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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41화 (637/925)

85. 기청제 (5)

공식적으로 알려진 플레이어 협회의 설립 목적 및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 ‘에너미의 토벌’.

토벌은 플레이어 협회에 등록된 모든 플레이어와 팀이 담당한다.

협회는 에너미의 토벌을 위해 플레이어와 팀에게 정보와 물자를 제공하고 지원한다.

하지만 협회가 직접 토벌에 가담하는 일은 드물다.

둘째, ‘플레이어의 보호’.

분쟁에 휘말린 플레이어의 보호, 플레이어의 처우 및 인식 개선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협회의 보호 대상에는 협회 그 자체도 포함된다.

협회를 유지, 보호하기 위한 부서가 바로 규정 집행부다.

“자연 발생한 이계가 아닙니다. 촉매로 추정되는 물질은 확보했습니까?”

파지직!

규정 집행부 소속이냐고 묻는 송대석의 질문에 긍정한 인물, 홍규빈이 말하는 사이에도 전투가 계속되었다.

홍규빈은 선두에 서서 에너미를 상대하고 있었다.

송대석은 홍규빈의 뒤에서 전투 장면을 지켜보게 되었다.

‘저 규정 집행부 사람은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거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나?’

송대석은 고개를 휙휙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홍규빈이 숨을 만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굳이 따지면 문 주변의 그림자 정도였겠지만, 그런 곳에 홍규빈이 대기하고 있었다면 송대석이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나타난 건 홍규빈뿐만이 아니었다.

홍규빈 외에도 부하가 두 명 더 있었다.

하나가 윤 대리, 다른 한 명은 정 사원이었다.

송대석은 자신이 세 명의 기척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에 당황하면서도 냉정하게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규정 집행부는 협회 내에서 발생하는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특수한 방어구를 지급받는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거랑 관련이 있나?’

송대석의 추측대로였다.

협회 규정 집행부는 규정의 유지를 위협하는 플레이어, 에너미 등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적이 협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인다면 최후의 전투는 협회 내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규정 집행부는 협회 건물 안에서의 전투를 상정하고 있었다.

현재 홍규빈이 착용한 가면, 가죽 장갑, 코트는 특수한 아이템으로, 단순히 그의 신분을 숨겨 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협회 내에서 움직이는 데에 특화되어 있었다.

협회 건물 내장재에 포함된 이계 직물로 만든 코트는 착용자들이 건물 안에서 은신 스킬을 사용할 때 버프 효과를 줬다.

우수한 규정 집행부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지리적 이점과 방어구 버프까지 더해지니, 협회 내에서 그들이 마음먹고 은신하면 찾기 힘들 것이다.

대체 왜 이런 곳에 그들이 대기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었으나 송대석은 우선 이 상황에 감사하기로 했다.

‘규정 집행부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부상을 입고 연구원분들께 도움을 청하러 갔겠지. 그러면 연구소가 한바탕 난리가 나서…….’

송대석은 만약의 사태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옥토연도 일단 진족이니 저 정도 이계에 당하지는 않겠지만, 혼자서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수습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구소는 한바탕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연구원들이 홍보 2팀의 개입을 몹시 꺼려 했는데, 이계의 틈이 점점 확장되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도움을 빌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박 팀장은 에너미 토벌과 이계 공략을 핑계로 연구소 안을 마음껏 수색하고 다녔을 것이다.

‘이계 공략 후에도 사후 수습을 핑계로, 공략에 참가한 플레이어로서 연구소를 헤집었겠지.’

협회 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송대석도 그 정도는 알아챌 수 있었다.

송대석은 아직 누가 협회를 노렸고, 왜 노리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전조 없이, SR급 이계가 나타난 건 확실했다.

이계의 틈이 나타나기 직전에 있었다던 나비가 관련이 있을 것 같았는데, 송대석에겐 생각할 단서가 부족했다.

결국 송대석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게 되었다.

