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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48화 (644/925)

86. 검은 눈 (1)

은광고 밖, 북문.

사태가 발생한 후, 가장 빠르게 일반인의 대피가 완료된 이곳에는 현재 플레이어들밖에 없었다.

그 플레이어들은 한강 싸이클링 팀 소속이거나 팀 마스터 송만석의 지인이었다.

그들은 전원 은퇴를 선언한 장년, 노년의 플레이어들이었으나 동시에 가장 위험했던 어둠의 시대를 지낸 베테랑들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자리에는 전설적인 대영웅 무쇠팔이 버티고 있으니 그 누구도 심적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즉석에서 인원을 나눠 에너미를 토벌하고 번갈아 휴식을 취하고, 손이 남는 이들은 주변을 정리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이거 애들이 나중에 다 치워야 할 텐데, 미리 손 좀 봅시다.”

“거참 몸이 옛날 같지 않구먼. 전성기 때라면 방어구 따위 입지 않고 그냥 맨몸으로 끝장냈다.”

“이제 저 이계와 결계만 어떻게 하면…….”

북문 주변은 청소와 정리까지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으나 여전히 그들의 앞에는 오류를 일으킨 결계와 이계가 남아 있었다.

송만석은 어떻게 안 건지 이계의 틈 가까이에 접근하면 이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되니 공략을 미루라고 당부했다.

송만석의 말대로 이계의 틈 주변에는 이능독이 산개한 상태였다.

그러자 탁거산이 이능이 없어도 자신은 신체의 힘으로 이계를 공략할 수 있다며 저를 보내 달라고 자청했다.

탁거산의 무술 실력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지만, 위험하다며 다들 뜯어말렸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탁거산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탁거산이 눈이 벌게져서 말했다.

“만석이 형님, 제가 빨리 가 봐야 합니다. 저 안에 제 제자가 둘이나 있습니다요. 한 놈은 좀 돌머리라도 야무진 친구들이 옆에 붙어 있어서 걱정이 안 됩니다만, 등신 같은 빵셔틀은 다릅니다!”

탁거산은 맹효돈과 방윤섭을 생각하며 말했다.

빵셔틀은 그리 좋은 표현은 아니었으나 탁거산은 일종의 애칭이라고 생각하여 저 단어를 사용했다.

탁거산은 송만석의 권유를 받아 함께 이동해 입장하기로 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일찍 출근해서 방윤섭을 지켜보는 게 나았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탁거산의 말을 들으며 송만석과 홍경복이 조용히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조의신으로부터 직접 사정을 들었고, 그를 믿고 움직이기로 했다.

하지만 탁거산에게는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다.

조의신은 이렇게 말했다.

―탁거산 선생님께는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전에 알게 된다면 제자분들과 움직이고 싶어 하실 것 같아서요.

탁거산은 불같은 면이 있고 제자를 몹시 아낀다.

눈이 높은 탁거산은 올해 들어서야 제자를 겨우 두 명 받았는데, 둘 다 저 안에 있다고 한다면 앞뒤 가리지 않을 것이다.

조의신이 탁거산의 성격을 어디까지 꿰뚫어 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탁거산이라면 문밖에서 공략하는 대신 제자 곁을 지키겠다고 우길 가능성이 컸다.

탁거산이 어찌 움직이든 전력에 보탬이 되니 결과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조의신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탁거산 선생님과 방윤섭이 함께 움직이면 다칠 가능성이 있어요. 그 상황은 피하고 싶어요.

―방윤섭 학생이 다치는 걸 염려하는 게냐? 거산이가 제자 하나 못 지키겠나.

홍경복이 그렇게 되물었으나 조의신은 고개를 저으며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했다.

―방윤섭이 아니라 탁거산 선생님이 다칠 수 있어요.

처음에는 탁거산이 방윤섭을 지키다가 적에게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했으나, 들어 보니 아닌 듯했다.

