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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46화 (642/925)

85. 기청제 (10)

은광고 조경 구역, 청랑호 주변.

천동하가 지정한 위치에서 토벌을 마친 호족들이 막 철수하고 있었다.

선두에 서서 웅족을 쓰러뜨린 백호가 웅렵조를 쥐고 천익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에는 인형 옷을 입은 호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천익산 쪽에 배치된 호족들로, 우족들을 호송한 후 백호와 합류한 상태였다.

그중에는 물론 천익산에서 3학년 0반의 반장, 우기환을 상대한 호족도 있었다.

‘명령대로 천익산에서 호족은 전원 철수했는데……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가.’

황호의 명령을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그 말을 따랐지만 걱정은 되었다.

얼핏 천익산에는 호족의 은인이 홀로 남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호족의 은인과 가까이 지낸 신화계 호족들이 묵인한 사실에 괜히 그가 말을 얹을 수는 없었다.

호족들이 묵묵히 백호의 뒤를 지키고 있을 때였다.

파앗!

갑자기 백호가 무슨 웅렵조 대신 파운참뢰(破雲斬雷)의 백아를 불러냈다.

백아를 새로 꺼내 든 백호를 보고 호족들이 순간 또 적이 나타났나 싶어 주위를 경계했다.

그러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호족이 조심스럽게 백호에게 말을 걸었다.

“백호 님……?”

백호가 입을 열기 전, 그들의 눈앞에서 붉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파아아…….

익숙한 안개와 그 빛깔을 보고 호족들이 경계를 풀었다.

적호가 모습을 나타낼 때의 징조였다.

백호는 천익산 쪽에서 시선을 떼고 붉은 안개 너머의 적호를 바라봤다.

“천동하 학생에게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적호는 은휘관에 들른 듯했다.

천동하는 은휘관에서 황호의 비서와 함께 전서구 아이템을 이용해 위치를 알려 주긴 했으나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정도 토벌이 완료된 시점, 적호는 천동하가 본 것들에 관해 자세히 듣기 위해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천동하 학생은 능력을 오랜 시간 발동하여 지친 것 같더군요. 이능파 소모도 심하지만, 정신적으로 탈진한 것 같습니다.”

천동하는 가장 안전한 은휘관에서 움직이지 않았으니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은광고의 모든 곳을 살펴야 했으므로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고, 은광고인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으므로 심력 소모가 컸다.

그래도 천동하는 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

천동하가 광림을 해제한 후, 그는 빈말로도 중앙 구역 쪽에 가서 학생들과 합류하겠다는 소리를 못 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천동하는 자신이 본 것을 조리 있고 알기 쉽게 설명했으나 말하는 목소리에는 패기가 없었다.

“천동하 학생이 사용하는 광림은 건곤(乾坤)을 품은 눈, 즉, 하늘과 땅을 품은 눈입니다. 천동하 학생은 땅 위의 은광고를 살피면서도 하늘도 관찰했다고 했습니다.”

적호가 ‘하늘’에 관해 언급하자 호족들이 바짝 긴장했다.

이번 작전에 참가한 호족들은 하늘에 풍백과 우사가 있을 가능성에 관해 들었다.

그리 수가 많지는 않지만, 신화 시절을 기억하는 호족들에게는 황호가 직접 불러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리플레이 속 적호가 그랬던 것처럼, 삿된 눈에서 풍백과 우사의 기운을 읽고 방심 상태에 놓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호족들이 천신을 따른다고 하나, 그들에게 있어 황호와 백호는 하늘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신화 속 존재들이 적이 된다는 건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호족들은 먼 옛날 그들의 근간을 뒤흔든 웅족의 배신보다, 지금 하늘 위에 있다는 풍백과 우사의 타락과 변절이 더 충격적으로 느꼈다.

적호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하늘은 내내 구름으로 덮여 눈이 쏟아질 뿐이었다고 합니다. 구름에서 뭔가가 나타나는 낌새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적호의 말에 어떤 호족들은 일순 기대를 품었다.

어쩌면 저 위에 있는 것은 풍백과 우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아직 모르는 일 아닌가.

하지만 리플레이 속에서 직접 눈을 맞아 본 적호는 풍백과 우사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다.

“끈질기게 모습을 감추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풍백과 우사는 변덕스러웠으나 꾀하는 일에는 몹시 끈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장난질을 한 번 치면, 곱절로 보복하기 위해 인내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적호는 그리운 옛 친구들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호족들은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비록 적호가 대죄를 지었다고 하나 그가 한때 신화를 썼던 호족 중 하나라는 건 변함이 없었고, 아들을 제외한 모든 것을 걸고 속죄한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적호가 과장을 하거나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더해 백호도 한마디 덧붙였다.

“나도 기억한다. 풍백과 우사가 진정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면, 그들은 호족의 신역에서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백호가 동의를 표현할 정도니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인형 옷을 입은 호족은 더 조의신이 걱정되었다.

호족의 은인은 그렇게 신중한 풍백과 우사를 홀로 상대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게다가 웅족이 운사 님에 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나.’

호족은 적호가 들었다는 정보에 관해 생각했다.

번민의 곰은 붙잡히기 전, 방심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운사는 곧 네 곁으로 따라갈 거다. 거기에서 아들을 소개하면 되겠군.

그렇다면 운사는 생존해 있으며, 동시에 호족의 적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는 뜻도 된다.

운사를 억압할 정도의 힘을 가진 상대를 인간인 은인이 어떻게 상대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호족이 말했다.

“호족의 은인이 눈을 내린 원흉을 없애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걱정한다.”

이 질문에는 적호가 먼저 답할 줄 알았는데, 입을 연 건 백호였다.

“하나 조의신이 눈의 원흉을 상대할 때, 나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백호는 언뜻 듣기에 매정한 말을 했다.