마침 송대석 바로 앞에선 홍규빈이 아이템 카드를 활용해 화려하게 싸우고 있었다.

‘단순히 아이템 덕은 아닐 거야. 다들 강하다. 이게 플레이어 협회의 정예, 규정 집행부인가! 저 사람 계속 소모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해!’

홍규빈은 무기를 드는 대신 소모형 아이템 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처음 공격당할 뻔한 송대석에게 일시적으로 실드를 생성시켜 준 아이템처럼, 사용하는 아이템 카드가 전부 그러했다.

홍규빈은 무기를 들지 않고 소모형 아이템 카드를 하나씩 사용하며 전투를 했는데, 송대석의 눈에는 그게 몹시 이상하게 보였다.

홍규빈이 들고 있는 카드는 하나같이 희귀도가 낮았는데, 발동하는 위력은 희귀도에 비해 강력했다.

‘저것도 규정 집행부가 착용한 아이템의 위력인가? 아니, 부하는 그렇게 안 싸우고 있는데…… 저 사람의 이능인가.’

홍규빈의 지시로 정 사원이 단독 공략을 하기 위해 공격대로 이계의 틈에 뛰어간 사이에도 에너미는 계속 등장했다.

현재 홍규빈은 윤 대리와 함께 수비대를 맡고 있었는데, 에너미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그때마다 홍규빈이 공격했다.

홍규빈의 손에서 소모형 아이템 카드가 실체화할 때마다 송대석이 감탄했다.

‘이능을 담은 소모형 아이템 카드, 특히 에너미에게 유효하게 사용할 만한 수준의 카드는 귀해. 하지만 희귀도가 낮으면 그럭저럭 수급이 가능하지. 저 사람에게는 아이템 카드의 희귀도 이상의 힘을 끌어낼 이능이 있고.’

홍규빈은 에너미를 관찰하고 약점으로 추정되는 속성의 카드를 선택해 공격했다.

에너미의 희귀도, 출현 빈도를 고려해 봤을 때 아무리 낮게 잡아도 지금 발생한 이계는 SR급 이상이었다.

하지만 홍규빈, 윤 대리 단둘이 수비대를 맡고 있는데도 빈틈이 없었다.

윤 대리는 홍규빈이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아이템 카드를 선택할 시간을 벌기만 하면 나머지는 홍규빈에 의해 격파되었다.

송대석은 전투에 참가할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둘의 싸움에 몰두하여 지켜보고 분석했다.

‘하지만 저 방식은 저점이 높은 대신 고점이 낮지 않나? 아이템 카드의 희귀도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보여 주는 수준이면 좀 모호하지 않나?’

상황을 잘 모르는 송대석이 봐도 홍규빈은 규정 집행부에서도 꽤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았다.

송대석의 추측대로라면 지금 그가 사용하는 이능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 위로 올라가는 데에도 지장이 생길 게 뻔했다.

‘저 이능 말고 다른 능력도 있는 거겠지……?’

송대석이 열심히 홍규빈의 이능을 감상하고 관찰하는 사이에도 둘의 싸움을 계속되었다.

윤 대리는 홍규빈의 지시를 받아 싸우는 틈틈이 이계를 부른 것으로 추정되는 촉매를 찾아 헤맸으나, 스킬을 써도 그럴싸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계가 발생하기 직전에 윤 대리의 눈에도 송대석의 뒤에 나비 같은 것이 보이긴 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 옥토연이 월궁계도를 사용하기 위해 배정받은 이 방 어디에도 나비는 보이지 않았다.

나비는 이계의 틈이 생성될 때 사라졌다.

“이계의 틈이 열릴 때 사라졌습니다. 역할을 다해 소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윤 대리는 에너미를 토해 내는 이계의 틈을 보며 말했다.

“기록은요?”

“남겼습니다.”

이계의 틈은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혼자 이계의 틈 안으로 뛰어 들어간 정 사원이 공략을 마무리 짓고 있는 듯했다.

