원했다.
“팀장님 파이팅!”
“이기고 오세요!”
“기왕이면 한 대 정도 때리고 오시면 안 될까요?”
폭력을 권유하는 부하들을 보며 임지화가 싱긋 웃었다.
그러자 연구원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임지화를 배웅했다.
임지화가 직접 밖에서 수문장을 맡으면 제아무리 박 팀장이 권한이 있어도 그녀를 지나치고 이 안으로 오진 못할 것이다.
연구원들은 마음 깊이 안심했다.
협회 내부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 지었지만, 여전히 위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협회 밖의 상황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프로 플레이어 팀으로부터 추가 승전보가 도착했어요!”
“팀장님이 오기 전까지 리스트를 계속 갱신해.”
“이계가 또 발생했는데 좀 외진 구역이라서…… 여기엔 누구를 배치할까요?”
“그 근처에서 공략 중인 팀 있지 않아? 일단 수비대를 나눠서 배치한 다음에 공격대를 추가로…….”
연구원들이 지혜를 모아 상황에 대처하는 사이, 사이렌 소리가 멎었다.
협회 내에 발생한 이계의 공략이 완료된 것이다.
외부의 이계 발생도 잠시 멎었기에 협회 연구원들은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아직 임지화는 박 팀장을 상대하는 중인지 돌아오지 않았으나, 모두가 임지화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연구원들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박 팀장과 정체불명의 여친에 관한 이야기로 불타게 되었다.
“진짜 저 인간은 시간과 장소를 안 가리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쟤처럼 능력 없는 인간은 승진 못 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저 인간 여친 데리고 오지 않았어요? 여친은 어디에다 두고 여기에 오는 거래요?”
“그런데 그 여친 있잖아…… 홍보 1팀 윤 대리라고 알아?”
그때, 박 팀장의 전 여친에 관해 소문을 들은 연구원이 운을 뗐다.
박 팀장의 현 여친은 홍보 1팀 윤 대리의 전 여친이다.
이 사실은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지 않았으나, 소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믿지 않았다.
비록 윤 대리가 상사인 홍규빈을 닮아 워커홀릭 기미가 있긴 하지만, 누가 봐도 윤 대리가 박 팀장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장래성, 성격, 외모, 나이 전부 윤 대리가 훨씬 나았다.
비록 연차 덕에 박 팀장이 윤 대리보다 높은 직급에 있다고 하지만, 윤 대리가 박 팀장 나이가 되면 더 높은 위치에 있을 게 틀림없었다.
“진짜? 윤 대리 전 여친이라고?”
“대체 왜…….”
“홍보팀에서 이야기하는 거 들었는데, 거기 사람들도 대체 그 여친이 왜 윤 대리를 차고 박 팀장하고 사귀는지 모르더라고요.”
“박 팀장하고는 잘 사귄대?”
“엄청 끔찍하게 잘 사귄다네요. 박 팀장이 툭 하면 여친 자랑질을 해 대서 홍보팀 쪽 사람들은 1팀, 2팀 가릴 것 없이 다 알아요.”
여친 이야기로 불타던 중, 누군가가 의문을 품었다.
연애에 관해선 웬만한 예측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이 다르다곤 하지만 둘 다 협회의 홍보팀이네. 혹시 그 여친이라는 사람이 그쪽에서 일하나 봐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었다.
사내 연애가 아닌 이상, 혹은 공통된 학연과 지연이 있지 않은 한 그렇게 사귀는 건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소문에 관해 잘 아는, 정확히 말하면 홍보 2팀 소속 사원에게 하소연을 자주 들었던 연구원이 답했다.
“아닐걸요? 무슨 액세서리 가게 한다고 들었는데.”
“액세서리?”
“박 팀장이 가끔 여친이 직접 만들어 준 거 하고 온대요. 박 팀장이 괜찮은 거 착용하고 있으면 다 여친이 해 준 거라는데요.”
연구원들이 정체불명의 여친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사이, 그 이야기에 한 번도 끼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바로 송대석이었다.
‘월궁계도로 은광고의 하늘을 자세히 봐 줬으면 좋겠는데.’
송대석은 은광고를 덮은 구름에 관해 캐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그러나 도통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송대석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 드물게도 연구소에 나와 있는 한 존재를 찾아가기로 했다.
“저 잠깐 다녀올게요.”
말을 걸긴 했는데 다들 박 팀장 여친 이야기로 바빠 보였다.
별로 먼 거리도 아니므로 송대석은 월궁계도의 주인, 옥토연을 찾아가기로 했다.
송대석이 연구소의 복도를 지나가는 사이, 저 멀리에서 박 팀장과 임지화가 입씨름을 하는 게 보였다.
임지화는 웃음을 잃지 않고 박 팀장의 말을 받아치고, 박 팀장은 뭐가 분한 건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송대석은 그쪽엔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었다.
몇 차례 문을 통과하고, 숨겨진 통로를 찾아서 이동한 후.
벽의 한 지점에 손바닥을 올리자 벽이 투명해지며 건너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표한 장소에 도착했다.
“정말 괜찮을까, 나도 가 봐야 하는 게 아닐까…….”
혼잣말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옥토연은 매우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월궁계도를 보고 있었다.
어찌나 불안했는지 옆에 수리취가 들어간 보리떡을 쌓아 두고도 몇 입 먹지 않은 상태였다.
“저기, 물어볼 게 있는데요.”
휙!
옥토연이 고개를 들었다.
옥토연은 평소처럼 붉은 눈으로 송대석을 보며 ‘뭔데? 뭐 물어볼 건데?’라고 묻는 대신 표정을 싸악 굳혔다.
“너, 여기에 뭘 달고 온 거야!”
옥토연은 경악한 얼굴로 말했다.
“네?”
“대체 그게 어떻게 여기에…….”
벌벌 떠는 옥토연이 송대석의 뒤를 가리켰다.
송대석이 뒤를 돌아보자 아주 작은 나비가 하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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