조의신의 말에 의하면 방윤섭이 탁거산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조의신은 현재 방윤섭이 마족의 영향을 받아 폭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탁거산 선생님이 방윤섭 옆에 있으면, 위협을 느낀 마족이 폭주 타이밍을 조절해 선생님께 기습을 가할 수도 있어요.

―그야 그렇다만…… 그러면 방윤섭 학생은 어찌 되겠느냐! 마족이라니, 내버려 둘 수 없다.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방윤섭에게 가호를 내린 사족의 수장으로부터 비늘을 받았고, 마족에게 유효한 이능도 준비했어요.

조의신은 자신이 준비한 수를 설명했다.

그가 준비한 정교한 수는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이 나왔다.

홍경복은 조의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송만석은 처음과 다름없는 태도로 조의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네 말대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네?

―대석이랑 그린이가 네 얘기를 할 때마다 널 도울 날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조의신은 송만석이 그렇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송만석은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손주를 기특하게 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네가 없었다면 대석이랑 그린이는 아직도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을 게다. 그걸로 행복해진다면 내버려 뒀겠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꿈이 있다.

송대석의 꿈은 위성에, 민그린의 꿈은 그림에 있었다.

닫힌 세계에서 지내다 보면 그 꿈은 말라 죽었을지도 모른다.

송만석은 두 사람을 다시 학교에 나가게 하고, 타인과 마주 보게 한 조의신에게 큰 은혜를 느끼고 있었다.

―그 아이들의 꿈을 살려 낸 은인의 부탁 하나 못 들어주겠느냐.

송만석과 홍경복은 조의신의 말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래서 초조해하는 탁거산을 상대로 홍경복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윤섭이 말하는 겐가? 요새 등교를 잘 안 한다 하지 않았나…….”

“그 등신 같은 빵셔틀은 몰래 애들을 돕느라 학교를 나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척하면 부끄러워서 때려치울 게 뻔하니 모르는 척 굴었을 뿐이지요.”

탁거산은 엇나가기 시작한 제자를 방치하는 척하며 몰래 지켜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훈련에도 통 나오지 않고 툭하면 탁거산에게 말대꾸를 해 대는 제자가 얄미울 법도 한데,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꽤 아끼는 듯했다.

그냥 말리는 것만으로는 탁거산을 잡아 두기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한 송만석이 탁거산에게 손짓했다.

“거산이, 이리 와 보게.”

탁거산은 주먹을 꽉 쥐고 송만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능파를 감고 있는 게 송만석을 밀치고 이계 안에 뛰쳐들 기세였다.

송만석은 주변에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자네 제자는 무사할 걸세. 걱정 말게나.”

송만석은 조의신이 제안한 작전을 축약해 전했다.

지금 그들의 역할은 북문 쪽의 에너미를 제거하고, 신호가 보이면 이능독 해독제를 먹고 이계 공략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탁거산은 제자가 무사하다는 말에 다소 진정했으나 여전히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아직 신호가 오지 않았네. 기다리게.”

“대관절 그 신호라는 건 언제 오는 겁니까? 얼마나 대단하기에 결계가 다 얼어붙고, 하늘이 열려 빛이 내려오는 것보다 더…….”

탁거산이 그렇게 말한 순간, 은광고 쪽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안이 보일 듯 말듯 흐린 결계 너머로 빛이 쏘아지는 게 보였다.

콰아아아!

지상에서 하늘로 빛이 뻗어 나갔다.

조의신이 지력을 담아 백아를 휘두른 결과물이었다.

결계 밖에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건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어그러진 결계와 이능독이 충만한 이계의 틈 저편, 은광고에서 맑은 기운이 차올랐다.

탁거산은 송만석이 말한 신호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듣지 못했으나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저것이 예의 그 신호임이 틀림없었다.

탁거산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신호를 자세히 살펴보려 했다.

‘결계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눈이 내리는 건가? 색이 좀 이상한데…….’

턱.