송대석도 겨우 안심했을 때였다.

“아니야, 그건 아직 주변에 있어! 이 방 밖으로 나간 것뿐이야!”

송대석 뒤에 있는 나비를 보고 계속 떨고 있던 옥토연이 외쳤다.

옥토연은 그 불길한 기운을 발견한 직후부터 공포에 짓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옥토연이 한마디 한 순간, 마치 그 말에 대답하는 것처럼, 복도 쪽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콰콰쾅! 콰직, 콰지지직!

폭발음에 이어 이계 금속이 우그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협회의 벽에는 이계 금속이 섞여 있었는데, 강력한 폭발에 의해 복도의 벽이나 바닥이 같이 파손된 것 같았다.

밖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윤 대리, 여기에 남아서 마무리를 지으세요.”

홍규빈이 윤 대리에게 지시를 남기고 방 밖으로 나서려 했다.

그때, 계속 관찰만 하고 있던 송대석이 저도 모르게 나섰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가면 너머로 홍규빈이 송대석을 바라봤다.

그 눈은 송대석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홍규빈은 송대석을 보며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홍규빈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여기에 남아.”

“저도 플레이어예요. 연구소 소속 객원 연구원이고, 종합 능력치도 그럭저럭 높아요. 이계 공략 경험도 있어요!”

송대석은 횡설수설하며 근거를 댔다.

밖에 문제가 생겼다면 연구원들이 무슨 일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크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연구원들은 송대석보다 경험이 많은 플레이어들이었으나, 갑자기 저 정도 폭발이 발생하면 연구원들도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다.

송대석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홍규빈은 딱 잘라 말했다.

“그래도 안 돼.”

“왜요!”

송대석이 따지듯이 말했다.

만약 홍규빈이 ‘네가 대영웅 무쇠팔 송만석의 손주니까.’라고 답했다면 송대석은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홍규빈은 의외의 말을 했다.

“네 친구랑 약속했으니까.”

“……네?”

친구라는 말에 송대석은 얼이 빠진 얼굴을 했다.

그 단어에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물론 민그린이었다.

민그린이 어떻게 규정 집행부 사람을 알고 무슨 약속을 했단 말인가?

송대석은 머릿속에서 답 없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한 박자 늦게 1학년 0반 아이들이 생각났다.

딱히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송대석 본인이 취한 태도가 있어서 친구라고 대놓고 생각하기에는 좀 그랬다.

송대석이 친구라는 단어에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였다.

“네가 위험한 짓을 하지 않게 막는 대신, 나도 내게 중요한 분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지. 내가 약속을 지키게 해 줘.”

홍규빈의 말은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 송대석은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대체 누구인지, 그 중요한 분이라는 건 누군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송대석은 문득, 1학년 0반 소속의 아주 수상한 급우를 떠올렸다.

진족들이 입을 모아서 ‘은인’이라고 부르는 조의신을.

위이잉!

차마 뒤를 쫓지 못하는 송대석을 그 자리에 방치하고 홍규빈은 밖으로 나왔다.

홍규빈의 눈에 폭발의 잔해와 폭발의 중심에 쓰러져 있는 임지화가 눈에 들어왔다.

“임 팀장님!”

파앗!

홍규빈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바로 소모용 아이템을 사용해 임지화의 주변에 실드를 전개했다.

아이템을 사용하기 무섭게 이능파가 마찰하는 소리가 크게 퍼졌다.

카아아앙! 파직…….

단 일격으로 실드에 금이 가고 있었다.

방금 송대석을 지켰던 수준의 실드로는 저 공격을 막아 내긴 어려운 것 같았다.

홍규빈은 임지화를 공격하는 흉수를 응시했다.

그 흉수는 홍규빈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홍규빈의 시야 끝 복도 저편, 폭주하는 이능파를 휘감은 박 팀장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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