그러나 이어진 말은 전혀 달랐다.

“나는 조의신과 내 친우를 믿는다.”

*    *    *

천익산 천단수 앞.

나는 윤여랑과 백호군, 두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힘을 빌려 벽사 행위를 하고 있었다.

파운참뢰의 백아를 휘둘러 사기(邪氣)를 베고, 오색 옷깃을 휘날려 진령(鎭靈)을 이어 갔다.

아주 조금이지만 용제건의 공간을 덮은 삿된 눈의 성질이 변하고 백아의 칼날이 사기의 근원에 닿고 있었다.

기청제는 한참 남았는데, 이능파의 소모도가 극심해 백아를 든 손과 오색 옷깃이 덮은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눈은 그쳤지만, 쌓인 삿된 눈을 전부 정화하지 못했어. 지금 멈출 수는 없다.’

그리고 아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지금쯤이면 보고 있겠지? 보고 있으면 나와.’

나는 까마귀 가면 밑에서 보란 듯이 웃었다.

지금쯤이면 이상을 깨닫고 원인을 찾기 위해 구름 속에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과연, 그렇게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묘한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에 반응해 내 이능파를 감은 백아를 크게 휘둘렀다.

쉬이익!

허공을 갈랐지만, 백아에 무언가 베인 듯한 기척이 남았다.

풍백이나 우사에게 백아가 닿은 게 분명했다.

얼마 안 있어 공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가 열리고 있었다.

‘온다……! 이제야 나오셨군.’

모든 것은 풍백과 우사를 땅으로 끌어내기 위한 것.

하지만 풍백과 우사는 호족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

호족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 호족이 이 앞에 있는 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플마고에서 적호가 사망한 후, 비탄의 웅녀가 그들의 계획에 개입하였다.

비탄의 웅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백호군을 은광고 안으로 불러들였다.

백호군이 결계를 넘은 순간, 갑자기 눈이 뚝 그쳤다.

‘그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여겼었지. 그때 위에 있던 게 풍백과 우사라면 이해할 수 있어. 백호군이 알아챌까 봐 나타나지 않았던 거야.’

적호는 떨어지는 눈을 맞는 순간, 풍백과 우사의 존재를 감지했다.

그랬다면 백호군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하지만 적호보다 백호군의 무위가 뛰어나니 기습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백호군은 비탄의 웅녀와 동행하고 있으니 입막음을 위해 죽이기 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풍백과 우사는 계속 눈을 뿌리거나 모습을 드러내어 비탄의 웅녀와 백호군을 상대하는 대신, 퇴각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에선 이미 희생자가 나왔고 흑막은 노리는 수의 대부분을 성공시켰기에 모든 게 늦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놓치지 않아.’

구름이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 사이로 우렛소리 같은 북소리가 들렸다.

두두둥!

“……!”

순간 나도 모르게 백아를 놓고 귀를 움켜쥘 뻔했다.

북소리를 듣고 난 후, 마치 바늘이 귀를 관통하는 통증과 함께 한쪽 귓가가 뜨거워졌다.

피였다.

나를 노린 악의에 찬 북소리가 내 이능파를 넘어 귀를 손상시킨 거다.

‘거리가 꽤 있는데도 이 정도라니!’

귀에서 흐른 피가 어깨까지 흘러 오색의 옷깃을 적셨다.

하지만 아직 저 둘을 제대로 끌어내리지도 못했고, 삿된 눈을 전부 정화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멈추면 저 눈은 용제건이 홀로 감당하거나 쌓이고 쌓여 은광고로 떨어질 거다.

‘더 버텨야 해!’

나는 피가 흐르는 걸 무시하고 계속 기청제를 진행했다.

그러자 구름이 더욱 크게 열렸다.

한 번 견제할 겸 북소리를 보낸 후, 풍백과 우사가 직접 등장할 모양이었다.

나는 무방비한 상태고, 나를 도우러 올 호족은 없다.

처음 기청제를 제안했을 때, 혼자 움직이겠다는 내 말을 듣고 황지호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 조의신, 네 말대로다. 풍백과 우사라면 적호의 적연을 경계하겠지. 파훼하는 방법도 생각해 뒀을 테니, 적연으로 몸을 숨긴 적호가 널 보호하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좀 고생을 해야 하고 황지호의 조력과 허락이 필요하겠지만, 내 수대로라면 나 혼자서 풍백과 우사를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설명을 들은 황지호가 답했다.

―그렇군. 그 수도 괜찮긴 하지만 다른 수가 더 있다. 네가 기청제를 하는 곳은 천익산이 아니더냐.

그야 기청제를 하는 곳은 천익산이다.

황지호가 거절할 가능성도 생각했는데, 천익산의 천단수 앞을 빌리겠다는 내 말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데 천익산이 뭐가 어쨌다는 건가.

내가 갈피를 못 잡자 황지호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조의신, 여기에서는 내가 한 수를 더 해 두마. 적호는 천익산에서 숨지 못하겠지만, 내가 두는 수는 다를 거다.

―그게 뭔데?

―하하하하! 조의신 너도 바로 떠올리지 못하다니. 제안한 보람이 있군. 궁금한가? 정 궁금하면 말해 줄 수도 있…….

―됐어.

여차하면 노친네의 수가 없어도 내가 둔 수로 해결할 수 있으니 상관없을 거다.

그래서 황지호가 준비한 수가 무엇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하지만 풍백과 우사가 구름에서 내려오고 있는데, 황지호가 뒀다는 수는 아직 보이질 않았다.

둥, 둥둥……!

북소리가 우렛소리처럼 가까이 들렸다.

급히 귀를 보호하기 위해서 옷깃을 귓가로 들어 올렸을 때였다.

크르르르……!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북소리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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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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