그때, 송만석이 탁거산에게 해독제를 내밀고 이계의 틈을 향해 걸어갔다.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송만석이 걷기 시작하니 마치 산이 움직이는 듯했다.

그가 걸어가자 사전에 송만석에게 언질을 들은 플레이어들이 뒤를 따랐다.

한강 싸이클링 팀의 간부 및 홍경복을 비롯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최고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돌입하지.”

송만석의 한마디에 북문 쪽의 이계 공략이 시작되었다.

공략이 시작된 건 북문만이 아니었다.

천계의 수군을 몰아낸 용족들이 있는 동문.

영원의 호수가 대기 중인 서문.

붉은 사자가 기다리던 남문.

모든 출입구의 플레이어들이 공략을 위해 돌입했다.

*    *    *

은광고 안.

기나긴 시간, 전선을 유지하던 은광고인들 모두가 검은 눈을 목격했다.

검은 눈의 전조를 가장 먼저 느낀 건 은광고 전역에 기적을 펼친 여의보주, 용제건이었다.

용제건은 김신록이 기분 나빠할 정도로 황홀한 웃음을 짓더니, 손가락을 한 번 튀겼다.

그 순간 그의 기적이 풀리고 은광고를 감싼 옥색의 공간은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다.

그 대신 검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다……!”

통찰계로 밖을 살피거나, 창밖을 보던 학생들은 검은 눈을 보게 되었다.

은광고에 내리는 검은 눈이 학교를 검게 물들였다.

이능파로 물들인 눈인지, 땅에 닿을 즈음에 힘이 휘발되어 눈은 쌓이지 못한 채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쏟아지는 눈의 양이 워낙 많아 은광고의 풍경은 검게 변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보던 학생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까 눈 맞으면 안 된다고 방송 나오지 않았어?”

“그런데 저거 눈 맞아? 검은색인데?”

“이능파가 섞였나 봐!”

혹시 적습이 아닐까?

의심하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통찰계 스킬을 가진 학생들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 은광고에 내렸던 삿된 눈과 달리, 지금 이 검은 눈에서 나쁜 기운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검은 눈의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본 건 1학년 0반 학생들이었다.

“이건…… 의신이의 이능파예요!”

“의신이 이능파 색이랑 똑같아!”

검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대피한 학생들과 달리, 1학년 0반 학생들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은 조의신의 이능파 색을 바로 알아보고, 이 눈은 조금도 해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생각대로 검은 눈이 직접 피부에 닿아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저 검은 눈에 조의신의 이능파가 섞였다는 걸 알아챈 학생들이 점차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원우가 직접 방송했다.

[학생회에서 알립니다. 현재 교내에 내리고 있는 검은 눈에 관해, 학생회가 파악한 바를 안내해 드립니다.]

이어진 방송의 내용을 요약하면, 검은 눈은 은광고의 학생이 사용한 이능의 여파로 보이며, 맞아도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은광고에 잠깐 내렸던 눈과는 성질이 다르다는 내용도 언급되었다.

그 말을 듣고 외부에서 대기하던 학생들이 안심하고 눈을 맞았다.

은광고 곳곳에서 학생들은 검은 눈이 자아내는 정경을 지켜보았다.

그중에는 10대 청소년, 황지호의 모습을 한 황호도 있었다.

황호는 손바닥 위에서 흩어지는 검은 눈송이를 내려다보며 혼잣말했다.

“조의신, 정말로 여기까지 국면을 끌고 오다니.”

마침 황호에게 전서구가 도착하였다.

황호의 모습을 가장한 가짜를 태워 보낸 전용기가 한반도의 영역을 통과했다는 메시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황호는 한반도에 남아 있었으나 그 움직임을 감시하던 자 입장에선 해외로 나간 황호가 급히 돌아온 것처럼 보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킹의 진정한 움직임을 적에게 노출하지 않은 채로 대국을 종결하게 되었다.

황호는 검은 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거리낌 없이 신역의 수호자로서 수를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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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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